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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97화 (97/408)
  • # 97 < 목족의 여왕 (1) >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청명한 하늘.

    하늘 아래엔 나무가 우거진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우거진 숲의 상공엔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반듯하게 생긴 사내가 내심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숲 위를 가르고 있었다.

    반듯한 사내는 목족 고위 수사인 호하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준혁이었다.

    ‘온통 숲이구나, 여기선 절대 안 돼.’

    두 번 연속 혈둔술을 사용해 적을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준혁은 겨우 몇 호흡 만에 따라잡혔고, 결국 세 번 연속 혈둔술을 사용하고 말았다.

    세 번째 혈둔술을 사용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네 번째 둔술을 사용하려 생각했던 준혁은 몸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걸 느끼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만약 네 번이 아닌 다섯, 여섯, 열 번이 넘게 사용해도 적을 따돌릴 수 없다면?

    그렇다면 혈둔술을 멈추는 순간이 바로 생명이 다하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수행으로도 승리를 점할 수 없는 상대인데, 정혈을 낭비해 몸 상태가 나빠진 후엔 대적 자체가 절대 불가능한 것.

    그랬기에 세 번째 혈둔술을 사용하고 난 뒤엔 곧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준비하고는 적을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런 준혁을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리 이동해도 주변엔 온통 짙은 숲.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목족의 능력이 극대화 되는 곳이 숲속이었기에, 준혁은 절대 이곳에서만큼은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할 수 없다. 한 번만 더.’

    “이제 도망은 끝난 것이냐!!”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고함과 함께 존재감이 유형화되어 느껴지자, 준혁은 곧바로 입을 벌려 정혈을 내뱉었다.

    그 순간 핏방울이 화악- 퍼지며 준혁을 집어삼켰다.

    +++

    다시 한번 먼 거리를 도약한 준혁은 시야가 확보되자 곧바로 기감을 최대한 퍼트렸다.

    ‘저기다!’

    다행인지 이번엔 숲이 아닌 지형이 기감 안에 잡혔고, 준혁은 곧장 풍둔술을 사용해 빠르게 날아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거대한 호수였다.

    준혁은 기감으로 호수 안을 확인해 혹시 모를 위험 요소가 있나 파악하고는 곧장 호수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공간대에서 깃발 다섯 개를 꺼내 사방으로 던지며 수결을 맺고 다시 깃발 일곱 개를 꺼내 던지며 수결을 맺었다.

    곧이어 진법 원반 두 개를 꺼내 물속으로 쏘아 보낸 뒤 강력한 영기파동을 퍼트렸다.

    직후 식검을 꺼내 인지경을 삼키게 만든 후, 입을 벌려 하얀 알갱이 하나를 뱉어냈다.

    하얀 알갱이는 그동안 원영이 가지고 놀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달의 정기.

    준혁은 하얀 알갱이 위로 피 한 방울을 뱉어내고는 수결을 맺어 푸른 기운으로 감싼 뒤, 그것마저 물속으로 쏘아 보냈다.

    그리고는 여동생이 깨어나면 사용하려고 남겨두었던, 저급 수사들의 공간대에서 노획한 단약들을 전부 꺼내 입안에 쑤셔 넣었다.

    우그적- 우그적-

    그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볼이 빵빵하게 변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그때 허공 한점이 빛나며 목족 수사가 전광석화와 같이 호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날아오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호수면 위에 멈춰서자 주변에 수 미터 물보라가 치솟아 오르며 장관을 선보였다.

    “드디어 포기했나 보군? 좀 더 해보지 그래?”

    입가를 비틀며 비아냥거리던 목족 수사 호하는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준혁을 바라보다 주변을 쓰윽하고 훑었다.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크큭, 설마 상성을 고려해 여기까지 온 건가? 큭. 왜? 사막으로 도망가보지 그랬어?”

    상대의 태도에 준혁은 전신에 기운을 끌어올리면 바로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멍청한 건지 공부가 부족한 건지, 죽더라도 계속 도망쳤어야지? 안 그래? 이런 식으로 상성을 고려하는 건 같은 수행일 때나 생각하는 거지···.”

    말을 하려다 멈춘 호하는 갑자기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흉악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감히! 너 따위가 나를 상대해 보겠다고!!”

    팡!

    마지막에 고함을 내지르듯 분노한 호하는 말을 끝맺으며 허공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내지르는 그의 주먹엔 녹색의 기운만이 뭉쳐있을 뿐, 특별한 술법을 발동하진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를 무시하고 있구나!’

    상대는 수행차이에서 오는 자신감과 더불어, 자신에게 대적하려 하는 상대에게 수준 차이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강체공을 익힌 수사처럼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는 급히 귀원패를 꺼내 들며 수결을 맺었다.

    순간 준혁 전방에 반투명한 육각 타일이 무수히 나타나며 호하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콰앙!

    충돌음과 동시에 귀원패로 만든 보호막이 깨져나갔고, 준혁은 그 충격으로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하지만 애초에 상대와 거리를 두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준혁은 충격에 날아가면서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그 순간 준혁을 중심으로 수십 미터의 공간에 거대한 새장이 만들어졌다.

    새장은 만들어짐과 동시에 강렬한 화기를 내뿜더니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딴 조잡한 진법으로 나를 상대하려 했단 말이냐!!”

    자신과 준혁을 동시에 가둬버린 불타오르는 새장을 보더니 호하는 더욱더 기분이 상한 듯 모든 걸 무시한 채 준혁에게 쏘아졌다.

    그 순간 준혁은 적마도를 꺼내며 새장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수결을 더한 후 양손을 합장하며 크게 외쳤다.

    “강화!”

    준혁이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입으로 주술문을 외치자 불타오르던 새장이 두꺼워지며 안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하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주먹을 내질러 새장을 강타했다.

    콰앙! 쾅!

    그 모습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붉은 부적 수십 뭉치를 꺼내더니 새장 위로 던지면서 재차 수결을 맺었다.

    그동안 공간대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하급 부적인 화탄부.

    화탄부는 새장에 닿더니 화르륵 불타올랐고, 동시에 새장 안에 거대한 화염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수십 뭉치의 화탄부는 불덩이 비가 되어 새장 곳곳에서 호하를 향해 쏟아졌다.

    “나가면 바로 죽인다!!”

    준혁의 술법에 녹색 보호막을 만들어 불덩이 비를 막아 버린 호하는 눈에 진한 살기를 띠며 무언가를 중얼거린 후 손바닥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수 미터는 돼 보이는 잎사귀가 나타나더니 급속도로 부피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장은 잎사귀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지 커져가는 잎사귀의 크기에 맞춰 점점 팽팽하게 당겨졌다. 결국에는 탕-탕- 소리를 내며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에 상급 진법으로 상대를 가두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준혁은 불타오르는 새장으로 적의 기력이 조금이나마 훼손됐기를 바라며 급하게 수결을 맺은 후, 손가락 끝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조금씩 터져나가던 새장이 끈 떨어진 물체처럼 수직 낙하했고, 결국은 치이익- 소리를 내며 호수 아래로 빠져버렸다.

    정확히 새장이 절반쯤 물에 빠진 순간, 준혁은 수결을 바꾸며 영력 파동을 일으켰다.

    그에 반응해, 호수 아래에서 작은 진동이 발생했고, 호수 위로 파문이 번져나갔다.

    그 순간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엔 달무리가 생겨났다.

    동시에 준혁이 광신체령투선공을 운용하자 달빛이 내비치며 준혁의 몸속에 있던 월광지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 위로 은은한 달빛이 빛나는 순간.

    준혁이 손을 내밀며 주먹을 움켜쥐자.

    쩌저정-

    거대한 호수가 통째로 얼어버렸다.

    준혁이 미리 호수 아래로 보내놨던 달의 정기가 만월강하진의 달빛에 영향을 받아 수배 강렬해지더니, 주위 모든 걸 완벽하게 얼려버렸다.

    +++

    평범한 빙술이 아닌, 순수한 달의 정기가 매개체가 된 월광지력은 그저 얼음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를 완전히 얼려버리는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준혁으로선 만월강하진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계속해서 수행을 넘어서는 수준의 능력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

    비록 지금은 잠시나마 목족 수사를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이 순간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이란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준혁은 만월강하진과 같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원반을 발동시켰다.

    착착착-

    목족 수사가 월광지력으로 만든 얼음을 깨고 나오기 전, 빠르게 긴 수결을 마친 준혁이 한손 끝을 하늘로 향한 채, 반대 손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낮게 읊조렸다.

    “대라멸진.”

    이잉-

    그 순간 기묘한 이명이 주변을 울렸다.

    그동안 사용할 기회는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 능력을 발휘할지 몰랐기에 아껴두었던 진법 원반.

    가장 기초적인 대라멸진을 이미 익혔기에 어느 정도는 지레짐작해 성능을 유추해볼 순 있었지만, 함부로 사용하기는 가장 꺼려지는 물건이었었다.

    “죽이는 것까진 바라지 않으니, 도망갈 시간만 번다면 충분하다.”

    그것만 하더라도 목숨과 바꾸는 용도이니 충분히 잘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지잉-

    대라멸진은 발동과 동시에 원반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의 금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금테의 가장자리에서 빛기둥이 치솟아 올라갔는데, 그 수가 정확히 9개였다.

    9개의 금빛 기둥이 치솟아 오르다 일정 범위에서 멈춰서자, 준혁은 빠르게 수결을 맺어 얼음 속 목족 수사를 가리켰다.

    쿠웅-

    그 순간 대기가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허공에 ‘대(大)’라는 문자가 나타나더니, 급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금빛 문자는 순식간에 호수 면에 근접하더니 얼음덩어리들을 통과한 후, 급속도로 크기가 줄어들며 가만히 멈춰있는 목족 수사의 이마를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다시 한번 수결을 맺었고, 수결에 반응해 ‘라(羅)’라는 문자가 나타나더니, 다시금 목족 수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슈욱- 스르르-

    ‘라’가 목족 수사의 심장이 위치한 부위로 스며든 후, 다음으로는 ‘멸(滅)’ 자가 떨어져 내렸고, ‘멸’자는 목족 수사의 명치를 파고들며 사라졌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법을 발동시킬 ‘진(陳)’ 자만 내려보내면 되는 일.

    하지만 몇 호흡이 지날 동안 준혁은 다음 수결을 맺지 못하고, 힘겹게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준혁의 모습은 아무런 외부의 충격이 없었음에도,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있었고,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 상태였다.

    수결을 맺기 위해 가슴 앞에 모았던 손은 보기가 불쌍할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고, 몸속 영기가 바닥나버린 건지 허공에 떠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원반의 힘을 빌리는데도 이 정도라니.’

    식검과 하나돼 월등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지경의 도움이 있음에도 준혁은 영기 고갈로 인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청명에게 받아 익혔던 대라멸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

    준혁은 갖은 힘을 쏟아부으며 간신히 수결을 맺었다. 그 순간 미리 먹어두었던 영단의 기운들이 풀어지며 온몸에 작은 기운을 전달했다.

    그러자 시전자를 닮아간 듯 진법 위로 흐릿한 ‘진’자가 만들어지더니 아래로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때 진법의 발동을 끝낸 준혁의 눈앞으로 하얀 민들레 씨앗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곳에도 민들레가 있구···! 이건!’

    영기 고갈이라는 고비를 넘기며 힘겹게 진법을 발동했기 때문일까?

    준혁은 잠시나마 감성적이 되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채 깨닫기도 전에.

    눈앞에 날리던 민들레 씨앗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며 진법 속에서 하강하고 있는 ‘진’자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수백 수천 개의 민들레 씨앗이 뭉치더니 ‘진’자를 완벽하게 감싸버리고는 하강 속도를 늦춰버렸다.

    “이게 무슨!”

    준혁은 공간대에서 가장 기초적인 화탄부 하나를 꺼내 날려 보냈다.

    하지만 영기고갈 상태로 인해 동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느렸고, 영력을 발출하는 데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결국 엄청나게 모여든 민들레 씨앗은 하강하던 ‘진’자를 완벽하게 멈춰 세워버렸다.

    그 모습에 준혁은 대라멸진으로도 상대를 잡아둘 수 없음을 깨닫고는 정혈을 뱉어내려 했다.

    이미 영기고갈 상태이기에 일반적인 둔술은커녕 비행법기조차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상황.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정혈을 소비해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준혁이 다음 행동을 하기도 전.

    주변 대기가 변하며 온몸을 옥죄는 느낌과 함께, 이변이 일어났다.

    엄청나게 모여들고 있던 민들레 씨앗이 점점 더 규모가 커지더니, 어느새 사람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

    하지만 진짜 이변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하늘 한쪽에 엄청난 영기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화사한 색색의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꽃들은 엄청난 영기를 품고 있었는데, 꽃들에서 풍겨 나오는 영기의 압박은 평생 준혁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꽃들이 화관을 이루듯 둥글게 위치를 잡자,

    그 중심에서 오망성과 함께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생겨났고, 잠시 후, 그곳에서 가슴이 풍만한 여인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대기가 요동치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파지직 하는 마찰이 생겨나더니, 여인을 향해 미칠 듯이 쏘아져 나갔다.

    파지지직-

    여인은 허공에서 튀어나온 순간, 날아오는 뇌전들을 막아서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서 나오기 싫었는데, 아씨···. 그렇다고 저 멍청한 놈이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말이지. 정말 신경 쓰이게. 세상에 하급수사에게 당하는 머저리가 내 일족의 전사라니.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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