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46화 (46/408)

# 46 < 경매 (3) >

“실전에서 사용하긴 무리겠구나.”

준혁의 눈앞에서 사라졌던 괴뢰 인형은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나더니 힘없이 멈춰버렸다.

외형을 변화시켰다고는 하나, 11개의 영석을 먹어 치우고서 겨우 다섯 걸음 이동한 후 멈춰버린 인형을 바라보며 준혁은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만약 법기를 사용하거나 술법을 쓰게 만든다면 얼마나 많은 영석을 소비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고개를 절레 젓고는 인형을 축소해 공간대에 넣으려던 준혁은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쌍칼 법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인형에 영석 10개를 재투입하고 양손에 법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실망스러운 표정이 되어야 했다.

“하긴, 이런 식으로 괴뢰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면, 괴뢰를 많이 보유한 자가 모두를 압도하겠지.”

시도한 김에 인지경까지 소환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괴뢰 인형은 준혁이 영기를 직접 주입하거나, 영석만으로 동력을 얻을 뿐이었다.

+++

3주간 영천수에 몸을 담근 채 진법을 공부하던 준혁이 자리를 정리한 후 방음진을 해제했다.

마음 같아서는 영천수의 영기를 전부 먹어 치우고 싶었으나, 문제를 일으키긴 싫었기에 자제했다.

준혁이 진법을 해제하며 별채에서 나오자 3주 전에 보았던 연기기 수사 두 명이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수사님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인 준혁은 여인들에게 각각 영석 5개씩을 주고는 료칸의 입구로 이동해, 그녀들의 봉사점수를 최상으로 표시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료칸을 벗어나 시리베츠 거리로 돌아온 준혁은 곧장 소금점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나코라 소개했던 여인이 환한 웃음으로 준혁을 맞이했다.

“제시간에 맞춰 와주셨군요. 그럼 가실까요?”

나코는 작은 키에 걸맞게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이동하더니, 소금점에서 조금 떨어진 야트막한 야산으로 준혁을 안내했다.

“이곳이 입구랍니다. 이거 받으세요.”

나코가 야산 입구의 거대한 나무 틈새를 가리키며 하얀 가면 하나를 건넸다.

“저희 경매장은 구매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외관을 감출 수 있는 이 특수가면을 쓰는 게 원칙이랍니다. 수사님이 쓰신 가리개를 벗고 쓰시든, 그 위에 쓰시든 그건 상관없어요.”

준혁은 가면을 슬쩍 살펴보고는 얼굴 가리개 위에 덮어썼다.

준혁이 가면을 쓰는 걸 확인한 나코가 말을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왼쪽에 경매 물건을 출품하는 곳이 있어요. 물건을 등록하시고 난 후엔 중급 경매장으로 이동하시면 된답니다.”

“중급?”

“네. 수사님이 출품하신 물건은 아마 중급 경매장에서 경매가 진행될 거예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같이 가는 건 아니었습니까?”

“저도 수사님과 함께하고 싶지만, 다른 분들도 안내해야 하니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어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코는 깊게 허리를 숙이더니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자 준혁은 잠시 무언갈 생각하다 나무 틈새로 이동했다.

어느새 겉으로 드러난 준혁의 수행은 결단기 초기가 되어있었다.

+++

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리된 기다란 통로가 준혁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 선배님을 뵙습니다.”

경매장에 방문한 수사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사내는 준혁의 수행을 느끼고는 공손한 자세로 인사하며 다가왔다.

“선배님, 혹시 방문한 적이 있으신지요?”

“없다.”

준혁의 차가운 말에 안내인의 자세가 더욱 겸손해졌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설명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뒤에 시립에 있던 남녀 수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경매장은 상, 중, 하, 세 가지로 경매를 나누어 진행하옵고, 모든 경매가 끝나고 나면 수사분들 간의 개인 거래를 주관해 드립니다. 수수료는 구입 가격의 1할을 받고 있으며, 선배님을 이곳으로 소개한 이는 그 1할중 3할을 가져갑니다.”

‘어쩐지, 그토록 좋아하더니.’

“또한 선배님들께는 특별히 시종이 제공되는데, 여기 아이들 중 맘에 드시는 이가 있다면 데리고 다니셔도 되옵니다. 만약 구입하길 희망하신다면 경매가 진행되는 아무 때나 시종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안내인은 연기기 초기 수사인 시종들을 마치 물건처럼 말하고 있었다.

설명을 마친 안내인이 두 손을 비비며 준혁을 바라보자, 준혁은 가장 끝에 있던 여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아이로 하지.”

준혁의 선택에 연기기 여 수사는 움찔하다가 빠르게 걸어와 준혁의 등 뒤에 시립 했다.

“모시게 되어 영광이에요. 미즈하라 세이코라고 해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준 준혁은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물품등록은 어디서 하지?”

“아! 경매 물품등록은 저쪽 통로를 지나 왼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이 아이가 안내할 테니 필요한 건 전부 아이를 통하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여인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가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여인을 무시한 채 준혁은 먼저 발을 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여인이 빠르게 앞에서며 길을 안내했다.

+++

평범한 원목 인테리어.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이동하길 한참. 통로 왼쪽에 마련된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아무 장식도 없이 휑한 모습이었다.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그곳에 앉아있는 음침하게 생긴 노인만이 준혁을 반겨주었다.

준혁을 안내했던 여인은 문 옆에 시립 하더니 방 한쪽의 노인을 향해 눈짓했다.

“저기 계신 분께 물건을 감정받고 경매에 출품하시면 돼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됐다. 기다리거라.”

준혁은 여인의 설명에 노인의 맞은편으로 이동했다.

“클클, 어서 오시구려. 무얼 등록하, 선배님이셨군요. 제가 무얼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요?”

서비스직 특유의 입가만 웃는 얼굴을 하던 노인은 준혁의 수행을 파악하더니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로 변했다.

속으로 피식 웃은 준혁은 공간대에서 허리띠 방어 법기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걸 등록해 주게.”

준혁이 물건을 꺼내 들자 노인의 손엔 어느샌가 투박하게 생긴 안경이 놓여있었다. 노인은 안경을 쓰며 법기를 가져가 자세히 살피고는 영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감정을 마친 듯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님, 이 방어형 법기가 중급치고는 매우 뛰어난 건 맞습니다마는 상급 경매장에 출품하기엔 어려울 것 같습니다요. 괜찮으시다면 중급 경매장으로 등록해도 될는지요?”

준혁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준혁의 말에 노인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등록해 놓겠습니다요.”

노인의 얼굴엔 안도감이 머물러 있었다.

+++

준혁은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여인을 따라 안쪽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 그자는 왜 그리 안절부절못한 거지?”

통로를 걷던 중 준혁이 질문하자, 여인이 움찔하더니 대답했다.

“저···. 그것이.”

“과감히 말해도 된다.”

“결단기 선배님들 중에선 자신의 물건이 상급 경매장에 출품되지 못한다며 힘을 행사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거든요.”

“흠.”

“아무래도 상급 경매장에 올라가는 게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보니···.”

“그렇군.”

대충 예상하였기에 준혁은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입을 닫았다.

준혁이 말을 끊고 침묵하자 연기기 여인은 아까보다 많이 위축되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을 유지한 채 한참을 이동하자, 어느새 상급 경매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준혁이 도착한 곳은 3평 남짓한 개별 공간이었는데, 경매장의 단상과 일반 관람석보다 높은 위치에 마련된 특별실 같은 곳이었다.

아마 결단기 이상의 수사들에게만 제공되는 곳 같았기에, 준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단상이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의자 위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곧 시작할 거예요.”

시선 아래 펼쳐진 관람석에 들어서는 수많은 수사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쯤 내부가 소등되며 어둠이 찾아왔다.

동시에 앞에 마련된 단상에 불이 들어오며 오직 그곳만 사물에 대한 식별이 가능하게 주변의 기운이 변했다.

어두워진 관람석은 어찌 된 일인지 가까이 있어도 존재감이 희미하게 바뀌었다.

‘신기하네. 어느 위치에서 낙찰받는지 모르게 하려고 이런 장치를 한 건가?’

준혁은 이런 현상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떤 진법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우선은 눈앞의 경매에 집중했다.

잠시 후 불이 켜진 단상 위로 키가 짤막하고 뚱뚱한 사내가 올라왔다.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가를 끌어올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경매 진행을 맡게 된 유행상이라고 합니다. 제가 익숙한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하. 그럼 제 진행 스타일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짝짝-

유행상이 손뼉을 두 번 마주치자 몸매가 늘씬한 여인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왔다.

여인이 테이블에 상자를 내려놓고 단상에서 내려가자, 유행상이 상자를 열며 말했다.

“그럼 첫 번째 물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상급 법기인 환자엽도(幻刺葉刀)입니다. 엽도(葉刀)의 여러 종류 중 영기를 가시처럼 발출해 상대방을 기습공격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단언컨대 갑작스레 발동되는 환자엽도 앞에선 상대가 누군들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그럼 경매 시작합니다. 시작가는 영석 500개입니다.”

“510개!”

“600개!”

...

“1,580개!”

“1,600개!”

상대방과 무기를 맞댄 상태에서 기습 공격을 할 수 있는 환자엽도의 공격방식은 상황을 반전시키기에 매우 적합했다. 상급 법기가 영석 1,500~3,000개 사이인걸 감안하면 가격도 그리 높게 형성되지는 않았다.

“더이상 없으시면 환자엽도는 영석 1,750개에 낙찰됩니다. 셋, 둘, 하나! 축하드립니다. 그럼 다음 물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뒤로도 처음 보는 물건들이 등장했다가 주인을 찾아 떠나갔다.

처음부터 물품 판매와 구경이 목적이었던 준혁은 경매에 참여하지 않은 채 물건들의 시세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법기의 가격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법기의 능력과 영기 효율이었다.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기능이 숨어있을수록 가격은 천정부지 치솟았고, 법기를 발동해 유지하는 영력이 적게 소비될수록 고가로 책정되었다.

그때 경매품을 설명하는 유행상의 말에 준혁의 관심이 쏠렸다.

“이번 경매품은 바로 영수(靈獸) 금백사(金白蛇)와 영수를 길들일 수 있는 단약 영속단(鍈束丹)입니다.”

유행상은 양손에 각각 하얀 뱀이 든 투명상자와 녹색 단약을 들고 있었다.

“금백사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식으로 영석을 갈아 넣은 동화초(動華草)를 먹으며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축기 후기까지는 무리 없이 자라는 영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금백사의 수행이 아직 연기기 중기에 불과하지만 잘 키우기만 한다면 금세 수행이 올라갈 겁니다. 옆 나라인 한국 해남이란 곳에 가면 금백사만을 주 영수로 사용하는 영수문(靈獸門)이 따로 있을 정도니 그 효용가치에 대해선 따로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녹색 단약은 금백사에 종속의 인을 새기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단약입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합니다. 시작가는 영석 100개입니다.”

“300개!”

“500개!”

유행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격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영수란 존재는 주인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에 꽤 도움이 되었다. 경지가 올라가면 웬만한 동료보다 든든했기에 누구나 가지길 원했다.

다만 구하기가 어렵고, 종속의 인이라는 술법을 통해 종속 시키기도 까다로운 편이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교감 없이, 강제로 종속시켜 버린다면 수행의 발전도 느렸고, 수명도 그리 길지 않았다.

“더이상 없으십니까?”

결국 금백사와 영속단은 영석 2,120개에 낙찰됐다.

영수의 수행이 연기기 중기라는걸 고려한다면 엄청난 가격임엔 틀림없었다.

같은 돈이면 연기기 수사를 여러 명 사들여 종으로 소유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아! 이번 물건은···. 이게 나왔군요. 저도 욕심이 가던 물건인데. 하필 제가 사회를 맡은 이때 나오다니.”

유행상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더니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자! 다음은 누구라도 탐내는 보물, 결단기 수사도 눈독 들인다는 그 물건! 이번 물건은 바로 차심부(借心符)입니다.”

차심부라는 말에 수많은 수사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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