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 경매 (2) >
일본엔 원영기 수사가 없다.
그럼에도 어느 국가에도 뒤처지지 않는 국력을 보유했는데 그 이유는 원영기를 코앞에 둔 세 명의 결단기 후기 수사 때문.
그중 상급 연기사(鍊器士)라 불리는 야마기 수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인이었다.
그가 만든 법기들은 일반적인 같은 등급의 법기보다 뛰어났다. 특히 공간대는 적게는 1.2배, 많게는 2배가량의 넓이를 자랑할 정도였다.
또한 유일하게 상급 공간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야마기 수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야마기 수사가 속한 곳이 일본의 3대 세력 중 하나라는 대금당이었다.
“제가 알기로 야마기 수사의 물건은 대금당이 아니면 구할 수 없다 들었습니다.”
준혁의 물음에 여인의 얼굴에 강한 자부심이 어렸다.
“맞아요! 저희 소금점은 대금당 산하의 세력, 아니 판매점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그렇군요. 그럼 야마기 수사가 만든 공간대를 볼 수 있을까요?”
여인은 가타부타 말없이 진열장 상자에서 세 가지 공간대를 전부 꺼내 내밀었다.
“여기 마지막게 야마기님이 만든 물건이에요. 다만···. 가격이 다른 것보다 두배는 비싸니, 그 점 염두에 두셔야 해요.”
고개를 끄덕인 준혁은 여인에게서 세 공간대를 건네받아 영기를 흘려보냈다.
그것들을 꼼꼼하게 살피고선 다시 여인에게 돌려주었다.
‘야마기 수사가 만든 공간대는 넓이뿐만 아니라, 영기의 출납이 훨씬 부드럽구나.’
그 말인즉, 미세한 차이일 뿐이지만, 공간대에서 물건을 넣고 빼는데 신속하다는 뜻.
극히 짧은 순간 승부가 판가름 나는 수도자들의 싸움에서 그건 엄청나게 유리한 이점 중 하나였다.
“역시 야마기 수사가 만든 물건이 가장 마음에 드는군요. 이것으로 하지요.”
준혁의 말에 여인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어쩜! 이리 통이 크시다니! 계산 도와드릴게요!”
여인은 판매에 따른 보상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에 기쁨이 서려 있었다.
그때 준혁이 공간대에서 허리띠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혹시 법기 매입도 가능합니까?”
준혁의 말에 여인이 잠시 벙찐 표정을 하다 허리띠를 건네받아 자세히 살폈다.
허리띠는 울릉도주가 사용하던 중급 방어 법기.
“하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중급 이상부터는 경매장에서 판매하시는 게 더 높은 가격이 책정될 텐데···.”
당장 중급 공간대를 살 영석은 충분했지만, 비경 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를 준혁으로썬 영석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랬기에, 사용하지 않는 중급 법기를 판매하고 차익만 지급하려 한 것.
“경매장 말입니까? 흠.”
“수사께서 보이신 이 방어 법기 같은 경우 운만 좋다면 두 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날 수도 있어요. 저희야 바로 매입하는 게 좋지만, 경매장을 이용하길 추천 드려요.”
수사를 상대하기 때문인지, 정직한 여인의 말에 준혁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가 이 지역에 처음이라 그런데, 경매장을 추천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여인의 얼굴이 또 한 번 환해졌다.
“그럼요! 저희 소금점의 경매도 제법 규모가 있답니다. 마침 3주 후면 경매일이니 그때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만약 구매 계약을 해놓고 가시면, 공간대는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팔지 않을게요.”
‘3주라.’
“그리고 이건 수사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
여인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이번 경매엔 엄청난 물건이 나온다고 해요. 법보라는 말까지 있어요.”
비경에 들어가면 결단기 중기가 될 때까지 나오지 않을 계획이었기에, 준혁은 잠시 고민을 하다 수락했다.
“그러죠.”
준혁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적 한 장을 내밀었다.
“경매일이 되면 연락드릴게요. 아 참 근데 이곳에 처음이시면···. 머물 곳은 있으신가요? 저희 소금점에서 운영하는 료칸을 소개해 드릴까요?”
준혁이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자 여인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희 료칸은 영천수(靈泉水)를 사용할 수 있어 가격이 조금 있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으니 꼭 추천해 드려요. 저희만큼 농도 짙은 영천수를 보유한 곳은 몇 군데 되질 않거든요.”
영천수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난 준혁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여인의 안내를 따라 상점에서 제법 떨어진 산속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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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이동하자 산속에 마련된 아담한 숙박시설에 도착했다. 안내를 마친 여인은 인사를 한 후 돌아갔고, 준혁은 숙박시설의 매니저로 보이는 남성의 안내를 받아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지어진 건물로 안내받았다.
방으로 들어와 기감을 퍼트려 주변을 살피려는데 시종으로 보이는 어여쁜 여인 두 명이 얇은 침의를 입은 채 방으로 들어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머무시는 동안 시중을 들게 되었어요.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 모두 연기기 초기 수준.
“시중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준혁의 질문에 두 여인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원하시는 건 모두···.”
피식 웃은 준혁은 손사래를 치며 축객령을 내렸다.
“저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니 두 분 모두 나가셔도 됩니다.”
“저, 그. 그게···.”
준혁이 곧바로 돌려보낼 건 생각하지 못했는지, 여인들이 조금 당황한 듯 서로 눈짓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여인 중 한 명이 준혁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수사님. 저희의 봉사를 받아주시면 안 되시겠어요?”
“바로 나가게 되면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겁니까?”
일본 수도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몰랐기에, 준혁이 궁금함에 질문했다.
“네. 수사분들께 거부당하면···.”
여인의 설명을 들은 준혁은 절로 한숨이 나옴을 느꼈다. 일본 수도계 역시 한국만큼이나 비정하고 냉혹함이 느껴졌던 것.
여인들은 한국으로 치자면 산수 중에서도 재산과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부류로, 이곳에서 고등급 수사들의 시중을 들며, 그들이 매기는 점수에 따라 매년 일정량의 영석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바로 쫓겨나게 된다면 몇 년간은 다시 일할 수가 없게 돼버리는 것.
만약 고등급 수사의 눈에 들어 팔려나가게 된다면, 반쯤은 제자 취급을 받으며 수행을 할 수 있기에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꽤 경쟁이 치열했다. 그랬기에 여인들은 무슨 수를 써도 준혁의 시중을 들겠다는 듯 두 눈을 빛냈다.
짧게 한숨을 내뱉은 준혁은 거실 한쪽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제가 부를 때까지 대기하시면 됩니다.”
“감사해요!”
여인들의 문제를 해결한 준혁은 그녀들을 거실에 둔 채 온천이 딸린 별채로 이동한 후, 주변에 방음진을 설치했다.
그리곤 온천수에 손을 담가보고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영천수구나.”
영천수란 영기를 머금은 샘물로, 수도자의 수행을 올리는 데 매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피로를 해소하는데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했다.
게다가 선주라는 신선들의 술을 만드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게 바로 영천수였다.
“나중에.”
당장이라도 영천수로 만들어진 온천에 들어가 몸을 지지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기에 우선은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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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라는 기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던 준혁은 여전히 품속에 넣고 다니던 이충선의 공간대를 꺼냈다.
공간대 안에 있던 다섯 명의 축기기 수사들의 재산 중, 수행에 도움이 되는 단약은 전부 먹은 지 오래였고 하급 법기들도 전부 사용했기에, 남은 물건은 중급 법기들과 각종 재료, 부적과 그들의 공부에 관한 옥간이 전부였다.
“불필요한 하급 부적이 너무 많구나.”
남들은 없어서 사용 못 하는 부적이 준혁에겐 불필요한 짐이었다.
부적이라는 것이 보조의 기능이 강했기에, 준혁 입장에선 부적을 사용할 시간에 법보를 발동하는 게 훨씬 유리한 일.
“흠. 부적도 흡수할 수 있으려나?”
이것저것 따져본 준혁은 이론적으론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좀 더 연구가 필요해 보였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부적 뭉치들을 한곳에 쑤셔 박아버렸다.
유일하게 삼사형인 예공한이 쓰던 고급 부적들만은 따로 분류해 보관했다.
부적에 이어 각종 재료와 영석들도 따로 분류하고는 옥간들은 천천히 살펴보았다.
옥간 확인까지 끝나자 그들이 사용하던 중급 법기들을 꺼내 나열했다.
이충선이 사용하던 철갑장갑으로 변하던 팔찌와 붉은 수실이 달려있던 반달칼, 김막타의 화염을 일으키던 단궁,
류휘안의 공간대에서 나온 가시가 박혀있는 채찍과 다섯째인 박면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섯 개가 한 벌인 송곳까지.
각각의 법기들을 한 번씩 운용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공간대에 넣었다.
어차피 중급 이하 법기는 직접 사용할 일이 거의 없을 터였다.
다만 당장은 수행이 부족해 하급 법기만을 흡수할 수밖에 없었으나, 후에 수행이 상승한다면 중급 법기도 흡수해야 했기에 영석이 급할 때만 판매하고 최대한 비축해놓을 작정이었다.
모든 물건을 각각의 쓰임에 따라 분류하여 저장한 준혁은 5㎝ 정도밖에 되지 않은 6개가 한 벌인 소형 단검을 손에 쥔 채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이게 이충선의 비밀인가?”
연구회 전투에서 수행을 회복하는 이충선을 보며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손안에 든 소형 단검을 보고는 그 이율 알아차릴 수 있었다.
6개가 한 벌인 소형 단검은 유일한 상급 법기였는데, 공격형이 아닌 자신의 주요 혈도(穴道)에 박아 사용하는 보조용 법기였다.
하지만 상급 법기라고는 하나, 사용 방법이 너무나 기괴해, 혀를 차고는 공간대에 넣어버렸다.
소형 단검은 충전용 법기였는데, 살아있는 수사의 심장에 심어 영력을 충전시킨 후, 필요할 때 자신의 몸에 박아 기력을 회복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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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실내 온천.
준혁은 영천수 온천에 몸을 담은 채 한 손엔 괴뢰 인형을 다른 손엔 옥간 하나를 든 채 생각에 빠져있었다.
소금점 매니저에게 소개받은 숙박시설이 완벽하게 안전한 장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수련에 매진하기보다는 기감을 퍼트려 주변을 파악함과 동시에 오랜만에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기에, 결단기에 오른 후 확인하려고 했던 괴뢰 인형에 관한 내용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충전과 영석 소비를 동시에 하는 것도 신기한데, 결단기 초기까지 출력을 내는 인형이라···.”
보통의 괴뢰 인형은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영기를 불어넣어 움직이는 충전식과 영석을 투입해 사용하는 소비형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차경수의 거처에서 얻은 괴뢰 인형은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차용하고 있는 것. 거기다 최고 출력으로 사용하면 결단기 초기까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걸 파악한 준혁이 괴뢰 인형을 발동시키지 않고 고민에 빠진 건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영석 소비가 너무 심해.”
괴뢰 인형은 아무런 전투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만 하루에 영석 하나가 필요했고, 법기를 사용한다거나 진법 보조 같은 영기를 소모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영석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활성화 하는 데만 영석 하나라니. 재벌이나 돼야 사용하겠어.”
하루 하나라면, 1년이면 365개.
거기에 직접적인 전투에 가담시키면 영석 소비는 수백 개에서 수천 개까지 증가했으니, 여유가 되는 준혁으로도 감당하긴 힘들어 보였다.
한참 고민하던 준혁은 몇 가지 기능만 알아보기 위해 괴뢰 인형에 영기를 주입했다.
영기 주입이 끝나자 손바닥만 하게 줄어있던 괴뢰 인형이 눈을 번쩍 뜨며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1.5m가 조금 넘게 커졌다.
활성화된 괴뢰 인형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람과 똑같이 생기진 않았다.
각 관절 부위와 얼굴은 누가 보아도 목재를 다듬어 강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어색해 보였다.
준혁이 지긋이 바라보자 괴뢰 인형은 스트레칭을 하듯 몸을 움직였다.
“움직임은 사람과 똑같구나.”
한동안 괴뢰 인형을 움직이며 관찰하던 준혁은 공간대에서 영석 10개를 꺼내 인형의 입속으로 쏘아 보낸 후, 수결을 맺었다.
스르륵-
수결이 끝나자 인형의 피부위로 영기가 흘러나오며 마치 공법을 운영하는 것처럼 기이한 파동을 흘렸다.
그리고는 어색하던 관절 부위와 얼굴 형태가 진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처럼 변한 괴뢰 인형이 신기한지, 준혁은 한참 동안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인형의 상태를 점검했다.
한참 후에야 만족할만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옷만 잘 입혀 놓으면 쉽게 구분할 수가 없겠어.”
영석 소비가 과하긴 했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웬만한 법보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막힌 수단이 될듯했다.
“그럼 확인해 볼까?”
미소 짓던 준혁은 손을 뻗어 적마도를 소환한 후에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괴뢰 인형이 두 눈을 빛내며 준혁의 수결을 똑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결이 끝난 순간.
파앗-
괴뢰 인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적마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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