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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23화 (123/408)
  • < 123화. 복귀 (3) >

    엄청난 영기파동이 두 결단기 수사에게 집중되자, 두 사내는 비행법기와 연계된 기운이 끊어지며 바닷속으로 처박혔다.

    첨벙-

    잠시 후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 허공으로 떠오른 두 사내는 사신이라도 본 것처럼 전신을 벌벌 떨며 몸을 수그렸다.

    “서, 선배님을 뵙습니다.”

    “하늘을 몰라본 것 용서해 주십시오.”

    준혁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코웃음 치고는 다시 시선을 옮겨 천이수와 눈을 마주쳤다.

    천이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결단기가 선배님이라 불렀다면, 한때 같은 연기기였던 상대가 원영기란 말이 아니던가?

    “최 수사···. 아니 최 선배님. 원영에 이르신 것입니까···. 요?”

    천이수가 갑작스레 경직된 듯 보이자, 준혁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안심하라는 표현을 했다.

    “어쩌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헌데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혹 비경에?”

    “그, 그것이···.”

    두 결단기 수사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천이수는 준혁이 궁금하단 표정을 지우지 않자, 결국 자신이 버뮤다 삼각비경까지 끌려온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수련을 위해 영석을 빌렸는데, 이자가 계속 붙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비경에서 일해 갚아야 하는 상황이란 말입니까?”

    준혁이 자신의 처지를 간략하게 정리하자, 천이수의 얼굴에 수치심이 잠시 비치다 사라졌다.

    그런 천이수의 모습에 준혁은 서늘한 눈으로 결단기 수사들을 바라보았다.

    “이 친구의 말이 사실이더냐?”

    준혁의 물음에 염소수염을 한자가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선배님과 인연이 있는 이에게 어찌 이자를 받겠습니까요? 아니 원금도 필요 없습니다! 당장!”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던 염소수염은 공간대에서 특수처리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부욱- 소리가 나게 찢어버리고는 손에 불을 만들어 태워버렸다.

    그리고는 두 손을 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보십시오! 이제 빚은 없습니다요. 이수! 자네 빚은 더 이상 없으니 그만 가봐도 되네! 우리가 사과하겠네!”

    원영기 수사에게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염소수염이 빚문서를 태워버리고는 천이수에게도 연신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그 모습에 준혁은 한층 더 차가운 표정을 한 채 그를 쳐다보았다.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그, 그것이···.”

    “나를 위력으로 겁박이나 하는 자로 만들 셈이더냐?”

    어느새 준혁 주위 기파가 흔들리며 묘한 파동을 퍼트렸다. 파동은 축기기 수사들을 피해 결단기 수사들에게만 밀려들었다.

    그러자 뚱뚱한 사내가 연신 몸을 떨며 다시 바다에 빠질 듯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였고, 염소수염은 얼굴색이 창백해져,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것처럼 동공이 흔들렸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결단기는 지옥에라도 떨어진 듯 공포에 젖어 들었다.

    “살려···. 주.”

    “서, 선배님···. 제, 제발···.”

    한참 동안 말없이 두 사람을 노려보던 준혁은 혀를 한번 찬후, 기운을 풀어버리고는 천이수에게 말을 걸었다.

    “원금이 얼맙니까?”

    천이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준혁의 눈에 비친 진지함에 결국 입을 열었다.

    “영석 500개···. 입니다···.”

    +++

    “그럼 시간이 될 때 울릉도로 오십시오. 술 한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준혁은 얼떨떨해하는 천이수의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씨익 웃으며 허공을 박차 하늘을 갈랐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날아오른다고 느낀 순간 이미 점처럼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천이수는 그런 준혁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표정을 한 채 중얼거렸다.

    “한국에 새로운 원영기가 나타났다더니···. 그게 최 수사였을 줄이야···. 도대체 어떤 기연을 만나야 반백 년 만에···. 아니 이 얘길 한다면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어느덧 천이수의 손엔 하급 공간대 하나와 전음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천이수를 보며 사색이 된 염소수염이 비굴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이수, 자네 우리와 악감정은 없는 것이지? 그렇지? 나중에라도 혹시 선배님께 우리 얘기를···.”

    +++

    동해, 울릉도의 성인봉 정상.

    평소보다 유난히 파도가 심한 바다를 바라보며, 제이엘은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제이엘의 손엔 옥간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유럽연합의 수하에게서 온 소식이 담겨있었다.

    “결국 나뿐인가.”

    옥간 안엔 각국의 원영기 수사의 동태에 대해 적혀있었는데, 중국, 미국, 러시아의 원영기 수사는 50여 년 전부터 활동을 완전히 멈췄다는 얘기뿐이었다.

    결국 자신이 비경에서 도망쳤던 날 이후로, 최 수사를 포함한 그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셈.

    “그래도 그와의 약속을 저버릴 순 없지. 어떻게든 해결하고 떠나야 해.”

    제이엘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발아래 땅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30년 안에는 가라더니···. 도대체 이 봉인은 풀리지도 않고, 건드릴 수도 없으니···. 이건!!”

    그때, 한숨을 내쉬던 제이엘은 무언가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게 무슨.”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거력이 마치 거대한 눈이 된 것처럼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느낌.

    그 시선에 흠칫한 제이엘은 자신도 모르게 전신에 영력을 끌어올리다가 이상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에서부터 느껴지는 울림이었는데, 아주 작은 피 한 방울이 당장 움직이라는 듯 신호를 주고 있었다.

    “설마!!”

    그리고 신호를 느낀 제이엘은 아주 짧은 순간 고민을 하다, 몸이 흐릿해지더니 번쩍하고 사라졌다.

    +++

    울릉도 상공.

    하늘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른 제이엘은 자신 앞에 여유로운 모습으로 떠 있는 사람을 보고는 탄성을 터트렸다.

    “최 수사!! 살아있었군요!!”

    그랬다. 버뮤다 삼각비경에서 울릉도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주파한 준혁이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제이엘을 몰래 부른 것.

    “잘 지내셨습니까?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있다니 의외였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준혁이 제이엘에게 부탁한 것은 동생에게 걸어둔 봉인이 자동으로 해제되기 전, 그녀를 꺼내 치료하는 것.

    동생을 치료하고 나면 굳이 울릉도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그녀였다.

    준혁의 물음에 제이엘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하다 사정을 꺼내놓았다.

    “수사께서 30년 이내로 이곳으로 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보다 10년 일찍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어요. 하지만···.”

    준혁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울릉도로 온 제이엘은 시간을 지체하기 싫었기에, 바로 봉인 해제에 들어갔다.

    하지만 준혁이 동생을 봉인하는 데 사용한 월광지력은 그녀의 능력으로 해제가 불가능했다.

    정확히는 진법 자체는 해결할 수 있었으나. 월광지력이 뿜어내는 냉기에 침식당할 위험이 너무 컸던 것.

    그랬기에 제이엘은 준혁의 말대로 봉인이 자연스럽게 해제되길 기다리며 울릉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년을 일찍 왔듯이, 준혁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50년 정도 버틸 봉인을 30년이라 축소해 말했었기에, 그녀의 기다림은 한없이 길어지고 말았다.

    결국 준혁이 나타난 이 시점까지 그녀는 월광지력으로 이루어진 봉인을 해제하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제이엘의 설명을 듣고 난 준혁은 침음을 흘렸다.

    “그럼 아직 제 동생은···.”

    준혁의 물음에 제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직 그대로예요.”

    ‘내 생각보다 더 오래가는구나.’

    일반적인 냉기가 아닌 월광지력으로 만든 기운이 봉인 진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기에 나온 실수였다.

    준혁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약속은 지켜야죠.”

    제이엘의 반응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녀의 심장 부위에서 무언가가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제이엘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정혈 한 방울이 빠져나오더니 준혁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 부탁을 들어주신 것은 후일 꼭 보답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한 부탁이란 동생을 치료해달라는 것이 아닌, 원영기에 오른 수사에게 약속 이행을 담보로 금제를 했던 것을 뜻했다.

    준혁의 말에 제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우릴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수사의 행동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사실 준혁이 정혈을 이용해 제이엘에게 가벼운 금제를 걸었다고는 하나, 준혁이 죽는다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목숨에 비교한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나 다름없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혁이 가볍게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마주 보며 웃던 제이엘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이곳으로 절 부르신 거예요? 다들 수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왜 몰래 자신만 따로 불러냈냐는 질문.

    제이엘의 의문에 민망한 듯 시선을 아래로 옮긴 준혁은 점보다 작아진 울릉도를 시야에 두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니 상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황을 얼버무리려는 준혁의 말에 제이엘은 무언가 알아차린 듯 작게 미소를 짓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준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왕웅을 비롯한 나머지 원영기 수사가 살아있다고 아마르곤을 통해 듣긴 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기에 가타부타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잠시 후.

    준혁이 나타난 것 때문인지, 금제가 제거된 것 때문인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섬으로 돌아간 제이엘을 보며 준혁은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리고는 모든 기척을 지운 후, 흐릿하게 변하며 섬으로 내려갔다.

    +++

    울릉도 분지 안에 세워진 건물 안.

    이곳은 평소 청명이 주로 머물며 울릉도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주관하는 곳이었다.

    좋게 말하면 울릉도의 중추였고, 나쁘게 말하면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들의 터전이었다.

    그런 그곳에 무슨 일인지 울릉도를 대표하는 수사들 전원이 모여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호법 자리에 오른 가심악 이었다.

    “나도! 노력할 만큼 했소이다! 저 넓은 영석 광맥! 그것도 바닷속에 있는 광맥을 진법으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게 만들었고, 최 수사의 부탁대로 일반인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독도 위에 거처와 이동진까지 만들었습니다!”

    전송진이 먼 거리를 도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거라면, 이동진은 짧은 거리를 영력이나 법기의 도움 없이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진법이었다.

    소리치는 가심악을 보며 사쿠라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서 뭐?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평소엔 자신보다 수행이 높았기에 말을 조심했던 가심악이 이번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는 못 해 먹겠다 이 말이오! 무려 50년이오. 50년! 내가 겨우 영석이나 얻자고 이곳에 온 줄 아시오! 50년간 수행도 전혀 올리지 못하고 일만 했거늘! 최 수사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고 있소이다! 어디 나뿐이오?! 다들 말은 못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마음일 거란 말이오!”

    사쿠라의 얼굴이 점점 사늘하게 식어갔지만, 한번 입이 터진 가심악은 그동안 꾹꾹 눌러온 속마음을 모조리 털어냈다.

    가심악 주위에 서 있던 나설헌과 화령, 거기에 처음 보는 결단기 중기의 노인까지. 직접 말을 꺼내 동조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심정인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심지어는 사쿠라의 제자들마저 가심악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사쿠라가 입숙을 비죽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다들 그래? 그럼 꺼져.”

    사쿠라의 말에 가심악이 바로 발끈하며 소리쳤다.

    “말이 심하지 않소이까! 이곳엔 통유대문의 나한 문주도 있습니다!”

    사쿠라는 나설헌 옆에 서 있는 결단기 중기 노인에게 잠시 눈을 주다가 가심악을 쳐다보았다.

    “어쩌라고? 저자도 결국 최수사 곁에 붙어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달려온 것인데, 먹을 게 없으면 꺼져야지. 안 그래?”

    “이익!”

    “그리고 가심악. 네 녀석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뭐라 했었지? 잡일은 도맡아 할 테니 최수사는 수련에만 힘쓰라고? 나이가 드니깐 기억력이 점점 나빠지나 봐?”

    다시 발끈하려는 가심악을 무시한 채, 사쿠라는 한쪽 벽에 조용히 시립 해 있는 청명을 가리켰다.

    “저놈 봐. 가심악 네 녀석은 그래도 진법을 유지 관리하는 일을 제외하곤 수련 시간이라도 가졌지. 저놈은 50년간 축기 중기에 그대로 머물며 일만 했어. 화를 내려면 저놈이 해야지, 안 그래?”

    사쿠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청명에게 향했다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변했다.

    말을 하던 사쿠라가 잠시 마음을 내리누르는 듯 눈을 감다가 말을 이었다.

    “50년? 그래, 짧은 시간은 아니지. 특히 저놈처럼 결단기에 오를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리면 그 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지. 근데 뭐? 결국 니들이 선택한 거 아냐? 왜?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붙어있다가 아닌 것 같으니까 화가나?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아!!”

    마지막 욕설을 내뱉으며 사쿠라의 몸 주위로 무형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잔악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성격이, 한동안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본성이 깨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훈풍 같은 기운이 흘러오더니 그녀의 기운을 차분하게 내리누르며 반항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흩어버렸다.

    사쿠라는 자신의 살기가 단숨에 지워져 버리자 흠칫하며 전신에 영력을 끌어올리며 빠르게 사방으로 기감을 퍼트렸다.

    그러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그곳에서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채 웃고 있는 사내를 본 순간 모든 행동이 멈춰버렸다.

    그곳엔 그토록 기다리던 이가 서 있었다.

    그자는 사쿠라와 눈이 마주치자, 어디 나들이라도 다녀온 양, 별일 아니란 듯 말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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