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괴조 (2) >
“감히!! 그따위!”
능글능글하게 웃던 괴조가 흉신악살같은 기운을 내뿜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준혁에게 있어 괴조란 절대 피해야 할 적.
상대가 지금은 다른 마선들과 소통할 수 없다고는 하나,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는 것.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정확히 무슨 이유로 봉인지에 머물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황금궁전을 벗어나 사막에서 활동할 수 있었는지 등, 궁금한 건 너무도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차후에 알아봐도 상관없었다.
우선은 죽이는 게 최선.
준혁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랬기에 평소 준혁답지 않게 도발적인 언사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렸다. 크게 도움은 안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상대의 평정이 깨지길 바라며.
분노하는 괴조를 무시한 준혁은 아마르곤을 향해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수사! 저자의 본체는 선계에 있습니다! 분신체라면 지금 수행이 어떻든 그 한계를 금방 드러낼 터! 빠르게 힘을 소비시킨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준혁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아마르곤은 잠시간 고민하는 표정을 했다.
아마 자신보다 수행이 높은 자이기에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자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저자를 처리하지 못하고선 이곳을 이용할 방법 따윈 없습니다!”
준혁은 자신의 의도는 숨긴 채, 지목족 때문에 괴조를 공격해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먹혀들었는지, 아마르곤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변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바로 인지경을 꺼내 발동시키며 빠르게 수결을 맺은 후, 양손을 넓게 퍼트렸다.
“가라!”
촤악-
그 순간, 준혁의 양 손끝에서 무수히 많은 단검들이 공작새가 꼬리를 펼치듯 퍼져나가며 괴조에게 쇄도했다.
그와 동시에 아마르곤이 허리춤 근처에서 손을 한번 가볍게 저으며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의 앞으로 씨앗 뭉치들이 생겨나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다.
순식간에 불어난 씨앗 뭉치들은 잠시 후 그 부피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듯 퍼엉 터져나갔다.
그리고 준혁이 쏘아 보낸 단검들이 괴조에게 도달하기도 전, 괴조의 머리 위로 거대한 민들레 씨앗이 생겨나더니, 마치 쇠망치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난 중압감을 내보이며 떨어져 내렸다.
두 사람의 공격이 기습적으로 이뤄지자, 괴조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수행이 낮은 것들이 자신을 공격했기 때문은 아닌 듯했다.
“분광소!!!”
자신을 법문의 개라고 표현했을 때보다 더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른 괴조는 두 날개를 펄럭였고, 그 순간 그의 두 날개 앞으로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더니 주위로 밀려드는 분광소와 민들레 씨앗에 맞서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괴조가 만들어낸 소용돌이는 두 사람이 쏘아 보낸 공격과 맞붙은 순간 잘게 부서지면서 수십 개의 작은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리고는 단검들을 차례대로 빨아들인 후, 날아오던 방향으로 날려버렸고, 거력을 지닌 민들레 씨앗에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버렸다.
“분광소!! 이게 무슨 짓이냐! 천주(天主)께서 식아를 잡아오라 보냈더니! 내 념을 끊어낸 후 사라져버리고! 지금 이곳에서 무얼 하는 짓거리야! 당장 멈추,! 이 개 잡놈이!”
공방이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괴조는 악에 받친 소리를 내다가 급하게 말을 끊고 등 뒤로 소용돌이를 날려 보냈다.
준혁은 처음부터 위협용으로 분광소를 날려 보냈기에, 소용돌이에 단검들이 무력화되는 시점엔 이미 전신에 월광지력을 끌어올리며 괴조의 등 뒤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리고 괴조가 분노를 표출할 때, 광신체령투선공을 운용한 상태로 월광지력을 내 지르고 있었다.
준혁의 주먹이 괴조 근처에 이르자, 한기가 휘몰아치며 괴조를 덮쳤다.
쩌저정-
기습적인 한 수만에 괴조는 다음 행동을 하지 못하고 전신이 얼어붙어 버렸다.
‘이렇게 쉽다고?’
하지만 자신의 수가 먹혀들어 가자, 준혁은 재차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뒤로 몸을 빼냈다.
아무리 적마도의 순간이동 능력을 이용한 기습공격이었다지만, 상대는 아마르곤보다 수행이 높은 자.
너무 쉽게 공격이 성공하자 준혁은 오히려 경계심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내린 순간 적마도를 이용해 다시 이동했다.
슈악-
그리고 준혁이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그가 서 있던 자리 위로 하얀 뼈들이 빠르게 솟아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동시에 얼음이 와장창 깨져 나가며 하얀 뼈만 남은 두 날개를 가진 괴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신 나간 분광소는 그렇다 치고, 인지괴와 적마까지 함께라고? 도대체 뭐지?”
괴조는 준혁의 공격에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듯 짜증 섞인 의문만 표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잔인한 미소로 표정이 바뀌었다.
“흐으, 그런 건가? 분광소. 예전부터 그분의 명에 불복하는 일이 잦더니···. 설마 다른 마선 들을 모아 세력이라도 만들고 있었던 건가?”
괴조는 혼자 결론을 내린 듯, 자신의 망상이 사실이라 여기는 듯 보였다.
그러다 또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왜 하나같이 념이 닿질 않지?”
한편, 처음 자리로 이동해 온 준혁 역시 괴조의 말에서 오래전 귀원패가 말했던 식검에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렸다.
-천신라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인지괴와 공천귀를 보냈고, 마규보는 분광소를 보냈다 들었습니다.
‘법문이 마규보의 세력이었구나!’
하지만 괴조와 분광소가 법문 소속이었는지, 법문의 수장이 누구인지는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었다.
+++
준혁은 연달아 공격이 무력화되며 고민에 빠진 듯한 아마르곤에게 시선을 옮겼다.
“수사. 느끼셨습니까? 역시 우리 예상이 맞습니다.”
준혁의 말에 아마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괴조는 수행과 비교해, 절제된 방어와 공격만을 이행했다. 그 말인즉, 힘을 아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단 뜻이었고, 그건 준혁이 처음 예상했던 분신체의 한계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괴조의 의견은 다른 듯, 두 사람의 대화에 비아냥댔다.
“웃기군, 네놈들 따위를 상대하며 전심전력이라도 다하란 말이냐? 그럼 어디 제대로 상대해주지!”
말을 마친 괴조의 두 날개에서 밝은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싶은 순간, 괴조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며 사라졌다.
스르륵-
괴조가 모습을 감추자, 준혁은 식검을 꺼내 귀원패와 공명시켰다.
상대가 공격 일변도로 나온다면 우선은 방어에 치중하는 것이 먼저.
동시에 만월강하진 원반을 허공에 띄우며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그사이 아마르곤의 기운이 증폭되는가 싶더니 펑 하며 흩어졌고, 그 자리엔 어느새 괴조가 잔인한 미소를 지은 채 괴기하게 뼈가 뒤틀린 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잠시 후 괴조의 공격을 목둔술로 회피한 아마르곤은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하지만 완전한 모습으로 뭉치기도 전, 궁전 바닥에서 검은 뼈들이 솟구치더니 사람의 형상을 이뤄가던 아마르곤의 몸을 관통해버렸다.
푹-푹-푹-
그러자 모습을 갖춰가던 아마르곤이 와르르 무너지며 사라졌다.
“지목족 놈들의 둔술도 내게 통하지 않았거늘, 가소롭군!”
사방으로 흩어져버린 아마르곤의 흔적을 보며 싸늘하게 웃어 보인 괴조는 준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다시 몸이 흐릿해졌다가, 준혁의 머리 위로 나타나며 두 날개를 내리쳤다.
준혁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짧은 순간 만월강하진 진법 원반 설치를 끝낸 준혁은 한 손은 월광지력을 담아 내질렀고, 다른 한 손으로 진법을 발동하기 위해 수결을 맺었다.
콰앙!
두 괴력이 맞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고, 엄청난 영기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괴조는 충격이 의외였는지 살짝 놀란 얼굴로 허공에 떠올랐다.
반대로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던 준혁은 전신이 터져나갈 것 같은 압력을 광신체령투선공으로 해소했다.
“제법이다만 끝이다!”
괴조는 준혁이 자신의 힘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허공에서 두 날개를 대(大)자로 넓게 펼쳤다.
그러자 괴조의 등 뒤로 수십 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푸른 날개가 소환되어 나타났다.
동시에 괴조 앞엔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자가 떠올랐는데, 글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흐늘흐늘 움직였다.
그리고 움직임이 멈춘 순간.
“짓이겨 버려라!”
괴조가 외쳤고, 그 앞에 있던 문자가 크게 확대되며 준혁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때.
쿠르릉-
기이한 진동과 함께 준혁이 위치한 자리로 달빛이 떨어지는 것처럼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만월강하진이 발동된 것.
진의 효력으로 몸 안의 월광지력이 증폭되자 준혁은 자신을 압사시켜버릴 듯 떨어져 내리는 문자를 향해 주먹을 내 질렀다.
쿠아앙!
괴조의 공격과 준혁의 월광지력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충격파를 퍼트린 두 힘은 단숨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힘을 과시하듯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과 달리 두 사람의 표정은 상이했다.
괴조는 여유로운 듯 손을 뻗고 있었고, 준혁은 눈가에 실핏줄이 터진 듯 뻘겋게 달아오른 눈을 한 채 이를 악다물고 있었다.
‘마선경과 괴조는 전투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더니.’
힘의 대치가 이어지자 준혁은 귀원패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수를 생각해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귀원패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게, 수행에 비한다면 괴조의 전투력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어디선가 살랑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깨알같이 작은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괴조의 날개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곧이어 준혁은 아마르곤과 연결된 종속의 끈을 통해 그의 감정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르곤이 강하게 자극하는지 평소보다 강력한 감정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준혁은 기운을 귀원패로 집중했고.
콰아아앙!!
괴조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씨앗들이 어마무시한 영기파동과 함께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
거대한 폭발이 대전 중심에서 터져나가자, 그 기운들이 모두 상쇄되지 못한 채 주변을 할퀴며 어지럽혔다.
콰당!
준혁 역시 폭발에 휩싸이며 한참을 날아가다 황금 벽면에 부딪히고 나서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다행히 귀원패의 능력 덕분인지 큰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면 폭발로 인해 꽤 곤욕을 치렀을 것은 분명했다.
잠시 후 씨앗들이 뭉치며 준혁 곁으로 아마르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과 달리 기운이 많이 쇠해 있었는데, 이번 폭발 공격이 평범한 술법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때 폭발의 기운이 잦아들며 대전 한쪽에 한쪽 날개가 사라진 괴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진 건 날개뿐만이 아닌 듯, 몸에서 내뿜는 기운도 처음과 달리 많이 약해져 있었다.
“최 수사, 마무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파앗-
괴조의 모습을 빠르게 살피던 준혁은 아마르곤의 말이 끝나기도 전, 적마도를 이용해 모습을 감추었다.
만월강하진의 진법 범위를 벗어나 월광지력은 약해져 있지만, 괴조 역시 기운이 상한 상태.
준혁은 괴조의 등 뒤에 나타나 월광지력을 뻗어냈고, 동시에 공간대에서 꽃잎 석 장을 꺼내 빠르게 발동시켰다.
“이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이!”
괴조는 아마르곤의 공격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 상태로 부리를 벌렸다.
그러자 부리 안에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자신의 두 날개를 감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은 안개에 감싸이기 시작한 날개가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
준혁이 발동시킨 꽃잎 석 장은 엄청난 영기파동을 퍼트리더니 퍼엉 하고 흩어졌다.
동시에 허공에 거대한 원진이 만들어지며 그 안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식물 줄기들이 나타났다.
원진을 빠져나온 식물 줄기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하강하더니, 괴조가 다른 행동을 할 틈도 없이 그의 몸과 날개를 칭칭 감아 버렸다.
"으윽."
그리고는 줄기에 자라나 있는 가시에서 보랏빛 기운을 내뿜으며 괴조를 옥죄기 시작했다.
“이깟 구속!”
줄기에 몸이 감싸이자 검은 안개로 감싸인 괴조의 두 날개가 소름 끼치는 기운을 내뿜으며 발악하려는 듯 움직였다.
푸욱-
그때 핏빛처럼 붉은 광검이 괴조의 심장을 가르듯 깊게 박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