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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15화 (115/408)
  • < 115화. 하늘정원 (2) >

    하늘정원은 준혁의 말대로 공간 균열이 심해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두 명이 떨어져 조사해야 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럼에도 준혁이 서로 절반씩 나누어 수색 작업을 하자고 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화신단 때문.

    기목청의 뿌리야 천균의 동류인 목족에게 맡겨 배양한다 해도 약속을 어기는 것까진 아니었으나, 화신단만큼은 절대 나누어 가질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꿍꿍이가 있다 여긴 건가?’

    그리고 아마르곤의 요구 역시, 준혁이 스승에게 미리 언질 받은 게 있다고 여겨 행한 행동이었을 것.

    민망한 표정의 아마르곤이 기감을 극대화하며 움직이자, 준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나 고 수행을 지녔으면···. 술법의 영향으로 공간이 찢어진단 말인가.”

    눈엔 보이지 않지만, 기감으로 느끼면 땅과 허공 곳곳에 공간 자체가 얇게 찢어진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아마르곤에게도 조심할 것을 몇 차례나 강조했기에, 준혁은 기감에 잡히는 균열을 피해 정원의 바깥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준혁의 눈에 반으로 갈라지고 한쪽이 타버린 가로수만 한 나무의 모습이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자, 살아있는 목족 수사의 흔적은 아니었지만, 마치 인족이 사용하는 법기와 비슷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감으로 살핀 후, 영기를 흘려보내 상태를 확인했다.

    “선계의 수사가 사용한 것이구나.”

    아무런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준혁이 손을 휘젓자, 가로수만 한 나무가 그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오더니 평범한 크기의 나무 지팡이로 변했다.

    “손상이 너무 심하지만···. 여전히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어.”

    법기의 기능적인 면으로 보자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법기를 이루고 있는 재료가 가진 기운은 여전한 상태.

    아무리 뛰어난 연기사가 만진다 해도 원래의 기능을 회복할 순 없어 보였지만, 준혁은 법기를 보며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공간대에 법기를 집어넣으려다, 인상을 구겼다.

    “이런···. 이러다 터져버리겠어.”

    공간대는 이미 포화 상태. 외부로 보이는 모습은 변화가 없어야 할 공간대가, 빵빵하게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자꾸 물건을 튕겨내는 공간대에 파손된 법기를 억지로 쑤셔 넣은 준혁은 최대한 빨리 공간대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곳곳을 살펴보며 망가지거나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법기들을 몇 개 더 획득한 준혁은 꽤 만족한 표정을 한 채 아마르곤이 사라진 방향을 틈틈이 바라보았다.

    +++

    공간대가 자신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무렵.

    쿠아앙!

    아마르곤이 수색하는 지역으로 의심되는 곳에서 강대한 영기파동이 터져 나오더니, 금빛 기둥이 하늘을 뚫을 듯 치솟다가 넓게 퍼지면서 일부 지역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됐군.”

    그 모습에 준혁은 별다른 걱정이 없는 얼굴로 처음 이동됐던 하늘정원의 입구인 계단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후 계단 앞에 도착한 준혁은 수결을 맺고는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번갈아 짚었다. 그러자 손가락 위로 금(禁)과 쇄(鎖)를 뜻하는 천주문이 만들어지더니, 빙글빙글 돌다 계단 아래로 날아가며 무언가 깨지는듯한 소리를 냈다.

    파자작-

    천균이 일러준 방법으로 환영진이 덮고 있던 봉인을 해제하자, 어느새 계단 아래엔 성인 서너 명이 누울 수 있을 법한 깊은 구덩이가 나타났고, 그 아래엔 붉은색의 보자기에 덮인 상자가 나타났다.

    준혁은 굳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손을 저어 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성인의 몸통만 한 크기였는데, 어떤 재질로 만들어진 건지, 아무런 기운도 풍기질 않았다.

    그때 상자를 싸고 있던 보자기를 살핀 준혁이 소스라치는 모습을 보였다.

    “보패!”

    보물이 든 상자뿐 아니라, 보자기 자체도 주입된 영기를 자연스럽게 흩어버리는, 흔히 수행을 가릴 때 사용하는 기능을 가진 물건이었다.

    일반적인 법기가 아닌, 영기를 주입하면 강력한 보호용 보패로 변하는 물건이었다.

    아마 완벽하게 기운을 가릴 수 있는 상자를 사용했음에도, 안심이 되질 않아 사용한 물건처럼 보였다.

    ‘그만큼 기목청의 뿌리가 중요하단 뜻이겠지.’

    준혁은 한동안 보자기 보패의 활용도를 살펴보다가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는 이번엔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바로 상자를 열지 않고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공간대에서 깃발을 꺼내 상자 주위로 날려 보내며 수결을 맺었다.

    잠시 후, 수결이 끝나자 짙은 묵 색의 기운이 상자를 뒤덮었고, 준혁은 다시 한번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상자가 천천히 열리며 안의 내용물들이 드러났다.

    “다행이군.”

    천균을 믿긴 했지만, 기목청의 뿌리와 종족의 미래에 대한 염원에 비한다면 수십 년간의 인연은 반딧불보다 약한 법.

    혹시나 하는 염려로 상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던 준혁은 우려와 달리 아무 일 없이 지나가자 깃발을 회수하며 진법을 해제했다.

    그가 말한 다행은 함정이 없어서 다행이라기보다는 천균에 대한 좋은 감정이 훼손되지 않았음에 안도한 것이었다.

    잠시 천균을 회상한 준혁은 상자 안 물건들로 관심을 돌렸다.

    종족의 미래를 담고 있던 상자는 휘황찬란한 기운이라도 뻗어낼 것 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평범한 일반 목함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평범한 모습과 달리 안의 내용물은 평범하지 않았다.

    상자 안쪽에는 거무튀튀한 빛깔의 나무뿌리 세 개가 황금색 비단에 싸여있었고, 그 옆으론 다양한 빛깔의 나무뿌리가 고급스러운 자색 비단과 함께 놓여있었다.

    그저 나무뿌리에 불과할 뿐이었는데도, 마치 축기기에 이른 수사의 영기를 압축해 놓은 것처럼 짙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이 신비함을 풍겼다.

    “이것들은···.”

    또 다른 한쪽엔 붉은 자기병 하나와 하얀 자기병 세 개, 그리고 목족과 어울리지 않는 부채 형태의 법기가 놓여있었고,

    상자 가장 아래엔 널빤지 같은 것이 깔려있었는데, 그것마저도 평범한 나무가 아닌 법보로 보였다.

    +++

    준혁은 가장 중요한 거무튀튀한 나무뿌리를 확인하다가 뿌리를 덮고 있던 비단마저도 법보급 물건임을 알고는 쓰게 웃음 지었다.

    “지구에선 하나하나가 보물이라 불릴만한 것들인데, 겨우 이불 역할이나 하고 있다니.”

    말 그대로 몸을 보하고 기운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법보급 비단은 뿌리가 잘 잠들고 있으라는 듯 덮인 이불에 불과했다.

    황금색 비단에 싸인 뿌리를 확인한 준혁은 다음으로 중요한 화신단을 확인하려 하다가, 수많은 일반 뿌리 중 하나에 시선이 고정돼버렸다.

    “이건···.”

    눈길을 끈 뿌리는 푸른빛이 맴도는 가늘고 약한 뿌리였는데, 은은한 매화 기운과 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준혁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천균 수사의 뿌리구나! 어째서 나에게 말하지 않은···. 아!”

    인간들의 자식 같은 개념은 아니었지만, 분명 본인의 후예로 자라날 뿌리였거늘,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은 천균을 떠올리다 준혁은 그의 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기목청의 뿌리보다, 본인의 것을 더 중히 여길까 봐 그랬겠구나···.’

    사람뿐 아니라 이성과 감성을 가진 생명이라면 가까이 지낸 이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

    수년간 배움을 받으며 느낀 천균의 성품을 생각했을 땐 분명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천균의 마음과 준혁의 예상은 일치했다.

    천균의 뿌리까지 확인한 준혁은 나머지 뿌리들은 대충 상태만 확인하고는 붉은 자기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긴장되는 마음과 함께 조심스럽게 자기병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순간 청량한 기운이 물씬 풍겨와 고단한 마음과 몸을 단번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아.! 이것이 화신단!”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잠시간 고양감을 느낀 준혁은 혹시라도 단약의 기운이 날아갈까 서둘러 자기병의 뚜껑을 닫아버린 후, 공간대 가장 안쪽으로 쑤셔 넣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띤 준혁은 다음으로 하얀 자기병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자기병과 부채 형태의 법기마저 챙겼다.

    +++

    하늘정원에 들어선 목적을 이룬 준혁은 공간의 균열로 인해 불안정한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상자를 들고 이동한 준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빛 반구 형태의 진법안에 갇힌 채, 멍한 표정을 하고있는 아마르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살짝 입가를 끌어올린 준혁은 상자를 내려놓은 후 수결을 맺었다.

    잠시 후 수결이 끝맺음 되자, 준혁의 손에서 환한 빛이 생성되며 아마르곤을 가둔 진법안으로 흘러 들어갔고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우우웅-

    아마르곤이 진법에 갇힌 일은 사실 준혁이 의도한 일이었다.

    천균이 기목청의 뿌리를 숨기며, 혹시라도 진법이 드러날까 염려해, 하늘정원 곳곳에 주위 분산용으로 환영진을 설치해 뒀었던 것.

    준혁은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화신단을 챙길 시간을 벌기 위해 아마르곤에게 미리 경고를 하지 않았고, 그가 함정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었다.

    몇 호흡 지나 함정으로 만든 진법이 해제되자 반구 형태의 장막이 사라지며 아마르곤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아마르곤은 정신을 차린 듯, 준혁을 발견하고는 쓰게 웃음 지었다.

    “분명 주위를 살피고 있다 여겼거늘···. 수사를 보니 제가 환영진에라도 걸렸었나 보군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러보니 곳곳에 환영진이 설치돼 있더군요. 저는 천주문을 익혀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시겠습니까?”

    말을 하던 준혁은 바닥에 내려두었던 상자를 가리켰다.

    준혁의 손짓에 따라 시선을 옮기던 아마르곤은 상자를 발견하고는 두 눈에 의혹이 어리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벌써 찾으신 겁니까?”

    “수사께서 언제 갇힌 지는 모르나,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준혁의 말에 아마르곤은 민망한 듯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준혁의 눈치를 보며 상자 안을 확인했다.

    “이것들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장 위쪽의 것이 삼선에 오른 기목청님의 뿌리이고, 나머지는 지목족의 다른 왕족들의 뿌리 같습니다.”

    아마르곤은 아직 발아조차 못 했음에도 강한 기운을 품고 있는 지목족의 뿌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준혁은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나자 준혁이 나지막이 아마르곤을 불렀다.

    “수사.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우선 움직이는 게 어떠십니까?”

    “아! 그렇습니다. 자꾸 부끄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준혁의 말에 아마르곤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벌려 상자를 통째로 집어 삼켜버렸다.

    사람 몸통만 하던 상자가 아마르곤의 입에 닿자마자 주먹만 하게 줄어드는 게 신기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럼 가시지요.”

    자신에게 아무런 동의도 없이 상자를 챙기는 아마르곤을 보며 준혁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인 후 기감으로 위치를 파악하고는 하늘정원의 가장 안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아마르곤은 그런 준혁의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을 한 채 뒤를 따라 움직였다.

    +++

    공간의 균열 때문에 비행을 하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은 어느새 정원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정원 끝엔 절반은 하얗고 절반은 붉은색을 띤 기이하게 구부러진 나무가 서 있었는데, 나무 틈 사이로 황금빛의 문이 박혀있었다.

    특이한 건 황금빛의 문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살짝 흐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는 것.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준혁이 말없이 나무 틈 사이의 문을 바라보고 있자 아마르곤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에 준혁의 입술 사이에선 차분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수사도 예상하셨겠지만, 이곳이 황금궁전의 입구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궁전의 입구는 허락된 자에게만 진체를 드러내게 되어있지요?”

    “허락된 자 말입니까?”

    “원래대로라면 정식 절차를 밟고 이곳에 온 자를 지목족의 왕족들이 심사하고, 그 후에 적합하다고 여긴 자들만 왕을 뵙기 위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즉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왕족의 힘이 필요한 것이지요.”

    준혁의 설명에 아마르곤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설명대로라면 왕족이 없는 지금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는 말.

    “수사께 방법이 있을 거라 여깁니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만만하게 이곳으로 오자고 한 자가 준혁이었기에, 아마르곤의 표정에 불안함이 깃들어 잇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에 답해주듯. 준혁이 빙긋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야겠으니 조금 전 뿌리들을 제게 주십시오.”

    준혁의 요구에 아마르곤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심각한 얼굴로 바뀌었다.

    “설마···.”

    “왕족의 허락을 구할 수 없으니, 방법은 단 한 가지···. 그들의 후예를 제물로 바쳐 문을 강제로 열겠습니다.”

    정확히는 뿌리에 담겨있는 왕족 후예들의 기운을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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