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47화 (47/408)
  • # 47 < 경매 (4) >

    ‘차심부가 뭐지? 심장을 대신한다?’

    준혁의 의문에 대답이라 한다는 듯 유행상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이 있을까 봐 설명해 드리자면, 차심부란, 수사의 목숨줄 하나를 예비로 가져간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반적인 발화용 부적과 다르게 체내에 연화시켜 놓으면 심장이 파괴되었을 때 몸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주는 부적입니다.

    물론 죽을 정도의 극심한 상태에도 적용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현재 수도계에 차심부의 숫자가 10여 장도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걸 만드신 제부사 왕웅 수사께서 원영에 이른 후 더는 외부로 유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럼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영석 1,000개!”

    유행상의 시작 알림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가격이 튀어나왔다.

    “1,300개!”

    “1,600개!”

    “2,100개!”

    “2,150개!”

    몇 분 지나지도 않아 급격하게 오르던 가격은 3,000개쯤이 돼서야 그 상승이 살짝 더뎌졌다.

    “3,200개!”

    “3,220개!”

    “3,280개!”

    어느새 일반적인 상급 법기의 가격을 넘어서고 있었다.

    “4000!”

    그때 종결을 알리듯 굵직한 목소리가 4,000개를 부르자 그동안 따라붙던 입찰자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중성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그걸 시작으로 다시 가격이 올랐다.

    “4,100개.”

    “4,200개!”

    “계속 따라붙는 게 귀찮군요. 5,000개! 더는 올리지 않을 테니 필요하시면 가져가시지요.”

    중성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 있다는 듯 말을 내뱉자, 더 이상의 입찰자는 나오지 않았다.

    유행상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차심부가 든 상자를 조심히 닫았다.

    “더 이상 없으시면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셋, 둘, 하나!, 그럼. 차심부는 영석 5,000개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사.”

    유행상의 말이 끝나자 여인들이 단상 위로 올라와 새로운 물건을 내려놓고 차심부가 든 목함을 챙겨갔다.

    일련의 경매를 지켜보고 있던 준혁이 뒤에 시립 해 있던 여인에게 물었다.

    “저 차심부란 물건이 정말 목숨을 되살릴 수 있나?”

    그동안 아무 말 없던 준혁이 입을 열자, 여인은 숨통이라도 트인 듯 빠르게 설명했다.

    “유 어르신의 말 중 거짓은 없으나, 전부 동급 수사를 상대할 때를 기본으로 한 설명입니다.”

    “그 말은 상위 수사에겐 소용없다는 말?”

    “그렇지는 않지만, 애초에 수준 차이가 심하다면 부적 자체를 발동하지 못 하게 할 수 있다 알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알고 있다면 저 수사들이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저 정도 가격이 형성된단 말인가? 하긴.’

    준혁의 입장에선 차심부의 가격이 과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돈이 썩어 넘쳐나는 부자들 입장에선 싸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심부로 인해 경매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유행상은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한 뒤 쐐기를 박겠다는 듯. 크게 손뼉을 치며 시선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다.

    “이제 마지막 경매품입니다. 그동안 이번 경매에 법보가 올라온다는 소문은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예. 맞습니다. 바로! 보물 중의 보물이라는 법보!!”

    당장이라도 물건을 공개할 것 같던 유행상이 말꼬리를 흐리며 아쉬움을 표했다.

    “휴우···. 주최 측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다는 불문율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경매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인데···. 참으로 아쉽군요.”

    유행상이 뜸을 들이며 물건을 설명하지 않자 몇몇 사람들이 빨리 물건을 보이라고 소리쳤다.

    화가 났다거나, 진상을 부리려는건 아니고, 그저 궁금증에 조급함이 엿보였다.

    “하하. 알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가질 수도 없는 것. 빨리 소개해 드리도록 하지요. 마지막 물건은! 바로!”

    어느샌가 단상 위에 올려진 자단목함을 조심스럽게 연 유행상은 그 안에 든 육각형 문양이 빼곡히 새겨진 녹색 원형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옥패는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였는데,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진한 녹색 반사 빛이 퍼지며 신비감을 자아냈다.

    “법보(法寶)! 귀원패(龜圓牌)!!”

    귀원패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중 왼쪽 끝에 앉아있던 사내가 단상을 향해 소리쳤다.

    “설마! 얼마 전 타계하신, 결단기 중기까지 오르신 나카무라 유이치상의 본명 법보 아닙니까?”

    사내의 질문에 유행상이 살짝 고개를 저으며 소개를 이어갔다.

    “많은 분들께서 귀원패가 유이치 수사의 본명 법보라고 알고 계시지만, 그건 잘못된 정보입니다. 유이치 수사께선 오십여 년 전 홋카이도의 한 신비경에서 귀원패를 얻으셨지만, 완전하게 체화시키는 데는 실패하셨습니다. 다만 귀원패라는 진명을 알아내시고는 크게 이름을 알리신 거지요.”

    “말도 안 돼! 체화시키지도 못한 법보가 그렇게 강하단 말이오?”

    상대방의 반응에 유행상이 즐거운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영기만 충분하다면 누구도 뚫을 수 없다는 절대 방어 법보! 그렇기에 귀원패의 가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귀원패를 완벽하게 체화(體化)시킬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을 뚫을 무언가가 있겠습니까?!”

    웅성웅성-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벼운 시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법보를 처음 보신 분들도 많을 테니 이번 기회에 안목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다만 연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걸 고려해 보셔야 하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여기저기 침 삼키는 소리를 동반한 채 유행상은 녹색 옥패를 눈앞에 띄운 채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수결이 끝나자 녹색 옥패 뒤로 1m는 될법한 거북이의 환영이 나타나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곤 환영이 사라짐과 동시에 유행상 주위로 반투명한 육각 타일이 무수하게 생겨나더니 주변을 꼼꼼하게 감싸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반투명한 육각 타일은 점점 희미해지며 보일 듯 말 듯 하게 존재감이 거의 사라져갔다.

    그 모습에 유행상이 박수를 세 번 치며 말했다.

    “이것이 귀원패의 절대 방어입니다. 이 반투명한 보호막은 그 어떤 공격도 허용하질 않지요.”

    그때 준혁과 같은 귀빈실 중 한 곳에서 음침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 수사. 그럼 내가 확인해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다만 제가 법보를 체화시키지 못했다는 걸 고려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걱정 마시게. 그 정도 힘 조절은 할테니.”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경매장 중심 상공에 있던 귀빈실에서 가느다란 침 수십 개가 쏘아져 나갔다.

    끼에엑-

    침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갔다.

    “교모침(咬毛針)! 결단기 후기! 시마타 상!”

    침들은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공중에서 퍼져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상을 포위하고는 전신을 찔러 들어갔다.

    팅-티티티팅팅-

    하지만 매섭게 찔러 들어간 것과는 다르게 전부 반투명한 막에 가로막혔다.

    침이 보호막에 닿는 순간 충돌 부위의 육각 타일이 선명해지며 주위로 녹색 빛이 번지듯 퍼져나가는 것이 아름답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침들은 모든 기운이 사라진 듯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에 귀빈실에선 짧은 침음과 함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영기 수발 없이 전신을 보호하고, 내 법기에 서린 영기까지 날려버리다니···. 대단하구나.”

    바닥에 떨어졌던 침들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처음 쏘아져 나왔던 귀빈실로 돌아갔다.

    “확인하게 해줘서 고맙네. 유 수사. 귀원패가 방어 무구 중 으뜸임을 인정하는 바이네.”

    귀빈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유행상은 그쪽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마타상의 교모침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또 한 번 안목을 넓혔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놀라 제각각 말을 뱉어낼 때, 유행상은 빠르게 경매 시작을 알렸다.

    “절대 방어 법보 귀원패!! 시작가는 영석 3,000개! 시작합니다!”

    유행상이 외침과 동시에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4,000!”

    “5,000개!”

    “6,000!”

    “7,000개!”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귀원패의 가격. 하지만 준혁은 지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신경 쓰이는 것은 오직 하나.

    조금 전 귀원패가 발동되며 나타난 거북이 환영이었다.

    ‘그건 분명 법기 현상이 아니다.’

    법기 현상이란 뛰어난 무구를 사용할 때 무구 안에 스며들어있던 영기와 재료 본연의 힘이 환영처럼 나타나는 것.

    상급 법기 수준에선 보기가 힘들었고, 대부분은 법보 수준의 무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준혁이 거북이 환영을 보고 놀란 이유는 바로 식검 때문.

    환영이 나타난 순간, 그동안 조용하던 식검이 찌릿한 신호를 보내왔다.

    그 신호는 마치 식욕처럼 느껴졌는데, 한번 맛본 음식을 다시 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 저 귀원패도 적마도 같이 살아있는 법보인가? 백팔마선?’

    “8,000개!”

    “8,500!”

    “9,000개!”

    쉬지 않고 올라가는 경매가를 들으며 준혁은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하, 궁금하긴 하나, 내겐 무리구나.’

    귀원패의 가격은 이미 준혁이 가진 영석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한동안 끝을 모르고 올라가던 경매가는 12,000개가 넘어서자 조금씩 속도를 늦춰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단 두 명만이 가격을 올려 불렀다.

    그러다 13,000개가 넘을 때쯤 누군가가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츠다!! 적당히 하시게!! 요즘 광산이 말라 집안 살림을 팔아야 할 처지라더니 지불할 돈은 있는 겐가?!”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다른 이가 대꾸했다.

    “흥! 내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저깟 법보 하나 살 돈이 없을까? 당신이나 포기하시오. 요시무라!”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 이건가?! 그럼 이렇게 해보지! 15,000개! 하나라도 더 올린다면 내가 포기하겠다!”

    순간 경매장이 조용해지자, 사태를 관망하던 유행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5,000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번 경매품은, 15000···.”

    하지만 유행상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 어디선가 코웃음과 함께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0,000개.”

    여인이 내뱉은 말에 경매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대금당도 다 죽었네. 경매장에 저런 드잡이질이나 하는 놈들도 가만히 두고. 어이 유 수사. 빨리 진행하시지? 못 들었어? 20,000개라고. 어이? 유 수사?”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유행상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벌벌 떨며 경매를 진행했다.

    “이, 이만 개. 나왔습니다. 더, 더 없으십니까? 없으시면 마지, 마지막 경매품인 귀원패는 이만 개에 낙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셋, 둘, 하나! 낙찰되었습니다.”

    준혁을 제외한 대부분 수사는 마지막에 경매품을 낙찰받아간 자가 누군지 아는 것처럼 전부 합죽이가 되어있었다.

    주변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준혁은 뒤에 서 있던 여인에게 물었다.

    “낙찰받은 여인이 누구지?”

    하지만 지금까지 곧바로 대답했던 여인은 말없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나?”

    준혁이 목소리에 영력을 담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여 시종이 고개를 털어내며 겨우 들릴 듯 말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확실히는 모르나 다만 예상하자면···. 사쿠라···. 사쿠라님인 것 같아요.”

    “사쿠라?”

    “네. 결단기 후기수사. 나가요 사쿠라상 이요.”

    나가요 사쿠라. 그녀는 우치노 야마기, 코에다 시마타와 더불어 일본의 세 명뿐인 결단기 후기수사.

    즉 이 경매장엔 일본 최강자라는 결단기 후기수사가 두 명이나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쿠라라 불린 여인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

    준혁이 여 시종에게 일본 수사들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을 때, 경매가 끝이 났다. 하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이제 본 경매는 전부 끝났습니다. 지금부터는 간이 경매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곳의 수사분들을 상대로 경매를 진행하고 싶은 수사분께서는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지금부터의 거래엔 저희의 손이 닿지 않으니 진품 여부는 스스로 파악하셔야 합니다. 그럼 간이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행상이 말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가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단상 뒤로 날아내렸다.

    그녀는 가면조차 쓰지 않았는데, 검은 긴 생머리에 새하얀 피부, 오뚝한 코와 얇은 입술이 묘하게 아름다운, 전형적인 냉미녀 상이었다.

    여인은 단상을 가볍게 '탁' 치더니, 시선을 집중시킨 채 입술을 비죽여 모든 이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내가 누군지는 알 테지? 난 물건 교환이 아닌 정보를 구매할 거야.”

    그리고는 가볍게 수결을 맺자 허공에 오망성의 진법이 나타나며 그 위로 거울 하나와 단검 하나의 환영이 입체적으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 법기를 사용하는 자를 본 자, 혹은 정보를 아는 자. 그 정보 내가 사지. 이 귀원패를 대가로 말이야.”

    탁-

    어느새 탁자 위엔 녹색 옥패가 신비한 빛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단기 후기수사 사쿠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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