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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22화 (122/408)

< 122화. 복귀 (2) >

호하가 허공에 나타나기도 전, 이미 그의 기척을 느끼고 있던 준혁은 서둘러 청호를 꺼내 명령을 내렸다.

“내가 펼쳐둔 진의 방향대로 영기를 인도하기만 하여라. 혹 그게 어렵다면 유지만 시키고.”

영수대에서 나와 넓게 펼쳐진 깃발들을 바라본 청호가 대답하기도 전, 준혁은 땅을 박차며 위로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호하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며 양손을 휘저었다.

“감히 도망가게 놔둘성 싶더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하의 양손에서 영기가 뭉치며 거대한 잎사귀 두 장이 나타났다.

나타남과 동시에 터져나가며 수백 개의 잎새 칼날이 되어 비산했다.

슈아악-

수백 개의 칼날이 청호와 진법을 향해 날아가자, 호하에게 근접해 가던 준혁이 짧게 수결을 맺었다.

그 순간, 그의 손 앞에서 분광소가 나타나며 수십 자루로 증식해 사방으로 날아갔다.

“저에게 집중하시지요!”

그리고는 분광소가 칼날들을 흩어버리기도 전, 두 주먹에 월광지력을 두른 후 내질렀다.

어느새 준혁의 머리 위엔 인지경과 하나 된 식검이 미칠듯한 속도로 주위 영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쩌저정-

순식간에 다가온 준혁이 주먹을 내지르자, 호하는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다르게 신중하게 잎사귀 뭉치를 소환해 준혁이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내밀었다.

그리고 준혁의 월광지력과 호하의 잎사귀 뭉치가 부딪치기 직전.

“크아아앙!!”

준혁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그전에는 수행 차이로 사용하지 않았던, 백호 혈맥의 힘.

“윽!”

사자후의 음파가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자, 호하는 생각지도 못한 방해에 몸을 휘청였고, 동시에 잎사귀 뭉치로 흘러가던 영기의 흐름도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칠 준혁이 아니었다.

쩌정- 퍼걱-

준혁의 주먹은 잎사귀 뭉치와 닿으며 순식간에 얼려버렸고, 동시에 그것을 깨트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어 호하를 직격했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에.’

호하가 나타났으니 그의 기운과 반응해 언제 목족의 여왕이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

준혁은 호하를 빠르게 제압해야 한다는 판단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쾅!

월광지력에 적중당한 호하가 악에 받친 표정을 한 채 한참을 날아가다 허공에 멈춰 섰다.

단 한 수에 극한의 한기에 침식당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꽤 곤욕스러운 듯 표정에 여유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멈추어 선 것과 동시에 빠르게 자신의 가슴 부위를 손으로 짚어 월광지력의 한기가 퍼지는걸 막으려 한 호하.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제가 나갈 때까지 얌전히 있으시지요!”

어느덧 호하의 머리 위에 나타난 준혁이 발끝을 위로 향한 채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준혁의 발끝엔 월광지력뿐 아니라, 희미하게 반투명한 기운이 함께하고 있었다. 혈단법으로 모인 탁기를 식혈만복의 혈피갑 술법을 이용해 몸의 강도를 한차례 올리는 데 사용한 것이었다.

“이익!”

호하는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준혁의 공격을 회피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가슴의 한기는 내버려 둔 채 바로 손을 뻗으며 잎사귀를 소환해냈다.

하지만 이미 인지경을 이용해 완영기 초기를 벗어나 있는 준혁의 공격은 그가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콰아앙!

내려 찍히는 발길질의 거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간신히 발길질을 막아낸 호하는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급속도로 추락하더니, 결국 바위산 인근의 땅을 한참이나 파고 들어갔다.

쿠앙-

동시에 두 손이 완벽하게 얼어붙더니, 잠시 후 쩌정- 소리를 내며 바삭 부서져 버렸다.

한편, 호하가 거대한 충격과 함께 땅으로 추락하자, 바로 따라붙은 준혁은 빠르게 수결을 맺고는 한 손으로 땅을 짚었다.

“결!”

‘결’이라는 말이 나오자 준혁의 몸에서 엄청난 영기가 땅속으로 쭈욱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고, 잠시 후엔 땅속에 박힌 호하의 몸이 무수하게 자라난 나뭇가지에 꿰뚫리며 구속돼 버렸다.

“아쉽게도 당신과 놀아줄 시간은 없군요.”

호하가 완전 무력하게 구속된 모습을 보며 준혁은 싸늘한 눈빛을 보내고는 등을 돌렸다.

지금 상태에서 조금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호하를 죽이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완영기에 이른 원영이 처리하기 힘든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 하위 수사들에게 해당하는 말.

같은 완영기인 준혁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를 처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거기다 평소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말을 함부로 하는 호하였기에 깔끔하게 처리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아마르곤이 목족을 상대함에 손속의 사정을 두라며 부탁하긴 했지만, 완영기 수사는 그 범주 안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준혁이 그저 그를 구속하는 것으로 끝낸 이유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목족의 여왕 때문.

무슨 이유인지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만약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저번처럼 호하를 구하는 데 먼저 힘을 쓰게 할 속셈으로 처치를 해놓은 상태였다.

+++

호하를 땅속에 박아버린 후, 빠르게 청호 곁으로 다가온 준혁은 진법이 잘 운용되고 있자 청호를 쓰다듬어 준 후 영수대에 집어넣었다.

“잘했다. 들어가 있거라.”

그리고는 재차 수결을 맺어, 봉인 술법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구르릉-

잠시 후. 거대한 진동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자, 높이 솟아있던 바위산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 모습에 땅속으로 기감을 쏘아 보낸 준혁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공간대에서 노란 부적 한 장을 꺼내 발동시켰다.

아마르곤이 말한 출구를 인간들이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봉인 진법을 해제해 땅속 깊이 숨겨진 출구를 끌어 올린다 해도, 애초에 출구가 지면 아래 있었기 때문.

준혁은 지둔부를 발동해 땅속으로 꺼지기 직전, 무슨 생각인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하다가, 공간대에서 진법 깃발 여러 개를 꺼내 주변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결을 맺더니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직후, 지둔부를 이용해 땅속으로 사라졌다.

파앗-

그리고 준혁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난 후, 호하가 갇혀있던 구덩이 속에선 고통스러운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

끼룩 끼룩-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한복판.

그곳엔 십여 명의 인물들이 비행 법기에 의존한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개중 두 명은 결단기 초기였고, 나머지는 전부 축기기 초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했다.

그중 간사한 염소수염을 기른 결단기 수사가 좌중을 훑어본 후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몇 걸음만 나아가면 비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질문할 게 있다면 해라.”

염소수염의 말에 일행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 선배님. 저는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요? 빌린 영석은 꼭 5년 안에 갚도록 하겠습니다.”

어려 보이는 수사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염소수염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놈들이 지금 몇 년째 지불을 미루고 있지? 일 년 이 년 하던 게? 어? 우리 동전문(動錢門)이 자선사업가인 줄 아느냐?!”

염소수염의 호통에 주변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아마 십 년이 지나도 또 봐달라고 사정하겠지? 그러니 비경 안에 들어가 비작약(飛芍藥)을 캐는 일을 돕는 게 빠르다. 그렇지 않은가? 묘후.”

염소수염의 말에 묘후라 불린 뚱뚱한 결단기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어차피 비경 외곽에 있는 비작약을 캐는 일은 연기기도 할 수 있는 일. 그걸로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나 다름없지. 게다가 빚진 금액만큼의 비작약만 캐고 나면 그 안에서 수련을 하든 다른 약초를 찾아 나서든 자유니까. 나쁠 게 없지.”

하지만 억지로 끌려가는 축기기 수사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지, 그중 한 명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재수가 없다면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것 아닌가···.”

“자네 방금 뭐라 했나? 할 말이 있다면 크게 말하게.”

“아, 아닙니다.”

염소수염 사내가 눈썹을 끌어올리며 바로 반응하자, 혼잣말하던 사내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손사래를 쳤다.

염소수염 사내는 그런 축기기 수사를 못마땅하게 쏘아보다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짝짝-

“그럼 다들 설명한 대로 행동하면 된다. 우선 비경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신이 이동된 위치를 파악하고, 외곽 끝으로만 크게 돌아 북쪽 끝으로 이동, 이동하는 길에 비작약을 채집하면 된다. 그럼 모두 이동!”

염소수염의 말에 축기기 수사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천천히 비경의 경계로 날아갔다.

그때, 경계로 생각되는 한 지점의 공간이 흔들렸다.

“누군가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잠시 후 공간이 미세하게 갈라지며 반듯하게 생긴 사내를 토해냈다.

보이는 현상으로 보자면 비경 안에서 누군가 나온 것이었기에, 염소수염 사내와 뚱뚱한 사내는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살피고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결단기인 두 사람 눈에 상대방의 수행이 전혀 읽히지 않은 것.

하지만 그런 둘의 눈빛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갑자기 나타난 사내는 눈앞에 모여있던 수사들을 한번 쓰윽 훑어보더니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피웠다.

그리고는 축기기 수사 중, 한 명을 보고는 반갑게 말을 걸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천 수사 아닙니까?”

사내의 부름에 빚 때문에 비경으로 끌려가는 무리에 섞여 있던 천이수가 깜짝 놀란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최! 최태식 수사?”

비경 안에서 나타난 사내.

그는 오래전 설악산 공법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천이수가 만난, 최태식이란 수사였다.

자신과 똑같이 연기기였던 수사. 운이 좋게도 공법시험을 통과했던 유일한 수사.

+++

지하에 숨겨져 있던 통로를 통해 버뮤다 삼각비경 밖으로 빠져나온 준혁은 갑작스레 마주친 무리 중에서 낯익은 이의 얼굴을 보고는 그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설악산에 입문할 당시, 공법시험 때 정보를 주었던 자.

지금에 와서 따지자면 크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준 그에게 크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고마움이 희석되는 건 아니었기에 준혁은 반가운 마음이 컸다.

“천 수사.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천이수는 준혁의 수행이 가늠도 되지 않자, 조금은 당황한 표정을 했다.

산수 출신 중 수행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이 상대방의 수행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에 놀라 하고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안 그래도 오래전 설악산 참사 소식을 듣고 최수사를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무탈하셨습니다.”

설악산 참사라는 말에 준혁은 속으로 뜨끔해 하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때 시험을 통과하긴 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곳의 정서가 저와는 맞질 않더군요.”

“아.”

“그나저나 천 수사도 열심이셨나 봅니다. 축기기 중기에 오르신 걸 보니.”

60여 년이 넘었지만, 자원이 한정된 산수출신이 축기기 중기에 오른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준혁은 진심으로 그를 축하해 주었다.

“아닙니다. 조금 운이 따랐을 뿐이죠. 헌데···. 최 수사께선···.”

“저 역시 운이 조금 있었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제가 술 한잔 사기로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말을 이어가던 준혁은 문득 주변 인물들이 전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에 가볍게 혀를 차고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은 누구길래 그리 흉흉한 기세를 피우시는 겁니까?”

준혁이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말하자, 갑자기 나타난 이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져 있던 두 결단기 수사가 움찔하며 반문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알 수 있겠소? 나는 아시아 전역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동전문의 장로. 묘후라고 하오.”

뚱뚱한 사내의 말에 염소수염도 자신을 소개했다.

“저 역시 동전문의 장로직을 맡은 심수반이라 합니다. 천 수사와 오래전 아는 것 보니 한국분인 거 같은데,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두 결단기 수사가 마치 심문하는 듯한 어조로 묻자 준혁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악-

준혁의 몸에서 어마무시한 영기파동이 터져나가며 두 사람을 덮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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