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 결단기 (3) >
준혁의 수행이 결단기 중기까지 올라가자 류수영은 단번에 결판이라도 내려는 듯, 엄청난 기운을 쏟아부으며 쌍칼을 휘둘렀다.
그의 행동에 쌍칼 주위의 대기가 요동치더니 두 마리의 푸른 덩어리가 꿈틀대며 쏘아져 나갔다.
그건 얼핏 보면 용처럼 보였는데,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닌 듯, 외형이 뚜렷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죽어라!”
두 마리의 어설픈 용은 쌍칼을 벗어나면서부터 크기를 키우더니 준혁 앞에 이르렀을 땐 하나의 크기가 거의 오 미터는 넘어서고 있었다.
피식 웃은 준혁이 분광소를 발출하려던 걸 멈추고, 어느새 적마도를 쥔 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
두 마리 용을 피해 한참 벗어난 곳에서 나타난 준혁이 반격을 가하기도 전.
쌍칼을 휘둘렀던 류수영은 어느새 빛무리를 남긴 채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둔광을 내뿜은 채 미칠듯한 속도로 날아가는 류수영을 보며 준혁은 빠르게 수결을 맺은 후 입에서 핏방울 하나를 뱉어냈다.
“도망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준혁도 결단기에 올랐기에 둔광을 사용해 쫓아갈 수도 있었으나. 아직 자신은 경지를 다지지도 못한 상태.
상대를 쫓으며 시간을 오래 끌수록 불리했기에, 단숨에 따라잡아 처리해야 했다.
“위기의 순간에만 사용하려 했더니···. 결단기에 오르자마자 사용하게 되는구나.”
무언가 아쉬운 듯 혀를 찬 준혁이 다시 한번 수결을 맺더니 멀어지고 있는 류수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눈앞에 떠 있던 피 한 방울이 화악 번지며 준혁의 몸이 팟- 하고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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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빛무리를 뿜어대며 허공을 가르는 류수영. 그의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도 안 돼! 결단에 실패했거늘 어찌 수행이!”
일반적으로 결단에 이를 때 생기는 영기구름을 전부 흡수한다 해도, 경지를 다지는데 며칠 혹은 몇 주는 소비해야 했다.
한데 영기구름을 전부 흡수하지도 못한 준혁이 결단기에 오른 것도 말이 되지 않는데, 거기다 갑작스레 수행이 결단 중기까지 올라가니 류수영 입장에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생각도 못 한 채 무작정 도망 중이었다.
“강만학 이놈! 나에게 숨긴 것이 있구나. 어찌 저놈이 평범한 축기기 중기 수사일 수가 있단 말이냐.”
생각해보면 최준혁이란 자는 3년 전에 축기기 중기에 불과했다. 3년 만에 후기에 올랐다는 것만 해도 말이 안 되었거늘, 결단이라니.
어쩌면 처음 결단에 도전하는걸 보는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때 빠르게 날아가는 류수영 시선 멀리, 빨간 점 같은 것이 생겨났다.
“??”
대수롭지 않게 여긴 류수영이 살짝 궤도를 변경하며 날아가는 방향을 틀려고 하는 순간.
빨간 점이 화악 하고 커지더니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다.
“!!!”
너무 놀란 류수영은 충격에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리곤 허공을 박차며 상공으로 치솟았다. 거의 조건 반사처럼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하지만 채 얼마 움직이지도 못한 사이, 빨간 점에서 단검 하나가 폭사해 다가오더니 수십 개로 변하며 류수영을 전방위로 찔러 들어왔다.
“이익!”
결국 류수영은 달아나는 걸 멈추고는 재빨리 공간대에서 방어 법기를 꺼내 몸을 보호해야 했다.
따당- 땅- 땅-
반투명한 보호막이 전신을 가로막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단검들이 보호막에 튕겨 나갔다.
류수영은 갑작스럽게 출현해 엄청난 수의 법기를 날려 보내며 기습하는 준혁에게 공포감을 느끼며 주먹만 한 검은 구슬 두 개를 던졌다.
그리고는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다시 전방으로 쏘아져 달아났다.
하지만 채 십여 미터도 이동하지 못하고 준혁을 마주해야 했다.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인가!”
거의 순간이동 하듯 나타난 준혁은 핏빛 광채가 맴도는 적마도를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동시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십 벌의 단검들이 사방을 격하고 류수영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제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검은 구슬이 콰쾅! 하며 폭발했다.
그 반응에 류수영은 낙담을 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가 던진 검은 구슬이 무엇인가?
결단기 수사도 폭발에 휘말리면 사지 하나는 내어줘야 한다는 폭마탄 이었다.
폭마탄에는 유도기능까지 있어 절대 피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무조건 방어를 해야 한다는 게 수도계의 정설이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류수영은 보호막을 펼치며 눈앞에 다가오는 붉은 장도를 향해 쌍칼을 휘둘렀다.
콰앙!
두 법기가 맞닿으며 강렬한 폭음과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강렬한 진동을 동반한 파동에 두 사람은 동시에 수십 미터를 밀려나야 했다.
“이것도 한번 막아 보시지요!”
파동이 가라앉기도 전, 반동에 한참이나 밀려 나갔던 준혁이 잠시도 지체없이 다시 쏘아져 나가며 적마도를 던져버렸다.
동시에 수결을 맺자, 적마도는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허공에서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적마도는 상관없다는 듯, 수결을 끝내며 어느새 류수영 앞에 도착한 준혁이 빈 허공을 잡아채듯 두 손으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시늉을 하자.
어느샌가 상공에 3m 가까운 청룡언월도가 나타나 무식하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청룡가의 언월도!!”
단순 무식하지만, 파괴력 하나만은 인정받는 언월도의 공격에 류수영은 황급히 원형 방패 하나를 꺼내더니 허공으로 던졌다.
자신을 감싸주고 있던 허리띠 형태의 방어 법기만을 믿기엔 불안했기 때문.
쾅!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이 되듯, 원형 방패를 갈라버린 언월도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이익!”
류수영은 방어 법기에 전력을 다해 영기를 불어넣으며 양손을 떨어져 내리는 언월도를 향해 교차했다.
콰아앙!!
무식하게 떨어져 내리던 언월도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방어 법기가 만든 보호막에 막히자 류수영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히익!”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언월도를 따라 수십 개의 단검이 일렬로 날아오며 정수리를 갈라버릴 듯 낙하하기 시작한 것.
캉- 카가캉 캉-
류수영은 연달아 펼쳐진 공격에 전신을 보호하던 허리띠 법기의 힘마저 줄여야 했다.
“정말 무식 하, 어느새! 컥.”
겨우 일련의 공격을 막아내며 안심하려는 찰라. 어느새 그의 발아래 나타난 준혁이 핏빛 장도를 위로 내 찔렀다.
언월도와 분광소의 공격을 막느라 방비가 약해진 하부를 준혁은 놓치지 않았던 것.
아니 처음부터 모든 공격을 위로 집중해 약점을 만들어 냈던 것이었다.
류수영은 하체의 중요 부위가 갈라지는 그 충격에 전신 영기가 흩어지며 균형을 잃어버렸다.
그 순간, 보호막에 튕겨 날아가 공중에 대기하고 있던 단검들이 다시 날아와 그의 전신을 꿰뚫어 버렸다.
푹- 푸푸푹-
“씨...ㅂ..”
결국 류수영은 상스러운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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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준혁은 단검에 꿰뚫린 채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류수영의 시체를 태워버리고는 그의 법기와 공간대만을 챙겼다.
애초에 결단기 초기에 불과한 류수영이 수행이 급상승한 준혁을 이긴 다는 건 어불성설.
거기다 이제 막 결단기에 오른 준혁이 둔술을 사용할 수 없을 거라 여긴 탓에 시작부터 판단 착오를 하며 허우적댔으니 처음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도망이 아닌 전력을 다했다면, 어쩌면 몇 합은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준혁도 아주 쉽게 이긴 것만은 아니었다.
둔광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게 이동한 혈둔술(血遁術). 혈단법에 수록된 혈둔술은 자신의 정혈 한 방울을 사용하는 것.
한번 사용할 때마다 수행이 깎여나가는 수법이라 위급사항이 아니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준혁의 안색은 하얗게 변해 핏기없는 환자 같은 상태였다.
아직 결단기에 오른 수행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진 전투와 정혈의 낭비는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빨리 이동해 경지를 다져야겠어.”
그때 준혁의 기감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여덟 명의 수사가 느껴졌다.
하지만 일정 거리까지 다가오자, 더는 접근하지 않고 멀리서 동태를 살피기만 했다.
준혁은 멀리서 그들의 복장을 보고는 조금 전 상대했던 결단기 수사와 비슷한 점을 찾아내고는 어찌 된 일인지 파악했다.
“경지를 보니, 사형제 간은 아니고 제자뻘인가 보군.”
저들까지 처리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굳이 이유 없는 살인을 하긴 싫었기에, 잠시 고개를 절레 젓고는 몸을 틀었다.
어차피 천기가 모여든 현상을 보고 몰려든 수사들로 인해 모든 이들이 알게 될터.
소문을 퍼트리는 자가 몇 명 더해진다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으니까.
오히려 결단기 수사가 접근했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면, 어중이떠중이들은 감히 기웃거릴 생각도 못 할 테니 더 나으면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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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추스르기 위해 동쪽으로 이동하던 준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는 그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곳엔 비행법기에 올라탄 두 명의 사내가 있었는데 한 명은 축기기, 다른 한 명은 연기기였다.
그중 준혁이 익숙하다고 여긴 기운은 연기기 수사. 준혁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김 수사.”
“허엇! 최, 최, 최 수사! 아니 최 선배님.”
“왜 그리 놀라시는 겁니까?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상대방은 마동탁과 첫 임무를 나갔을 때 만났던 김춘수 수사. 바로 마동탁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던 수도자였다.
준혁의 너스레에 김춘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옆에 있던 축기기 수사를 힐끔 바라보고는 간신히 입을 뗐다.
“아, 아닙니다. 자, 잘 지내셨습니까?”
그의 어색한 반응에 준혁이 피식 웃더니 옆에 긴장한 채 서 있던 축기기 수사를 가리켰다.
“이자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혹시 강만학이 나를 잡아 오라고 보낸 겁니까?”
파앗-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축기기 수사는 김춘수를 비행법기에서 밀어버리더니 검은 막대 하나를 던졌다.
퍼엉-
검은 막대가 터지며 시야를 가리자 준혁은 예전 마동탁이 도망갔을 때를 떠올리고는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멀어져가는 축기기 수사를 보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 단검 하나가 빠르게 쏘아져 나가더니 축기기 수사의 등을 꿰뚫고는 그대로 목까지 날려버렸다.
잠시 후 분광소가 공간대 하나를 매달고 날아오자 신경을 끈채 바다에 빠져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춘수를 끌어올렸다.
하급 판자형 법기를 꺼내 그 위에 올라탄 김춘수의 표정을 보니 설마 그런 식으로 버림당할지는 몰랐는지 당황과 분노가 섞인 얼굴이었다.
“저, 저도 죽이실 겁니까요?”
정신을 차린 김춘수가 겨우 말을 꺼내자, 준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자를 죽인 건 당신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저와 친분이 있다는걸 알게 된다면 그쪽에서 김 수사를 가만히 두겠습니까?”
“아···.”
“별다른 친분이 없다 해도,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했을 텐데. 굳이 저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해야 할 필욘 없지요.”
준혁의 설명을 들은 김춘수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법기에서 일어나 크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최 선배님.”
“그럼 얘기 좀 해볼까요? 제가 사라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 선배님이 사라지고 난 후 타명종이 울리면서···.”
쉬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놓은 김춘수의 얘기는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것들이었다.
강만학은 준혁이 산문의 보물을 훔쳐 달아나면서 수십 명의 입문 제자를 참살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그를 찾거나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자에겐 막대한 보상을 내걸었다.
이에 축기기뿐 아니라 연기기 산수들까지 대거 움직여 강원도 일대와 동해를 쥐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의외로 강만학의 인맥이 대단했는지 시간이 지나자 수색은 한국 전역을 넘어, 일본과 러시아에서도 준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이 년 지속됐을 뿐, 3년 차에 접어들자 다들 시들해져 일상으로 돌아갔고, 영석이 급한 관문 제자들만이 2명이 한 조를 짜서 계속해 수색 작업을 하며 시간에 따른 일정 보상을 받고 있었던 것.
“김 수사도 영석 때문에 이 일을 하신 겁니까?”
“물론입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전 처음부터 최 선배님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있었습니다요. 다만 돈이···.”
필사적으로 손을 내젓는 그를 보며 준혁이 피식 웃었다.
“마 수사가 죽고 난 뒤 영석 수급에 문제가 생겼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준혁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김춘수의 의중을 떠봤다.
“김 수사가 심부름꾼을 하며 받은 영석이 몇 개입니까?”
“네? 일 년에 영석 20개입니다.”
“흐음.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떠십니까? 앞으로 제가 매년 영석을 30개씩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 심부름꾼 역할을 하시지요?”
준혁의 제안에 김춘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 서른 개 말입니까?”
“왜? 적습니까?”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렇게만 챙겨주신다면 분골쇄신 하겠습니다요.”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는 김춘수를 보며 준혁이 영기를 흘려보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분골쇄신 따위는 필요 없고, 그저 일만 잘해주시면 됩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맡겨주십시오!”
김춘수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준혁이 영석 200여 개와 함께 살짝 붉은 기운이 맴도는 단약을 내밀었다.
“이거 받으십시오. 우선 영석 서른 개는 제하고, 나머지 걸로 제가 원하는 정보를 얻는 데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건···.”
준혁이 뒤이어 단약에 관해 설명하려는데, 김춘수가 그것을 받더니 홀랑 삼켜버렸다.
“안전장치를 위해 주시는 걸 테지요? 오래전 마 수사가 준 것을 먹어보았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아···.”
마 수사가 어떤 걸 줬는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준혁이 건넨 단약에는 준혁의 정혈이 극소량 섞여 있어서, 언제든 원할 때 김춘수의 기혈을 망가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에 준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쿨해서 좋군요. 그럼 제가 원하는 정보는···.”
준혁의 말이 이어질수록 김춘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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