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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74화 (74/408)
  • # 74 < 여서령 (1) - 유료 시작입니다- >

    사쿠라는 청명이 건넨 옥간 중, 준혁이 격분했던 마지막 옥간을 이마에 가져갔다.

    [청룡가 근황]

    -영국 소더비 경매를 통해 나인플라워 입수(한국 명칭 구색초)

    -같은 날 청룡가 빙제소 습격당함

    (청룡가 직계 여서령이 범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음)

    -여서령이 관처럼 보이는 상자를 메고 가문 사람들에게 쫓기는 것으로 보아, 소문에 신빙성이 있다 사료됨.

    -여서령 도주 중, 심복이었던 화령에게 배신당함.

    -마지막 추격 장소는 중국 베이징 인근

    (이후 소식은 추적 불가)

    “흠. 설마 이 여서령이라는 여인이 최수사의 애인인가?”

    옥간은 내려놓고 혼잣말을 하던 사쿠라가 벌벌 떨고 있는 청명을 바라보았다.

    “너는 뭐 알고 있는 거 없나?”

    “뭐, 뭐를 말씀이십니까요?”

    “최 수사랑 여서령의 관계.”

    “최 수사라 하심은···. 설마 대인을 말씀하신 말씀이십니까요?”

    청명의 표정이 펴질 줄 모르자 사쿠라가 혀를 차고는 말했다.

    “겁먹지 말고, 똑바로 좀 말해봐. 그래서 알아 몰라?”

    “죄, 죄송합니다요 모, 모릅니다요.”

    “흐음. 그래.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고.”

    쾅!

    사쿠라는 청명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둔광을 일으키며 준혁이 사라진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그제야 청명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허어억, 그 미친ㄴ, 아니 그 미친 분이라니.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청명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 자신처럼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있는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같이 갈 거지?”

    수하들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

    섬광을 뿌리며 날아가는 준혁의 속도는 어마무시했다.

    처음 비경에 들어섰을 때 1주일 걸려 이동한 거리가, 단 이틀로 줄어버린 것.

    비경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하니, 운이 좋게도 틈이 열려있는 중이었다.

    준혁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발을 내디뎠고, 주위가 반전되는 느낌과 함께 어느새 비경 밖, 요테이산 정상이었다.

    비경 밖으로 나오자마자 준혁은 다시 풍둔술을 펼치며 곧장 하늘을 가르려 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어 바로 이행하지 못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

    준혁을 가로막고 섰던 사내는 축기기 중기였는데, 단번에 준혁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얼굴엔 친절함이 가득했다.

    “불편하시더라도 협조 부탁드립니다. 수사뿐 아니라 비경을 오고 가는 모든 분이 조사를 받,”

    말을 하던 사내는 이내 뚝 멈추더니, 점점 동공이 확장됐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최준혁이다!!”

    툭- 떼구르르

    그리고 준혁의 이름을 부르짖는 게 그가 이승에 남긴 유언이었다.

    사내의 외침이 헛되진 않았는지, 단번에 주위의 이목을 끌어왔고, 순식간에 수사들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중엔 청룡가의 결단기 호법과 진법가 가심악도 있었고, 설악산 가라온의 제자들인 축기기 수사들도 있었다.

    그들을 제외하고도 몇몇 인물들이 더 있었는데, 대다수는 축기기 초기나 중기였다. 개중에는 머리카락과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도 존재했다.

    준혁은 자신을 둘러싼 이들을 무심한 눈으로 한번 훑고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 없는 살육을 하고 싶지 않으니 전부 물러나십시오. 단 청룡가의 호법. 당신은 빼고.”

    준혁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이가 똑똑히 알아들었다.

    “드디어 잡았구나! 네놈 때문에 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낭비했는지 아느냐! 목숨은 살려 가져가겠지만, 팔다리는 잘라내야 성이 차겠다!”

    청룡가 결단기 수사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축기기 수사들이 주변으로 퍼지며 준혁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준혁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재차 경고했다.

    “다시 한번 말하겠소. 내 말이 끝날 때까지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나를 공격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일 테니, 당장이라도 물러나십시오.”

    준혁은 한시라도 빨리 여서령에게 가야 했기에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몇 호흡을 쉰 후 이어 말했다.

    “나를 매정하다 탓하지 마시오. 다들.”

    말이 끝난 순간, 머리 위로 인지경을 불러내며 빛기둥을 내렸다. 동시에 양손을 좌우로 펼치며 손을 지휘하듯 크게 휘저었다.

    “저것이 가주께서 말한!! 모두 공격하라!”

    청룡가 호법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평범하게 생긴 장도를 꺼내 들어 영기를 주입했다. 그리고는 검 면에 손가락을 대며 수결을 맺더니 장도를 멀리 떨어져 있는 준혁을 향해 휘둘렀다.

    그 순간 장도에서 푸른 빛덩이 같은 것이 폭사 되듯 쏘아져 나가 준혁에게 향했다.

    하지만 푸른 빛덩이가 채 준혁에게 닿기도 전.

    스걱- 스걱-

    툭툭툭-

    준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비산한 단검들이 축기기 수사들을 스쳐 지나갔고, 그 자리엔 여지없이 하나의 목이 떨어졌다.

    청룡가 호법은 그 모습을 목도하고 놀란 마음에 휘두르던 장도의 영기를 회수하며 재빠르게 방어 법기를 꺼냈다.

    하지만 방어 법기를 발동하기도 전.

    따끔하는 느낌과 함께 시선이 모로 넘어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파앗-

    청룡가 호법과 축기기 수사들이 단 한 수만에 떼거리로 죽어 나가자 가심악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컥.”

    하지만 이십여 미터도 오르기 전. 목에 강렬한 충격을 받으며 온몸이 구속되고 탈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곧이어 손발에 쇠고랑처럼 생긴 구속 법기가 채워지더니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철퍼덕-

    가심악을 제외한 청룡가 수사 전부를 죽여버린 준혁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다른 소속의 축기기 수사들과 외국인 수사 쪽을 향해 슬쩍 눈길만 준 후. 바닥에 쓰러져있는 가심악 앞에 내려섰다.

    “오랜만입니다. 수사.”

    “저, 정녕 그때 그자가 맞단 말이오?”

    가심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자 준혁은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공간대에서 정신부 한 장을 꺼내며 자신의 말만 이어갔다.

    “수사께선 정신부의 효력을 높이는 진법을 펼칠 수 있으시지요? 우연인지 저 역시 그 술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잘 배웠나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준혁이 말을 하는 도중 공간대에서 깃발 세 개가 빠져나와 가심악을 중심으로 삼 방위를 점했다.

    깃발이 꽂히자 수결을 맺어 진법을 활성화한 준혁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심악의 이마에 정신부를 가져다 댔다.

    “나는 당신을 살려주었소!!”

    하지만 정신부가 발동하기 전 가심악이 급하게 외친 소리에 준혁이 잠시 손을 내렸다.

    그런 준혁의 행동에 살아날 희망이 있다고 여긴 가심악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수사가 여공자에게 고문당하고 있을 때!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이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수사를 잡는 것도, 여공자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여동수 그자의 행태가 맘에 들지 않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소이다!”

    “그게 날 살려준 거다?”

    준혁이 가라앉은 눈으로 ‘어디 한 번 더 말해봐라’ 하는 표정을 하자, 가심악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을 제압하라는 명령에도 일부러 허공으로만 법기를 발동했고, 공간을 뛰어넘는 팔찌가 발동할 때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소이다! 이 정도면 나를 살려주실 수 있지 않으시오!”

    가심악의 말에 준혁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의 말대로 그 당시 결단기 수사였던 가심악이 마음만 먹었다면, 애초에 법보들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법기로 허공을 격타 했을 때도, 첫 공격엔 일부러 빗맞히고, 두 번째 공격 역시 그때 당시 자신의 체력을 고려한다면 위력을 거의 없앤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준혁의 눈빛이 흔들린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 팔찌가 무엇인지 알고 말하는 겁니까?”

    “파, 팔찌의 모습을 한 마선(魔仙)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공천귀라 했소. 너무 허황된 소리라 그저 웃고 지나쳐버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어디서 얻은 겁니까?”

    “......만통방이오. 왕웅 수사와 친분이 있어서 한번 사용해 본 적이 있소이다.”

    “흠···.”

    준혁은 공간대 속에 고이 모셔둔 귀원패를 떠올리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손을 저어 가심악에게 채워둔 구속 법기를 해제했다.

    “살려는 줄 테니 거짓 없이 말하시오. 마지막으로 접한 여서령의 행선지가 어딥니까?”

    “... 동생분을 서령이가 가져갔다는 걸 아셨구려···. 내가 들은 건 천산을 향했다는 것뿐이오.”

    “천산?”

    “신장 위구르에 위치한 천산 말이오. 더 정확한 걸 알고 싶다면 청룡가 본가로 가야 할 겁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가심악을 일별하고는 땅을 박차며 하늘로 솟구쳤다. 떠나기 전 한마디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숨을 귀히 여긴다면 앞으로 청룡가엔 발을 들이지 마시오.”

    목소리만 남긴 준혁이 점이 되어 사라지자 가심악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허망한 눈빛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찌 10년 만에···. 말이 된단 말인가···.”

    그리고 잠시 후엔 더 놀라야 했다.

    “어느새···.”

    사방에 흩어져 있어야 할 청룡가 수사들의 공간대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줄 햇살이 내비치는 오후.

    그와 대조적으로 얼굴에 똥 씹은 표정이 역력한 사내가 문을 나서며 욕설을 내뱉었다.

    “썅! 되는 일이 없어. 그게 왜 내 책임이야? 어?”

    사내가 짜증을 내자 옆에 서 있던 왜소한 체격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게 어디 공자님 잘못이겠습니까? 평소 서령 아가씨를 너무 풀어준 대공자 때문이지요.”

    “내 말이! 왜 형님 때문에 생긴 문제를 가지고 내 탓을 하냐고!”

    욕설을 내뱉은 사내의 얼굴이 펴질 줄 모르자, 왜소한 사내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나저나···. 여 공자님. 그날 계산 못 한 걸 빨리해주라며 연락이 오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뭐!! 이것들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나? 당장 가자 깡그리 죽여버릴 테니까.”

    얼굴이 시뻘게진 여동수가 앞장서자, 그의 오른팔인 여방만이 급하게 뒤를 쫓았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는 표정과 다르게 여방만은 속으로 욕을 내뱉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또 문제를 일으키려 하구나. 하아. 그날 이후로 점점 개망나니가 되어가네. 휴우···.’

    항상 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여동현에 비한다면 여동수의 성질이 좋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랬기에 언제나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말이 많이 거론됐었다.

    하지만 대공자인 여동현에 비한다면 여동수의 일 처리는 깔끔했고, 실행력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10년까지만 그랬다.

    10년 전 가문에 도둑이 들고난 후, 여동수는 부상을 당해 앓아누웠고, 그 후엔 성격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안 좋은 쪽으로.

    이번에 빙제소가 털린 일만 해도 그랬다.

    일손이 부족해졌던 청룡가에선 빙제소를 지키던 결단기 호법을 외부로 돌렸고, 여동수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하지만 여동수는 그런 하찮은 일을 배정받게 된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임무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매일 밤 술집을 배회했다.

    그러던 그 날. 수백 년 빚은 선주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연기기 기녀들에게 푹 빠져있던 밤,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진짜 아가씨도 미친 건가? 왜 그런 짓을?’

    여서령은 방비가 허술해진 빙제소를 털었고, 관 하나를 훔쳐 달아났다.

    그리고 그 사건을 여공천 가주가 알게 되며 청룡가는 발칵 뒤집혔다.

    그 일로 여동수는 완전히 낙인찍히게 되었고, 가주에게 여서령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았던 여동현 역시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오늘 또 사고 치면 진짜 난리 날 텐데. 자중하라고 몇 번이나···. 어휴. 지금이라도 줄을 바꿔 타야 하나?’

    여동수의 뒤를 쭐레쭐레 따라가던 여방만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어야만 했다.

    ‘근데 누굴? 대공자도 눈총을 받고 있고, 둘째···. 저놈은 글러 먹은 것 같고, 셋째 공자는 여전히 두문불출하고, 아가씨는···. 어휴···. 진짜 개판이네! 개판.’

    그렇게 자신의 어둑한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여방만은 멀리 보이는 구름 사이로 무언가가 반짝이는 걸 보았다.

    “응? 저게 뭐지?”

    “무엇이 말이냐?”

    여방만의 혼잣말에 고개를 돌린 여동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섬광처럼 하늘을 가르고 있는 걸 유심히 바라보던 여동수는 깜짝 놀라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대단하구나. 설마 원영기 수사인가? 혹시 도율님?”

    그때 여동수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구름 사이를 날아가던 섬광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미칠듯한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뭐, 뭐지? 설마 우리에게 오는 건가?”

    섬광 빛이 점점 다가옴을 느낀 여동수는 뒤로 주춤 물러나며 몸을 떨었다.

    원영기로 의심되는 수사는 어찌나 빠른지 눈 한번 깜빡일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가까워졌다.

    잠시 후, 가만히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여동수가 움직이려는 찰나.

    “커억!”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상대에게 목이 잡히고 말았다.

    “이런 우연이 있나. 그리운 얼굴을 이곳에서 봅니다. 여공자.”

    목이 잡힌 여동수는 동공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며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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