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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50화 (50/408)
  • # 50 < 눈꽃 비경 (3) >

    꼬박 일주일을 날아온 준혁은 시야 끝으로 장벽과도 같은 거대한 산맥이 보이자, 가까운 언덕에 내려섰다.

    중경으로 넘어가 영수를 사냥해 수행을 올리기 전, 자신을 점검하고 상태를 회복하려는 것,

    그때 준혁의 시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응? 저건?”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시야가 닿는 곳에 조금 넓은 공터가 있었고, 그 가운데엔 다른 나무보다 수배 커다란 나무가 홀로 서 있었다.

    관심이 간 이유는,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은은한 영기파동을 퍼트렸기 때문이고, 나무에 열려있는 과실이 준혁이 알고 있는 어떤 것과 일치했기 때문.

    “설마! 수명과(壽命果)란 말인가!”

    준혁은 서책에서 보았던 수명과와 일치하는 모습에 나무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수명과가 무엇인가? 한 알만 먹어도 수십 년의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여, 구색초만큼이나 귀한 과실이었다.

    공터에 내려, 홀로 서 있는 나무에 다가가 손을 뻗으려던 준혁은 주변 기운이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수명과가 열려있는 나무를 기감으로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는 경솔했던 자신의 행동에 피식 웃고 말았다.

    “당했구나.”

    “하하하! 또 한 놈 걸려들어쑤아!”

    준혁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텅 빈 터와 나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에 공터의 모습은 원뿔 형태의 괴이한 석탑들이 즐비한 장소로 변했고, 곳곳에서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의 수사들은 축기기 초기부터 중기까지 다양했는데, 그중 홀로 선두로 걸어 나오는 자는 축기기 중기 끝자락에 다다른 자였다.

    “머저리 같은 놈, 외경에 수명과 같은 것이 있게 긋냐? 중경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을. 케헤헤.”

    축기기 중기 사내는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리며 발로 바닥을 툭툭 차며 준혁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준혁이 당황하지도, 그렇다고 겁도 먹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사내는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고 의외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이? 머저리? 얼어붙은겨? 말 잘 들으면 살려는 주겠스, 오케이 바리?”

    거들먹거리는 사내의 모습에 준혁이 차분하게 반응했다.

    “정말 살려주실 겁니까?”

    “고러엄, 고럼. 내가 이래 봬도 중경 산맥 초입을 지키며 통행세를 걷은 지도 수십 년은 지났지만, 생명은 건들지 않는다고. 케케.”

    사내의 말에 다른 이들이 맞장구쳤다.

    “맞다 맞어! 우리 큰형님이 팔다리는 자르고 단전은 망가트려도, 목숨은 항상 살려주시지 쿠헬헬.”

    도적들이 주고받는 말에 준혁이 물었다.

    “이곳을 중경 산맥이라 부르는 겁니까?”

    “뭐? 중경에 진입하는 산맥이니 중경 산맥이지. 어때? 내 작명쎈쑤가?”

    “혹시 인근이나 중경의 지도 같은 걸 가지고 있으십니까?”

    “지도? 그런 게 있겠냐? 있으면 도적질하기 좋을···. 야! 질문은 내가 한다!”

    사내는 준혁에게 농락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가시가 박힌 채찍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준혁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지도라도 있으면 살려주려 했더니.”

    “응?”

    준혁의 혼잣말을 들은 도적 대장은 안색이 변했다. 함정에 빠졌지만, 긴장이라곤 1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위화감이 몰려온 것.

    어느새 장난스러운 말투도 사라져 버렸다.

    “설마, 선배님 되십니까?”

    오랜 시간 동안 도적질을 해오며 나름 눈치가 좋다고 생각했던 도적 대장은 상대를 빠르게 기감으로 훑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축기기 초기였던 수행이, 이제는 전혀 파악되질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너무 놀라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 순간 준혁을 중심으로 넓은 기파가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강렬한 기파에 도적들이 움찔하는 순간. 준혁의 몸이 파앗- 하고 사라졌다.

    “어? 어?”

    갑자기 사라진 준혁의 모습에 도적들이 우왕좌왕하려는 사이, 뒤를 점하고 있던 축기기 한 명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목과 몸이 분리된 채.

    “으악!! 모두 도망쳐!!”

    한 명의 목이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십여 명이 넘던 도적들이 동시에 바닥을 차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각자의 비행 법기를 꺼내며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채 움직이기도 전. 또다시 두 명의 목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괴! 괴물이다!!”

    이동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자, 도적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비백산했다.

    그 과정 중에 두 명만이 겨우 현장을 벗어나 사라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바닥에 차디찬 시체가 되어버렸다.

    정 반대 방향으로 날아 도망치는 두 명을 보며 준혁은 쓰게 웃으며 허공으로 단검을 쏘아 보냈다.

    “되도록 안 쓰려고 했더니.”

    둔광을 사용해 직접 쫓지 않은 한 가장 빠른 것은 분광소.

    단검은 허공에서 8개로 증식하더니 각 4개씩 두 방향으로 나뉘어 도망간 도적을 쫓았다.

    한 명을 직접 쫓고 나머지 한 놈만을 단검으로 잡는 게 더 빨랐지만, 준혁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

    바로 눈앞에 있는 축기기 중기 끝자락의 도적 대장 때문이었다.

    “너는 왜 도망가지 않지?”

    준혁의 말에 그동안 벌벌 떨며, 수하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구경하던 도적 대장이 바닥에 부복하며 머리를 박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어르신!”

    “묻지 않았더냐?”

    “그, 그것이···. 제가 비행 법기를 다루는 재능이 매우 떨어져서···.”

    도적 대장의 대답에 준혁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리다 표정이 급변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다가가 도적 대장의 천돌혈을 쿡 찍어 몸을 마비시켜 버린 후, 허공으로 솟구치며 둔광을 일으켜 빛처럼 쏘아져 나갔다.

    +++

    둔광을 사용해 빠르게 날아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단검들을 상대하는 축기기 중기의 수사가 준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검은 구름이 뭉쳐 만들어진 방패로 단검의 공격을 막는 중이었다.

    ‘역시 그 팔찌가 맞구나!’

    준혁은 분광소를 통해 전해오는 느낌이 매우 익숙하다고 생각해 급히 날아왔는데, 역시나 자신의 예상이 맞았던 것.

    축기기 중기 수사는 둔광을 펼쳐 준혁이 가까이 다가오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색이 탈색되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둔광을!”

    “청룡가 수사가 도적 무리에서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무, 무슨 소리요! 나는 청룡가 사람이 아니오!”

    “그럼 그 팔찌는 어디서 난거지?”

    준혁은 말을 하며 공간대에서 검은색 팔찌를 꺼내 팔에 착용했다. 그러자 팔찌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나와 뭉치더니 검으로 변했다가 다시 방패로 변해 준혁의 순에 안착했다.

    그 모습에 사내는 두 눈을 찢어지라 부릅떴다.

    “흑몽환이 어째서 네놈에게!!”

    “오호. 역시 잘 아시는군요? 지금 수사께서 사용하고 있는 법기와 한 벌입니까?”

    “이익! 이 악적! 네놈이 명후 사제를 죽였구나!!”

    그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습니다. 청룡가 한 놈을 베고 얻은 것이지요.”

    준혁은 분광소를 회수하고는 분노에 휩싸여 있는 사내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다시 묻지요. 청룡가 사람이 도적 무리에서 뭘 하고 있던 겁니까?”

    하지만 준혁의 물음에 답할 생각이 없는 듯 사내는 공간대에서 수십 장의 부적을 꺼내 뿌리며 소리쳤다.

    “죽어라!!”

    그리고는 외침과 다르게 부적이 발화 하기도 전 다시 맹렬한 속도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말하기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빠르게 멀어져가는 사내를 향해 준혁이 손을 휘젓자, 분광소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곤 도망치던 사내의 근처에 도착하자 순식간에 수십 자루로 증폭하더니 사내의 전신을 베기 위해 쇄도해 들어갔다.

    사내는 결국 다시 멈춰 서며 단검들의 공격을 막아야 했고, 그 틈새에 등 뒤로 다가온 이에게 목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컥-”

    준혁은 자신의 손에 잡혀 영력이 흩어지고 있는 사내를 보며 사늘하게 웃었다.

    “할 얘기가 많으니 같이 갑시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던 축기기 초기 수사는 분광소의 공격에 결국 헐렁한 공간대만을 바쳐야 했다.

    +++

    도적 무리에 끼어있던 청룡가 수사를 잡아 처음 자리로 돌아온 준혁은 도적 대장을 향해 영기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지금껏 가만히 멈춰있던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부여잡았다.

    “컥컥-커어억!”

    “연기 그만 하지?”

    순간 도적 대장은 언제 그랬냔 듯 자세를 바로 하고는 부동자세로 준혁의 발끝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하는 것을 봐서 살려주지. 따라오거라.”

    준혁은 사방에 널브러져 흩어진 도적들에게서 공간대를 회수하고는 도적 대장을 데리고 이동했다.

    잠시 후 산맥 초입, 거대한 암석이 즐비한 곳에 도착한 준혁은 바위들 사이의 틈새로 들어갔다.

    그리곤 도적 대장이 가까이 오자 방음진과 환영진으로 주변을 차단했다.

    “네 처우는 잠시 뒤에 얘기하지. 기다리거라.”

    “예, 예! 알겠습니다요.”

    공간대에서 쇠고랑 법기를 꺼내 도적 대장에게 쏘아 보낸 준혁은 산 채로 잡아 온 청룡가 수사를 바닥에 앉혔다.

    그리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눈이 풀려있는 그의 이마에 부적을 붙이고는 수결을 맺었다.

    수결이 끝나자 청룡가 수사가 앉은 자리 주위로 오각형의 진법이 나타나며 빛을 뿜어대다 사라졌다. 직후 사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네 이름이 뭐지?”

    사내는 의지가 없는 듯 멍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여명곤···.”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가주님···. 명으로.”

    “무슨 명이지?”

    “가문···. 모두에게···.”

    청룡가 축기기 수사는 준혁이 사용한 정신부 때문인지 자신이 아는 것을 토해냈다.

    ‘이럴 수가!! 나를 잡기 위해 비경을 수색한 게 아니었구나!’

    비경 입구에서 청룡가 인물들을 보았기에, 이자 역시 당연히 자신을 잡으려고 이곳저곳 흩어져 활동 중인 수사 중 하나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가 도적 무리에 몰래 숨어있었던 건 바로 구색초 때문.

    준혁은 청룡가 사내를 내버려 둔 채 쇠고랑에 구속된 도적 대장에게 다가갔다.

    “방금 다 들었겠지? 구색초에 대해 말하라.”

    “집안에 도둑놈이 있었을 줄이야···. 크 흠. 전부 말씀드리면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요?”

    “... 정신부 좀 붙여줄까?”

    자신의 처지도 깨닫지 못하고 협상을 하려는 도적놈에게 준혁이 차갑게 대꾸하자, 도적 대장은 펄쩍 뛰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죄, 죄, 죄송합니다요. 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정신부만은···.”

    “해봐.”

    “내경 초입을 지나면 설토족이란 영수족이 살고 있습니다요.”

    “설토족(雪兎族)?”

    준혁은 설토족이란 단어가 매우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차경수가 모아온 비경 정보에 적혀있던 내용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도적 대장을 보며 준혁이 말했다.

    “계속해.”

    “네, 설토족이 사는 곳에 가면 그것들의. 그 뭐라 해야 하나···. 제사? 신전? 뭐 아무튼 기도하고 하는 곳이 있는데, 암튼 그곳에 가면 천년수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아래엔 사시사철 구색초가 피어 있다고 했습니다요. 단지···.”

    도적 대장이 말끝을 흐리자 준혁이 턱 끝을 위로 끄덕거리며 다그쳤다.

    “단지. 그 구색초는 일반 구색초와 다르게 보름달이 뜰 때면 오색빛깔을 내뿜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온다 들었습니다요.”

    “어디서 얻은 정보지?”

    “그것이···.”

    준혁은 말없이 공간대에서 정신부 한 장을 꺼냈다.

    “마, 말씀드립니다. 드리려고 했다굽쇼! 그것이 중경 초입에 가면 자비엔가 뭔가 하는 놈이 있습니다요. 프랑스 놈인데, 그놈에게서 얻은 정보입니다요. 영수들을 종속시킬 때 사용하는 영속단을 잔뜩 구한 적이 있는데. 그놈에게 주고 정보를 얻은겁니다요.”

    준혁은 멍하니 앉아있는 청룡가 수사를 힐끔 바라보다 물었다.

    “저놈도 대충은 정보를 아는 듯하던데, 왜 계속 네놈에게 붙어있던 거지?”

    “정보만 안다고 갈 수 있겠습니까요? 거기가 어디라고···. 아마도 제겐 방법이 있다는 걸 저놈도 알고 있었을 테니 그랬겠지요.”

    준혁의 눈이 반짝였다.

    “말하라.”

    “... 그 프랑스 놈에겐 영수의 피를 이용해 잠시동안 영수로 변할 수 있는 술법이 있습니다요. 영석 오천 개를 주고 술법을 배우기로 했습죠. 그놈이 있는 곳은 저밖에 모릅니다···. 요.”

    “그러니까 네놈은 영수로 변하는 술법을 익혀, 내경까지 몰래 들어가 구색초를 훔쳐 오려 했다?”

    “마, 맞습니다요.”

    도적 대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준혁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얘기엔 크나큰 맹점이 존재했다.

    “그게 말이 되나?”

    “지, 진짭니다요! 저는 진실만을 말했다구요!”

    “네 말대로 영수로 변해 구색초를 구할 수 있다 치자. 그럼 그 자비엔가 하는 놈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

    “예? 어? 어? 그게···. 어! 설마 그 코쟁이가 저를 속였단 말입니까요?”

    준혁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혼란스러워하는 도적 대장을 내버려 두고, 공간대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보물에 환장해 있던 차경수의 물건, 그중 눈꽃 비경에 관한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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