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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02화 (102/408)
  • < 102화. 수련 (1) >

    새끼 백호를 영천수 호수에 풀어준 준혁은 곧장 대전 한쪽에 나 있는 통로로 향했다.

    “공자, 그깟 수행으론 관문에 도전할 자격조차 없소이다. 본 관에선 공자 같은···.”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 근처에 도착하자, 듬직하게 생긴 사내 환영이 나타나 손날을 내밀며 통행을 방해했지만, 준혁은 그를 무시하고 통로로 들어섰다.

    그때 환영이 조금 전과는 다른 어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공경과 존경, 그리고 따뜻함이 담겨있었다.

    “선사,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다섯 번째 관문부터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으니, 부디 현명한 판단 하시기를···.”

    어차피 환영이었기에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준혁은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환영을 쳐다보았다.

    사내 환영은 준혁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친우를 걱정한다는 듯 두 눈엔 따뜻한 감정이 맴돌고 있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준혁은 자신이 특정 행동을 해야 다음 말이 나오는 분기점인 걸 눈치채고는 가볍게 인사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환영에게서 아무 반응도 나오질 않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준혁이 몸을 돌려 통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준혁이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 안으로 사라져 버리자, 사내 환영은 흐릿해지며 모습을 감췄다.

    사라지기 직전, 한마디 말을 남긴 채.

    “천균, 그대를 믿네.”

    +++

    아무런 장식도 없는 좁은 통로.

    걸음을 더해 앞으로 나아가자 어둡던 통로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준혁은 거대한 비석을 마주할 수 있었다.

    비석엔 아무런 글도 없었고 아무 기운도 풍기질 않았다.

    ‘여길 지나가면 관문이 시작되는 건가?’

    잠시 후 비석을 지나치자, 산 아래 멀리서 보았던 거대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하나하나가 수십 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고, 넓이도 높이만큼 커다랬다.

    준혁은 기감을 쏘아 보냈지만, 이번에도 무언가에 튕겨 나와버리자, 더욱 조심하며 계단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행동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1관문이라 여겨지는 곳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곳저곳 이동하며 확인해봐도 환영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이곳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나 보구나.’

    괜한 걱정에 잔뜩 긴장했던 준혁은 쓰게 웃으며 땅을 박차 다음 계단으로 올라갔다.

    두 번째 계단 역시 한쪽에 거대한 비석이 있을 뿐, 아무런 기운도, 환영도 나타나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랐기에 준혁은 조심스럽게 하나하나를 살피며 연속으로 계단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

    정확히 100층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전부 지나온 준혁은 어느새 황폐해진 산 정상 공터에 도착해 있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계단을 아무 위험 없이 통과해 왔지만, 오히려 준혁의 표정은 잔뜩 어두웠다.

    ‘이곳이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 생각했거늘···. 아니란 말인가?’

    관문이라 일컫는 계단을 하나씩 도전하고, 도전에 실패했을 땐 건물 환영의 도움을 받아 수행을 올려 다시 도전하는 것.

    그래서 계단의 끝에 도달한다면, 밖으로 나가거나 혹은 하늘정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라 여겼었다.

    하지만 준혁의 눈앞에 보이는 건 대부분이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는 땅의 흔적뿐이었다.

    잠시 허망한 표정을 짓던 준혁은 폐허가 돼버린 산 정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의 예상은 틀렸지만, 어떤 단서라도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그때 준혁의 눈에 무너진 폐허 뒤편으로 작은 계단이 들어왔다.

    계단은 대략 2m 높이로 어딘가로 이어지다 뚝 끊어진 모습이었는데, 아무런 지지대 없이 하늘로 향해 있는 모습이 평범한 계단으로 보이진 않았다.

    가볍게 땅을 박차 계단 앞으로 이동한 준혁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이건?”

    마치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뜯겨 나간 계단 끝엔 월계관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관을 이루고 있는 풀잎들 사이로 구름 문양이 박혀있었다.

    ‘구름···.’

    이곳을 구름이 낳은 땅이라 부르던 것을 생각하며 준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고, 월계관은 아무런 저항 없이 준혁의 손으로 날아왔다.

    손에든 월계관을 기감으로 훑어본 후, 영기까지 흘려보낸 준혁은 그것이 평범한 법기라는 판단을 내렸다.

    “쓰임새를 알 수가 없구나. 분명 영기에 반응을 보이는데, 아무런 기능도 없다니.”

    하지만, 폐허가 돼버린 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물건이다 보니, 가볍게 지나치지 않고 법기를 구동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적용해보았다.

    한참을 월계관과 씨름하던 준혁은 결국 고개를 젓고 말았다.

    “이곳은 정말 무엇하나 쉬운 게 없구나.”

    짧게 혀를 찬 준혁은 법기를 공간대에 담고 산에서 내려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월계관의 원래 용도에 대해 떠올렸다.

    법기라는 것이 생김새완 별개로 영기에 반응해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던 일.

    “설마 법기가 아니라 진짜 관(冠)인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월계관을 꺼내 머리 위로 가져갔다.

    그 순간, 지금껏 아무 반응이 없던 월계관에서 미약한 기운이 흘러나와 자신을 덮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과 함께, 준혁은 자신의 등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밀어닥침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슈아악-

    하지만 갑작스럽게 다가온 기운은 준혁이 피하고 말고 할 정도로 수준이 아니었다.

    “천균, 네 이놈!! 이것이 몇 번째더냐! 관문을 정식으로 지나오지 않는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이번엔 절대 용서치 않겠다!”

    분노에 찬 노인의 외침에 반응했을 땐, 이미 깃털이 달린 씨앗 뭉치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적중당한 뒤였고, 동시에 준혁은 몸이 붕 뜨는듯함을 느끼고는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기도 전.

    쾅!

    눈앞이 흐려지며 벽 귀퉁이에 몸이 처박히는 걸 느꼈다.

    ‘벽?’

    +++

    쾅!

    통증과 함께 흐려졌던 시야가 돌아오자 준혁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산 정상이 아닌 좁은 방안으로 이동된 뒤였다.

    “이게 무슨···.”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나타났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고, 머리 위에는 빨간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결단기 초기 수행이었다.

    “사형! 언제까지 잘 거야?! 오늘부터 연단술에 입문하기로 돼 있었잖아!”

    갑자기 나타난 여인 때문에 준혁은 잠시 당황했으나, 그 여인 역시 환영이란 걸 파악하고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라야 했다.

    ‘잠깐?! 결단기 초기? 환영인데 수행이 읽힌다고?’

    여인은 준혁이 멍하니 있자, 성난 황소처럼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준혁의 팔목을 잡았다.

    “진짜! 이러다 또 혼날 거 몰라? 사형은 왜 항상 꼼수만 쓰려고 해? 어제도 몰래 하늘정원에 숨어 들어갔다가 혼났다며? 어휴! 정말. 아무튼 빨리 가자, 빨리!”

    여인은 준혁의 손목을 이끌며 방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갔다.

    방과 연결돼있던 기다란 복도를 지나자 널따란 대전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에 준혁은 진심으로 크게 놀라야만 했다.

    ‘이곳은···.’

    대전은 분명 건물에 처음 들어선 후 보았던 모습과 같았다. 한쪽에 제단과 단상이 놓여있는 것과 그 옆으로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까지. 심지어는 통로 앞에서 출입을 통제하던 듬직한 사내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대전 양옆으로 방이 붙어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방이 있던 자리에 복도가 있다는 것뿐.

    준혁이 놀라는 사이, 수려하게 생긴 미남자가 다가오며 준혁에게 말을 건넸다.

    “공자. 여전하시군요. 오늘도 요린님께 끌려가시는 겁니까?”

    ‘이자는···.’

    미남자는 준혁이 건물에 들어와 처음 보았던 환영이었다.

    준혁이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자, 미남자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준혁과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또 몰래 숨어들다 들키셨다면서요? 후흣,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정식으로 관문을 거쳐 왕족분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이죠. 잊으셨습니까?”

    어서 대답해 보란 듯 사내가 두 눈을 깜빡거리자, 준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계속 그러시는 겁니까? 공자 때문에 저 친구만 난처해지지 않습니까?”

    어느덧 사내의 시선이 준혁의 어깨 너머를 향하고 있자, 준혁 역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통로를 지키는 듬직한 사내가 무슨 일이냐는 듯, 의문에 찬 표정으로 준혁과 사내의 시선에 응답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 고지식한 친구를 구워삶았는지는 모르나, 또 한 번 몰래 하늘정원에 숨어든다면···. 아마 저 친구도 징계를 피할 순 없을 겁니다. 아시겠지요?”

    “명심하겠습니다.”

    준혁이 지체없이 대답하자, 사내는 만족한 듯 준혁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환영이 분명하거늘···. 정말 분간할 수가 없구나.’

    사내가 지나가자 요린이라 불린 여인이 준혁의 손목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아 진짜! 시간 없다니까!”

    결국 준혁은 또다시 여인에게 끌려가, 3번째 방이 있던 자리에 위치한 복도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은 후, ‘연단’이라 적힌 곳에 도착할 수 있었고, 준혁은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

    “허허, 이제 좀 알겠느냐? 그러니 우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럼 이제부턴 영천수와 지유목(地乳木)을 이용해 화목단(花目丹)을 제작하는 법을 알려주지. 두 번 말하기 귀찮으니 집중하도록 하거라.”

    “네! 스승님!”

    여인에게 끌려온 곳에서 마주한 것은 준혁이 3번째 들어섰던 방에서 본, 연단술을 가르치는 노인이었다.

    그의 말 일부는 처음 환영을 봤을 때와 동일했다. 다만, 짧게 영단에 대해 소개했던 처음과 달리, 이번엔 왜 이곳에 종족이 터를 잡았는지에 대한 이유와 영단의 쓰임새 등에 관한 자세한 얘길 들을 수 있었다.

    여인이 밝고 크게 대답하자, 노인은 아무 말 없는 준혁이 못마땅하다는 듯 한 번 째려보고는 영단 제작에 관한 것을 설명했다.

    “지유목은 말 그대로 땅에서 나오는 젖이라 생각하면 된다. 우리를 위해 하늘이 안배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 효능이 끝도 없이 많지. 하지만 그 기운이 원체 강하다 보니 바로 영단의 재료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가 말하는 방법으로···.”

    노인의 설명이 이어지자, 준혁은 백호가 혼자 놀고 있는 영천수 호수와 영목을 떠올렸다.

    ‘그 영목이 이들의 수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유목이었다니···.’

    +++

    꼬박 사흘을 연단 제작에 관한 이론을 배우는데 보냈고, 그 후엔 요린이라 불리는 여인과 다른 방으로 이동해 연단에 관한 기본 실습을 마쳤다.

    가장 기초라는 연단술을 배우는 데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형, 그럼 이제 밖으로 나가자. 남쪽에 위치한 흑미대지(黑米大地)에 자라는 지유목이 가장 부드러워서 우리가 연단 하기엔 제격일 거래. 내가 스승님께 따로 얻은 정보지. 헤헤 어때?”

    칭찬해 달라는 듯 몸을 배배 꼬는 여인을 보며 준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뚱딴지같은 말과 행동으로 상황에 변화를 주려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들은 환영은 분명했지만, 정해진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생명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준혁을 ‘천균’이라는 자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신분은 꽤 특별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공자라고 부르며 예를 지켜주었다.

    “잘했어. 그럼 나가보자. 확인해 봐야 할 것도 있고.”

    “응? 뭐가? 설마! 사형 또 밖에 몰래 나갔다 왔어?”

    여인이 눈썹을 치켜뜨며 성난 표정을 하자 준혁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려버렸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환영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있던 준혁으로선 건물 밖이 어떤 식으로 변해있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준혁이 파악한 이곳은 직경 10킬로도 되지 않는 장소.

    하지만 수업을 통해 들은 바로는 하늘정원이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대륙이라 불릴만한 지역 전체가 이들의 영토였다.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지유목 숲을 지나면 수많은 종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요족과 인족이라 불리는 자들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준혁은 건물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고, 그 뒤를 요린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수상해? 언제 나갔다 온 거야? 진짜 이럴 거야?”

    귀엽게 투덜거리는 여인에게 잠시 시선을 주던 준혁은 처음 들어섰던 건물 입구를 마주한 채, 잠시 긴장된 표정을 하다가 문을 나섰다.

    “같이 가 사형!”

    그리고 문을 나선 순간.

    자신을 덮고 있던 미약한 기운이 옅어짐을 느낀 준혁은 재빨리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머리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서둘러 뒤를 돌아보자, 자신을 따라오던 여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그 모습에 침음을 흘린 준혁은 다시 대전으로 들어갔고, 그곳은 텅 빈 대전과 양옆으로 붙어있는 방만을 가진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조금 전 보았던 미남자가 나타나며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십시오. 본 관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께선 어떤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해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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