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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20화 (120/408)
  • < 120화. 혈맥의 힘 (3) >

    터질 것 같은 녹색 원영 앞.

    대치를 이루고 있는 금빛 원영을 주시하며 준혁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운을 제외한 전력을 끌어모았다.

    ‘우선은 분리를 해야 한다.’

    녹색 원영이 품고 있는 혈맥의 힘은 어느덧 실오라기를 풀 듯 원영의 몸을 투과하며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는 상태.

    만약 기운이 절반 이상 밖으로 빠져나온다면 상황은 되돌릴 수 없게 변하고 말 것이었다.

    그렇기에 혈맥의 힘이 분사되기 전에 아마르곤의 원영과 분리해야 했고, 그 후에 다시 혈맥의 힘이 안정화를 이루게 만들어야 했다.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일.

    게다가 아마르곤이 죽지 않게 해야 했기에 더욱더 어려운 난이도였다.

    ‘차라리 아마르곤을 포기할까?’

    잠시 아마르곤을 살릴지 말지를 빠르게 고민했다.

    심상의 충격을 감안하고라도 그를 완전히 혈맥의 힘에 잠식되게 만든 후, 처리하는 게 오히려 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다.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을지라도, 무의식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종속의 인이란 편리한 이용티켓 같은 게 아니었다.

    필요할 때 유용하게 사용하다가 버리고 싶을 때 유기할 수 있는 그런 간편한 술법이 아닌 것.

    주(主)와 종(從)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호응하며 유대감이 생겨나는 것.

    지금 편안한 선택을 했을 경우, 후일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심마가 되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겨우 화신기나 그 위인 삼경 수준에서 머물 생각이 없던 준혁에겐 그건 절대 사양해야 할 선택 중 하나였다

    마음을 다잡은 준혁은 이미 혼백이 흐려질 만큼 큰 충격에 휩싸인 아마르곤을 향해 심어를 보냈다.

    어차피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주 작은 무의식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었기에 한 행동.

    -아마르곤 수사! 지금부터 제 정혈을 이용해 수사의 원영을 씻어낼 것입니다. 아마 끔찍한 고통이 찾아올 것입니다.

    물론 준혁 역시 아마르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지만 적지 않은 반작용을 맞이해야 할지도 몰랐다.

    -무조건 이겨내셔야 합니다. 무조건! 저와 연결된 끈을 놓지 마십시오! 절대로!

    준혁의 심어에 아마르곤의 원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터져나가려는 몸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완영기에 올라 원영의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기에 버티는 것이지, 만약 원영기 수사의 나약한 원영이었다면 이미 터져나갔을 건 불 보듯 뻔한 일.

    -그럼 갑니다!

    준혁은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마지막 심어로 녹색 원영에게 충격을 주며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 순간, 녹색 원영을 꼼꼼하게 감싸고 있던 준혁의 정혈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정혈들이 뭉치더니, 송곳처럼 변해 녹색 원영의 이마를 찌르며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스르륵-

    푸욱-

    정혈로 이루어진 송곳이 이마를 꿰뚫자 녹색 원영은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며 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몸속을 파고든 정혈의 1할 정도 되는 크기의 노란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오더니 준혁의 정혈과 뒤섞여 구의 형태를 이루었다.

    적황색 구체는 빠르게 회전했고, 잠시 후엔 준혁의 정혈이 빠져나가며 온전한 노란 기운만을 남겼다.

    ‘생각대로 된다.’

    그 반응에 준혁은 조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다시 정혈로 송곳을 만들어 녹색 원영의 이마를 찔러갔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초집중 상태를 유지하던 준혁.

    그런 준혁의 몸속엔 어느덧 붉은 기운과 금빛 기운, 그리고 녹색 기운을 동시에 지닌 아마르곤의 원영이 망아를 겪는 사람처럼 멍하니 좌정한 채 앉아있었다.

    그 앞엔 노란 구체가 무언가에 구속당한 듯 꽁꽁 싸 매여져 있었고, 맞은편엔 금빛 원영이 지친 표정을 한 채 서 있었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 결국 아마르곤의 원영에서 혈맥의 힘을 완전히 분리하는 데 성공한 준혁은 마지막 과정만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아마르곤 원영의 3할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정혈을 거둬들여야 했고, 나머지 3할을 차지한 자신의 원영의 기운도 빼내야 했다.

    하지만 마무리 단계를 앞둔 상태에서 준혁은 멈춰야만 했다.

    ‘원영의 기운이 너무 쇠했다. 이대로 끝내게 된다면, 살아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을 터인데···.’

    그 이윤 정혈로 씻어내는 과정에서 아마르곤에겐 혼백까지 흔들릴 정도의 고통이 가해졌고, 그걸 견디기 위해 원영은 스스로 기운을 소비해 버린 것.

    그것도 언제든 회복할 수 있는 영력이 아닌, 생명체가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힘을.

    ‘회복시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어쩐다.’

    모든 과정을 살피고 진행한 준혁에겐 아마르곤의 원영이 잃어버린 기운을 회복시켜줄 방법이 있었다.

    잃어버린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힘을 되찾게 해줄 수는 없었지만, 얼추 비슷한 수준까지는 되돌릴 수 있는 것.

    다만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외부에서 강렬한 기운을 집어 넣어줘야 했고, 지금 준혁에게 그런 공능을 가진 물건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화신단이면 가능하지만···. 하아···.’

    그랬다. 준혁이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토록 고민하는 이유.

    그건 단 3알뿐인 화신단. 그중 하나를 사용해야만 아마르곤을 회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화신기에 올려주고, 그 후에도 수행을 엄청나게 상승시켜줄 화신단을, 그것도 적이나 다름없는 상대에게 사용한다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속의 인으로 연결된 끈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그런 판단을 자꾸 흐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치료를 하기 전과 다르게 자신의 정혈과 자신의 원영의 힘으로 상대의 원영을 완벽하게 씻어내다 보니, 마치 아마르곤과 하나 되었다가 분리된 것처럼 엄청난 감응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청호보다 더 압도적으로 가까운, 마치 형제를 대하는 것 같은 감정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랬기에 준혁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한하지 않는 법.

    준혁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공간대에서 화신단을 꺼내 삼켰다.

    ‘종속의 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하나만은 확실하다. 만약 여기서 주저한다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이다!’

    꿀꺽-

    화신단은 준혁의 입속으로 들어간 순간 머릿속 근심을 날려버릴 만큼 청아한 향을 풍겼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녹아들며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 현상에 준혁은 급하게 정신을 집중하며 화신단의 힘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

    콰아앙!!

    그것은 폭발이었다.

    아마르곤의 원영 속에서 일어난 폭발은 준혁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화신단의 기운은 준혁이 생각하는 수행을 올려주는 단약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화신기 이하 수사에겐 화신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할 만큼 압도적이고 어마무시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일어났다.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어 가자 아마르곤의 원영은 그 자극에 자신의 기운을 북돋기 시작했지만, 기운이 북돋아진 건 그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운을 가져갔다고는 하나, 결국 아마르곤의 원영이 머물고 있던 곳은 준혁의 내부.

    준혁 역시 화신단의 기운을 받으며 금빛 인영이 황홀감에 빠져들었고, 환희에 젖어버렸다.

    문제는 노란 구체 형태로 뭉쳐있던 혈맥의 힘마저 그 파동에 휩싸이며 기운이 풀어져 버렸다는 것.

    준혁이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 엄청난 자극을 받은 혈맥의 힘은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준혁은 서둘러 기운을 끌어모아 혈맥의 힘을 다시 안정시키려고 했지만, 너무 큰 자극 때문인지 그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콰르르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팽창하던 혈맥의 힘은 기운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고, 어느새 절반가량을 분사시킨 구체는 맹렬하게 떨어댔다.

    ‘안 되겠다.’

    아마르곤의 원영이 좀 더 기운을 안정화 시킨후에 몸 밖으로 내보내려 했던 준혁은, 결국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어느새 녹색을 되찾아가고 있던 원영을 몸 밖으로 배출해 버렸다.

    툭-

    그리고는 혈맥의 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혈맥의 힘은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상태가 악화하며 터지기 일보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준혁은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뜻을 알아차린 금빛 원영이 식칼 위로 붉은 광검을 소환하더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밖으로 빼낼 수도 없고, 안정화도 시킬 수 없다면 마지막 방법은 식검으로 잡아먹는 것.

    욕심은 났었지만, 의도적으로 피했던 상황.

    어쩔 수 없이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되자 준혁은 허망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원영은 점점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검을 겨눌 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준혁이 마음의 준비를 끝내자 원영은 기다렸다는 듯 노란 구체를 향해 식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스르륵-

    하지만 엄청난 긴장감을 동반한 것과 달리, 혈맥의 힘은 거짓말처럼 조용하게 식검 안으로 흡수돼버렸고, 이내 식검을 타고 원영으로 흘러 들어갔다.

    +++

    준혁이 좌정한 상태에서 눈을 떴을 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마르곤 역시 동조하듯 눈을 천천히 올렸다.

    잠시간 말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

    훼에엥-

    바람이 일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아마르곤이 앉은자세 그대로 준혁에게 깊게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편 그의 얼굴엔 감사함과 더불어 구원자라도 보는듯한 절실함이 가득해 보였다.

    “수사. 어째서 저를 살려주신 겁니까? 편한 길을 택하고자 하셨다면 저를 버림이 옳지 않았습니까?”

    차분하게 묻는 아마르곤의 질문에 준혁은 마주 웃어 보였다.

    “우리의 끈이 생각보다 두껍더군요.”

    준혁의 너스레에 아마르곤이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 모험을 하셨다니. 정녕 무슨 이유셨습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준혁은 생각에 잠긴 듯 대답을 멈추었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저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저 그랬다?”

    고개를 끄덕여준 준혁이 말을 이었다.

    “수사와의 인연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나, 그 끝이 지금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연의 끝이라···.”

    준혁의 말에 무언가를 곰곰이 되씹듯이 생각에 잠겨있던 아마르곤이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몸을 사린 이유가 그녀의 공간 진법 때문이겠지요?”

    준혁이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아마르곤이 말을 이었다.

    “최 수사···. 유일하게 그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은 생명이 죽은 땅인 이곳뿐.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이대로 가란 말입니까?”

    “당신이 봉인지를 선계에 이을 수 있다 한들 그녀가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돌아가는 순간,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할 겁니다.”

    아마르곤의 말은 준혁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였던 일.

    다만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긴 했지만,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상황을 지켜보며 고분고분 명령을 듣고 있었던 것.

    어떤 술법이라도 완벽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을 테니, 여왕의 술법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야 행동할 생각이었다.

    말을 마친 아마르곤은 입을 열어 뿌리가 든 상자를 꺼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최 수사께서 혈맥의 힘을 온전히 흡수하셨겠지요?”

    이번에도 준혁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이것들 역시 혈맥의 힘과 함께하는 게 좋겠지요. 그러니 수사께서 가져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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