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98화 (98/408)

# 98 < 목족의 여왕 (2) >

허공에 만들어진 진법에서 튀어나온 여인은 준혁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옮겨 사람 형상이 되어가고 있던 민들레 씨앗을 보고는 혀를 찼다.

“도와줄 거면 일찍 좀 나타나지. 그럼 내가 이 고생을 안 했을 거 아냐.”

말을 내뱉은 후, 여인이 허공 한점을 가리키며 손가락질했다.

그 순간, 허공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식물 줄기가 나타나더니, 대라멸진을 이루고 있던 9개의 금빛 기둥을 향해 쇄도했다.

기둥의 끝부분에 도착한 식물 줄기는 줄기에서 자라나 있는 가시에서 보랏빛 기운을 내뿜으며 기둥 위에서부터 돌돌 말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9개의 기둥의 3할 이상이 가시가 달린 식물에 감싸이자, 준혁은 원반과 이어져 있던 기운이 완전히 차단됨을 느꼈다.

동시에 대라멸진이 파앗- 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에도 허공에선 뇌전들이 무작위로 생성되며 여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정말 지긋지긋하네!”

대라멸진을 없애버린 여인은 주변에서 날아오는 뇌전들이 귀찮다는 듯 막아낸 후, 준혁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나저나 재미있어. 원영기 초기가 이 정도의 진법을 발동하다니. 앞으로 기대하지.”

손을 내리며 준혁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여인은 무슨 생각인지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여전히 공중에 남아있는 진법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인이 사라지고 나자, 하늘 곳곳에서 만들어지던 뇌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임무를 다한 것처럼.

한편, 여인이 사라진 순간, 민들레 씨앗은 온전한 사람 형태를 갖추더니 스르륵 변해 눈을 가늘게 뜬 사내로 바뀌었다.

그 짧은 찰나에 준혁은 맹렬하게 생각을 거듭했다.

‘혈둔술을 사용해도 힘들다. 대라멸진을 없애버린 여인은 둘째치고라도, 저자 역시 진법의 발동을 멈출 정도로 강자. 얼음 속에 갇힌 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어.’

몸 상태가 나쁜 건 배제하고라도, 혈둔술을 이용해 도망갈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다고 얌전히 잡혀줄 수는 없는 일.

준혁은 마지막까지 갖은 수단을 전부 써서라도 발악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손을 휘저어 근처에 떠 있던 귀원패를 회수하고는 시선을 호수 아래로 향했다.

‘대라멸진을 재발동하는 건 힘들어. 다른 원반과 달리 시전자의 영기 소모까지 엄청나다니, 그렇다면 어떻게?’

준혁은 빠르게 공간대에 저장돼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아직 사용처를 모르는 물건들과 사용처는 분명하지만, 그 능력이 기대에 닿지 않은 것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전부 부질없는 일이란 듯. 사내는 모습을 갖추자 준혁을 인식하고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 순간, 주변에 흩날리던 민들레 씨앗들이 자석에 달라붙는 쇠붙이처럼 준혁을 향해 밀려들었다.

준혁은 가만히 있지 않고, 허공을 박차며 몸을 회피했다.

대라멸진이 사라지며, 인지경으로 인해 다시 영력이 차오르고 있었던 것.

준혁의 반응에 완벽하게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 사내가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호하 수사가 당한 건 방심했다고 여겼거늘···. 아직 움직일 힘이 남아있다니, 자꾸 놀라게 하는군요.”

사내는 준혁의 몸놀림을 신기해하며 다시 손을 가볍게 휘저어 씨앗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장난은 여기까지. 시간이 없군요.”

그 순간, 지금까지 천천히 흩날리던 것과는 다르게 태풍이라도 타고 움직이는 듯 민들레 씨앗들이 세차게 움직였다.

준혁은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차 씨앗들을 피했지만, 이번엔 완벽하게 피하지 못하고 몸의 절반에 씨앗들이 다닥다닥 붙어버렸다.

그리고 준혁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 몸에 달라붙은 민들레 씨앗들이 푸르게 빛나자, 그 순간 준혁의 동공이 풀리더니 그대로 수직 낙하했다.

쿵!

얼음 위로 처박힌 준혁은 죽은 듯 미동도 없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준혁은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이겨내며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처음 본건 익숙한 여인의 등.

준혁이 깨어난 걸 느꼈는지 등을 지고 서 있던 수사가 고개를 돌리며 준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이엘이었다.

“최 수사. 정신이 들었어요?”

준혁은 빠르게 기감을 펼쳐 주변을 인식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다들 목족에게 당한 것 아니었습니까?”

“보시다시피.”

준혁의 질문에 제이엘이 씁쓸한 표정을 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고, 준혁도 재빠르게 그녀를 따라 주변 인물들과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그곳은 ‘구름이 낳은 땅’이 있는 분지 안이었다.

분지 안엔 수십의 시체들이 한쪽에 쌓여있었고, 결계통 아래엔 리차드와 왕웅, 그리고 제이엘만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인물들을 살핀 준혁은 이곳에 러시아 원영기인 세르게이를 제외한 원영기만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바로 제이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최 수사도 이제 합류하세요.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이 결계를 풀어낸다면 우릴 살려준다 약속했어요.”

말을 하며 한쪽을 눈짓하는 제이엘.

준혁은 그곳에 누가 있는지 이미 파악했기에 굳이 시선을 돌려 확인하지 않았다.

그곳엔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뜨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수사가 손끝에 민들레 씨앗 뭉치를 피어나게 만든 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준혁이 알기로 결계통은 힘이 약해지는 일정 기간만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마저도 10년을 주기로 나타난다 알고 있었다.

“며칠 남았습니까?”

준혁의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한 제이엘이 대답했다.

“19일이요.”

‘총 21일 동안 모습을 드러낸다 했으니···. 내가 꽤 오래 정신을 잃고 있었구나.’

준혁은 날짜를 세어보고는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정혈을 낭비하고 대라멸진을 사용하느라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다행이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수를 낼 수 있겠지.’

잠시 후, 제이엘을 따라 원영기 수사들 사이로 합류한 준혁은 그동안 그들이 실험해본 진법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곤 자신이 아는 진법 중 공간과 봉인에 관련된 정보를 전부 풀어 아낌없이 다른 수사들에게 제공했다.

“이건 봉인진과 관련된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선 별 쓸모가 없겠습니다.”

자신이 가진 진법에 대해 공유한 준혁은 다른 수사들이 알고 있는 다른 지식을 전달받았다.

그 후론 각자 머리를 싸매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후, 가장 자신 있는 방법을 사용해본 터라 더 좋은 방법이 나올 리는 만무했다.

다만 그렇다고 배 째라고 한다면 정말 그것으로 끝일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없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

5일 후.

분지에 모인 원영기 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종 방법을 제안했고,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그 방법에 관해 연구하고 시행해보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전원 실패.

최후의 수단으로 제이엘이 준비한 옥패를 이용해 네 명이 동시에 시도해보았지만, 결국은 그것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모두의 안색은 더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아 버렸다.

“이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만통방을 발동해보겠습니다. 모두 다른 방법을 찾아 봅시다.”

왕웅의 말은 당분간 결계를 해제하는데 힘을 쓰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이었다.

목족 수사를 의식한 건지, 다른 방법으로 결계를 해결해보자는 말처럼 들리긴 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뜻은 각자 도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

“그럼 저를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왕웅은 세명에게 경고하듯 말을 꺼내고는 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만통방은 한번 발동하면 수 시간, 혹은 수일 동안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기 때문에 자신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럼 저도 옥패의 힘을 유지할 방법을 생각해보겠어요.”

제이엘 역시 왕웅이 의도한 바를 바로 알아차렸는지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보호막을 만들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 리차드 마저도 동의한 듯 멀어지자, 준혁 역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네 사람이 결계통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지자, 지켜보던 목족 수사는 손바닥 위에 있던 민들레 뭉치를 후우~ 불어 버리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민들레 씨앗들은 하늘하늘 움직이며 멀리멀리 퍼져갔고, 마치 주위를 감시하듯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결계통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온 준혁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제 14일 남았다. 그때 그 여인의 수행을 생각하면 이들이 결계를 직접 풀지 않고 우리에게 맡기는 건 이유가 있을 터. 어쩌면 기간 안에 해결하지 못해도 죽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준혁은 잡혀 오기 전 허공에 공간 이동 진법을 만들어 나타났던 여인의 무력을 떠올리다가, 결계통과 눈을 감고 있는 목족 수사를 번갈아 확인했다.

아마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들은 14일 후 어떤 방법으로든 인질들에게 금제를 가한 후, 10년 후 다시 도전하게 할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모두를 잡아다가 어딘가에 가둬놓고 결계를 해결할 방법을 연구시킬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전부 준혁의 예상일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준혁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고뇌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다들 다시 한번 도주를 시도할 것 같은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자신을 제외한 전원은 멀리서 감시하는 목족 수사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뿐, 허공을 찢어 공간 도약을 해오는 여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아직까지 희망가득 도주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네 명이 힘을 합쳐도 저자를 따돌리는 건 힘들어, 게다가 그 여인이 또 나타난다면?’

준혁은 생각을 거듭하다 세차게 고갤 흔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결계통에 시선을 고정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곳을 여는 것밖에···. 내 예상대로 만약 목족이 이 결계에 아무런 간섭도 할 수 없다면···. 어쩌면 저곳만이 유일한 탈출구일 수 있어.’

사고를 이어가던 준혁은 공간대에서 녹색 육각형의 옥패를 꺼내 들었다. 목족 수사를 상대하며 펼쳤던 것들 중 유일하게 챙긴 귀원패.

준혁은 귀원패에 영기를 주입하며 전음을 사용했다.

‘귀 수사, 제 말 들리실 겁니다. 본체를 드러내지 말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잠시 후, 평소완 다르게 귀찮다는 기색 없이 긴장한 거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 그 여수사 때문입니까?

‘귀 수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저보다 수행이 높은 자가 펼쳐놓은 결계엔 적마의 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럼에도 강제로 적마의 힘을 사용해 고 수행 수사가 만든 결계를 통과하게 된다면 어찌 되는 겁니까?’

귀원패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침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수사, 설마 상공에 떠 있는 결계를 적마의 힘으로 통과하려는 겁니까? 흐음···. 진법이 만든 봉인진은 공간에 간섭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요? 그 말인즉, 수사께서 공간압력을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흐음···. 공간압력이라···.’

-적마의 힘이 동일 수사의 능력까지만 발휘한다는 건, 아마 공간압력까지 해소할 수 있는 한계를 말하는 걸 겁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수사보다 고위 수사가 만든 것을 통과할 땐 적마가 해소하지 못한 공간압력을 맨몸으로 버텨야 한다는 것과 같지요.

귀원패의 말에 준혁의 눈빛이 심각하게 변했다.

공간압력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공간 안으로 강제 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

모든 공간압력이 같진 않지만, 대부분의 공간압력은 원영기 수사 따위는 순식간에 압사시켜버릴 힘이었다.

준혁이 생각에 빠지며 말을 잃자, 귀원패가 다시 말을 걸었다.

-허나, 정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께서 제 얘기를 곡해해 들으시지 않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귀원패의 말에 준혁은 두 눈이 번뜩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저 결계를 통과할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흐음···. 수사께선 이미 강체공으로 신체 강도가 남들과는 다르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압력을 이겨내기가 힘들 겁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라면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저와 계약을 하겠···. 설마?’

-생각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식아로 저를 잡아먹게 한 후···. 제 능력을 사용하십시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