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19화 (119/408)
  • < 119화. 혈맥의 힘 (2) >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수사를 위해 드리는 말입니다.”

    준혁은 몸 일부가 마비돼 가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걱정 없이 아마르곤을 말렸다.

    종속의 인 때문에 자신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단 걸 알고 있었기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미안합니다. 수사.”

    아마르곤은 그런 준혁을 지나치더니, 노란 구체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아마르곤의 전면에 옅은 분홍 꽃잎들이 나타나더니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섰다.

    “혈맥의 힘 따위 누구에게 돌아간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차피 목족인들의 힘. 하지만 여기서 수사가 잘못되면 모든 게 틀어짐을 알지 않습니까?”

    혈맥의 힘을 흡수하든 목족의 거처로 옮기는 것이든, 결국 몸 안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삼키는 행위였다.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폭탄은 터질 테고, 그 후엔 순리대로 혈맥의 힘은 다시 세상으로 흩어진 후, 지목족의 후예들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법문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혈맥의 힘을 강제로 취한다는 건 결국 죽음을 앞당기는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혈맥의 힘을 그대로 해방하든, 다른 이가 흡수하든 준혁에게 있어서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봉인지에서 풀어놓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법문의 손에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어차피 그에게 있어 결과는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천균과의 약속은 지킨 것이나 다름없는 것.

    식검으로 혈맥의 힘을 흡수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겨우 청혈 한 방울에 섞여 있던 백호 혈맥의 힘을 흡수할 때도 요란한 과정을 거쳤던 그였기에, 힘의 크기를 재단조차 할 수 없는 지목족의 힘은 욕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아마르곤이 흡수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만약 혈맥의 힘을 받아들인 아마르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과연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정확히는 분명 화가 미칠 터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취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옮기려는 것일 뿐이니까요.”

    준혁의 말에 대답한 아마르곤은 양손을 가볍게 저으며 한발 앞으로 움직였고, 준혁이 만든 꽃잎 장벽은 그와 동시에 흩어져 버렸다.

    꽃잎은 흩어진 직후, 다시 뭉쳐 들며 아마르곤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자 다시 손을 저어 꽃잎을 날려버린 아마르곤은 진법의 중심으로 성큼 다가가더니 노란 구체를 단숨에 삼켜버렸다.

    +++

    바둑판처럼 얽혀있는 석실 중 한 곳.

    준혁은 마비가 사라진 후 아마르곤을 마주한 채 서 있었다.

    그런 준혁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마르곤.

    “인족들은 이렇게 예를 표한다 들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혁이 마음먹고 말렸다면 아마르곤이 걸어둔 마비 따위를 해결하는 건 여반장이나 다름없는 일.

    그랬다면 이미 기력을 많이 잃고 있던 아마르곤에겐 꽤 수고를 무릅써야 하는 일이 됐을 게 분명했다.

    “약속하셔야 합니다. 여왕에게 가져가기 전까진 절대 다른 것을 시도하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서로를 해칠 수 없는 입장이었으니, 혈맥의 힘을 놓고 힘겨루기를 한다 해도 결국은 시간 낭비인 셈.

    준혁은 감정 공유를 통해 아마르곤의 의지를 읽은 순간, 더는 그를 말리지 않고 방치했다.

    “그럼 중요한 일은 해결했으니, 이제부턴 이곳을 조사해보도록 합시다.”

    상황이 정리되자 준혁은 다른 석실 쪽으로 눈짓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준혁의 목표였던 혈맥의 힘 해방은 의도와는 다르게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결과론적으론 할 일을 마친 것이나 다름없는 일.

    이제는 목족 여왕이 원했던 봉인지가 선계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준혁과 달리 아마르곤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했다.

    “당분간은 수사 혼자 조사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힘이 너무 강대해, 당장이라도 제 몸을 잠식하려 듭니다. 지금 손을 써두지 않으면 이곳을 벗어날 때 저와 수사···. 둘 다 위험할 수 있겠습니다.”

    준혁의 인상이 순간 구겨졌다.

    그가 가장 우려했던 일.

    지금은 그나마 온 힘을 혈맥의 힘을 감당하는 데 사용하겠지만, 봉인지를 벗어나기 위해 원영의 상태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만약 원영의 상태로 준혁의 몸 안에 들어간 후 문제가 터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했고, 그전에 일이 잘못된다 해도 비경으로 돌아가야 하는 준혁에겐 결코 좋지 않은 결과였다.

    “알겠습니다.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완벽하게 제어하셔야 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득 봉인지에 들어선 이후부터, 준혁에게 감사 인사를 거듭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아마르곤은 그와 연결된 감정의 끈이 조금 강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는 조금 망설이다 석실을 벗어나려는 준혁을 향해 말했다.

    “수사. 목족에게 영광이 있다면 그건 수사 덕분입니다.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

    아마르곤의 감사 인사를 뒤로한 채 석실을 나온 준혁은 다른 석실로 향했다.

    목족의 여왕과 아마르곤에겐 이곳에서 선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본다 했지만, 그러한 방법 따위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일.

    혹시나 남아있을 지목족의 흔적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

    6개월 후.

    황금으로 지어진 궁전의 대전.

    준혁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대전의 황금 벽면을 살피고 있었다.

    “초진금이라···. 분명 특별한 사용처가 있을 터인데···.”

    괴조가 꺼림칙해 하던 초진금.

    기감을 방해하는 황금 벽면은 어떠한 공격으로도 손상이 가질 않았다. 그랬기에 더욱 준혁의 관심을 끌었다.

    “조금이라도 떼어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구나.”

    그때 대전에 뚫려있는 통로에서 인기척이 나며 아마르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에 영기를 불어넣으며 반응을 살피고 있던 준혁은 모습을 드러낸 아마르곤의 상태를 보고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흐음. 수사. 괜찮으신 겁니까?”

    아마르곤은 처음 혈맥의 힘을 몸속에 저장할 때와는 완연하게 달라져 있었는데, 얼굴부터 시작해 온몸이 쭈글쭈글한 나무껍질처럼 변해있었다.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해, 마치 죽기 직전 온몸의 영기가 말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꼴불견스런 모습을 보였군요. 다행히 힘을 안전하게 억제했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봐도 될 것 같습니다.”

    목소리마저 탁하게 쉬고 갈라져 나왔다.

    “아직 이곳을 선계로 이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에 준혁은 조금 더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마르곤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후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우 힘을 잠재우긴 했지만, 오래 버티긴 힘들 듯하니, 한시라도 빨리 그녀에게 가야겠습니다.”

    ‘역시···.’

    준혁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에 바로 받아들였다. 다만 흡수한 것도 아니고 그저 품기만 했다기엔 아마르곤의 상태가 나빠 보여 조금 의구심이 들 뿐이었다.

    “그럼 바로 떠나겠으니 준비하시지요.”

    잠시 후, 준혁이 대전의 입구에 위치한 문 앞으로 이동하자, 아마르곤 역시 준혁 곁으로 다가왔다.

    아마르곤은 준혁을 말없이 잠시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퍼엉 하고 터져나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원영의 모습으로 준혁의 몸 안에 들어가려는 것.

    어느덧 수많은 씨앗으로 변한 아마르곤의 몸체는 준혁의 피부위로 달라붙었고, 몸체가 흐릿하게 변한 녹색 원영은 피곤한 얼굴을 한 채 준혁에게 날아왔다.

    다만 예전과 다르게 녹색 원영의 몸 곳곳에 노란 반점이 피어있었다.

    준혁은 내심 꺼림칙했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입을 벌려 원영을 받아들였다.

    혹시 모르니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빠르게 뱉어버릴 생각과 함께.

    동시에 식검과 적마도를 소환해 공명시키며, 어느덧 나타난 붉은 말 위에 올라탔다.

    “가자!”

    파지직-

    적마가 움직인 순간 허공에 균열이 생겨났고, 황금궁전엔 고요가 찾아왔다.

    +++

    물 한 방울도 찾을 수 없는 메마른 대지.

    끝없이 펼쳐진 모래는 그곳이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 사막의 경계엔 목족 수사로 의심되는 인물들과 목족의 완영기 수사인 호하가 머물고 있었다.

    “호하님. 하늘정원 방면은 유다린 님께서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합니다.”

    유다린은 호하와 마찬가지로 완영기 초기 수사.

    “구름 분지는?”

    “그곳 역시 빠짐없이 살피고 있습니다.”

    원영기 수사의 보고에 호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부터 돌풍이 멈췄다. 안에서 무슨 변화가 있다는 말이지. 다들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해.”

    호하의 말에 원영기 수사가 의문을 표했다.

    “헌데 아마르곤님과 함께 하고 있을 건데, 이렇게 감시할 필요가 있습니까?”

    호하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아마르곤 수사의 수행이 높다 한들, 결계를 넘나들 수 있는 건 오롯이 그 인족 놈의 능력이다. 아마르곤 수사를 내버려 두고 혼자 내뺄 걸 고려해 이렇게 감시하고 있지 않느냐?”

    “아!”

    사실 이렇게 각 봉인지가 위치한 곳을 감시하게 된 건 아마르곤의 지시였다.

    하늘정원에 들어가기 전 그가 내린 명으로 목족의 고위수사들이 동원돼 각각의 봉인지를 지키고 있는 것.

    결계를 마음대로 이동하는 준혁의 능력 때문에, 그가 어디에서 나올지 몰랐기에 구름 분지와 하늘정원까지 전부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봉인지가 위치한 장소 중에서 유일하게 목족이 살아가기 불가능한 환경인 사막은, 신비 장소가 나타나는 사막의 중심이 아닌, 경계에서 머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른곳보다 동원된 숫자 역시 압도적으로 많았다.

    “알았으면 다들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 전해라. 그 인족놈이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솜씨 하나는 인정해줄 만하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호하는 오래전 자신의 추적을 피해 몇 번이나 도망쳤던 준혁을 떠올렸다.

    으득-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놈! 헛수작은 안 해야 할 것이다! 아마르곤 수사를 버려두고 혼자 봉인지를 탈출하려 마음먹는다면, 절대 살려두지 않을 테니.”

    물론 여왕의 명은 일이 잘못돼도 준혁을 그대로 생포해 오라는 것이었지만, 호하는 그 명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목숨은 살려갈지언정, 예전에 당한 치욕은 갚아줄 생각이었다.

    +++

    내리쬐는 태양 빛이 극에 다다를 때쯤.

    번쩍-

    허공의 한 지점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껏 여러 차례 결계를 통과했지만, 준혁의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처음 귀원패의 도움으로 결계를 간신히 통과했을 때보다 더.

    ‘위험하다!’

    적마를 소환해 황금궁전을 감싸고 있던 결계를 강제로 헤집고 들어간 찰나의 순간, 준혁은 일이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결계와 부딪치는 충격이 전해진 순간, 아마르곤의 원영은 고통에 찬 절규를 내뱉더니, 급기야 붕괴할 것처럼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던 것.

    결계를 통과하는 시간이 눈 깜짝할 만큼 짧은 순간이라고는 하나, 사막으로 빠져나온 시점엔 이미 상황은 심각하게 변하고 있었다.

    준혁은 바깥의 상황이나 다른 무언가를 해보지도 못하고 빠르게 몸을 추스르고는 좌정하고 앉았다.

    몸속 내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기에, 당장 아마르곤의 원영을 내뱉을 수도 없는 일.

    아니, 내뱉는 순간 원영이 견디고 있던 혈맥의 힘이 어디로 분출될지를 알 수 없었기에 만에 하나라도 원영이 강제로 나가려 한다면 발목이라도 붙잡아야 할 상황이었다.

    ‘아마르곤 수사! 제 말이 들리십니까?! 당장 조치를 취하려 하니, 제가 하는 일에 무조건 동조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소멸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준혁의 마음은 어느새 초조함이 들어섰다.

    혈맥의 힘이 터져나가는 것이 두려운 만큼이나, 아마르곤이 죽는 것도 쉬이 감당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마르곤이 죽는다면 공간 진법을 이용해 나타날지도 모르는 목족의 여왕도 문제였지만, 종속의 인으로 연결된 종의 죽음이 심상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는 것.

    어느새 준혁의 겉모습 또한 아마르곤처럼 쭈글쭈글하게 변하며 죽은 듯이 미동마저 사라졌다.

    그와 반대로 내부에선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앉아있는 녹색 원영을 향해 엄청난 양의 정혈들이 밀려들며 혈단법이 운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녹색의 원영 앞.

    그 자리엔 붉은 광검을 내뻗는 식검을 손에든 준혁의 원영이 긴장한 얼굴로 녹색 원영의 심장 부위를 겨누고 있었다.

    신호가 주어진 순간 바로 찔러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