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78화 (78/408)
  • # 78 < 귀원패 >

    “그렇게 타고난 힘은 스스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수행을 올릴 수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정해진 힘은 영원불변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수행을 올릴 수 있는 자들과 계약을 맺어 그들과 하나 되는 겁니다. 완전 동화체가 된다면 어차피 계약자와 완벽한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

    거북이의 설명에 준혁은 잠시 삼청조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그 말은 수행을 올리기 위해 계약을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궁금한 것이 풀리셨습니까?”

    “그럼 수행을 올리다 계약이 해지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준혁의 질문에 거북이가 기분 좋은 미소로 고갤 끄덕였다.

    “자아알 질문하셨습니다. 그게 제가 바로 계약을 회피하는 이유입니다. 계약자가 죽는다면 우린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수행을 올리기 전으로 말이지요.”

    “......”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까? 아무리 고위 수사라 한들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럼 우린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이 물거품 된다 이 말입니다. 차라리 죽고 다시 태어난다면 억울하지도 않지. 모든 기억을 가진 채 처음으로 돌아오는 게 얼마나 고통인지 아십니까?”

    속 시원하다는 듯 말을 내뱉는 거북이의 말을 들으며 준혁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선계 지식을 꺼냈다.

    “제가 알기로 선계에 이르러 수행이 오르면 영원 불사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흥, 삼선의 경지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한들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지는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들이라고 다툼이 없겠습니까?”

    “아!”

    삼선의 경지는 칠기화신(七期化神)이라 불리는 연기, 축기, 결단, 원영, 완영, 연형, 화신기를 거쳐, 그다음 삼경(三境)이라 불리는 소천경, 위선경, 대천경을 넘은 다음 진정한 영생의 존재가 되는 진선(眞仙)을 의미했다.

    “그리고 진선경에 이르렀다 한들, 수사의 생각처럼 걱정 없이 수행만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제야 준혁은 귀원패의 요구가 이해되었다.

    ‘이자는 극도의 허무함에 빠져있구나.’

    준혁이 생각을 정리하며 말이 없자, 거북이가 귀원패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럼 궁금한 것이 풀렸으니 약속 지키리라 믿습니다.”

    “너무 성급하십니다. 마지막에 태어난 식아라는 마선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준혁의 물음에 허공에 떠 있던 귀원패에서 거북이가 머리만 쑤욱 하고 내밀었다.

    “식아? 저도 잘 모릅니다. 다른 마선들과 달리 그 아이는 아주 오래 뒤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본 적도 없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가지 인상 깊은 소식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한 호흡 쉰 거북이가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마선경(魔仙鏡)과 괴조(魁鳥)가 울부짖었다 하더군요. 불멸한 우리 마선 들을 영원히 잠재울 이가 태어났다고. 그 얘길 들은 천신라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인지괴와 공천귀를 보냈고, 마규보(魔規步)는 분광소를 보냈다 들었습니다.”

    마선 중 마지막에 태어났다는 식아가 식검이 분명했기에 준혁은 집중하며 거북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요?”

    “그 이후론 모릅니다. 그 소식을 들을 때가 마지막 계약자가 죽고, 더는 수행을 쌓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라서···. 눈과 귀를 닫고 끝을 알 수 없다는 바닷속에 몸을 던져버렸으니까요. 근데 어쩌다 하계로 떨어져 이 고생을 하는 건지 쯧.”

    말을 마친 거북이가 또다시 모습을 감추려 하자 준혁은 생각해두었던 다음 질문을 했다.

    “조금 전에 말한 인지괴, 공천귀, 분광소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으면 말해주십시오. 그들이 태어난 순서도 알고 있습니까?”

    “제 기억이 맞다면 인지괴가 91번째에 태어났고, 공천귀가 17번째, 분광소가 29번째 일ㄲ...수사? 이런 식으로 계속 저를 부르실 거라면 계약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저는 약속대로 우리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었으니 수사도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거북이의 말에 준혁은 바로 반박했다.

    “제게 궁금한걸 알려주신다 했지, 언제 정체를 밝히는 것만 한다고 하셨습니까?”

    하지만 준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 거북이는 귀원패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더니 말문을 걸어 잠갔다.

    그에 준혁은 계속해서 귀원패에 영기를 불어넣었고, 결국 마지못해 나타난다는 듯 거북이가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말에는 힘이 있거늘, 약속을 지키지 않으실 작정입니까?”

    “약속은 지킵니다. 다만 제 궁금증이 해소되질 않았습니다.”

    거북이는 준혁의 완강한 태도에 한숨을 내쉬더니,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딱 세 가지 질문에만 답변드리겠습니다. 그 이후엔 저를 내버려 둬 주십시오.”

    준혁은 잠시 고민해보다 좋은 생각이 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선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지괴, 공천귀, 분광소, 적마, 삼청조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 수사. 그건 다섯 가지 질문이지 않습니까?”

    “하나의 질문이지요. 한 번에 묻지 않았습니까?”

    “... 말장난을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넘어가 드리지요. 다만 저라고 모든 걸 알고 있진 않으니 아는 선에서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인지괴는 계약자가 다루는 힘을 늘려준다 들었습니다. 공천귀는 천신라와 더불어 공간에 관여할 수 있고, 분광소는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적마는 결계의 간섭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건 이 정도입니다. 직접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면 다른 마선들도 이 정도로 밖에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 물론, 마선경과 괴조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삼청조가 빠졌습니다만?”

    “아! 그놈은···. 말이 많습니다.”

    마지막 삼청조에 대해 말하며 거북이가 질겁한 얼굴로 고개를 젓자, 준혁은 바로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조금 전 말씀하신 바로는 분광소가 서열, 아니 태어난 순서가 29번째, 인지괴가 91번째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은 둘 사이에 그만큼 큰 격차가 있다는 말입니까? 분광소가 인지괴를 압도할 만큼?”

    거북이의 말을 들은 순간 준혁이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였다. 인지경은 수련 속도를 올려줄 뿐 아니라 전투 수행을 몇 배나 끌어올려 주는 그야말로 보물 중의 보물.

    거기에 비해 분광소는 수행이 높아질수록 증식되는 숫자만 늘어났지, 위력은 처음과 크게 변하질 않았다.

    그런 분광소가 인지경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역시 인족답습니다. 인족들은 왜 그렇게 서열, 순서를 매기는 걸 좋아하는지. 질문에 답해드리자면, 당연히 타고난 마선기의 힘은 분광소가 압도합니다. 다만 그들의 전투 능력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글쎄요? 직접 상대해보지 않고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늦게 태어나 타고난 마선기의 양이 적을수록 그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해주십시오.”

    거북이의 재촉에 준혁은 마지막 질문을 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갈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귀원패 안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준비 중인 거북이를 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수사는 혹시 이들이 어떤 현상을 겪고 있는지 아십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

    준혁의 앞 공간이 흔들리며 인지경이 튀어나왔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분광소와 적마도, 삼청조가 뒤따랐다.

    그리고 그걸 본 거북이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 말을 더듬었다.

    지금까지의 귀찮고 무기력한 모습은 한순간에 날아 가버린 뒤였다.

    “이, 이게 무슨! 인지괴, 적마, 삼청···. 분광소까지!! 말도 안 돼! 수사! 이들이 어째서 전부 수사와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까?”

    “질문은 제가 드렸지 않습니까?”

    “질문이 무엇, 아니 그보다, 이보게! 삼청조! 삼청조, 자네가 말해보게! 자네의 그 수다스러운 입으로 이 상황을 설명해 보란 말이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삼청조는 아무 말 없이 공중에 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다그치던 거북이는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고는 천천히 다가와 삼청조를 손으로 잡았다.

    준혁은 이들의 상태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으니, 혹시나 거북이가 무언가를 알아낼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삼청조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거북이는 복잡한 눈을 한 채 목각 새가 돼버린 삼청조를 한참 동안 어루만졌다.

    “하아···.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니 이건 숫제 죽은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혼잣말하던 거북이가 준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수사, 말씀해 주십시오. 이들이 어찌 이런 모습이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들을 다루는 것입니까?”

    “제가 물은 걸 다시 물으시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수사의 말을 듣자니···. 제가 이들을 동시에 다루는 게 신기한가 봅니다?”

    “계약도 없이 힘을 가져다 쓰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그 누구도 여러 명의 마선과 계약을 하진 않습니다.”

    “왜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허어, 참. 그 누가 있어 자신의 동화체를 공유하고 싶겠습니까? 결국 서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툴 것이 분명하고, 그러면 계약자의 몸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예전 적마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분명 내가 인지경과 분광소를 동시에 사용하는걸 납득하는 것 같았는데···.’

    “물론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자가 없진 않겠지만, 수사와 같이 이렇게 많은 마선 들과 함께하진 않습니다. 정녕 이들과 계약을 하신 겁니까?”

    삼청조에게서 대답을 듣길 포기했는지, 거북이는 새를 허공에 돌려보내고 다시 준혁과 마주한 채 섰다.

    준혁은 즉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우연히 함께하게 된 거지, 계약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어찌 이들을 다룬단 말입니까?”

    분명 조금 전 준혁이 마선 법보들을 꺼낼 때 공간대에서 꺼낸 것이 아닌, 허공에 바로 소환했었다.

    그걸 분명히 보았기에 거북이는 준혁이 그들과 계약이라도 맺은 것처럼 힘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준혁이 잠시간 말이 없자, 이번엔 거북이가 답답하다는 듯 그를 닦달했다.

    “수사. 전부 알려주십시오. 저는 수사가 궁금해한 것에 전부 답변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저는 수사 손에 있지 않습니까? 혹여나 남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 한들 걱정하실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어 이젠 거북이 준혁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준혁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제가 무언가를 숨기려는 게 아니라, 수사를 걱정해서 그런 것입니다.”

    “걱정이요?”

    말을 마친 준혁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그의 손바닥에서 식검이 쑤욱하고 솟아올랐다.

    이미 움직이지 못하게 제어하고 있었기에 다행히 거북이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진 않았지만, 작은 진동과 함께 전해지는 느낌은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 같았다.

    그리고 준혁이 걱정한 건 바로 거북이의 태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멸하는 고통 속에 죽음을 바랐던 거북이가 혹시나 미친 척하고 식검에게 달려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그것은 무엇입니까? 너무나 미약하지만···. 마선기가 느껴집니다.”

    “이것은 아마 수사께서 언급한 아이. 식아라 불리던 그 아이일 겁니다.”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북이의 동공이 확장됐다.

    “이, 이것이 마지막에 태어난 마선···. 식아?”

    말을 하던 거북이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진 얼굴로 다른 법보들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설마···. 저들이 저런 상태가 된 게···. 이 식아 때문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혹시 어찌 된 영문인지 알고 계십니까?”

    거북이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애초에 식아라는 아이에 대한 얘길 믿지 않았습니다. 어찌 마지막에 태어나 미비한 힘밖에 없는 녀석이 우리를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그건 하늘이 정한 법칙을 어기는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지요. 정녕 이 녀석이 다른 이들을 저리 만들었단 말입니까?”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습니다.”

    준혁의 긍정에 거북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제가 그 녀석을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어떤 힘으로 저들을 봉인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거북이가 다가온 만큼 준혁은 뒤로 물러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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