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71화 (71/408)
  • # 71 < 산들바람 >

    “이게 무슨 짓이오!!”

    “쿨럭!”

    자신의 배를 뚫은 채 대로하는 노란 눈 수사의 팔을 움켜잡은 산들바람은 살짝 고개를 돌려 힘겹게 말을 꺼냈다.

    “큰둥아, 빨리···.”

    찰라지간 멈춰선 준혁은 수많은 번뇌에 빠졌다.

    사실 준혁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노란 눈 수사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그의 공격에 적절하게 반응하려 했었다.

    상대는 준혁을 결단기 초기로 보고 있었기에 손속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고, 그 공격은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던 것.

    오히려 옆면에서 파고드는 공격을 막아서며 그 반동을 이용해 입구를 통과해 버릴 작정이었다.

    동굴을 통과해 밖으로만 갈 수 있다면 무리를 하더라도 도망갈 수 있다는 판단.

    하지만 눈앞에서 자신을 희생해 공격을 막은 산들바람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 냉철하고 침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동안 수도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인면수심의 일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주마등이라도 되는 듯, 청룡가에서 고문실에 끌려간 일로 시작해서 설악산의 차경수의 일, 연구회의 일까지.

    ‘사람들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짐승 같은 일을 서슴지 않았거늘. 왜?’

    왜 산들바람이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지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에게 5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리고 노란 눈 수사의 양팔을 꽉 잡은 채 신호를 보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짧은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공격은 허수, 몸으로 후기 수사를 잡고 있을 셈이었어.’

    애초에 뢰비라는 원영기 초기 수사는 염두에도 없었고, 노란 눈 수사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

    그녀가 몸을 날려 준혁을 구한 것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한 것이 아닌, 처음부터 그럴 의도로 상황을 만들었던 것.

    마치 주위 시간은 멈춘 듯했고, 준혁의 사고는 한없이 깊어졌다. 찰나지간에 주위 인물들의 표정을 살폈다.

    바람꽃의 표정엔 경악이 담겨있었지만, 동생의 죽음을 예견하는 비통함은 없었다.

    ‘다행히 관통상이 위험한 정도는 아닌 건가?’

    그리고 사고가 깨지며, 현실로 돌아온 순간.

    준혁은 처음으로 가식이 섞인 존대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꺼냈다.

    “산들 수사. 잊지 않겠습니다.”

    쾅!

    동시에 땅을 박차며 풍둔술을 발동시켜 하나의 바람이 되어 신비경의 입구인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준혁이 도망가자, 노란 눈 수사는 처음으로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며 이를 악다문 소리를 내었다.

    “수사,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저자는 우리 아홉 종족의 일원도 아닌 것을.”

    “쿨럭!”

    살기 어린 눈빛에 산들바람은 대답 대신 핏물을 한 움큼 쏟아낼 뿐이었다.

    “산들아!!”

    어느새 다가온 바람꽃은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뜬 채 소릴 질렀다.

    “수사!! 당장 손 빼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분노하는 바람꽃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던 노란 눈 수사의 입이 열렸다.

    “제가 아니라 여기 수사가 잡고 있는 것입니다. 강제로 손을 뺀다면 내부가 터져나갈 것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대답에 놀란 바람꽃이 황급하게 동생을 불렀다.

    “산들아! 왜?!”

    하지만 대답을 해야 할 산들바람은 눈이 풀려가며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하게 의식을 잃고 나서야 팔을 잡고 있던 힘을 풀어주었다.

    +++

    동굴 끝에 다다른 준혁은, 몸이 부유하는 느낌과 함께 지상의 세 봉우리 중 한 봉우리 위로 이동됐다.

    지체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며 새끼 백호를 품 안에 넣었다. 동시에 인지경을 꺼내 발동시키고는 풍둔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전방으로 쏘아졌다.

    백호족의 몸으로도 이젠 공법과 법기류를 원활하게 사용할 순 있었지만, 아무래도 인간 본연의 몸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

    슈앙-

    고속으로 날아가며 맞바람을 맞을 법도 하건만, 오히려 준혁은 바람을 타고 더 빨리 움직였다.

    그것이 풍둔술의 묘리.

    한참을 날아가던 준혁은 산들바람의 처연한 표정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녀가 계속 잡아두고 있나 보구나.’

    원영기 후기 수사라면 곧장 자신을 쫓아왔을 법도 하건만, 추적의 기미는 없었다.

    그렇게 방해 없이 날아가길 삼일.

    단 1초의 쉼도 없이 날아온 준혁은 조그마한 호수를 발견하고는 기감으로 내부를 확인한 후,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호수는 대략 10여 미터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호수 바닥까지 순식간에 도착한 준혁은 예전 동해에서 했던 것처럼 바닥을 파고 깊숙이 들어가 방음진을 겹겹이 설치하고 환영진으로 입구까지 막았다.

    동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파고들어 왔기에, 호수밖에서 기감으로만 수색해서는 들킬 일이 없게 만들었다.

    +++

    산들바람이 원영기 후기 수사를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끝은 있을 터.

    준혁은 혹시 모를 원영기 수사들의 수색을 염려해 기척을 완벽하게 지운 후 바람꽃의 정혈을 흡수해 없애버렸다.

    그리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심상 수련에만 몰입했다.

    천년수의 힘을 받아와 강체공을 연마하긴 했지만, 급하게 사용했을 뿐, 기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관찰하지는 못했던 것.

    거기에 더해 삼청조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했지만, 혹시나 예상하지 못한 영기파동이 생겨날까 봐, 심상 수련만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 후.

    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품속에서 새근거리고 있던 새끼 백호를 꺼내 내려놓고는 이마를 콕 찍었다.

    준혁의 행동에 잠에서 깬 백호가 하품하며 준혁을 올려보았다.

    “여기 있으면 곧 오마. 밖으로 나가지 말고 기다리거라.”

    새끼 백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혁은 진법 밖으로 이동해 호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방향을 파악한 후, 돌아왔던 길을 다시 날아갔다.

    +++

    칼을 거꾸로 세운 것처럼 가파른 절벽 위.

    거대한 나무 밑동 위에 앉아있는 산들바람에게 다가간 바람꽃은 조심스럽게 그녀 곁에 앉았다.

    한참을 말없이 산들바람의 시선을 따라 멀리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당분간 설토족과의 전쟁은 중지하기로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

    “천년화를 인족이 훔쳐 갔대. 그래서 설토족에 다음 원영기 수사가 나올 때까진 공격을 멈춰주라는 부탁이야.”

    “누가? 그 사안족(蛇眼族) 수사?”

    산들바람이 궁금하다는 듯 시선을 맞추자 바람꽃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에 설토족에서 원영기 수사가 나왔다면, 신목을 누가 차지하든 상관을 안 했을 거라면서.”

    “...우리가 지들 부하야?”

    “이번에 설토족 영토에서 삼청조를 몰래 차지하려 했던 걸 생각하면 많이 봐준 거지.”

    “다른 건?”

    동생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바람꽃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대대로 물려오던 영기를 흡수하는 법기 기억나지? 그것도 주기로 했어.”

    “그건 아홉 종족의 보물이잖아!”

    “설토족도 그걸 주고 그의 도움을 받았었나 봐. 우린 대가로 용각(龍角)을 받기로 했어. 너와 나 둘이 쓸 수 있게 각각 하나씩.”

    “아무리 용각이 귀하다고 해도 그 보물과 비교 하는···. 언니, 혹시 나 때문이야?”

    타 종족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했던 일. 더군다나 아홉 종족의 원영기끼리는 서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묵계를 어기게 만들어버릴 뻔한 사건.

    만약 정말 산들바람이 죽어버렸다면, 큰 문제가 될뻔한 일 때문에 바람꽃은 사안족의 원영기 후기 수사에게 밑지고 들어가는 입장이었다.

    아홉 종족의 심판대에 동생을 세운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대를 이어 내려오던 종족의 보물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바람꽃이 그의 일방적인 부탁을 큰 부담 없이 들어줬던 것은, 영원히 넘기는 것이 아닌 500년이라는 기한을 정했기 때문.

    그건 설토족이나 다른 부족도 마찬가지였기에 물건을 넘겨주었다.

    ‘아무리 보물이 중요해도, 네가 더 소중해.’

    바람꽃은 말없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청조를 놓쳤으니 이제 비경 밖으로 나갈 방법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다른 종족에게 밀리지 않게 힘을 키워야 해. 수련 열심히 할 거지?”

    언니가 말을 돌렸지만, 그것이 자신의 질문에 대한 긍정이란 것을 알았기에 산들바람은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힘없이 말했다.

    “응···. 알겠어.”

    그때, 처소를 향해 발길을 돌리던 바람꽃이 멈칫하고는 고개를 돌려 동생을 바라보았다.

    “근데, 산들아. 왜 그런 거야?”

    치료하는 동안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얘길 꺼내자, 산들바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큰둥이한테···. 미안해서.”

    동생이 힘겹게 말을 꺼내자 바람꽃은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살짝 안아주었다.

    “그건 어쩔 수가 없었잖아. 우리 종족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는데. 혹시 그 녀석을 좋아하게 된 거야?”

    “응? 아니···. 근데. 이상하게 큰둥이한테는 좋은 냄새가 나.”

    “좋은 냄새?”

    “응. 말로 설명할 수 없는데···. 가까이 있으면 편안해져. 마치 엄마의 품처럼···. 그런 큰둥이를 그냥 죽게 둘 수가 없었어.”

    큰둥이와 삼청조가 하나 된다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 그때까진 그나마 종족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안족 수사가 나타난 순간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서게 된 것.

    복잡한 얼굴을 한 동생을 한 번 더 꽉 안아준 바람꽃, 그녀의 행동에 산들바람은 아련하면서도 그리운 얼굴을 한 채 언니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그때 바람꽃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텅 빈 절벽 위 허공을 향해 기운을 쏘아 보냈다.

    “누구야!!”

    팡-

    하지만 바람꽃의 기운이 훑고 간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 언니?”

    “이상하다. 분명 뭔가 있었는데.”

    산들바람은 기감을 퍼트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언니의 태도에 ‘진짠가?’ 하는 얼굴로 절벽 쪽으로 걸어가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고 두 자매는 가볍게 혀를 차고 말았다.

    “내가 예민했나 봐.”

    “응. 언니 들어가자. 나 수련 열심히 할게.”

    “지금은 말고. 완치된 것 같아도, 더 쉬어야 해.”

    “응.”

    +++

    바람꽃의 기운이 훑고 간 절벽 허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 위치.

    준혁은 백호둔영으로 안개 바람처럼 변해 절벽 중간에 바짝 붙어있었다.

    산들바람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몰래 숨어들어온 준혁은 두 자매가 나눈 얘기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에 흔들리는 산들바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 살짝 기운이 흐트러졌고, 그것 때문에 바람꽃에게 들켜버리고 만 것.

    ‘냄새라···.’

    준혁은 팔뚝을 코앞으로 가져와 킁킁거렸다. 모든 생명체마다 풍기는 영기의 기운이 달랐기에 그걸 말하는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삼청조가 비경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준혁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비경 안 영수가 비경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바로 인간과 종속의 인을 맺거나 알과 같은 온전한 생명체가 되기 전일 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나 인간이 비경을 쉽게 넘나드는 것과 달리 영수족은 비경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비경을 오갈 수 있는 공간의 틈에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것.

    만약 영수족이 비경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면, 어쩌면 500년 전 격변의 날 인간들은 깡그리 죽거나 영수족의 노예가 됐을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수많은 학자들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비경에 보호장치를 해놨다고 여겼다.

    ‘산들 수사, 잘 지내십시오.’

    준혁은 두 자매가 거처 안으로 들어가자 절벽을 가볍게 박차며 천천히 부락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와보길 잘했구나. 그냥 돌아갔다면 심마가 됐을 수도 있었으니.’

    처음 동굴에서 나와 도망쳤을 때, 바로 내경을 빠져나가 중경으로 넘어갈까도 생각했던 준혁.

    하지만 산들바람이 배가 관통당하며 피 흘리던 모습이 뇌리에 남아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원영기끼리는 죽이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다고는 하나, 만약이라는 상황이 있었기에.

    직접 두 눈으로 산들바람의 안전을 확인해야만 했다.

    +++

    안개 바람이 되어 부락을 빠져나온 준혁은 백호둔영을 해제하고 풍둔술을 사용해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채 한 시간도 날지 못하고 멈추어 선 채, 멀리 떨어진 설토족의 영토를 시선에 담았다.

    ‘흠···. 사쿠라.’

    청룡가의 부탁을 받아 자신을 잡기 위해 나섰다는 건 알지만, 실제 만남에서 얻은 작은 호의 때문인지 그녀가 밉진 않았다.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고 설토족 영토에 들어가 구해야 할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준혁이 고민하고 있는 건 한가지.

    ‘그녀가 저기서 죽는다면···. 귀원패는 구할 수 없게 되는 건가?’

    삼청조가 식검에게 먹혀버린 이상, 이제 백팔마선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볼 수 있는 건 귀원패뿐이었다.

    만통방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예상일뿐 실제로 만통방에 백팔마선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는지는 불분명한 일.

    지금 준혁은 극도로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수행을 쌓았지만, 그에 비해 아는 지식이 너무나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식검을 비롯한 백팔마선 법보.

    ‘흠, 어찌해야 하는가.’

    사쿠라를 구해 귀원패를 얻어 백팔마선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게 내경을 벗어난 뒤, 천년화를 흡수해 원영기에 이를 것인가.

    원영기에 오른 후 다시 돌아오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일.

    그때까지 사쿠라가 살아있진 않을 테니, 그때 가서 귀원패를 구하려고 하다간 영수 부락을 완전히 뒤집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귀원패가 다른 부족에게 흘러간다면 일은 더 어렵게 변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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