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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06화 (106/408)
  • < 106화.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 (1) >

    멱살잡이하던 노인들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결국 준혁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정 기간 돌아가며 가르침을 내리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준혁은 이미 이론적인 지식을 대부분 습득한 후였기에, 노인들의 수업은 개인 수련과 수련 중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만 조언을 얻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또 3년이 지나갔고, 그때부턴 그동안 배운 지식을 소화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스승들과의 수업을 멈추고 오롯이 연단 제작과 수행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준혁이 너무 뛰어난 성과를 보였기 때문인지, 스승들은 수업 일정을 마음대로 조율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서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또 5년이 흘러갔다.

    +++

    개인이 사용하기엔 너무 넓은 실습실.

    한쪽에 가득 쌓여있는 지유목과 각종 화로를 보면 이곳이 연단실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단실 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기가 사라져 버린 연단실 중심엔 준혁이 눈을 감고 좌정한 채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수결을 맺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착착착-

    수결이 더해질수록, 준혁의 몸 주위로 영기파동이 퍼져나가며 은은한 빛무리를 내뿜었다.

    잠시 후 사방으로 퍼져가던 빛무리가 잘게 진동하더니, 급작스럽게 부피를 키웠다.

    화악-

    순식간에 연단실은 빛무리에 잠식당했고, 조금만 더 지나면 연단실을 뚫고 빛이 폭주할 것만 같았다.

    그때 준혁이 흐읍- 하며 숨을 들이마시자,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처럼 규모를 늘려가던 빛무리가 빠르게 준혁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리곤 준혁의 입속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끝이 아니었는지, 빛무리가 사라진 후 준혁의 피부위로 옅은 분홍색을 지닌 꽃잎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잎들은 준혁의 온몸을 덮고도 모자라 연단실 곳곳으로 번져갔고, 한참 동안 꽃밭을 유지하다가 펑- 하며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준혁은 관조를 끝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엔 실망감이 잔뜩 담겨있었다.

    “그토록 노력했거늘···. 막힌 듯 더는 수행이 늘지 않는구나···.”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준혁은 엄청난 양의 화목단을 복용했고, 몸속의 기운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원영기 초기에 불과했던 준혁이 중기를 넘어선 건 순식간.

    중기를 넘어서자 후기까지도 막힘없이 쭉쭉 수행이 증가했다.

    하지만 후기에 이르고 나자 무언가에 막힌 듯 수행 상승이 멈춰버렸다.

    “하긴, 원영기에 적합한 영단을 이 정도로 수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연이거늘. 내 욕심이 끝도 없구나.”

    다행이라면 수행은 멈췄지만, 몸속 영기의 총량은 영단을 복용할 때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

    게다가 수행과는 별개로 준혁에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수도계에 입문한 후, 수십 년간 공법을 익히며 수련에만 매진한 것이 처음.

    준혁은 자신의 기본 공법인 혈단법에 대한 이해도가 수직상승하여 이제 곧 대성을 앞둔 상태였다.

    그동안 조금씩 쌓여가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탁기. 그것마저도 식혈만복의 혈피갑을 이용해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물론 아직까지도 탁기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예전처럼 찝찝하게 몸속에 그저 쌓아두기만 하는 건 아니었기에 큰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목족의 공법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 연단 스승에게 배운 화신목영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 있었기에, 이젠 낮은 확률이었지만 가끔씩 1품 화목단을 만들기까지도 했다.

    다만 1품 화목단은 연형기 이후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는 영단이라 당장 섭취하지 않고 공간대 안에 모아두었다.

    “더이상 영단을 복용해봤자 큰 의미가 없다. 다른 계기가 필요해.”

    40년의 세월 간 내면을 관조하고 영단을 섭취하는 일만 반복한 준혁. 그런 그에게 필요한 건 이제 실전뿐이었다.

    +++

    “공자, 한동안 마음을 다잡은 줄 알았건만, 다시 무모한 도전을 할 생각이십니까? 예전에도 말했듯 최소한 원영기에라도 오르지 않는 이상 절대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위치한 통로 앞.

    준혁은 듬직하게 생긴 사내를 마주하고 있었다.

    준혁이 원영기 후기에 올랐음에도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해서인지, 사내는 처음처럼 통로를 가로막으며 통행을 금지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가려져 있던 자신의 수행을 드러내며 영기를 내뿜었다.

    화악-

    하지만 사내는 요지부동.

    “공자, 예전엔 뒷길로 몰래 숨어드는걸 봐 드렸지만···. 이젠 안 됩니다. 저를 더는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내 수행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원영기의 수행을 드러내도 사내에게서 작은 변화조차 생기지 않자, 준혁은 목족의 기본 공법인 목신기공(木神氣功)을 운용하며 오행 중 목기만을 움직여 영기파동을 발산했다.

    그러자 꿈적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사내가 몸을 움찔하더니, 두 눈이 동그래져 준혁을 쳐다보았다.

    “공자! 벌써 원영기에 이르신 겁니까? 이곳에 오신지 얼마나 됐다고···.  어르신들께서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시더니.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럼 이제 관문에 도전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수행을 더 쌓고 도전하면 좋겠지만, 말린다고 그냥 가실 위인이 아니니.”

    사내가 어린 동생을 걱정하는듯한 표정을 내비치자, 준혁은 미소로 화답해주고는 살짝 묵례를 한 후 그를 지나쳤다.

    그때 입구를 지키던 사내가 준혁을 다시 한번 불러 세웠다.

    “천균 공자.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다만 다섯 번째 관문부터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으니···.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포기하시고 돌아오십시오.”

    오래전 비슷한 말을 했던 걸 기억하며, 준혁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그의 걱정에 감사를 전했다.

    “명심하겠습니다.”

    +++

    아무런 장식도 없는 좁은 통로.

    이미 한번 지나가 보았던 길이었기에 준혁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빠르게 지나쳤다.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아무런 기운이나 글귀도 없는 비석이 반겨주었고, 비석을 지나치는 순간까지 예전처럼 그 어떤 반응도 나타나질 않았다.

    “설마, 건물과 달리 이곳은 작동하지 않는 것인가?”

    준혁은 의문을 가진 채 빠르게 이동해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첫 계단 위로 올라선 순간.

    걱정과 함께 찾아왔던 의문은 날아가 버렸다.

    “시작인가 보군.”

    하늘정원으로 향하는 관문.

    그 첫 시작을 알리듯, 아무것도 없던 계단을 녹색 풀들과 엉겅퀴처럼 생긴 줄기 식물이 뒤덮기 시작했다.

    +++

    수십 미터에 이르는 계단 전체가 녹색 풀들과 줄기 식물로 뒤덮여 있었고, 준혁은 그런 계단 끝에 선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건···.’

    순식간에 바닥을 뒤덮은 줄기 식물은 준혁의 발을 휘감았고, 동시에 영기 흐름 자체를 느리게 만들어 버렸다.

    그때 준혁이 서 있던 자리의 반대편에서 식물 줄기가 두꺼워지더니 이내 사람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르륵-

    잠시 후 온전한 사람 형상으로 변한 줄기는 상체는 사람의 모습이었고, 하체는 여전히 바닥의 줄기들과 연결된 괴이한 모습이었다.

    “공자, 오랜만입니다그려. 드디어 정식으로 절차를 밟을 생각을 하신 겁니까?”

    준혁은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를 보며 아무 말 하지 않고, 혹시 공격이 시작되지 않는지 온몸의 신경을 곧추세웠다.

    “하긴 잘 판단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뒷구멍을 이용해 정원에 몰래 들어갔다면, 아마···. 예전처럼 온전히 내려오진 못했을 겁니다. 허나 공자의 수행을 보니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흠···. 용기가 가상한 건지. 욕심이 많은 건지 원.”

    혼자서 주절대던 줄기 사내는 뭐가 재밌는지 혼자서 피식거리며 웃다가 입을 벌려 무언가를 뱉어냈다.

    퉤-

    “처음 방문했을 때 크게 혼난 적이 있으니, 잘 기억하고 있으시겠지요? 그럼 3관문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여기 조식충(條食蟲)을 피해 잘 올라와 보십시오. 예전처럼 무식하게 조식충을 화나게 해 화를 입지 마시고, 말입니다.”

    줄기 사내가 말을 마치고 다시 쪼그라들려는 듯 보이자, 준혁은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화나게 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죽이지 말고 방어만 하라는 말입니까?”

    준혁의 질문에 줄기 사내가 잠시 멀뚱한 눈으로 준혁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기억이 날아가 버린 겁니까? 정말 기억 안 나십니까?”

    “그렇습니다.”

    “허허. 이것 참.”

    사내는 어이가 없는지 잠시 허허거리다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조식충은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예전에도 제가 설명해 드렸지만, 공자는 관문이 시작되자마자 무식하게 행동하다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이번엔 부디 그때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설명을 마친 후 피식 웃은 사내는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듯 쪼그라들더니, 바싹 마른 줄기만을 남긴 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위잉-윙-

    줄기 사내가 사라지고 난 뒤, 사내가 바닥에 무언가를 뱉어놓은 자리에서 수십 마리의 벌레떼들이 생겨나더니 준혁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벌레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였는데, 자세히 보면 머리에 뿔이 달린 벌처럼 생겼고, 빨간 몸에 검은 테를 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곧장 녹색 옥패를 꺼내 발동시켰다.

    “귀원패.”

    그 순간 준혁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녹색 육각 타일들이 무수히 생겨나 전신을 둥글게 막았고, 벌레떼는 반투명한 보호막에 몸이 막히자 보호막에 들러붙더니 이빨로 갉아 먹기 시작했다.

    그드득-그드득-

    하지만 귀원패의 절대 방어가 벌레 따위에게 무력화되진 않았다.

    벌레 수십 마리가 달라붙어 이빨을 들이미는 걸 보며, 준혁은 줄기 사내가 사라진 곳과 계단 위를 번갈아 보았다.

    “3관문까지는 이렇게 그냥 지나가는 거라고? 설마 이게 끝은 아닐 테지.”

    물론 귀원패라는 보호에 특화된 법보의 능력으로 준혁이 벌레들을 쉽게 상대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이면 결단기 초기만 되어도 애를 쓰면 통과가 가능할 거란 판단이 들었다.

    발을 감싸고 영기 흐름을 늦추는 식물도 원영기 후기에 이르러 막대한 양의 영기를 다룰 수 있는 준혁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고, 만약 결단기 때 도전했다고 해도 크게 문제는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준혁의 귀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톡- 톡-

    “이게 무슨···.”

    보호막에 날파리처럼 달라붙어 이빨을 들이밀고 있던 벌레들이 한 마리씩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몸을 부풀리며 터져나갔다.

    그리고 터져나간 잔해들이 바닥에 떨어지자, 잠시 후엔 잔해가 떨어진 자리에서 서너 마리의 벌레가 나타나 보호막으로 날아왔다.

    그랬다. 처음 수십 마리에 불과했던 벌레가 자가 증식하기 시작한 것.

    톡- 톡- 톡-

    보호막이 사라지지 않자, 증식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원패로 만든 보호막이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위이이잉-

    벌레떼들은 수가 불어나자 미친 듯이 서로를 북돋기 시작했고, 당장이라도 준혁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빨 날을 세우며 보호막을 갉아댔다.

    “진짜 관문은 이것이었어.”

    벌레떼가 막 달라붙기 시작했을 때부터 서둘러 움직였다고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총 100층으로 이루어진 계단, 그리고 10개의 관문.

    단순 계산으로만 생각해도 3번째 관문에 도달하기 위해선 29개의 계단을 지나야 했으니, 결국은 얼마 지나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늘어나는 벌레떼를 마주하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벌레떼들이 보호막을 뒤덮자 귀원패로 흘러 들어가는 영기의 양이 미친 듯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준혁이 생각하는 진짜 관문이었다.

    영기의 수발과 미세한 조절.

    발아래 식물들이 영기 흐름을 늦추었기에 회복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적은 양의 영기를 움직여 벌레떼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선 극도로 효율적인 영기 운용이 필요했다.

    아마 그것이 이 관문에서 시험하고자 하는 진짜 목표일 거라고 준혁은 생각했다.

    게다가 긴 시간을 그렇게 이겨내야 한다면 체력과 인내심, 거기에 정신력까지 동시에 시험할 수 있었다.

    시험관의 의도를 생각하던 준혁의 한쪽 입가가 쭉 올라갔다.

    “굳이 원하는 대로 응해줄 필욘 없지.”

    파앗-

    벌레들이 뒤덮은 보호막 안.

    악동처럼 웃는 준혁의 머리 위로 어느새 거울 하나가 나타나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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