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 버뮤다 삼각비경 (2) >
끼룩끼룩-
구름 그늘 하나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
새하얀 털을 가진 갈매기 한 마리가 세차게 날갯짓하며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갈매기에게 허락된 공간이 아닌 듯, 앞으로 시원하게 날아가던 갈매기는 얼마 날지 못하고 공간에 잡아먹히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스팟-
아주 짧은 순간 갈라짐과 동시에 갈매기를 잡아먹은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노랑머리의 여인과 반듯하게 생긴 사내가 그 모습을 예의 주시하며, 갈매기가 갑자기 사라진 곳 근처로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이곳부터인가 봅니다.”
“경계를 넘는 순간, 무작위로 전송되니 긴장을 늦추시면 안 돼요.”
두 사람은 한국에서 출발해 버뮤다 삼각비경의 초입에 도착한 제이엘과 준혁이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삼각비경의 경계로 보이는 부분을 경계하듯 살짝 거리를 둔 제이엘이 공간대에서 옥간 하나와 옥패 하나를 준혁에게 건넸다.
“약속한 대로 정확히 석 달 뒤, 비경의 동북쪽에 자리한 ‘보이지 않는 숲’ 입구에서 만나요. 그리고 명심하세요. 절대 중앙에 위치한 목족의 대지엔 발을 들이면 안 된다는 걸.”
“많이 듣긴 했지만, 수사의 말투는 조금 다르군요. 혹시 경험담입니까?”
“...네. 10년 전 원령과(元靈果)를 구하기 위해 산맥을 넘었다가···.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쳤어요.”
준혁은 처음 듣는 소리였기에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설마, 그곳에서 원영기 후기라도 만났습니까?”
제이엘이 겨우 도망쳤다는 건 상대방이 최소한 원영기 후기라는 말, 어쩌면 그보다 상위급 수사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뇌둔술을 사용하는 마선의 능력까지 고려한다면, 어쩌면 완영기나 연형기에 오른 목족 수사일지도 몰랐다.
준혁의 질문에 제이엘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갤 흔들었다.
“모르겠어요. 우리와 똑같이 생긴 여인이었는데···. 수행을 파악할 새도 없었어요. 나중에 생각한 거지만 만약 절 죽이려고 했다면 아마 살아나오진 못했을 거예요.”
“흠···. 목족은 영수족만큼이나 인간들을 싫어한다던데···. 살려준 게 맞습니까?”
제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네. 그러니 절대 가까이 가지 마세요. 대지를 둘러싼 산맥 안으로만 가지 않으면 아마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아시겠죠?”
제이엘이 목소리에 힘을 줘 강조하자, 물건을 받아 공간대에 집어넣은 준혁이 고개를 끄덕여 답해주었다.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준혁의 대답에 살며시 웃음 지은 제이엘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짧게 인사하고는 스르르 미끄러지듯 자리를 이동했다.
“그럼 석 달 뒤에 봐요.”
그리고 말이 끝난 순간 제이엘의 몸이 파앗- 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비경 안으로 사라진 제이엘을 따라 준혁도 한걸음 옮겨 허공의 한 부분을 밟았고, 그와 동시에 파앗-하며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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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경험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세상이 반전되는 듯한 느낌에 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걸음 내딛는 것과 동시에 버뮤다 삼각비경 안으로 전송되어온 준혁은 모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사막에 도착해 있었다.
“무작위 장소 중. 하필···. 가장 먼 곳이라니.”
공간대에서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댄 준혁은 드넓은 비경 안 지도를 확인하고는 쓰게 웃음 짓고 말았다.
버뮤다 삼각비경은 거대한 삼각 형태의 대지였다. 축기기 수행으로 날아간다면 끝에서 끝에 이르기까지 몇 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넓은 지역.
그중 준혁이 무작위로 전송된 곳은 동남쪽 끝에 위치한 사막.
제이엘이 말한 기간 안에 약속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선 석 달이라는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질 만한 위치였다.
버뮤다 삼각비경은 눈꽃 비경과 마찬가지로 비경 내부의 지역이 전부 밝혀지진 않았다.
밝혀진 부분들만 해도 다른 비경과는 꽤 많은 점이 달랐는데, 가장 큰 차이는 주 서식 개체의 종류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영수족의 수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대신 목족(木族)이라 불리는 나무 괴물들과 괴수(怪獸)라고 불리는 지능이 떨어지는 짐승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었다.
목족들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비경 안에서 수행을 쌓아가는 존재였는데, 겉모습으론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과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고.
괴수는 동족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에게 공격적인 모습만 내보이는 존재였다.
“중앙을 관통하면 빠르긴 하겠지만···. 제이엘 수사가 신신당부했으니 외곽으로 돌아가야겠지.”
준혁은 비경에 들어서기 전 습득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장검 형태의 비행 법기를 꺼내 올라탔다.
푸슈숫-
그때 사막 모래가 들썩이더니 새빨간 외피를 가진 성인 남성 크기의 전갈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꼬리가 회초리처럼 변해 준혁을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어딜.”
준혁은 일찍이 기감으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볍게 손을 저었고. 전갈은 꼬리부터 몸통이 사분오열되며 바닥에 흩어졌다.
후드득-
전갈을 처치한 후, 바로 이동하려고 했던 준혁은, 기습공격을 해온 전갈을 한참 동안 살펴보다가 기감으로 내단이나 혹은 영기가 뭉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나 확인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전갈의 피 한 방울을 가져온 뒤 성분을 확인해보고는 혀를 차며 피를 날려버렸다.
“영수와 다르게 쓸 순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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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사막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간간이 제 주제를 모르고 덤벼드는 괴수들이 아니라면, 적막감에 잡아먹힐 정도로 주변엔 모래를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날아가던 준혁은 멀리 떨어진 곳 상공에 황금 궁전이 나타나자 날아가던 법기를 멈춰 세웠다.
“저게 제이엘 수사가 말한 그것이군.”
삼각비경에만 존재한다는 신비 장소.
삼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버뮤다 삼각비경에는 총 세 곳의 특수한 장소가 있었는데, 그 첫째가, 준혁과 제이엘이 향하고 있는 ‘구름이 낳은 땅’,
두 번째가 서북쪽, 목족의 대지와 이어진 산맥에 존재한다는 ‘하늘정원’,
그리고 마지막이 지금 준혁의 눈에 보이는 황금 궁전이었다.
황금 궁전 역시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한 장소 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가 애초에 발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보면 뚜렷하게 보이는 황금 궁전은 가까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만질 수 없는 환영이었다.
준혁은 잠시간 그런 황금 궁전을 바라보다 나아가던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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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기기 수행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약한 괴수들을 처리하며 날아가길 며칠.
끝없을 것 같던 사막이 끝나고 준혁을 맞이한 것은 주먹만 한 돌덩이가 섞인 폭풍이었다.
신기하게도 폭풍은 사막 끝에 정확히 걸쳐있었는데, 모래엔 일절 영향을 주지 않고 사막 바깥에서만 위력을 과시했다.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모래 지형을 따라 한참을 이동해도 폭풍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보아도 자연현상이라기보다는 진법이나 술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런 거대한 규모의 자연현상이 누군가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긴 했다.
“흠···. 그냥 지나가야겠군.”
제이엘의 말에 의하면 사막접경지의 폭풍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중 하나라고 했다.
그 주기가 일정하진 않았지만, 대략 10여 일 정도가 지나면 바람이 가라앉는다는 것.
하지만 날짜를 세어보던 준혁은 조금 피곤해지더라도 강행 돌파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총 이동 거리를 생각했을 때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여유 날짜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던 것.
잠시 후 준혁은 지도를 확인한 후 대략적인 방향을 가늠하고는 폭풍 속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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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잉-
폭풍 속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돌풍처럼 불어오는 바람 자체야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문제는 바람 속에 스며들어있는 기운.
흙의 기운과 바람의 기운이 뒤섞인 내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기혈에 영향을 주고 체력을 깎아 먹었다.
만약 강체공을 익히지 않은 수사였다면 폭풍 속에서 채 하루도 버틸 수 없었을지 몰랐다.
준혁은 광신체령투선공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고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지나 폭풍 내부기운의 영향으로 기혈에 뭉침 현상이 발생하면, 곧장 혈단법을 운용해 내부기운을 순환시켜버렸다.
그렇게 쉬지 않고 나아가던 준혁의 눈에 주변에 휘몰아치는 먼지바람으로 인해 흐려진 시야를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저건?”
움직이는 거로 보아 생명체가 분명했다. 두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는 학 형태의 조류였는데, 움직임을 제외하곤 그 어떤 기운도 느낄 수가 없었다.
“괴조?”
호기심이 동한 준혁은 그곳으로 이동해 보려다, 발걸음을 멈추고는 생각에 빠졌다.
만약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폭풍에 빠져든 괴수 종류라면 굳이 보아봐야 의미가 없었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폭풍 안에 들어온 괴수라면 그 역량이 평범하진 않을 터.
시간을 아끼기 위해 폭풍 돌파를 감행했는데, 굳이 다른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준혁은 아주 잠시 동안만 조류로 보이는 생명체를 주시하다가 시선을 거두고는 원래 나아가던 방향으로 계속해 나아갔다.
다만 폭풍 속 생명체가 이미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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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비경의 중심.
목족의 대지라 불리는 숲에서도 가장 안쪽엔 하얀 표면에 적갈색 돌기가 자라있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거대한 나무 주위로는 성인 손목만 한 넝쿨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넝쿨이 가리고 있는 그늘 아래엔 목족 인들의 삶의 터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심처에선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벽을 뚫고 나온 뿌리에 기댄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가려고?”
풍만한 여인 앞엔 눈매가 가늘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추하기 힘든 표정의 사내가 손끝에 잎사귀를 틔우며 마주하고 있었다.
여인과 사내는 겉모습만 보면 사람처럼 보였으나, 심장박동이나 혈색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야지. 인족 놈들이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하니 말이야.”
사내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여인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우리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선 인족 놈들이 비밀을 풀게 내버려 둬야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버러지 같은 그것들을···. 이미 전부 죽여버렸을 텐데.”
여인은 오래전부터 비경 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인족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손만 까딱해도 해결될 문제였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있는 상황.
여인이 이를 아드득거리다 한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가 내밀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위엔 붉은 광채를 내뿜는 구슬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이거 가져가. 절대 네 정체를 눈치채진 못할 테니까.”
사내는 여인에게서 구슬을 넘겨받더니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잠시 눈을 감고 구슬의 기운을 음미하다가, 발길을 옮기려는 찰나 고개를 돌려 여인의 눈을 직시했다.
“이번엔 성공할까?”
“모르지. 벌써 수백 년간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달리 선택권이 없잖아?”
“... 구름의 관을 얻고···. 하늘 병사를 대동한다면···. 정말 궁전을 열 수 있을까? 만약 고서의 내용이 틀렸다면?”
사내가 불안한 듯, 주저하며 말을 꺼내자. 여인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그럼 영원히 이 좁은 세상에서 살아야지. 하지만! 난 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 믿어. 그걸 남긴 분이 누군지는 알지?”
여인의 물음에 사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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