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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68화 (68/408)

# 68 < 삼청조 (1) >

허공으로 솟구친 준혁은 광신체령투선공을 멈추며 수결을 맺어 풍둔술을 시전했다.

수결이 끝남과 동시에 준혁 주위의 공기 질이 변하며 살랑이는 바람이 회오리치듯 주변을 맴돌았고.

팡-

준혁은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섬광과도 같은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온다는 걸 느낀 준혁은 궤도를 살짝 틀며 동시에 기감을 퍼트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원래 준혁은 천년화가 만개하기 직전, 적호족의 모습으로 변한 후 천년화를 훔쳐 달아날 계획이었다.

결단기 수사들쯤이야 쉽게 따돌릴 수 있다 판단했고, 원영기 수사들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바로 근접 전투가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풍둔술과 함께 혈둔술까지 사용해 최대한 거리를 두며 도망치다가 일부러 존재감만을 남긴 채 적호족의 부락으로 숨어 들어가는 게 계획이었다.

원영기 수사가 쫓아온다 해도 부락 안으로 숨어들면 끝. 그들이 난장을 피우기 전에 두 자매가 나타날 터였고, 그럼 상황은 종료였다.

그사이 준혁이 움막으로 돌아와 백호족의 모습으로 변한다면 누구에게도 의심받을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설토족과 적호족의 원영기 간에 제대로 된 결전이 성사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될 거였으면, 300년 전 이미 어느 한쪽은 멸족했을 터. 영수족은 전쟁으로 서로의 피를 흘리게 하지만, 무언가 지키는 선이 있는 건 틀림없다고 준혁은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다면, 설토족의 원영기는 결국 의심만을 가득 안은 채 아무 성과 없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쿠라가 나타나고 계획이 전부 틀어져 버렸다.

그녀로 인해 인간의 모습으로 급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고, 아주 작은 차이겠지만 설토족의 원영기들이 일이 터졌다는 걸 더 빠르게 알아차려 버린 것.

그렇다고 이렇게 인족의 모습으로 도망치다가 적호족으로 변해 그들의 부락으로 도망가는 건 말이 안 됐다.

빠르게 날아가던 준혁은 결국 혈둔술을 펼치려던 건 그만두고, 방향을 틀어 적호족의 부락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바람을 가르며 도망치길 한참.

결국 준혁은 뒤에서 날아오는 강력한 구체를 막기 위해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이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막는 게 먼저다. 그 후에 돌아가자.’

사실 준혁이 멈추어 선 건 설토족 원영기 수사의 공격 때문이 아닌 설토족의 영토와 꽤 멀리 떨어져 다른 원영기가 간섭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였다.

아무리 인지경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순 없었으니까.

“이 벌레 같은 인족놈!!”

준혁이 멈춰서자, 뒤를 쫓던 설토족 수사 뢰비는 날아오던 자세 그대로 주먹을 교차하며 내질렀다.

순간, 거대한 영기 기둥이 양쪽에서 소환되며 준혁을 압살할 듯이 쏘아져 왔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상대방의 모습에 준혁은 적마도의 힘으로 급하게 자리를 피하고는 즉시 인지경을 꺼냈다.

인지경은 머리 위로 이동해 빛기둥을 내렸고 동시에 준혁이 손을 휘두르자 손끝 공간이 갈라지며 분광소가 쏘아져 나갔다.

분광소는 반 호흡도 지나지 않아 서른 자루 넘게 증식하더니 비바람이 치듯 뢰비에게 쏘아져 나갔다.

“설마 원영기! 아니 이게 무슨.”

뢰비는 상대방의 기운이 갑작스레 증폭하기 시작해 어느새 자신만큼이나 수행이 올라가는 모습에 질겁하고는 공격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났다.

수십 개로 늘어나 쏘아져 오는 단검은 그리 위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입김을 내뱉어 보호막을 형성한 채 멈춰 섰다.

그리곤 차분한 눈으로 준혁을 살피고는 이내 상황을 깨달았다.

준혁의 영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양의 증가와는 상관없이 질적인 수준은 크게 변동이 없었던 것.

“이놈 무구의 힘을 빌려 영력을 전달받고 있구나!”

말을 함과 동시에 어느새 뢰비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천년화는 물론이고 그것마저 빼앗아주마!”

“능력이 되시면 그러시든지요.”

준혁은 뢰비가 한발 물러나며 멈춘 순간, 수결을 맺어 쏘아져 나가던 분광소에 회전을 걸었다.

그리곤 입을 벌려 전방에 파동을 퍼트렸다.

“크아아아앙!!”

준혁에게서 사자후가 터진 순간 그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은 투명한 파동이 주위를 물결치듯 휩쓸고 지나갔고.

뢰비는 방심하고 있던 찰나, 순간 움찔하며 몸이 살짝 떨었다.

그 순간 보호막을 이루던 영기가 출렁거리듯 흔들렸고,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힘을 응축한 분광소들이 보호막을 뚫어내며 뢰비의 몸을 두드렸다.

푹- 푹-

뢰비의 몸을 파고든 분광소들은 공격에 성공하자마자 원래 존재가 없었다는 듯 사라져버렸고, 동시에 허공에서 또 다른 분광소들이 증식되어 나타나더니 연달아 휘몰아쳤다.

“크아악!!”

뢰비는 공격을 허용 당한 순간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그의 피부 위로 하얀 털들이 수북하니 올라와 몸을 보호했다.

결국 새롭게 증식한 단검들은 재공격에 성공하지 못한 채 털들에 가로막혀 힘을 잃고 말았다.

“상처 입은 게 얼마 만인지···. 절대 살려주지 않겠다.”

이를 갈며 살기가 가득한 눈을 한 뢰비의 말에 준혁이 가볍게 응수했다.

“그럼 살려주실 생각이셨습니까?”

“이놈!!!”

공격을 허용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준혁의 태도 때문인지. 뢰비는 분기탱천해 허공을 박차며 쏘아져 나갔다.

하얀 털로 뒤덮인 뢰비의 몸은 어느새 반투명한 기운이 서려 있었고, 그것은 지독한 음기를 띄고 있었다.

준혁은 산들바람에게서 들었던 설토족의 능력을 떠올리며 분광소를 회수하고 광신체령투선공을 운용했다.

‘저것이 시체에서 힘을 얻는다는 그건가 보군.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젠 소용없다.’

순간 준혁의 몸에서 에일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오며 피부위로 은은한 달빛이 비쳤다.

그 모습에 흉흉한 기운을 한 채 달려들던 뢰비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월광지력(月光之力)!! 설마 벌써 천년화를 먹, 아니 그럴 순 없다. 절대 그렇게 쉽게 얻을 힘이 아니거늘!”

“쉽게 얻은 건 아니지요. 죽을 뻔했으니까.”

준혁은 상대방이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고는 빠르게 허공을 박차며 달려들어 갔다.

자고로 사기가 떨어지거나 무언가에 위축된다면, 그건 근접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것.

이유가 무엇이든, 눈앞의 설토족 수사는 광신체령투선공으로 인해 몸에서 발생한 기운을 보고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젠 승리하는 건 반드시 자신이라 믿었다.

“어디 한번 붙어 보시지요!”

어느새 준혁의 양팔에 월광이 맺히며 눈 부신 빛을 뿜기 시작했고, 무엇이든 깨부술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런 준혁의 도발에 상대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 같았다.

준혁이 움직이자 상대방도 움직였다.

반대로.

팡-

뢰비는 준혁이 달려든 순간, 허공을 박차더니 지금껏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섬광처럼 쏘아져 달아나 버렸다.

준혁은 순간 ‘다른 노림수인가?’ 생각하다가, 빠르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말 도주했다는 걸 깨달았다.

“왜? 설마 이것···. 달의 힘 때문에?”

아무리 준혁이 승부에 자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뢰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준혁은 여전히 결단기 상태.

아무리 영기의 총량이 늘었다 한들 결단기는 결단기임은 틀림없었다.

양과 질은 엄연히 다른 것.

거기에 300년간 지켜오며 바라던 천년화가 준혁의 손에 있음에도 그냥 도주했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흠···. 좋게 생각하자.”

이제 바람꽃을 따라 특수 임무를 처리하러 가야 하는 처지에서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니 준혁은 기분 좋게 뢰비를 보내줄 수 있었다.

쫓아간다고 해봐야 또 다른 원영기에게 합공당할 가능성만 있었기에, 애초에 추격할 의지조차도 없었다.

+++

설토족 수사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준혁은 광신체령투선공을 가라앉혔다.

“결단기급 강체공법을 운용할 수 있게 된 건 좋긴 한데···.”

광신체령투선공에는 한 가지 단점이 존재했다. 근접 전투에 적합한 강체공의 특징을 보자면 단점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었지만, 준혁에겐 단점같이 느껴졌다.

“기운을 전혀 감출 수가 없으니···.”

평소 영기를 사용하지 않을 땐 완벽하게 기척을 감출 수 있었고, 다른 공법을 운용하거나 술법을 사용한다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수행의 강약을 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신체령투선공은 공법이 운용되는 순간 전신으로 달의 기운이 흘러나와, 수행이 완벽하게 드러나 버렸다.

아직 미숙해서인지 공법특징인지는 조금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당장은 기운을 감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 준혁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상관없으려나.”

+++

적호족의 영토 방향으로 한참을 날아간 준혁은 수결을 맺어 적호족으로 변신했다.

그 후엔 축기기 초기 수준으로 수행을 낮추고 방향을 바꿔 설토족의 영토 쪽으로 다시 날아갔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천년화 때문인지 주위를 단단하게 방비하는 토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히 소란을 일으킬 필욘 없지.’

준혁은 허공에서 백호둔영으로 기척을 지운 상태로 전방위에 걸쳐 기감을 퍼트렸다.

그러자 그의 감각 안으로 주변을 순찰하듯 돌아다니는 설토족이 감지됐다.

‘축기기 하나에 연기기 둘. 적당하겠군.’

숲길 한쪽으로 커다란 토끼 세 마리가 날 듯이 이동하는 걸 발견한 준혁은 곧장 그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토끼 세 마리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

소각장 옆에 위치한 움막 앞.

평소 시체 수거에 바쁘던 준혁의 수하 갈색노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움막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대장은 언제 나오시려는 거지···. 대장로께서 오늘 또 오신다고 했는데···.”

그의 중얼거림이 신호가 된 걸까.

하늘에서 무언가 반짝인다 싶은 순간, 가벼운 착지음과 함께 움막 앞으로 귀여운 소녀가 내려섰다.

“대장로를 뵙습니다!”

갈색노을은 바닥에 턱을 대며 바짝 엎드렸다.

“큰둥이는 아직?”

“예. 아무 변화 없으십니다.”

인상을 찌푸린 바람꽃은 기감으로 움막을 살폈다. 구겨졌던 이맛살이 더욱 파여 들어갔다.

기감으로는 큰둥이의 기운이 확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움막 중앙에서 무언갈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지만, 기운은 잠자듯 조용했다.

벌써 다섯 번이 넘는 방문, 올 때마다 강제로라도 안으로 들어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문 앞의 수하가 간곡히 만류해 참고 있던 그녀였다.

“내가 온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반응을 안 보여···? 도대체 뭘 하길래?”

바람꽃의 혼잣말을 질문으로 오해한 갈색노을은 몇 번 말했던 내용을 또 읊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대장이 어떤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기 전, 그동안 수련한 것들을 정리할 테니···. 절대 방해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흐음.”

“보름 후면 나온다 했으니, 내일이면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여지껏 대장이 뱉은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요.”

바람꽃은 바닥에 엎드려있는 족인을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움막으로 옮겼다.

‘그동안 신뢰를 많이 쌓았구나. 그래도 안 돼. 우리의 미래가 달린 일. 어쩔 수 없어 큰둥아.’

움막 입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빠지던 바람꽃은 잠시 슬픈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큰둥아, 내 말 들리지? 약속한 날은 내일이지만 내일까지 기다릴 순 없어. 설토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잠시 후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진 무조건 준비해.”

당장이라도 움막을 걷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아낸 바람꽃은 할 말을 남기고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황급히 고갤 돌렸다.

움막 입구가 열리며 하얀 백호 한 마리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게 그녀의 시야에 잡혔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꽃님.”

큰둥이는 약 보름 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다만, 바람꽃은 그런 큰둥이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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