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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44화 (44/408)

# 44 < 경매 (1) >

“근데 돌아가면 어쩌실 겁니까? 축기기 수사가 죽고 혼자 돌아가면 의심을 살 텐데?”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수행 도중 임무를 포기하고 흩어지는 자들이 부지기수였으니, 영석만 아니라면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김춘수는 갑자기 두둑해진 공간대 덕분인지,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했다. 그 후로도 한참을 자신이 아는 얘기를 떠들다 크게 인사하고는 서쪽으로 날아갔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혁은 동북쪽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

경기도 가평의 축령산 정상.

그곳엔 냉담한 표정의 사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동쪽 하늘에서 구름을 가르며 헌앙하게 생긴 사내가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사내는 머리에 금제관을 쓰고 있었는데, 얼굴 가득 여유가 넘쳐나 보였다.

금제관을 쓴 사내는 냉담한 사내를 향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가볍게 목례를 올렸다.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아니오. 나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냉담한 사내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보자고 한 건, 다름 아닌 그자 때문입니다.”

“그자라 하심은?”

“여 가주께서 찾고 계신 최가 말입니다.”

최가라는 말에 냉담한 사내, 여공천이 눈썹을 움찔하며 관심을 보였다.

“찾았습니까?”

황급히 묻는 여공천의 말에 금제관을 쓴 사내, 가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찾긴 했는데···. 또 도주했습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울릉도주가 죽었지요.”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울릉도주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여공천 눈썹을 치켜들자, 가라온이 동해에서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그 말에 여공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축기 중기였던 최가가 3년 만에 결단에 도전하고, 결단에는 실패했지만, 이미 결단기에 오른지 수십 년이 넘은 울릉도주를 죽이고 달아났다?”

“저도 믿기지는 않지만, 수많은 자들이 목격한 일입니다. 울릉도주의 제자들 역시.”

“흐음···.”

여공천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닫자, 잠시 기다리던 가라온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그놈을 왜 찾는 건지는 언제 말씀해 주실 겁니까? 그래도 저희가 함께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가라온이 비릿하게 웃자 여공천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가문의 보물이라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다른 이에겐 그리 중요한 물건이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뭐. 아 참 그놈이 향한 방향을 보면 일본으로 간 게 분명하니 이번엔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여공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일본으로 갔다면, 이미 잡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동맹 아닙니까? 그럼 당분간은 저는 도울 일이 없겠습니다. 이제 최가를 잡은 후에나 또 뵙지요.”

잠시 후 대화를 마친 가라온이 먼저 자리를 떠나자, 혼자남은 여공천이 강원도 방향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꽤나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가.”

산머리곡산에서 발견된 신비경으로 동맹을 맺었을 때만 하여도 이렇게 자주 보게 될 줄 몰랐기에, 여공천은 내심 고민이 깊어졌다.

자신 못지않게 속을 알 수 없는 가라온의 도움이 여간 내키지 않았던 것.

그렇다고 도움의 손길을 거부할 수도 없었으니 고민만 깊어질 뿐이었다.

가라온에 대한 의심에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던 여공천은 무언가가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오 호법 이자는 한 손이라도 보태야 할 이 시기에 어딜 간 건지. 쯧, 하긴 축기기 한 놈을 잡는데 사 호법과 가 수사 둘이면 차고 넘치는 것이긴 하겠지만.”

여공천은 3년 전에 일본으로 떠나 수색작업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을 떠올리다 몸을 돌렸다.

“혹시 모르니 그녀에게도 부탁을 해야겠구나···.”

+++

동북쪽으로 빠르게 이동한 준혁은 삿포로에 도착하기 전, 제법 커다란 섬이 보이자 해안가에 붙어있는 작은 산비탈을 파고 들어가 적당한 거처를 만들었다.

현재 준혁의 상태는 결단기에 이르렀다고 할 순 있지만, 오롯이 결단을 맺었다고 하기엔 애매한 상태.

혈단법을 이용해 강제로 단(丹)을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현상을 겪는 중이었다.

류수영 수사가 보았던 천지 영기가 흩어지며 결단에 실패한 모습은, 사실 혈단법으로 단을 만들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결과였다.

자신의 그릇을 포화 상태에 이르게 한 뒤, 천지 영기를 불러와 결단을 맺는 일반적인 방법과 다르게,

몸속에 먼저 만들어 두었던 정혈을 강제로 모아 임시 단(丹)을 만든 후 하늘을 속이고 천지 영기를 불러 모으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불러 모은 기운이 처음에만 반응하다 중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 것.

원래대로였다면 천지 영기가 사라지고 애매한 상태로 만들어진 단을 영기로 가득 채우기 위해 혈단법에 적힌 원기 강제 흡수법을 이용해 경지를 다져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결단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비경으로 건너와 그와 같은 일을 행하기도 전, 울릉도주의 참견으로 정혈을 낭비해야 했고, 전투를 하며 영기 소모까지 이어지자 단은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한 상황이 돼버린 것.

이대로 눈꽃 비경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돌발 사태를 맞이하여 단이 깨져버릴 수도 있었기에. 준혁은 해안가에 거처를 마련하고 다시 숨어든 것이었다.

방음진을 이용해 주변에 영기파동이 퍼져나가지 않게 조치한 준혁은 공간대에 있던 하급 법기들을 전부 꺼내 펼쳤다.

식인 남녀와 싸울 때 얻었던 륜을 포함해 사각형 방패, 원형 원반, 한 뼘 길이의 단검, 그리고 강만학 제자들의 공간대 속에 있던 하급 법기까지.

하급 법기중, 쇠고랑처럼 생긴 구속용 법기를 제외하고 전부 꺼내 한 번 더 살핀 뒤 그중 세 개를 가져와 주변에 퍼트렸다.

그리곤 깃발을 꺼내 쏘아 보내며 수결을 맺자, 금빛 실이 퍼져나가며 세 법기를 연결하고 금빛 진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준혁이 또 한 번 수결을 변경하자, 진법에 연결된 하급 법기들이 스르륵 녹아내리듯 먼지처럼 변해 사라지며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었다.

“흐음.”

준혁은 단을 채우듯 쏟아지는 고양감에 작게 신음을 흘리다 이내 정신을 집중하고는 기를 조절했다.

+++

두 달 뒤.

그동안 수거해 왔던 하급 법기를 전부 먹어 치운 준혁은 어느새 기운을 회복하고 눈에선 진한 안광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준혁의 표정은 그리 좋질 않았다.

“필요한 양이 차원이 다르구나.”

축기기 후기에서 끝자락으로 가는 한걸음엔 하급 법기 7개의 원기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결단기의 경지를 공고히 하고 단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는 남은 하급 법기를 전부 사용해도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했다.

굳이 준혁의 상태를 표현한다면.

결단기 1성에 못 미치는 0.5성 정도.

결단기 수행에 올라 이제 떨어질 일은 없게 경지를 견고히 만들긴 했지만, 완벽한 결단기의 힘을 사용하는 데엔 살짝 수행이 부족한 정도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결단을 맺을 때 생성된 천지 영기 구름은 하급 법기 따위로 대체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강만학 그자의 이론도 완벽하질 못했어.”

게다가 원기를 흡수하고 만들어진 탁기를 제거하기 위해 강만학이 준비해놓은 청해심공은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완벽하질 않았다.

단약을 먹고 흡수한 순수 영기를 수행으로 바꿀 때는 느끼지 못했던 탁기가, 혈단법의 흡기술을 이용해 하급 법기의 원기를 빨아들이자, 미세하게 탁한 기운이 쌓여가는 중이었다.

물론 문제가 될 정도의 양도 아니었고 극히 미세하긴 했지만, 준혁은 이것의 해결 방법을 빨리 찾지 않는다면 후일 크게 후회하게 될 거란 건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쓰게 웃던 준혁은 울릉도주에게서 얻은 공간대에서 꺼낸 단약을 전부 섭취하고는 다시 수련에 들어갔다.

며칠 뒤 단약 흡수가 끝나자 울릉도주의 공간대를 다시 확인한 준혁은, 칼날이 50㎝ 정도 되는 상급 야나기바(사시미칼)와 쌍칼 법기, 그리고 카펫 형식의 비행법기와 허리띠 모양의 방어 법기를 꺼냈다.

한 번씩 운용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공간대 안에 수납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울릉도주가 사용했던 쌍칼 법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너무 익숙한데?”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준혁은 공간대에서 자신에게 강도짓을 했던 차경수에게서 얻은 쌍칼을 꺼내 들었다.

공간대에서 꺼낸 쌍칼은 울릉도주의 법기와 쌍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같았다.

“똑같다?”

겉모습이 완벽하게 똑같은 네 개의 칼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설마···. 울릉도주와 차 수사 사이에 모종의 무언가가 있나?”

하지만 아무리 고민한다고 답은 나오지 않았기에 상념을 날려버렸다.

결국 준혁은 쌍칼을 조금 더 세심히 살펴본 후 공간대 한쪽에 넣으려다 흠칫하고는 멈춰버리고 말았다.

“영기를 빨아들여?”

영기를 주입해 법기속 능력을 파악하려 했을 땐 아무 반응이 없던 쌍칼 법기는, 양손에 쥔 채 가만히 있자 주변 영기를 천천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양이 인지경처럼 엄청나다고 할 순 없었지만, 만약 공법을 수련하면서 사용한다면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게 뻔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축기기 초기로 알려진 차경수가 중기 수준을 내보인 것도 아마 쌍칼 법기의 힘을 이용해 수련했던 것이 분명했다.

산수 출신인 울릉도주가 혼자 힘으로 제법 빠른 시간에 결단기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

“법보나 보패 급이라 할 순 없지만, 이것도 보물이야.”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쌍칼 두벌을 두루 살펴보고는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보물급이고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건 분명했지만, 준혁에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금세 관심이 사라졌다.

그리곤 각종 재료와 700여 개가 넘는 영석을 옮겨 담고는 마지막으로 옥간 하나를 확인하고는 공간대를 태워버렸다.

“오호. 알부자였군.”

옥간에는 독도를 중심으로 한, 바다 아래 엄청난 양의 영석 광맥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다만 아직 채취를 시도하진 않은 것 같았는데, 그 이유는 세력도 거의 없다시피 한 자신의 수행에 거대 광맥을 소유하게 된다면, 여러 부침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을 거라고 적어놓은 글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나중에 도움이 되겠어.”

만족할만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준혁은 주변을 훼손시켜 머문 흔적을 지운 후 토굴을 빠져나갔다.

이제 비경으로 이동해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고 나면, 영수를 잡아 혈단법에 적힌 흡기술로 대량의 원기를 얻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결단기 중기에 이르게 된다면.

그땐 당당하게 동생을 찾으러 떠날 계획이었다.

+++

삿포로에서 서남 방향으로 대략 50킬로 정도 이동하면 요테이산이라는 원뿔꼴 형태의 홀로 솟은 산이 보인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며, 국가가 통제하지 않아 외국 수사들까지 빈번하게 방문하는 곳 중 하나.

아시아 비경 중 세 번째의 넓이를 자랑하는 눈꽃 비경이 자리한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자유로웠고 그만큼 다툼이 많은 장소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무법천지라 표현할만했다.

준혁은 비경에 들어가면 한동안 사냥과 수련에만 힘쓸 생각이었기에 비경 북쪽에 흐르는 시리베츠강 인근에 마련된 수도자들의 거리를 향해 움직였다.

시리베츠강에 형성되었다 하여 시리베츠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수도자들로 구성된 상점들이 가득했고, 누구라도 영석만 지불하면 새로운 상점을 임대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거리 입구부터 거대한 간판에 약초, 공간대, 검이 그려진 수많은 상가가 준혁을 반겼다.

준혁은 고민 없이 걸어가며 강만학에게서 얻은 얼굴 가리개를 착용하고는 가볍게 수결을 맺어 통역술을 사용했다. 그리곤 공간대가 그려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거리 입구의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여서 그런지 안에는 수많은 연기기 수사들과 드문드문 축기기 수사들이 보였다.

구경이 목적이 아닌, 정확한 목적이 있었기에 준혁은 진열장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장 차림의 여인에게 다가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준혁이 축기기 초기로 수행을 조절해서인지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인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중급 이상의 공간대를 사고 싶은데. 구할 수 있겠습니까?”

준혁의 질문에 여인은 양손으로 멀리 떨어진 계단을 가리켰다.

“이곳은 연기기 수사들을 위한 하급 용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답니다. 수사님께 도움이 될 물건은 위층에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활짝 웃어 보이더니 걸음을 옮겨 계단으로 향했다.

여인의 뒤를 따라 계단에 오르자 그곳에선 축기기 수사 세 명이 진열장을 두리번거리며 법기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여인은 준혁을 이끌어 창가 쪽에 서 있던 숙녀에게 다가갔다. 창가에 서 있던 여인은 작은 키에 긴 생머리, 두 눈이 커다란 귀여운 꼬마 같은 여인이었다.

“언니, 이분께서 중급 공간대를 찾으세요.”

“음? 그래?”

여인은 준혁을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보더니 말했다.

“알겠어. 여긴 내게 맡기고 내려가 봐.”

1층 여인을 돌려보낸 2층 여인이 준혁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수사님. 저는 이곳 소금점(小錦店)의 매니저를 맡은 아부키 나코라고해요.”

“...”

준혁이 자기소개를 할줄 알았던지, 여인은 잠시동안 빤히 그를 바라보다,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진열장 한곳의 상자를 열었다.

“여기 중급 공간대를 보여 드릴게요. 세 가지 종류가 준비되어있고, 그중 하나는 일본의 자랑인 상급 연기사, 야마기 님께서 직접 제작한 물건이랍니다. 정말 운이 좋으신 거예요. 야마기님의 물건은 찾는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여인의 설명에 준혁이 의외란 듯 말을 꺼냈다.

“혹시 이곳과 대금당(大錦黨)은 무슨 관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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