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63화 (63/408)
  • # 63 < 재결단 (2) >

    하늘 한쪽을 가득 채운 영기 구름은 일정 이상 크기를 키우다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노란 뇌전에 이어 붉은 뇌전과 푸른 뇌전이 번갈아 가며 주변을 밝혔다.

    번쩍- 콰과쾅!

    잠시 그렇게 머무르는가 싶던 영기 구름은, 중심부터 시작해 회오리바람이 치며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강제로 구름을 잡아 뽑아가는 것 같은 느낌.

    그와 동시에 소각장 인근에 있던 연기기 영수들이 픽픽 쓰러지자, 몇몇 축기기 영수들이 빠르게 다가가 그들을 챙겼다.

    “다들 멀리 떨어져! 영기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말에 힘을 실 듯 엄청난 중압감을 가진 목소리가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모두 이만 보 이상 물러나라!!”

    어느새 나타난 바람꽃은 기운을 날려 보내 미처 도망치지 못한 연기기 족인들을 챙기며 동시에 입김을 내뱉어 일정 지역에 보호막을 형성했다.

    엄청난 회오리바람과 함께 영기 구름은 미칠듯한 속도로 준혁이 위치한 움막 위로 흡수돼 사라졌고, 바람꽃은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재결단 이라는 말도 처음이지만···. 도대체 이 엄청난 기운은 뭐지? 나나 산들이 보다 두 배는 강력해. 정말 결단을 하는 것이 맞긴 맞을까?”

    바람꽃의 흔들리는 시선은 하늘을 가득 덮은 먹구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준혁은 단(丹)이 재구성되는 과정과 머리 위로 통로가 만들어지듯 엄청난 영기가 밀려오는 걸 만끽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다시 태어나는 기분처럼 희열과 감정의 고조를 동반했다.

    처음 혈단법으로 결단기에 도전했을 때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이게 진정한 결단기구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단?’

    물밀듯 밀려들던 영기는 새롭게 만들어진 단을 꽉 채우더니, 방향을 바꿔 단 주위를 공전하고 있던 백호청혈로 향했다.

    그리곤 영기를 주입받은 청혈은 부풀어 오르며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또 다른 단(丹)이라도 되려는 것처럼 단단해지면서 기운을 빨아들였다.

    ‘영기 현상이 이것 때문이었나?’

    기운을 계속 빨아들이던 백호청혈로 만들어진 정혈은 결국 포화상태에 이르더니, 준혁의 결단이 재구성되었던 것처럼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가 새롭게 다시 만들어졌다.

    그 크기는 정확히 준혁의 단전에 위치한 단의 절반 정도였고, 재구성이 끝나자 처음처럼 원래의 단 주위를 공전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몸속에 단이 두 개라니?’

    단(丹)이 무엇인가?

    신선이 되기 위해선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영력으로만 이루어진 자아. 즉 원영이 필요했고, 단은 그런 원영의 보금자리나 마찬가지.

    즉 결단을 맺는다는 것은 원영이 살 집을 짓는 과정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 단이 두 개가 되었으니 준혁은 혼란스러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래 고민할 시간에 연구를 하자.’

    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던 준혁은 곧바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새롭게 변한 자기 자신을 하나씩 뜯어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단이 재구성되며 존재감이 희미해졌던 식검이 갑작스레 선명하게 떠오르며 단 속에 나타났다.

    마치 결단기에 오른 수사들이 본명 법보를 단 안에 넣어 연화시키는 것처럼. 식검은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단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안방마님처럼 자리하던 식검이 갑작스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준혁은 급히 정신을 집중해 식검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기를 쓰며 식검을 조정하려고 애쓰는 찰나,

    푸욱-

    식검은 단(丹)을 빠져나오더니, 주위를 맴돌고 있던 백호청혈을 단숨에 꿰뚫어 버렸다.

    그리곤 서서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 준혁의 본 단(丹)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며, 일반적인 결단기 수사의 단 크기를 가볍게 넘어가고 있었다.

    +++

    식검은 청혈을 완벽하게 먹어 치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단 안으로 들어가 안착했다.

    동시에 지금껏 머리로만 외워뒀던 백호족의 술법들이 완벽하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시점이 아닌 백호족의 시점으로 술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분.

    그리고 지금껏 청혈을 받아들였음에도 깨우치지 못했던 백호족의 혈맥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 힘은 바로 벽화를 통과하며 경험했던 음신통(音神通). 다른 말로는 흔히 사자후라고 부르는 음공의 일종이었다.

    ‘백팔마선이라 부르던 자를 먹어 치우더니, 이번엔 혈맥의 힘.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식(食)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편식이 심한 건지, 그동안 식검이 반응을 보인 건, 단 두 가지 경우뿐.

    백팔마선이라 불리던 적마와, 동류로 의심되는 귀원패.

    그리고 혈맥의 힘을 가진 백호청혈.

    준혁은 단(丹) 속에 잠든 듯 자리한 식검을 조정해 눈앞으로 이동시켰다.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식검. 눈을 감으면 존재 자체를 감지할 수도 없었다.

    ‘이 녀석으로 인해 내가 수도계에 들어선 건 분명하다. 하지만 화(禍)일지 복(福)일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구나···.’

    아무 능력이 없던 준혁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동력은 분명했으니, 그것만 보자면 복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흡수하다 끝내 자신마저 먹어 치워버린다면?

    ‘흠···. 만통방이라도 뒤져봐야겠구나.’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선계의 지식이 들어있다던 만통방,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알고 있으니 능력만 된다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준혁의 뇌리로 식검이 청혈을 흡수하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껏 식검이 먹어 치운 것은 적마 뿐이긴 했지만, 먹어 치웠다고 의심되는 건 인지경과 분광소, 공천령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것들과 청혈의 큰 차이점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완벽하게 사라졌다?’

    법보 형태로 남은 다른 것과 달리, 청혈의 기운은 완벽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지를 일으켜 식검에 집중해 보았다.

    우우웅-

    그러자 지금껏 아무 기운도 없던 식검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명백하게 백호의 기운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적호족 상공에 나타났던 영기 구름이 사라진 지도 벌써 한 달.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주변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단 한 명.

    산들바람만이 초조한 듯 소각장 옆에 위치한 준혁의 처소 주위를 배회할 뿐이었다.

    “무슨 일 생긴 건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듣는이도 없었지만, 산들바람은 계속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움막을 살폈다.

    결단기에 오르고 난 뒤, 경지를 다지는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 하지만 준혁은 다른 이들에 비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렇게 초조함이 쌓여갈 무렵.

    갑작스레 움막을 중심으로 거대한 영기 파동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크아아앙!!-

    흉포한 호랑이 울음소리가 주변을 휩쓸었다.

    “어어?”

    움막 근처에서 울음소리에 직격당한 산들바람은 두 다리가 풀리는 느낌과 함께 몇 걸음이나 비틀거리며 물러나야 했다.

    비단, 그런 반응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소각장을 중심으로 반경 50m 내에 있던 자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거나 비틀거리며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때 움막 안에서 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들님. 제 자질이 부족해 경지를 다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요. 돌아가 계시면 제가 찾아가 뵙겠습니다.”

    “뭘 하길래 이렇게 오래 걸려?”

    “산들님이 해주시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루라도 빨리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나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응? 그래?”

    동문서답하는 준혁의 대답에 산들바람은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헤실헤실 웃다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눈 후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기 전 한마디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빨리 와야 해!”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준혁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눈을 감고 공법 운용에 집중했다.

    +++

    한 달 후.

    준혁이 백호의 모습을 한 채 움막에서 걸어 나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꽃과 산들바람은 급히 날아왔다.

    반가움이 가득한 산들바람과는 달리, 바람꽃은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준혁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너 정말 결단을 맺은 거야?”

    “그렇습니다.”

    차분한 준혁의 말에 바람꽃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말도 안 돼! 한번 맺은 결단을 다시 맺는다고? 그런 소린 평생 처음 들어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수련 도중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았던 제 결단에 반응이 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전해 보았는데···. 이렇게 돼버린 겁니다. 저 역시 당황스럽군요.”

    그때 산들바람이 가까이 다가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심심해 죽는 줄 알았잖아! 난 사흘 만에 수행을 다졌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오랜만에 보는 산들바람의 모습에 준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그녀의 저런 모습이 애정 표현이란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영기 구름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겨우겨우 결단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짓이었다.

    빠르게 수행을 다진 준혁은, 식검으로 흡수돼버린 백호청혈의 능력을 파악하고 심상 수련을 이어갔다.

    백호족의 음신통을 익힌 뒤에는 백호족 옥돌 속 술법 중 당장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그중에서 바람처럼 움직이는 백호둔영(白虎遁影)과 구름 속에서 뇌성을 부르는 술법을 집중적으로 습득했고, 그 후엔 백호족 특유의 풍둔술(風遁術)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백호둔영은 은밀히 움직이는 데는 손꼽힐만한 수법이었고, 풍둔술은 여태껏 정혈을 낭비해 혈둔술을 사용하던 준혁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술법이었다.

    단 풍둔술은 장거리 고속비행술이긴 했지만, 속도 면에서는 혈둔술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백호족의 능력을 어느정도 습득한 후에는 몸 안의 영기가 충만한 것을 기회 삼아 혈단법과 식혈만복을 조정해 두 공법을 결합하는데 도전했다.

    결론은 절반쯤의 성공.

    식혈만복의 정혈 정제법과 피를 다루는 방법은 완벽히 적용했으나, 탁기를 이용해 혈피갑을 만드는 건 짧은 순간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탁기 자체를 소비하는 데엔 실패한 것.

    다행이라면 인간의 모습을 하든 백호족의 모습을 하든 상관없이 공법을 운용하는데 막힘이 없어졌다는 것이 크나큰 수확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내 흔적이 사라졌어.”

    준혁을 살펴보던 바람꽃이 의아한 눈을 한 채 다가와, 허락도 없이 준혁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준혁의 내부를 살피다 화들짝 놀랐다.

    “단(丹)은 안정된 게 맞는데···. 이럴 수가! 내 정혈이 사라졌어! 무슨 짓을 한 거야?”

    공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흡수해 버렸지만, 준혁은 시치미를 뗐다.

    “결단을 하는 과정에서 제 정혈과 섞여버렸나 봅니다.”

    “그게 말이 돼?!! 정혈이란 게 그렇게 쉽게! 아니. 우선.”

    바람꽃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벌려 피 한 방울을 뱉어냈다.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았기에 준혁은 순순히 그녀의 정혈을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잠시 후, 바람꽃의 정혈이 준혁의 심장 어림으로 이동에 자리를 잡자, 그제야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지우고는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어졌다.

    옆에선 산들바람이 기회를 보고 있다, 언니와의 대화가 끝나자 빠르게 끼어들었다.

    “이제 매일 나랑 놀자. 내 거처 근처로 이동해.”

    지금까지도 아침엔 혈정단 흡수, 새벽엔 술법 수련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그녀와 보냈던 준혁으로선 살 떨리게 무서운 소리였다. 아마 더 오랜 시간 붙어있다간 귀가 먹어버릴지도 몰랐다.

    게다가 준혁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백호청혈을 식검이 흡수한 후 능력을 확인해보려 여러 법보들을 꺼낸 후 알게 된 사실.

    그것들을 실험해봐야 했기에 당분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소각 임무를 위해선 멀리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산들님.”

    “에엥? 계속 일할 거야? 너 이제 약속한 경지에 올랐잖아? 그럼 계속 놀면 되지.”

    처음 바람꽃이 준혁에게 요구한 건 불안전한 결단기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

    준혁의 경지는 더할 나위 없이 완성되었기에 그녀의 말대로 소각 임무를 더는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