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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18화 (118/408)

< 118화. 혈맥의 힘 (1) >

목족의 여왕이 준 꽃잎 세 장.

그건 준혁이 펼쳤던 대라멸진을 해제해버린 그녀의 비술 중 하나였다.

물론 직접 사용할 때처럼 무시무시한 능력을 뽐내진 않았지만, 폭발로 인해 몸이 성하지 못한 괴조 한 명을 잡아두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구속 능력으로서는 일품이었지만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어쨌거나 목족의 여왕이 임시로 만든 물건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또한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발버둥 치려는 괴조 때문에 구속력이 오래가지도 않을 듯싶었다.

그랬기에 준혁은 마지막 공격을 진행하기 전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식검을 꺼내 들었다.

식검은 준혁의 몸 밖으로 불려 나오자 투박한 검신 위로 핏빛 광채를 내뿜는 광검을 내비쳤다.

준혁은 망설이지 않고 괴조의 심장으로 식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반투명한 핏빛 광검이 식물 줄기에 구속돼있던 괴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반드시 죽인다!”

식검이 심장을 관통했지만, 괴조는 괴롭지 않은지 악에 받친 눈을 한 채 이를 갈았다.

‘역시 본체가 아니니 식검이 아무 반응이 없는 건가.’

마선을 잡아먹는 식검이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행해본 준혁은, 처음 괴조가 나타났을 때 식검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게 흡수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괴조뿐 아니라 식검 역시 그냥 허공을 찌르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준혁은 식검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손날에 월광지력을 가득 모아 다시 괴조의 심장을 갈랐다.

푸욱-

어느새 준혁의 손은 하얀 구슬로 뒤덮여 있었는데. 얼마 전 호수에서 가져온 달의 정기가 실체화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번 공격엔 괴조가 반응을 보였다.

“으아아악!”

반응과 함께 괴조의 심장 부위가 하얗게 얼어가더니 전신으로 얼음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괴조가 고통에 시달리며 완전히 얼어버렸다.

처음 준혁의 공격을 허용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엔 월광지력에 반항하지 못하고 완전히 당한 모습.

그 모습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족자 하나를 꺼내 허공에 띄우더니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수결이 끝나자 족자 테두리에서 빛이 나는가 싶더니, 흉악하게 생긴 백호가 족자에서 뛰쳐나오며 사자후를 터트렸다.

“크아아앙!!”

사자후를 터트린 백호는 5m가 넘는 거구였는데, 눈빛에 어른거리는 살기가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를 풍겼다.

준혁은 족자에서 나온 백호를 향해 다시 재수결을 맺었고, 백호는 다시 한번 사자후를 터트리더니 괴조가 갇혀 있는 얼음 속으로 뛰어들며 스며들 듯 사라져 버렸다.

준혁의 능력으론 수행 차이가 심한 상위 수사에게 디버프를 걸 수 없었기에, 목족 스승에게서 배운 환시화를 이용해 백호 족자를 사용한 것.

족자 자체가 소비형 법기인지라 아까울 법도 했지만, 아마르곤이 충격을 주었음에도 괴조의 기운이 원하는 만큼 약해지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준비는 끝.”

백호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자, 준혁은 공간대에서 대라멸진 진법 원반을 꺼내 들며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대전의 중심.

준혁은 새 모양의 얼음 조각상 앞에 선 채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할 때, 가까이 다가온 아마르곤이 얼음 조각상을 주시하며 말을 꺼냈다.

“예전 호하 수사에게 사용했던 그것이군요.”

“수사께서 기운을 크게 훼손시켰기에 겨우 통했습니다.”

대라멸진에 당한 괴조는 월광지력으로 만들어진 얼음 안에서 그대로 명을 달리했다.

정확히는 분신체를 이루고 있던 근원이 망가져 버린 것.

“겨우 기운을 조금 나눠 가진 분신에 불과하거늘···. 본체는 상상만 해도 두려워지는군요.”

아마르곤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자, 준혁은 대전 천장 부근에 떠 있던 진법 원반을 회수한 후, 얼음 조각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시 후. 괴조를 꽁꽁 감싸고 있던 냉기가 풀어헤쳐지며 준혁의 손끝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

쿵-

그리고 괴조는 몸을 지탱하던 얼음이 사라지자 바닥에 쓰러졌고, 이내 몸이 괴사하는 것처럼 쪼그라들더니, 성인 팔뚝만 한 깃털 하나만을 남겼다.

괴조의 분신을 이루고 있던 근원이나 다름없는 깃털이 나타나자 아마르곤은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하고는 준혁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는 살짝 옆으로 비키더니 준혁에게 눈짓했다.

준혁 역시 관심이 있던 터라, 아마르곤의 양보를 사양하지 않고, 바로 다가가 깃털을 주워들었다.

‘겨우 깃털 하나일 뿐인데 어마어마한 영기를 품고 있구나.’

깃털은 분신을 유지하는 매개체에 불과했는지, 괴조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강대한 영기를 풍기고 있었다.

기운을 흘려보내 깃털을 꼼꼼히 살펴본 준혁은 아쉬워하는 아마르곤의 시선은 모른 체하며 공간대에 깃털을 넣었다.

“아마르곤 수사. 당장 이곳을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을 추슬러야겠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완영기에 올랐음에도 대라멸진을 발동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사용해보고는 그전에 호하에게 대라멸진을 펼친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강제로 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입니다.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마르곤이 동의하자 준혁은 그 자리 그대로 좌정하며 공간대에서 깃발을 꺼내 주위로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아마르곤 역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더니 입김을 불어 민들레 씨앗을 사방을 날려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

몸을 회복한 준혁이 진법을 해제하며 모습을 드러내자, 아마르곤은 차분하게 앉아 명상에 빠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혁이 말을 건네자, 천천히 눈을 뜬 아마르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모습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상자를 꺼내며 내밀었다.

“수사 여기 지목족의 뿌리입니다.”

황금궁전으로 들어온 직후 괴조와의 전투가 일어났기에 상황이 상황이라 돌려주지 않았던 뿌리들.

후일 뿌리들을 키워달라는 천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선 그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 동류인 목족에게 주는 게 맞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넘겨주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호를 키우면서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동족에게서 배울 수 있는 생활의 지혜와 배움을 통한 지식은 엄연히 다름을 느꼈기 때문.

또한 애초에 수명이 인간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긴 목족이 키우는 게 어쩌면 천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돌려주기 직전 천균의 뿌리만은 따로 빼돌렸다.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준혁의 욕심으로, 뿌리가 자라나 천균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왠지 모를 인연의 기운을 느껴서였다.

준혁이 아무 욕심 없이 지목족의 뿌리를 넘겨줄지는 몰랐는지, 아마르곤이 눈썹을 살짝 올리다가 웃음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드려야 하나 했습니다.”

아마르곤의 말에 준혁 역시 미소도 답해주었다.

사실 뿌리를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속엔 함께 상대했던 괴조의 전리품인 깃털을 혼자 독식했다는 미안함도 작용했다.

“당연히 같은 족인의 품에 들어가는 게 맞지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내뱉은 준혁은 몸속으로 상자를 집어넣는 아마르곤을 지켜보다가 대전 정면에 뚫려있는 통로를 가리켰다.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해야지요. 가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준혁이 통로로 향해 움직이자 아마르곤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

특색 없는 통로를 지나치자 사각으로 지어진 석실이 나타났다. 황금이 아닌 석재였기 때문인지 기감도 통하기 시작했다.

석실은 좌우 정면으로 또 다른 통로가 뚫려있었는데, 기감으로 확인해보자 동일하게 생긴 석실들이 연달아 바둑판처럼 계속 이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미 천균을 통해 위치를 숙지하고 있던 준혁은 바둑판처럼 생긴 석실들을 계속 지나치며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아쉽구나. 원래대로 라면 이곳들이 전부 보물창고나 다름없었을 텐데.’

바둑판처럼 각각 분리된 석실들은 지목족 왕가의 창고였다. 정확히는 기목청이 소유한 어마어마한 양의 수도 자원과 물건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보관되던 곳.

그런 곳이 법문의 강탈로 텅 비어버렸으니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준혁은 평범한 석실에 도착하더니 멈춰 섰다. 그리고는 석실 한쪽 구석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입니다.”

천균이 말한 곳에 도착한 준혁은 아마르곤에게 잠시 비켜줄 것을 요청한 후, 석실 중심으로 이동해 공간대에서 영석을 무더기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영석을 가루로 만들어 석실에 원진을 그리고는 그 위로 천주문을 새기기 시작했다.

천주문을 새긴 자리에 다시 영석을 가루 내 채워 넣었고, 원진 가득 천주문이 채워지면 전체를 영석 가루로 덮어 수결을 맺었다.

수결을 맺고 난 후 바닥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다시 원진을 그리고 그 위에 천주문을 다시 새겼다.

그저 바닥에 글을 새기고 영석을 가루 내 채우는 일일 뿐이었는데, 꽤나 심력을 소비하는지 준혁의 이마로 땀이 생겨났다가 식기가 멈추질 않았다.

+++

5일 후.

모든 준비를 마친 준혁이 허리를 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습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곳에 새겨진 봉인진은 준혁의 수준으로 해제할 수가 없는 진법이었다.

하지만 봉인진을 설치한 천균이 준혁의 실력에 맞게 해제 진을 가르쳤기에 5일 만에 혈맥을 꺼낼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

준혁은 한쪽에서 긴장된 표정을 하고있는 아마르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수결을 맺어 손가락 사이로 봉인진의 마지막 열쇠가 될 천주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바닥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그 순간 준혁의 손에서 문자들이 쏘아져 나가더니 석실 바닥에 그려진 원진의 끄트머리에 박혀 들어갔고. 석실이 작게 진동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동이 조금 잦아드는가 싶더니, 석실 중앙 바닥이 꺼지며 노란빛을 머금은 구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이것이···.”

준혁은 노란 구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관심을 보이다가 단(丹) 속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재빨리 기운을 내리눌렀다.

식검은 엄마 품을 벗어나 군것질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준혁의 기운을 뿌리치며 달아나려고 했다.

‘마선 들을 보았을 때처럼 행동하는구나···. 혹시 그만큼 혈맥의 힘이 농축되어있어서 그런 것인가?’

준혁은 시간이 갈수록 요동치는 식검 때문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가, 구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마르곤을 향해 말했다.

“그럼 해방 시키겠습니다.”

그때, 아마르곤의 표정이 전과 달라지며 급하게 말을 꺼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가지고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아마르곤의 말에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수사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힘을 그대로 이어받을 순 없습니다. 어차피 혈맥 보존의 법칙으로 인해 수사가 가진 기목청님의 뿌리로 힘이 이전될 가능성이 크니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혈맥 보존의 법칙.

그것은 모든 혈맥의 힘은 항상 일정한 양을 유지한다는 세상의 법칙 중 하나였다.

즉 기목청이 죽고 나면 원래대로라면 자연스럽게 기목청의 후예나, 혹은 힘이 발현되기 가장 적합한 족인들 중 누군가에게서 혈맥의 힘이 나타나게 되어있었다.

그것이 한 명에게 발현될지 여러 명에게 나뉘어 발현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힘이 이전되는 게 혈맥의 힘이 계승되는 바른 절차였다.

만약 혈맥의 힘이 더 이상 나타날 수 없게 하려면,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봉인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균이 기목청의 혈맥의 힘을 봉인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법문의 강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에, 만약 혈맥의 힘이 바로 발현된다면 그 즉시 알아차릴 것이었기 때문에 우선은 강제로 발현을 막기 위해 봉인을 선택했던 것.

준혁은 아마르곤이 무엇을 아쉬워 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이해는 했지만, 허락해줄 수는 없었다.

“허나···. 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모르겠지만, 천재로 태어난 그녀라면···. 그분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계에 영향력을 미칠 정도의 세력을 만들었던 기목청의 진짜 힘. 준혁이라도 그 힘이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하지만 백호족의 청혈을 통해 얻은 것처럼 극소량의 혈맥의 힘이었다면 모를까. 온전한 상태의 혈맥의 힘은 절대 몸 안에 강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힘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일.

힘은 얻을지 몰라도 그 힘에 준하는 반서를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비에가 말한 혈맥의 힘을 받아들일 때의 부작용 역시, 큰 의미로 보자면 법칙을 위배한 반서나 다름없었으니까.

결국 거듭된 준혁의 반대에 아마르곤은 수긍하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그럼 진행하시지요.”

그리고 준혁은 그런 아마르곤을 살피다가 다시 한번 손가락 위로 천주문을 만들어냈고, 한 손을 하늘로 향한 채, 나머지 손으로 노란 구체를 가리키며 외쳤다.

“회(回)!!”

그 순간 노란 구체가 강한 빛을 내는가 싶더니 구체 안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수사!!”

하지만 그 순간 준혁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영기가 뚝 끊겼고, 풀어지던 기운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구체 안으로 숨어버렸다.

준혁은 어느새 자신의 몸 곳곳에 붙어 몸을 마비시키고 있는 씨앗들을 훑어보며 아마르곤을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마르곤은 미안함을 가득 담아,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힘. 우리 목족을 위해 가져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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