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70화 (70/408)

# 70 < 삼청조 (3) >

바람꽃은 준혁에게 술법을 걸려던 삼청조가 갑작스레 사라져 버리자 놀란 얼굴로 빠르게 다가왔다.

풀잎에 구속된 준혁의 몸을 더듬거리다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준혁은 여전히 동요 없이, 오히려 무슨 말이냐는 듯 목소리에 한숨을 섞었다.

“바람꽃님, 전 지금 영력도 묶여있습니다. 이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새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망간 것 아닙니까?”

말을 하며 산들바람이 서 있는 신비경의 입구 쪽으로 눈짓했다.

바람꽃도 그에 깨달은 것이 있는지, 동생에게 소리쳤다.

“산들아! 완전히 막아버려!”

“응! 언니!”

바람꽃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산들바람의 등 뒤로 냉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입구 전체를 틀어막았다. 동시에 입구 주위로 얼음 알갱이들이 떠오르며 주변을 경계했다.

산들바람이 입구를 철통같이 막자, 바람꽃은 입김을 분 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퍼져나오며 공동을 휘감기 시작했다.

아마 기감을 유형화 수준까지 끌어올려 숨은 삼청조를 찾으려는 것.

준혁도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딱히 신기하거나 걱정이 들진 않았다.

다만 기감을 유형화시키는 건 절대 지양해야 할 일 중 하나.

기감 자체의 민감도는 엄청나게 올라가지만, 그건 마치 기감이 닿는 모든 범위 안의 생명체에게 ‘나 지금 너를 조사하고 있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준혁은 그런 바람꽃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쳐다보다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식검에 의지를 집어넣어 보자, 다른 백팔마선 법보들처럼 삼청조의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이름만 부르면 어디선가 짹짹거리며 나타날 게 분명했다.

‘하아, 이놈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려 했건만.’

준혁은 삼청조가 식검에 잡아먹혔다는 걸 확실히 느끼면서 한편으론 내심 놀라고 있었다.

‘내 수행이 올랐기 때문인가? 흡수하는 속도가 예전과 비교가 되질 않아.’

예전 적마를 흡수했을 땐, 눈에 보이게 식검 안으로 흡수돼 사라졌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순식간에 잡아먹힌 것.

마치 준혁의 수행이 올라간 만큼, 식검의 수행과 능력이 비례해 성장한 것 같았다.

그때 눈을 감고 공동을 조사하던 바람꽃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산들아 피해!!”

콰아앙!

외침과 동시에 신비경 입구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산들바람이 만들어놓은 얼음 결계가 깨져나가며 그녀 역시 충격과 함께 튕겨 나왔다.

다행히 빠르게 전신을 보호한 덕분에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폭발음과 함께 일었던 먼지가 가라앉자, 신비경 입구엔 어느새 대여섯 명의 인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을 확인한 바람꽃이 전신의 기운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뢰비!!”

산들바람과 결단기 수사들도 어느새 그녀의 등 뒤로 이동한 상태였다.

“바람꽃. 남의 땅에서 이런 앙큼한 짓을 벌이다니.”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바람꽃의 질문에 뢰비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네 족인들 단속 좀 해야겠더군. 누군지는 모르나 우리 족인 하나에게 미혼술을 걸어 이곳을 알려주었다.”

“거짓말!!”

“믿기 싫으면 그만. 허면 어찌 내가 이곳을 알았을까? 미혼술이 걸린 족인이 말해주더군, 이곳에서 네가 삼청조를 잡으려고 한다고, 다만 위치를 알 수 없으니 먼저 가서 이동하는 걸 은밀히 감시하라고 말이야. 게다가 삼청조를 잡기 위해선 인족이 필요하다는 정보까지.”

시선을 옮기니 뢰비 뒤엔 인족 여인이 몸이 구속당한 채,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서 있었다.

사실 설토족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건 준혁이었다.

적대관계인 두 종족이 서로 견제한다면, 자신이 도망갈 틈은 물론이고, 좀 더 여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계산.

다만 준혁이 생각지도 못한 건 사쿠라였다.

준혁이 인족 제물에 대한 정보까지 넘긴 건, 인족을 데려오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양자 간의 틈에 끼게 된다 해도, 살아있는 제물이라는 위치 때문에 자신을 해하지 못 하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우리 족인 중에 그런 자는 없어!”

“그래! 이 비열한 놈아!”

산들바람 역시 분노한 듯 언니를 따라 소릴 질렀다.

뢰비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지 어깨를 으쓱하고는 옆에 서 있던 노란 눈의 수사를 향해 눈짓했다.

“바람꽃, 예전에도 본 적 있지? 인사하지?.”

“신목을 빼앗아간 도적놈.”

바람꽃이 이 갈리는 소리를 내자 뢰비가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해 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지? 수천 년간 뺏기고 뺏는 과정이 반복되었을 뿐, 애초에 신목에 주인이 없거늘. 그나저나 삼청조는 어딨지?”

뢰비의 질문에 바람꽃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런 건 없어. 너희들이 속은 거야.”

“그 말을 믿으라고? 그럼 뭣 하러 이곳까지 전력을 끌고 왔을까?”

“......”

“빨리 내놓아라. 세상을 잇는다는 전설의 새, 삼청조를 말이야.”

‘세상을 이어?’

뢰비의 말에 준혁은 식검에게 먹힌 삼청조의 능력을 떠올렸다. 자신이 파악한 바로는 삼청조의 능력은 장거리 통신이었다.

장거리 통신이 멀리 떨어진 자들끼리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에, 세상을 잇는다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뢰비나 바람꽃 반응을 보면 분명 그건 아니었다.

“놓쳤어···.”

“뭐? 농담하나? 삼청조는 전투 능력이 전혀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걸 놓친다고?”

“...... 그래. 갑자기 사라졌어.”

바람꽃의 말에 뢰비가 피식 웃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래, 말로 해선 안 되는 것이지.”

뢰비의 반응에 그 옆 노란 눈 수사까지 기운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태세를 갖추는 모습과는 다르게 뢰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뢰비 수사, 묵계(默契)에 따라 죽이시는 건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저도 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수사. 다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 자매의 입을 열 수 없으니까 그렇지요. 진짜 삼청조라면···.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전설을 알지 않으십니까?”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노란 눈 수사가 강한 기운을 내뿜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바람꽃과 산들바람, 그리고 양측의 결단기 수사들도 동시에 기운을 방출했다.

그때 준혁이 바람꽃을 불렀다.

“수사. 이걸 풀어주십시오.”

“......”

“삼청조가 도망간 이상 제가 제물로 바쳐질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적호족의 편에 서서 저들과 싸워야지요. 나머지는 모든 일이 정리되고 다시 얘기를 나누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건.”

“언니! 큰둥이 말이 맞아! 우리가 열세라고!”

준혁의 요청에 바람꽃이 머뭇거리자, 산들바람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준혁을 구속하던 풀잎들을 제거해버렸다.

그리고는 준혁에게 새끼 백호를 건네주었다.

“큰둥아, 나랑 언니는 저쪽 원영기를 상대해야 해서 위험해. 잠깐 흰둥이를 맡아줘.”

준혁은 산들바람과 시선을 맞추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끼 백호를 등위에 태웠다.

그때 뇌리로 전해지듯 산들바람의 목소리가 직접 들렸다. 영기에 소리를 담아 보내는 전음이었다.

-큰둥아. 저기 노란 눈 보이지? 저놈은 언니보다 강해. 예전에 언니랑 나랑 함께해도 이기지 못했어.

등을 돌려 걸어가는 산들바람에게서 전음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질 테지만···. 종족의 미래를 위해 원영기 수사는 절대 죽이지 못해. 오래도록 모든 부족끼리 이어져 온 약속이거든. 게다가 다른 족인들도 대가만 준다면 살려줄지도 몰라. 예전처럼. 하지만 너랑 흰둥이는 절대 살려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깐 싸움이 시작된 후 내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도망쳐. 동굴 끝까지 가면 이곳을 나갈 수 있어. 그리고···. 그리고 미안해. 정말 미안.

말이 끝난 산들바람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깨가 가늘게 떨고 있는 게 심한 감정동요를 보이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산들···.’

애초에 전투가 시작된 후 기회를 틈타 도망가려던 준혁은 산들바람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동요는 이내 고민으로 이어졌다.

‘신호를 보낸다는 말은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말···. 괜찮을까?’

기회를 틈타 준혁 혼자 도주하는 것과 산들바람의 도움을 받아 도망가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다른 원영기와 전투 도중 준혁이 도망갈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선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일.

준혁은 산들바람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발을 움직였다. 그때. 전방에서 시작한 강렬한 음기가 공동 전체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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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비의 음한기(陰寒氣)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그의 영력이 공동을 덮은 순간 전신이 얼어붙은 느낌과 함께 음습한 무언가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광신체령투선공을 사용한다면 이깟 음습한 한기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지금 준혁의 입장에서 그걸 사용한다는 건 자신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과 마찬가지.

백호 바람을 불러내 몸을 보호하며 이를 악물고 음습한 기운에 반항했다.

뢰비의 첫 공격이 신호였는지, 노란 눈 수사는 바람꽃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뢰비와 산들바람이 맞붙었다.

동시에 그들을 따라온 각각 세 명의 결단기 수사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양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준혁과 사쿠라뿐이었다.

다만 둘의 차이는 준혁은 전투에 끼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었고, 사쿠라는 온몸이 구속돼 끼어들 수 없다는 게 달랐다.

산들바람을 말릴 틈도 없이 전투가 시작되자 준혁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갤 저었다.

‘그래. 어차피 저들은 나를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왔다. 그녀가 나를 위하려 하는 건···. 죄책감 때문이겠지.’

물론 다른 감정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을 테지만,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죄책감이 가장 크게 작용해 그녀를 움직였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녀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탈출하는 게 그녀를 돕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영수족이라고 심마(心魔)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주게 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준혁이 한쪽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이 전투는 꽤 격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근접 전투를 즐기는 영수족들 답게 공방이 순식간에 쌓여갔고, 한두 명씩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산들바람의 예상대로 바람꽃은 연신 밀려나며 방어를 하는 데만 급급했다.

더군다나 사방이 막혀있는 공동이다 보니 움직임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힘과 속도, 영력 모든 게 부족한 바람꽃은 결국 노란 눈 수사에게 붙잡혀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수사, 패배를 인정하시지요. 더 이상 손은 쓰기 싫으니.”

“그래. 내가 졌어.”

바람꽃이 패배를 인정하고 붙잡히자 상황은 순식간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적호족 결단기 수사들은 반항할 생각을 잃었는지 전부 물러나며 방어만을 고수했고, 산들바람 역시 언니의 너무 빠른 패배에 충격을 받았는지 호각을 이루던 균형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준혁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두 부족의 역량 차이가 이토록 심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었다.

산들바람이 노란 눈 수사의 강함에 대해 얘길 했지만, 원영 중기에 오른 바람꽃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패배한다는 전개는 준혁의 계획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원영기 중기의 바람꽃이 손쉽게 당했다면, 당연히 상대방은 그보다 윗줄.

어떻게든 원영기 초기까진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중기를 넘어 후기일지도 모르는 자를 상대로는 자신이 없었다.

준혁은 빠르게 상황을 살피며 조금씩 입구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느덧 산들바람과 뢰비를 제외하곤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산들이 억지로 버티고 있구나.’

모든 상황이 종료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산들바람은 악착같이 뢰비를 몰아붙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따금 준혁이 있는 곳을 신경 쓰는 거로 보아, 전투 전 한 약속을 지키려고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볼 셈인 것 같았다.

그때 노란 눈 수사의 목소리가 공동에 울렸다.

“수사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합니다. 오늘 우리의 목적은 애초에 삼청조. 정말 당신들이 숨기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다면, 다른 족인들도 전부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

“산들아, 그만해.”

바람꽃은 동생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불안한 목소리로 산들바람을 불렀다.

그때, 산들바람의 입속에서 붉은 털 뭉치가 빠져나오더니, 수많은 침처럼 변하며 사방으로 폭사해 시야를 가렸다.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 차가운 한기가 솟아나 전방의 뢰비를 강타했다.

“지금이야!!”

천천히 입구로 움직이던 준혁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 그녀가 막대한 영력을 사용하려 한다는 낌새를 느낌과 동시에 곧바로 풍둔술을 시전해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바람이 훼엥 하고 불고 난 뒤, 모습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혁이 입구에 채 다다르기도 전. 어느새 그 앞엔 노란 눈 수사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의 손이 뱀처럼 움직이더니 준혁의 목덜미를 꿰뚫기 직전이었다.

“어딜 감히.”

푸욱-

“안돼!!”

“안돼!!!”

결국 노란 눈 수사의 손은 배를 뚫고 지나갔다.

어느새 나타나 준혁의 앞을 막은 산들바람의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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