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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05화 (105/408)
  • < 105화. 수련 (4) >

    준혁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인 노인의 열정은 대단했다. 본래 시간을 아껴가며 수련에만 집중했던 준혁마저도 혀를 내두를 만큼 효율을 중시했다.

    “보아라. 영기수발의 순서와 속도가 중요하다. 아무리 궁합이 좋은 재료를 이용했다고는 하나, 본디 서로 다른 기운을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는 것.”

    노인의 시범은 지금까지와 또 달랐고, 준혁은 영단을 복용할 시간조차 없이 배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이 또 지나갔다.

    “이제 기본적인 배움은 끝난 것 같으니 스스로 공부하거라. 당장 화래증폭술을 이용해 화목단의 효율을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나, 중요한 것은 화신목영을 대성하는 것이 먼저다. 알겠느냐?”

    “예. 스승님. 명심하겠습니다.”

    “천균이 네가 천단사가 될 수 있다면 내 무엇이든 도울 테니, 앞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지체없이 묻도록 하거라.”

    “예. 스승님.”

    기나긴 수업이 끝난 후, 노인은 후련하다는 듯 떠나갔고, 준혁은 그동안 배웠던 것을 되뇌며 명상에 빠져들었다.

    사실 화래증폭술은 많은 부분 깨달은 바가 컸지만, 화신목영은 목족의 공법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암기 수준에서 기본만을 터득한 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결국 고민을 거듭하던 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처음엔 네 번째 방이었고, 지금은 건너편 복도 끝에 있는 ‘공법’이라 적힌 방으로 이동했다.

    +++

    “불가하네. 이미 천단사의 길을 걷는 자네를 내가 가르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네. 정 배움이 필요하면 자네의 스승을 찾아가게.”

    공법 수업실에 참관한 준혁은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곳에서 만난 선생은 가르침을 거부했고, 준혁은 결국 모든 걸 다시 처음으로 돌리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와버렸다.

    건물을 나온 준혁은 곧장 호수로 이동해 청호를 찾았다.

    “벌써 후기에 가까워졌구나. 잘했다.”

    “전부 이 가죽 덕분이에요.”

    칭찬에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한 청호가 오래전 준혁이 건넸던 백호 가죽을 꺼냈다.

    “설마 연화에 성공한 것이냐?”

    “네.”

    준혁의 질문에 청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호 가죽을 덥석 삼켰다. 청호보다 수배 커다란 백호 가죽은 청호의 입에 닿자 조그맣게 줄어들며 입속으로 쏙 하고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청호의 몸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털의 색이 짙은 회색으로 변하며 주변 영기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단하구나···. 이게 수련 속도를 올려주는 기물일 줄이야.”

    백호 가죽은 인지경처럼 주변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를 가증시켜주는 물건이었다.

    “전부 주인님 덕분이에요. 이런 물건을 서슴없이 저에게 주셨잖아요.”

    “아니다. 원래 너를 위해 남겨져있던 물건인 것을 어찌 내가 욕심을 내겠느냐. 앞으론 내가 주는 단약을 복용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다른 물건들을 연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보거라. 아마 그것이 너의 수행을 더 빠르게 올리는 방법일 것 같구나.”

    청호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더욱 작게 만들며 준혁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가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청호의 행동에 피식 웃은 준혁은 그동안 먹지 못하고 공간대에 쌓아놓았던 화목단을 꺼내 자리를 잡았다.

    “공법을 운용할 것이니 몸에 충격을 주지 말고 얌전히 있거라.”

    품 안에 있던 청호가 이미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는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준혁은 화목단 하나를 눈앞으로 가져오며 천천히 살폈다.

    “확실히 3품부터는 영단이 품고 있는 기운이 남다르구나. 그동안 스승님 때문에 복용하지 못했으니 남은 걸 전부 처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는 영단을 힐끔 쳐다본 준혁은 손안에든 영단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영단이 몸 안으로 들어오자, 원영에게 신호를 보내며 혈단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그동안 먹었던 영단이나, 하급 법기를 흡수했던 것들이 장난이기라도 했다는 듯, 3품 화목단은 엄청난 기운을 함유하고 있었고, 준혁과 원영은 동시에 희열감에 사로잡혀 한동안 단약을 녹이는 데만 심취했다.

    그러길 3개월.

    만들어 놓은 영단을 전부 소화한 준혁은 다시 건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엔 연단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고 실습은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연단 스승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심한 벌레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준혁을 대하다가 관심을 끊어버렸다.

    “사형! 어쩌려고 그래? 연단술이 얼마나 중요한 줄 몰라? 정말 언제 철들 거야?”

    요린은 처음 준혁을 만났을 때처럼 잔소리를 시작했다.

    “난 연단과 안 맞아. 공법을 배우러 갈게.”

    “공법? 그건 이전에 수업을 들었잖아?”

    “제대로 다시 해보려고.”

    요린에게 포부를 밝힌 준혁은 곧장 공법 수업이 진행 중인 곳으로 찾아갔고, 수업에 참여했다.

    목족의 공법은 인족들의 공법과 크게 차이가 있었는데, 그중 극단적으로 다른 한 가지는 바로 단(丹)의 유무였다.

    ‘이래서 화신목영을 익히기가 힘들었어.’

    인간들이 연기기와 축기기를 거쳐 이루고자 하는 것은 영기를 고도로 압축해 만든 단(丹)이었다.

    하지만 목족은 단이라는 개념이 없이 몸 전체를 하나의 단과 같이 운용했다.

    그러다 보니 공법 운용의 기초부터가 완전히 판이하게 달라져 버린 것.

    게다가 몸 전체를 단(丹)처럼 운용하다 보니 원영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조차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다.

    준혁은 가르침이 진행될수록 이해도가 떨어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건물 밖으로 향해야 했다.

    +++

    20년 후.

    목족인의 공법을 배운 준혁은 화신목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진법 수업에 참여해 천주문 이라 불리던 공부를 배우기 시작했다.

    천주문은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을 기록한 문자였는데, 진법을 이루고 발동하는 방식이 인족들의 방법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괴리가 있었다.

    그리고 천주문을 익히고 나자, 그제야 오래전 자신이 설치한 방음진이 무력화돼버린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사용한 진법은 정말 조잡한 것이었어.’

    진법을 건축에 비교하자면, 천주문은 바닥을 다지고 뼈대를 세우는 행위였다. 반대로 지금까지 준혁이 사용한 방법은 뼈대 없는 허공에 천막을 친 것과 다름없었다.

    ‘기초가 세워지지 않았으니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거기다 천주문에 대한 지식이 깊어질수록 준혁은 한가지 의심을 품게 되었다.

    ‘어쩌면···. 이 건물만이 아니라···.’

    +++

    20년에 걸쳐 공법과 진법을 공부한 준혁은 다시 연단에 매진하려다가 마지막 남은 공부인 환시화를 배우기 위해 움직였다.

    이제 원영기를 넘어설 때까진 오롯이 연단에만 매진할 생각이었기에, 그전에 배워둘 수 있는 건 배우고 넘어갈 계획.

    그렇게 시작한 환시화 공부는 의외로 준혁의 적성에 맞는지,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역시 네 녀석은 환을 담는데 재능이 있다. 이제부턴 실전을 통해 환의 묘리를 배워보자꾸나.”

    가르침을 내리던 학자풍의 노인은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진열장에서 빈 족자를 가져오더니 붓과 벼루를 꺼냈다.

    마치 큰 인심을 쓴다는 듯 얼굴엔 의기양양한 내색이 가득했다.

    “매해 겨우 석 장 정도만 지급되는 물건이다만, 내 특별히 너의 재능을 생각해 준비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헌데···. 그럼 어떤 방법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지···.”

    준혁이 말꼬리를 흐리자, 노인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말거라. 이 환시용 족자가 구하기 어렵다고는 하나, 다행히 조심히 사용한다면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다. 우선 한번 시도해 보거라. 그 후에 이 스승이 찰제술(擦除術)을 가르쳐줄 테니. 그것으로 깨끗이 만들어 재사용하면 된다.”

    “네. 스승님.”

    준혁은 스승이 준비해둔 붓과 벼루에 영기를 흘려보내 벼루에 담긴 채색용 물감을 붓으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옮겨 스승이 일러준 방법대로 환시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숨조차 멈춘 듯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던 준혁이 붓에서 손을 떼자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마주쳤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처음부터 이리 훌륭하게 해내다니. 하지만 여기를 보거라. 이 부분에서 이렇게 하면···.”

    노인은 준혁이 그린 환시화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고는 찰제술을 가르쳐 주어 족자를 처음과 같이 깨끗하게 만들게 했다.

    그렇게 십여 일간 수십 번을 반복하자, 족자에 구멍이 뚫리며 파스르륵 하며 영기가 날아가 버렸다.

    “스승님 이게···.”

    “네 잘못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도면 꽤 오래 사용한 것이니. 흠···. 좋다. 다음 해부턴 지원품이 도착하면 너에게도 한 장씩 지급해주마. 대신 내 밑에서 본격적으로 환시화를 배워보도록 하거라. 그리하겠느냐?”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구나.’

    대답을 기다리며 노인이 인자한 얼굴로 바라보자, 준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공간대에서 족자 세 개를 꺼내 들었다.

    “스승님. 제가 어릴 적부터 환시화에 관심이 있어···. 이곳에 오기 전.”

    준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노인은 족자를 펼치더니 두 눈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내 평생 이 정도로 최상급의 족자를 본 적이 없거늘! 이 정도면 수백 번을 연습해도 망가지지 않겠어···! 수장께서 너를 아낀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것들을 전부 너에게 주신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붓과 벼루도···.”

    준혁은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는 잘됐다는 생각에 붓과 벼루를 꺼내 보여주었다.

    “허허! 수장께서도 너의 재능을 알아보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리 귀한 것들을 내리셨겠지! 좋다! 오늘부터 내 너를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전수해주도록 하마!”

    준혁이 꺼낸 족자와 물건들은 전부 백호 유적에서 챙겨온 것들이었다. 그 당시 그저 사소한 것이라도 전부 챙겨두자는 마음으로 진열장 가득한 빈 족자들을 전부 챙겼거늘,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 꿈에도 몰랐었다.

    게다가 준혁이 꺼낸 족자는 겨우 석 장.

    아직 공간대 안에 한 무더기가 수북이 쌓여있는 중이었다.

    +++

    30년 후.

    지나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항상 조용했던 대전 중심에서 네 명의 노인이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다.

    각각의 노인들은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하나같이 어느 한 가지 분야에서 대가(大家)라 불릴 만한 인물들이 분명했다.

    그런 인물들이 시장에서 드잡이질하는 상인들처럼 연신 상소리를 내뱉었다.

    “야 이! 가가(賈家)야! 저놈은 연단록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천단사가 될 인물을 어찌 조잡한 진법가로 키울 생각을 하느냐!”

    “뭐라? 조잡한 진법가?!! 이 무식한 약쟁이 새끼야! 그깟 재료를 집어넣어 불 조절만 하면 만들 수 있는 약 따위와 하늘을 움직이는 진법을 비교한다는 말이냐?!”

    “뭐? 불 조절만 하면 만들어?! 말 다 했느냐!”

    “어허. 두 사람 말이 틀린 건 아니지요. 그깟 단약 제조나 깃발이나 휘두르는 게 어찌 공부라 하겠습니까? 무릇 성인이라 함은 세상을 한 장의 화폭에 담을 수 있어야지요.”

    “쯧쯧. 그림쟁이 따위가 어디서 끼어들어? 모든 수행의 기본인 공법을 배우지 못하면 단약이든 환시든 진법이든, 그 무엇하나 이룰 수 없는 것이거늘. 저놈은 꼭 내가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한참을 투덕거리던 네 사람은 갑자기 눈빛이 변하더니 홱 하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준혁이 난처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하고 있었다.

    “천균! 네가 선택하거라! 너는 어떤 길을 갈 것이냐?!”

    연단을 가르치던 노인이 소리치자, 나머지 노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균이 네 녀석이 선택하거라! 무엇이냐? 너는 무얼 네 전공으로 삼을 것이냐?”

    네 노인이 번갈아 가며 소리치자, 준혁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대답했다.

    “스승님들. 제자 공부를 시작한 지 겨우 일 년이옵니다. 아직 배운 바가 크지 않거늘 어찌 스스로 길을 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시지 마시고···. 당분간은 네 분이 동시에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심이 어떠십니까? 후일 스스로 뜻을 세울 수 있다 생각될 때···. 그때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준혁은 30년간 모든 걸 반복하며 수련에 임했다. 특히 공법과 진법 수업을 진행할 땐 한 달 혹은 그보다 짧은 기간을 반복하며 되풀이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30년간 익힌 것들이, 노인들의 시점에선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깨닫는 천재로 보이기엔 충분한 것.

    준혁은 최대한 겸손함을 유지하며 머릿속으로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가봐야 할 때가 되었다. 최대한 연단에 집중해 수행을 올리고 관문에 도전해야 할 때야.’

    그리곤 노랑머리 여인을 떠올렸다.

    ‘제이엘이 무사히 도망쳤다면 걱정이 없지만···. 만약 그녀가 다시 잡혔다면···. 나연이의 봉인이 풀리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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