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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16화 (116/408)
  • < 116화. 괴조 (1) >

    준혁의 요구에 아마르곤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갔다.

    “영광을 얘기하며 지목족을 걱정하시던 분이···. 지금 그들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말하는 겁니까? 얼마 남지도 않은 그들의 후예를?”

    지목족의 뿌리는 인간으로 치자면 태어날 준비를 하는 아기와 같은 것.

    아마르곤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이었다.

    “아! 제 말을 오해하셨습니다. 제물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들의 기운이 조금 훼손될 뿐, 생각하시는 문제는 없을 겁니다. 스승님께서 일러준 방법인데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

    준혁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잇자, 그제야 아마르곤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이해한다는 듯 탄식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입을 벌려 상자를 꺼내 준혁에게 내밀었다.

    상자를 건네받은 준혁은 이후의 과정을 아마르곤에게 간략하게 설명한 후, 공간대에서 진법 깃발 일곱 개와 영석을 무더기로 꺼내 던지며 수결을 맺었다.

    착착착-

    잠시 후 제물을 바치는 용도로 기운을 극대화해줄 진법이 마련되자 그 위로 기목청과 천균의 뿌리를 제외한 전부를 꺼내 조심스럽게 날려 보냈다.

    “준비되셨습니까?”

    문을 열 준비를 끝마친 준혁이 질문하자, 아마르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잠시 후.

    준혁은 진법을 발동시켰고, 진법에서 기이한 파동이 일어나며 나무 틈 사이의 문을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지금입니다!”

    준혁이 소리치자, 아마르곤의 몸이 퍼엉 터지면서 씨앗과 원영으로 나뉘었고, 처음 정원에 들어왔을 때처럼 씨앗은 준혁의 피부위로 달라붙고, 원영은 녹색 먼지를 뒤집어쓴 채 준혁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마르곤이 모습을 감추자, 준혁은 귀원패를 꺼내 몸을 보호하고, 양손에 식검과 적마도를 꺼낸 후, 둘을 공명시키며 지체없이 황금빛 문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스팟-

    그리고 준혁의 몸이 문에 닿으며 흔적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지기 직전, 진법안에 놓여있던 뿌리들도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

    모래 폭풍이 쉬지 않고 부는 사막 중심.

    무언가가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흐릿한 인영의 모습이 나타났고,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시 파앗- 하며 사라져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는 사이.

    사막의 폭풍 중심엔 황금으로 지어진 궁전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아지랑이처럼 희미해지며 모습이 흐려졌다.

    +++

    파지직-

    허공 한곳에 강렬한 파동과 함께 무언가가 찢어지는 충격이 일며, 사람의 형상이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데굴데굴-

    “윽, 연달아 이동하니 죽을 맛이군.”

    허공을 찢고 나타난 이는 아마르곤을 삼킨 준혁.

    천균을 통해 황금궁전으로 들어갈 방법에 대해서 듣긴 했지만, 그것 역시 결계를 강제로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하늘정원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황금궁전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어려움으로 따진다면 그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에 이를 악다물던 준혁은 어느새 주변의 영기 질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이 황금궁전 안으로 무사히 이동해 왔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도 천균 수사가 말한 방법이 통해서 다행이다.”

    주변으로 기감을 쏘아 보낸 준혁은 마치 무거운 물속에 잠긴 것처럼 기감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시야에 보이는 것만 살펴본 후 아마르곤을 뱉어냈다.

    툭-

    준혁의 입속에서 튀어나온 녹색 원영은 기운이 쇠해 몸 일부의 색이 크게 옅어져 있었다.

    잠시 후 녹색 원영은 준혁의 피부위에 붙어있던 씨앗들을 불러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바로 좌정한 채 이마에 손가락을 올리며 회복에 들어갔다.

    아마르곤이 주위의 안전조차 확인하지 않고 바로 회복에 들어가자, 준혁은 고개를 절레 젓다가 진법 깃발을 쏘아 보내 그를 보호해 주었다.

    그리고는 준혁 본인도 주위로 보호진을 펼치고는 공법을 운용하며 여기저기 고통을 호소하는 몸을 달래주었다.

    +++

    시간이 제법 흐르자, 먼저 회복을 끝낸 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들이 결계를 통과해 나타난 곳은 하늘정원에서 보았던 황금빛 문의 맞은편.

    하지만 정원에서 보았던, 나무 틈에 박혀있던 특이한 모습과 달리, 내부에서 바라본 황금빛 문은 일반적인 대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하긴, 밖에서 보았던 문이 진짜 모습은 아니었겠지.”

    외부와 내부의 괴리에 대해 짧은 감상평을 내뱉은 준혁은 넓은 궁전의 대전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대략 500여 평은 될 것 같은 황금궁전의 대전은 정면에 기다란 통로가 뚫려있었고, 양쪽으로는 성인 서너 명이 둘러야 간신히 팔이 닿을 것 같은 기둥들이 박혀있어 전형적인 궁전 형식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궁전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내부 전체가 황금색으로 번쩍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색뿐만 아니라, 실제로 궁전 자체가 황금으로 지어졌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설마. 이 금 벽이 기감을 억제하는 건가? 신기하구나.”

    가까이 다가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벽면을 살펴본 준혁은, 벽을 이루고 있는 금이 일반적인 순금의 형태가 아닌, 영기를 품고 있는 특수 금이란 걸 깨달았다.

    혹시나 하고 영기를 흘려보내 보았지만, 낯선 재료에 대해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지며 아마르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계속 짐이 되는군요.”

    어느덧 회복을 마친 아마르곤은 기운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정상이 아니란 걸 대번에 보여주었다.

    ‘근원에 손상이 많이 갔나 보군.’

    “아닙니다. 수사와 힘을 합쳤기에 저도 수월하게 결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쓰게 웃음 지은 아마르곤은 준혁 가까이 다가가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전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준혁이 이해한다는 듯 말을 꺼냈다.

    “저 역시 기감이 막힌 듯 나아가질 못합니다.”

    “아 수사도 그러십니까?”

    준혁의 말에 속마음을 들킨 아마르곤은 머쓱해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그때,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대전 정면에 뚫린 통로로 홱 하고 돌아갔다.

    동시에 준혁이 다시 귀원패를 꺼내 육각 타일을 소환해 온몸에 둘렀고, 아마르곤은 손끝에서 민들레 씨앗을 만들어 몸 주위에 날아다니게 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화답한다는 듯 통로 끝에서 양쪽 어깨 위로 말의 갈기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미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완영기? 연형기?’

    수행이 보이지 않아 정확히 알수는 없었지만, 풍기는 기운이 아마르곤보다 살짝 윗줄처럼 느껴졌다.

    저벅-저벅-

    통로를 빠져나온 미남자의 얼굴엔 기쁨이 서려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하하! 그 빌어먹을 지목족 놈들 중 혹시나 생존자가 있었나 했는데, 거북황이라니!”

    ‘마선?’

    준혁은 귀원패를 알아보는 상대 역시 마선 중 하나임을 단번에 파악했다.

    하지만, 단(丹) 안에 자리한 식검은 관심이 없다는 듯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

    갑자기 나타난 미남자로 인해 준혁과 아마르곤은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렸고,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가까이 다가온 미남자는 씽긋 웃어 보이며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살짝 흔들었다.

    “워~워~ 진정 진정. 싸우는 건 싫다고. 왜들 그리 긴장해 있어?”

    미남자의 반응에 준혁은 아마르곤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앞으로 한발 나섰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귀원패 수사와 친분이 있으신 듯하군요.”

    준혁이 말을 꺼내자, 미남자가 입가를 올렸다.

    “친분? 흐음~ 친분이라 하기엔 그렇고~ 서로 통한다고 할까?”

    “혹시 선배님의 법명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법명이란 말에 미남자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어이~ 거북황? 이놈에게 나에 대해 말을 안 한 거야? 이거 섭섭한데? 빨리 나와봐 우리 오랜만에 대화 좀 나눠보자고.”

    상대방의 반응에 준혁은 귀원패가 식검에 잡아먹힌 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다고 없는 이를 불러낼 수는 없는 법.

    “선배님. 죄송하지만 사정이 있어 귀 수사는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시지요.”

    상대는 준혁의 말에 피식 웃었다.

    “사정? 뭐 나오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이 몸으론 되도록 사용하기 싫었는데.”

    말을 마친 미남자는 준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끄적거렸다. 그러자 허공에 문자가 나타나며 밝게 빛을 냈고, 동시에 미남자의 양쪽 어깨에 달려있던 갈기가 길어지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적마도를 꺼내 당장이라도 반응할 준비를 마쳤고, 아마르곤은 어느새 손위에 나뭇가지를 쥔 채 전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문자를 만들어낸 미남자는 준혁이 적마도를 꺼내 들자 두 눈에 놀람이 가득 찼고, 잠시 후엔 짜증이 잔뜩 오른 표정을 했다.

    “이게 무슨! 왜 내 념(念)이 닿지를 않는 거지? 그리고 적마라니? 두 놈과 함께라고?”

    “우연히 기회가 되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선배님의 존성대명을 알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준혁이 다시 한번 예를 다해 부탁했다. 하지만 미남자는 여전히 짜증 섞인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주 잠시간의 대치가 지속되려던 찰나. 갑자기 미남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이내 거대한 날개를 가진 괴이하게 생긴 새의 모습으로 변했다.

    새의 모습은 거대한 검은 학(鶴)과 비슷했는데, 머리에 뿔이 달려있었고, 뿔 옆으로 말의 갈기 같은 것이 양쪽으로 붙어있었다.

    그것뿐 아니라 양쪽 날개에도 삐죽 솟아오른 가시 같은 것들이 박혀있어, 한마디로 괴조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새의 모습에 준혁과 아마르곤이 동시에 놀라 하며 외쳤다.

    “사막 돌풍!”

    “사막의 주인!!”

    아마르곤이 사막의 주인이라 소리치자, 준혁 역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군요?”

    “저 역시 놀랐습니다. 사막에 이는 돌풍 속 환영이 황금궁전 안에 살고 있었다니.”

    그때 변화를 마친 새가 준혁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본적이 있는 놈이네. 기억이 나. 오랜만에 보는 인족이라 반가웠는데, 그냥 가버리더니만. 그나저나 어떻게 한 거지? 이렇게 해도 내 념이 닿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야?”

    ‘념? 혹시?’

    준혁은 새의 말에서 오래전 귀원패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혹시, 괴조 선배님이십니까?”

    준혁의 말에 새가 기쁜 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 거였어? 그럼 내 능력도 알겠지? 도대체 거북황이나 적마 저 두 놈이 어떻게 내 념을 거부하고 있는 거지?”

    56번째로 태어난 괴조.

    준혁이 귀원패에게 들은 괴조의 능력은 모든 마선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수행의 차이나 혹은 특수한 비술을 이용해 일시적인 회피는 가능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이어진 끈은 절대 자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괴조에 관해 설명할 때 귀원패가 강조한 사항이 있었다.

    절대 마선경과 괴조, 그 둘을 만나지 말 것. 물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선계에 가게 된다면 무조건 그들을 피하라고 했었다.

    만나는 순간 준혁의 이상 현상이 모든 마선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컸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괴조가 속한 세력은 반드시 알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때부턴 절대 편안한 수도 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라고 귀원패는 못 박듯 말했었다.

    준혁은 귀원패의 말과 지금 상황을 떠올리며 생각을 거듭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분명 하계에까진 힘이 닿지 않는다고 했었다.’

    “귀 수사가 그러더군요. 괴조 선배님의 능력은 가히 하늘에 닿아있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준혁이 뜬금없이 칭찬하자 괴조가 웃었다.

    “그래. 선계에서 내 념을 피할 순 없지.”

    “역시 그러시군요. 그럼 혹시···. 지금은 다른 분들과 연락이 닿으시는 것입니까? 예전에 귀 수사가 꼭 소식을 알고 싶다 한 선배님이 있어서 말입니다.”

    괴조는 준혁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누구? 아쉽게도 지금은 힘들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초진금(超眞金)으로 만든 궁전에 내 몸이···. 아니. 그래서 누구?”

    괴조는 말을 하다가 멈칫하더니 준혁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하지만 준혁은 대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혹시. 지금 본체가 아닌 분신체이십니까?”

    또 다른 질문에 이번엔 괴조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준혁은 눈앞에 마선이 있음에도 식검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의구심을 품었고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괴조라면 어마어마한 거물이 분명했는데, 봉인지에 지목족이 다시 나타날 걸 염려해 집 지키는 개로 부려 먹진 않았을 터.

    게다가 느껴지는 기운도 이름값에 비하면 볼품없었다.

    ”이곳에 중요한 볼일이 있는데···. 선배님이 계시면 조금 불편해서 말입니다.“

    시선을 옮긴 준혁이 아마르곤에게 이어 말했다.

    ”수사. 저자가 지목족을 말살시킨 법문의 개입니다. 저와 함께 처리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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