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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03화 (103/408)
  • < 103화. 수련 (2) >

    구름 문양이 박힌 월계관이 사라지며 환영 전체가 사라져 버리자 준혁은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월계관이 일회용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했다.

    “있다!”

    산 정상에 도착해 계단 위를 확인해보자, 그곳엔 처음 모습 그대로 월계관이 놓여있었다.

    +++

    “사형! 언제까지 잘! 어?”

    또 한 번 깃털이 달린 씨앗에 적중당하며 방으로 이동된 준혁은 방문이 벌컥 열리며 여인이 나타나자 태연스럽게 그녀의 앞을 지나치며 말했다.

    “가자. 오늘부터 연단술을 배우기로 했으니.”

    “어? 어···. 그렇지. 사형? 뭐 잘못 먹었어?”

    여인의 반응에 피식 웃은 준혁은 앞장서서 걸으며 대전을 지나 연단술 수업이 진행되는 방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 다른 이들과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거나 안부를 물었다.

    맞은편 복도를 지나 ‘연단’이라 적힌 곳으로 들어서자,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노인이 준혁을 반겼다.

    “어서 오거라. 오며 가며 마주친 적은 있으니 내가 누군지는 알 테지?”

    “네, 스승님.”

    “고 녀석. 아직 첫 배움도 시작하지 않았거늘, 스승이란 말이 입에 잘도 붙는가 보구나.”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노인을 보며 준혁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준혁의 인사에 기분이 좋은지, 노인의 입가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

    “스승님. 제자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지유목에 깃든 지기(地氣)를 인족이나 혹은 요족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처음 수업을 통해 지식을 전달받았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였기에 질문조차 하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환영을 통해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애초에 노인이 전해주는 지식은 하루아침에 습득하는 게 불가능한 방대한 것들이었기에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도 않았던 것.

    하지만 같은 환영을 반복하는 상황이 되니 준혁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당장 나가는 길을 찾는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이곳에서 강해진 후에 나가야 해.’

    게다가 한 달간 생활하며 느낀 바로는 환영을 유지한 채 계단을 오르면 필히 관문이라는 것이 생겨날 거란 확신도 생겼다.

    그렇다면 밖으로 향하는 길은 결국 수행을 상승시켜 강해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흠···. 영단을 만들기 전 연화 과정을 얼마나 거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래. 네가 며칠간 배운 것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꾸나. 수행에 따른 영단 제작에 대해 읊어 보거라.”

    노인이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준혁은 입술을 적신 후 대답했다.

    “결단기 이하는 지기 속에 포함된 화기와 수기, 그리고 쇠기를 이겨낼 수 없기에 최소한 스물두 번의 연화 과정을 거쳐 기운을 상쇄시켜야 하고, 반대로 목기를 돋구기 위해 자약초(刺藥草)와 구물피(口物皮)를 이용하여···.”

    그동안 배운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조리는 준혁을 보며 노인과 요린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공부는 뒷전인 문제 많은 공자라는 소문과는 너무나 딴판인 모습 때문이었다.

    처음 수업을 들으러 왔을 때부터 소문과 달리 차분하고 예의 바른 모습에 준혁을 눈여겨보던 노인은 매우 만족해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화신기에 이르러서는 오행을 품을 수 있기에 연화 과정 없이 지유목의 기운을 온전하게 흡수할 수는 있으나, 이미 지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능이 없다시피 할 테니 그때부턴 각린수(角鱗獸)와 여린충(麗璘蟲)을 이용하는 데 사용하여 그 효능을 이끄는 역할로서만 충당하면 된다 배웠습니다.”

    준혁이 길고 긴 설명을 끝내자,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맞잡으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훌륭하구나. 이토록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니. 역시 겪어보지 않고 판단하지 말아야 함을 또다시 깨닫는구나.”

    노인의 칭찬에 이어 요린마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사, 사형? 진짜 사형 맞아?”

    두 사람의 반응에 준혁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하늘과 같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겨우 따라갈 뿐입니다.”

    “허허, 어찌 말하는 것도···. 그럼 알려주도록 하마. 인족이란 것들은 우리보다 오행을 받아들이기 적합한 형태로 태어났다. 그러니 목기를 북돋기보다는 모든 기운을···.”

    노인의 설명이 계속되자, 준혁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내용을 암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모든 기운을 동일하게 연화하되 각각의 체질에 맞게 미세한 조절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구나.’

    준혁이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한 설명을 마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분 좋은 듯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좋다! 이제 직접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마.”

    +++

    처음 연단술의 기초를 배울 때와는 달리 이번엔 스승이라 부르던 노인이 직접 가르침을 내렸다.

    그 모습에 준혁은 그것이 자신의 달라진 태도 때문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수준이 다르구나···.’

    지유목과 영천수를 이용해 결단기 이하급이 복용할 수 있는 최하급 화목단을 제작하는 노인은, 그전에 시범을 보였던 자와는 차원이 다른 연단술을 선보였다.

    ‘기가 운용되는 순서가 다르다, 불의 세기와 영기발출이 이런 식으로 조합을.’

    이미 만드는 법을 알고 있던 준혁은, 노인이 행하는 연단술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초집중 상태를 유지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사흘 후.

    노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요린은 하던 일을 멈춘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녕 연단이 처음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허허, 네 녀석이 환시화에 재능이 있다는 얘긴 들었다만···. 사흘 만에 첫 연단에 성공하다니···. 이건 재능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구나.”

    처음 연단 실습을 했을 땐 한 달 동안 기초를 겨우 배웠고, 그마저도 영단을 만들 때는 도움을 받아야만 했었다.

    이번엔 그때 실패했던 일들을 되새기며 최대한 집중했고, 또한 노인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했기에 혼자 힘으로 영단 제작에 성공한 것.

    연단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최하급 화목단의 품질이 딱히 좋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탁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운이 따랐기에 최하급 중에서도 하급을 겨우 만든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건 준혁의 감상평이었고, 스승인 노인은 전혀 다른 듯했다.

    “좋다! 천균!”

    “네. 스승님.”

    “만약 네 녀석이 3년 안에 3품 화목단을 만들어낸다면! 내 정식으로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고, 연단 비술을 전수해주마!”

    준혁은 연단 비술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더는 놀랄 수 없을 만큼 놀라워하는 요린을 보며 그것이 비전 비술임을 알아챘다.

    이곳에서 최대한 수행을 늘리려고 마음먹고 있던 준혁은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꼭 해내겠습니다. 스승님.”

    +++

    실습용으로 준비돼있던 재료가 소진되자, 준혁과 요린은 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했다.

    “사형! 얘기 들었지? 남쪽으로 가면.”

    “흑미대지?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말아라”

    “헤에, 사형 최근에 정말 이상해. 마치 딴사람이 된 것 같아.”

    준혁은 요린의 말에 피식 웃어 보인 후 건물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향했다.

    ‘나가는 순간 모든 게 사라질 테니···. 방법을 바꿔야겠어.’

    문을 나서기 직전, 요린을 향해 몸을 돌린 준혁이 뒤따르다 멈칫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요린 사매.”

    “응?”

    “다시 보자.”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요린을 보며 준혁은 그대로 뒷걸음질 치며 건물의 입구를 지나쳤다.

    그 순간, 예전과 마찬가지로 몸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흩어지며 요린을 비롯한 모든 환영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혀를 가볍게 찬 준혁은 망설임 없이 새끼 백호가 혼자 있을 호수를 향해 이동했다.

    잠시 후. 호숫가에 몸을 담근 채, 새근거리며 잠들어있는 백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별일 없었구나.’

    준혁이 인기척을 내자, 백호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더니, 그릉 거리며 준혁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준혁은 그런 백호를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혼자 지낼 만하더냐?”

    백호는 준혁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후, 백호가 다시 잠에 빠져들자, 준혁은 인지경을 꺼내 발동시키며 손을 흩뿌렸다.

    그러자 손끝에서 분광소가 튀어나오며 수십 자루로 증식해 근처에 자라나 있던 나무를 향해 쇄도했다.

    단순하게 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 아닌, 뿌리까지 캐내야 했기에, 준혁은 정신을 집중하며 분광소를 세밀하게 움직였다.

    분광소를 발출한 준혁은 곧이어 공간대에서 하급 공간대를 꺼내고는 호수로 쏘아 보냈다.

    인근에 자라나 있는 지유목 전부를 베어 공간대 안에 담고, 영천수는 가져갈 수 있는 양만큼 최대한 챙겨갈 생각이었다.

    +++

    상급 공간대 안이 아무리 크다 한들 숲을 담을 수는 없었는지, 준혁은 지유목 숲의 일부만을 챙긴 후, 건물로 돌아와야 했다.

    산 정상에 올라 월계관을 챙긴 후엔 반복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반복해야 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3일 만에 성공했던 영단 제작이 이번엔 하루 만에 성공했고, 그만큼 노인의 칭찬과 관심이 과할 정도로 넘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놀랍구나! 어쩌면 우리 일족에서 천단사(天摶士)를 배출할지도 모르겠어.”

    “천단사가 무엇입니까?”

    “허어, 처음 들어보느냐? 천단사란 연단사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말하느니라. 영단에 하늘을 담을 수 있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지.”

    준혁이 하루 만에 연단을 성공한 이후부턴, 노인은 그전보다 더 세세하게 가르침을 내렸다.

    그 정도가 너무 과해, 같이 수업을 듣던 요린이 질투할 정도였다.

    “내 수장 어른께 아뢰어, 지원을 더 받아야겠다. 너는 요린이와 함께 수련에 힘쓰고 있거라.”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기초 연단술은 대부분 전수했다고 여긴 것인지, 노인은 개별적으로 수련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리고 노인이 떠나고 나자, 준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실습재료들은 한쪽을 치워버리고는 공간대에서 지유목을 꺼내 연단에 들어갔다.

    며칠 후.

    밖에서 가져온 지유목으로 만든 최하급 화목단을 손에 든 준혁은 긴장한 얼굴로 완성된 단약을 살폈다.

    지금껏 실습재료로 수많은 단약을 만들었지만, 그 어느 것도 실제로 수행을 올려주진 않았었다.

    제작과정과 수련 과정은 전부 실제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같았으나, 영단의 약효는 이 모든 것이 환영이라는걸 증명하듯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않았던 것.

    처음으로 진짜 화목단을 손에든 준혁은 기감으로 한참 동안 단약을 살펴보다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혹시 몰라 스물두 번이 아니라 서른여섯 번을 연화했다. 이 정도면 지기가 인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도, 문제 될 건 없겠지.’

    노인에게서 배움을 얻긴 했지만, 목족들이 먹는 영단이 인족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기에, 준혁은 영단 제작에 조심을 기했다.

    그랬기에 크게 걱정은 없었으나, 조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준혁의 입속으로 들어간 화목단은 혀에 닿자마자 스르륵 녹더니, 마치 물처럼 변해 몸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끼며, 영단의 기운을 빠르게 흡수하기 위해 준혁은 혈단법을 운용했다.

    그 순간, 하나의 기운처럼 느껴졌던 화목단의 기운이 다섯 갈래로 나뉘며 세분화됐고, 각각의 기운은 온몸을 돌아 단(丹) 인근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다섯 기운으로 나뉜 기운이 존재감을 드러내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있던 원영이 가부좌를 하고는 수결을 맺었다.

    어느새 원영에게서 금빛 실이 나타나 단 주위의 다섯 기운을 꿰뚫었고, 잠시 후엔 모든 기운이 원영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으음 하···.’

    원영이 소리 내 말을 하진 않았지만, 오행의 기운을 흡수하고 나더니 전율에 쌓인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덩달아 준혁도 무언가 차오르는 충만감에 몸을 살짝 떨었다.

    “사형? 괜찮아?”

    그런 준혁의 모습에 요린이 다가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걱정 마 사매. 별거 아니니깐.”

    다행히 영단은 연화의 과정이 많아서인지 원래 지유목에 함유된 기운에 비하면 아주 작은 기운만을 전해주었다.

    그랬기에 찰나의 순간에 흡수를 끝마친 준혁은 본래대로 돌아오며 다가오던 요린에게 손사래를 쳤다.

    ‘이 정도면 굳이 서른여섯 번이나 연화할 필요가 없겠어. 목족들이 먹는 대로 스물두 번에서 시작해 줄여나가도 충분해.’

    기운을 전부 흡수하고 난 준혁은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연화 과정이 줄어든다는 건, 영단을 만드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영단 자체의 효율이 올라간다는 뜻도 포함된 것.

    지유목 하나만으로도 화신기까지 수행을 올릴 수 있는 준비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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