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 결단기 (1) >
뎅~ 뎅~ 뎅~
산이 진동하듯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설악산이 신음했다.
온 산맥에 종소리가 지나가자 소리의 근원지인 대청봉 정상에 수백의 수사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가장 강렬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가 산 정상에서 종을 치던 사내 앞으로 다가가며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강 사제. 이게 무슨 짓이지? 타명종(打鳴鐘)은 스승님이 아니면, 설악에 외세가 침입했을 때를 제외하곤 사용하면 안된다는 걸 모르는 건가?”
머리의 금제관을 둘러쓴 사내의 말에 강만학이 흉신악살같은 얼굴을 한 채 으르렁거렸다.
“사형,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제 제자 전원이 몰살당했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사형과 제가 서로 터부시한다고는 하나 이번만큼은 시비를 걸지 말아주십시오.”
으드득.
강만학에게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강만학의 태도에 이사형 가라온이 움찔 하는 사이, 포동포동한 얼굴의 사내가 급하게 날아오며 강만학 앞에 내려섰다.
“사형!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인데 타명종을 울리신 겁니까? 조금 전에 연구소 방향에서 폭음이 들리던데 혹시 그 일 때문이십니까?”
가라온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조금은 기운을 가라앉힌 강만학이 말했다.
“그건 진법을 강제로 깨부수며 들린 것일 테다.”
“진법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재학아. 네 사질들이···. 으득, 전부 하늘로 돌아갔다.”
“네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충선이와 그 아이들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아니 그게 무슨?!”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서 있던 강만학은 대청봉 인근에 몰려든 입문 제자들과 그들의 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관문 제자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모두 듣거라! 최태식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채 설악에 잠입했던 축기기 수사 하나가 참혹한 짓을 저지른 후 이곳에서 도망쳤다! 그자의 이름은 최준혁! 지금부터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그놈을 찾는다! 만약 그놈의 소식이나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아 가져온다면 누가 되었든 수행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내 수석제자로 맞을 것이며 내 모든 의발을 전수해 줄 것이다!”
웅성웅성!
강만학의 선포에 수백의 관문 제자들이 놀란 얼굴을 하며 서로 무언가를 묻고 답했다.
그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했다.
“제자 질문 있습니다. 이름만으로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까?”
질문을 한 자를 제외하고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지, 곳곳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다!”
강만학은 짧게 대답하며 옥간 수십 개를 허공에 뿌렸다.
“여기 그놈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신상과 외모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모두 빈 옥간에 옮겨 담은 후 옆 사람에게 넘겨주어라.”
잠시 후, 옥간 속 정보를 복사한 수사들은 황급히 사방으로 퍼지며 흩어졌다.
강만학이 요구한 것은 그를 잡아 오라는 것도 아닌, 그저 행방 유무.
그런 일이라면 연기기 수사도 가능한 일.
만약 해내기만 한다면 단번에 인생 역전을 꿈꿀 수 있었으니,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서둘러 움직였다.
가라온 역시 관심이 있는지 어느새 옥간 하나를 이마에 댄 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을 당해 어쩌나 사제? 쯧쯧 그러니 사람 좀 가려가며 받았어야지.”
“지금 시비 거시는 겁니까?”
“아, 아니네. 내가 실언했네. 그럼 나는 가볼 테니 일보게. 아 참. 내 제자들에게도 일러 그놈을 찾으라 할 테니. 그리 알고.”
웃음 지은 채 말하는 가라온을 바라보던 강만학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형.”
“사제 말대로 우리 사이가 아무리 나쁘다 한들, 같은 스승님을 모시는 사형제간 아닌가? 죽은 그 아이들도 내겐 사질들이네. 나도 도와야지.”
잠시 뒤, 가라온은 입맛을 다시듯 혀를 차고는 비행법기에 올라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 순간 새까만 구슬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으나. 강만학이나 도재학 두 사람은 전혀 눈칠 채지 못했다.
가라온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자 강만학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도재학을 쳐다보다 공간대에서 깃발을 꺼내더니 주변에 진법을 발동시켰다.
“사형? 갑자기 방음진은 왜?”
“가 사형이 어디선가 들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지.”
“혹시 따로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강만학의 태도에 도재학도 주변을 슬쩍 살피며 말소리를 낮추었다.
“도망간 그놈에게 인지경이 있다.”
“인지경? 설마 만통방에 적혀있다는, 수행을 돕는다는 그 보물 말입니까?”
“그래.”
강만학의 대답에 도재학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치켜 떠졌다.
“갑자기 여기서 인지경이라니요?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말이다···.”
한참 후, 도재학이 고개를 끄덕이다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니깐 그놈이 일을 벌이고 도망간 직후 인지경이 없어졌다 그 말입니까?”
“그래.”
“헌데 사형. 왜 바로 쫓지 않으신 겁니까? 겨우 축기기라면 진법으로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들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내가 그리하지 않았을 것 같은가? 영기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았기에 쫓아갔네 만은 동해에 이르러 그 흔적마저 사라져 버렸네.”
“어찌 축기기 주제에···. 흠 혹시 바닷속으로 들어간 거 아닙니까?”
도재학의 의견에 강만학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대답했다.
“나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있네. 그렇다고 도망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울릉도주가 내 친우지 않은가? 우선 그곳에 도움을 청해 인근 동해 바다를 샅샅이 뒤질 것이네, 일본으로 건너가 도움도 청하고.”
강만학의 계획을 들은 도재학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인지경을 밝힐 생각이십니까?”
“미쳤는가! 그럼 나에게 알려줄 리 없지. 아마 청룡가도 그랬기에···. 자세한 사정은 빼고 수배를 했었을 테지.”
“알겠습니다. 그럼 전 바로 가보겠습니다. 우선 러시아 쪽 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도재학이 원반 형태의 법기에 올라타 빠르게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강만학도 인상을 찌푸리다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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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음. 그렇게 된 거였단 말이지?”
온통 금으로 도배된 듯, 황금빛이 번쩍이는 방안,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던 가라온이 천천히 눈을 떴다.
“여공천을 만나면 할 얘기가 아주 많겠어.”
그리고는 옆에 놓여있던 작은 방울을 흔들자, 문이 열리며 네 명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스승님, 부르셨습니까?”
네 명의 사내를 천천히 바라보던 가라온은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내에게 옥간 하나를 날려 보냈다.
“너희들도 들었으니 알겠지?”
“아! 강 사숙의 제자들을 죽인 자 말입니까?”
“그래. 지금부터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그자를 찾는다.”
“네?”
“이유는 물을 필요 없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니 무조건 찾아내야 한다.”
“네. 스승님.”
가라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제자들을 향해 공간대 하나를 휙 하고 던졌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재물을 전부 사용해도 좋다. 관문 제자들을 수배하든, 통이문을 이용하든. 무슨 방법을 동원하든 꼭 찾아내야 한다. 알겠느냐?”
“네, 스승님.”
가라온이 거듭 강조하자, 제자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공간대를 받아든 제자들이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가자, 가라온은 허공 어딘가를 노려보며 스산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강만학···. 이 여우 같은 새끼. 만약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인지경을 이용해 내 수행을 추월하려 했겠지? 몰랐으면 모를까 절대 그렇게 두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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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쉬어갈 곳을 마련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간 준혁은 곧장 바닥까지 빠르게 내려갔다.
바닥에 내려서며 분광소를 이용해 일직선으로 땅을 파 내려가길 한참, 어느 정도 깊이에 도달하자 직각으로 방향을 꺾으며 이동하다가 다시 수직으로 올라갔다.
적당한 위치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는 수결을 맺어 영기를 강제로 뿜어냈다.
그러자 영기파동에 밀린 바닷물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고, 빈공간이 확보되자, 간단한 진법으로 더는 물이 차오르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곧이어 영석을 꺼내고는 가루로 만들어 주변에 흩뿌리고 다시 수결을 맺었다.
“후우···. 이제야 숨 좀 쉬겠군.”
임시방편이긴 했지만, 숨 쉴 공간을 마련한 준혁은 바로 흡기를 통해 3m 반경의 공간을 만들어냈고, 분광소를 이용해 바닥과 벽을 정리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거처를 만들어냈다.
짧게 숨을 내뱉고는 다시 진법 깃발을 사방으로 던지며 거처 전체를 감쌀만한 방음진을 설치하고 진법 곳곳에 영석을 박고 다시 수결을 맺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품에서 공간대를 꺼내 한쪽에 내려두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두 개의 공간대도 내려놓았다.
“이 위치를 특정한 후에 조사하지 않는 이상 절대 찾지 못하겠지?”
만약 자신보다 수십 배 넓게 기감을 퍼트리거나 운용할 수 있다면, 이곳이 들킬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수사는 아마 원영기인 도율 뿐일 테고, 그는 이미 100년 전에 실종된 상태였으니까.
준혁은 다시 한번 진법을 점검해보다 무슨 생각인지 거처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고, 산호가 잔뜩 박힌 바윗덩어리를 가지고 와, 해저 표면에 뚫린 입구를 막아 버리고서야 안심이 되는지 다시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곤 곧장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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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을 꼬박 회복에 전념한 준혁은 몸 상태가 최상이 되자 공간대 속에 있던 진법 옥간을 전부 꺼내 진열했다.
처음엔 체력만 회복하고 일본으로 도망갈 생각이었으나, 어쩌면 이곳 바닷속이 가장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법을 온전히 익히고 단약으로 수행을 올릴 때까지는 머물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안정화된 공기 질을 유지하기 위해선 영석이 소모됐지만, 위험과 저울질해보자면 괜찮은 선택이었다.
마음을 정하자 바로 진법 공부를 시작하려던 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만학의 제자들에게서 수거한 공간대를 확인했다.
“없군.”
준혁은 그들의 공간대에서 옥간들만 꺼내서 한 번씩 확인해보고는 영단으로 생각되는 자기병들만 전부 회수한 채 다시 한쪽에 치워버렸다.
반영근에 대해 조사한 자료가 있나 싶었지만, 연구회 자료는 전부 따로 보관하는지, 누구의 공간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허나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다.”
반영근에 관한 연구 자료는 얻지 못했지만, 자신이 행한 일이 잘한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상념을 정리한 준혁은 아직 완벽히 익히지 못한 초급 진법서 하나를 가져와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렇게 바닷속 시간은 조용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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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그동안 준혁은 모든 일을 제쳐둔 채 진법에만 매달렸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학자처럼 수준에 맞춰, 경지를 다져가며 모든 걸 하나씩 따져가면 익힌 것이 아닌.
혈단법을 운용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진법 위주로 익혀나갔다.
그러길 6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필요한 공부를 마치고 혈단법 1장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원기를 흡수하기 위해 오행에 따라 영기를 순환시킨다라···.”
혈단법 1장은 원기의 정의와 구역설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를 흡수하기 위해선 원하는 범위를 설정해야 했는데, 그 범위가 수행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축기기인 준혁은 겨우 1평 남짓 정도의 넓이.
겨우 그 정도 넓이만을 지배하에 두고, 원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만약 생명체가 상하좌우로 1평이 넘을 정도의 크기라면 온전하게 기를 흡수할 수도 없는 것.
“피를 흡수한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1장을 익혀나가며 준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혈단법은 절대 사악한 마공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체나 생명체가 가진 순수한 원기만을 가져가기에 그 어떤 공법보다 위험이 적었고, 부작용이라는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 탁기를 완벽하게 배출한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또 한 가지 효능을 알수 있엇다.
“내 흡기를 조절할 수 있겠어!”
그동안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3m가 무조건 흡수당해 사라졌다면, 혈단법의 구역설정에 관한 것을 적용한다면, 정확히 원하는 지역, 혹은 대상에게만 흡기를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단 걸.
어느새 준혁은 쉬지 않고 수결을 맺으며 방위를 짚고 있었고, 그의 주위로 수많은 금빛 진법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허공엔 서너 개가 넘는 진법 옥간들이 동시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공간대에선 영석이 빠져나와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자기병의 마개는 기쁘다는 듯이 활짝 열려 안에 내용물을 뱉어 준혁의 입속으로 날려 보냈다.
그렇게 잔잔한 바닷속에서 태풍과도 같은 수련이 지속되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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