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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40화 (40/408)

# 40 < 연구회 (4) >

몇 번의 충돌이 이어지자 준혁은 낭패한 모습이 되었고, 이충선은 다 이긴 것처럼 괴소를 흘렸다.

“크흐흑, 네놈이 가진 법기가 뛰어나단 걸 알겠다만, 이제 포기하지?”

‘저자는 어찌 회복하고 있는 거지?’

준혁은 적마도를 사용하며 이충선을 공격하고, 그의 공격을 회피할 때마다 안색이 파리해져 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충선은 영기를 소모하면서도 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시도해 보는 수밖에.’

또다시 크게 도약하며 달려드는 이충선을 보며, 준혁은 적마도를 이용해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그리곤 적마도를 이충선에게 던져버린 후, 공간대에서 검은 깃발 네 개를 꺼내 들고는 공중으로 던졌다.

빠르게 수결을 맺자, 네 개의 깃발은 허공으로 떠오르며 펄럭거리다가 사방으로 퍼지며 땅에 박혀 들어갔다.

그 순간 주변에 진한 흑무가 올라오며 서서히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이충선은 마동탁의 보물로 의심하고 있던 적마도가 자신에게 날아오자 급하게 방어하다 조심스럽게 잡아챘다.

희희낙락한 표정을 하며 빠르게 적마도를 살피다가 눈앞에 흑무가 차오르자 그제야 무언갈 알아차리고는 냉소와 함께 적마도를 자신의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크흐, 네놈. 보물을 던져주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흑무진을 펼쳐?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으냐? 흑무진 따위로 시야를 가린다고 해서 내가 네놈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것 같았더냐!”

어느 순간 주변에 흑무가 가득 차올라 공동안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변했다.

그 순간 단검 한 자루가 맹렬하게 날아와 이충선의 등 뒤를 노렸다.

깡-

이충선은 철갑 장갑을 이용해 간단하게 분광소를 쳐내버린 후, 싸늘하게 비웃었다.

“겨우 한다는 게.”

슈악-

그때 튕겨 나갔던 분광소가 다시 쇄도해오자, 이번에도 쉽게 막아냈다.

깡-

영력이 바닥났는지 아까와 같은 매서움은 없었지만, 단검이 여러 개로 증식하는 걸 눈으로 보았기에 이충선은 경거망동하진 않았다.

튕겨 나간 단검이 허공에서 선회하며 또다시 날아올 것처럼 보이자, 이충선은 전방위로 기감을 퍼트리며 준혁을 찾았다.

“머저리 같은 놈, 흑무진으로 시야를 가려봐야 영기의 흐름으로 전부 파악이 가능하거늘.”

한심하다는 듯 말을 꺼낸 이충선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어? 어찌 이럴 수가? 어찌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는 거지?”

흑무진이 아무리 시야를 빼앗아간다 해도, 수도자들의 고유 영기 흐름을 막아내진 못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무속에서 날아오는 단검 공격도 어렵지 않게 막아냈던 것.

하지만 기감을 퍼트려본 이충선은 어디에서도 준혁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만약 준혁이 자신보다 고등급 수사였다면, 어떤 술법이나 법기를 이용해 몸을 감췄다고 의심했을 터였다.

“말도 안 돼.”

하지만 곧 죽을 것처럼 헥헥 대던 상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허공을 선회한 단검은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한편, 흑무진을 이용해 검은 안개 속으로 숨어든 준혁은 이충선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게 통하는구나.’

준혁도 흑무진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만 결단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특수체질을 믿고 반쯤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도한 것.

적마도를 버리며 회피를 포기한다는 건 꽤 위험성이 큰 행동이었다.

‘어쩔 수 없지. 분광소와 동시에 사용할만한 상태가 아니니.’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영기를 회복하기 위해 단약이라도 먹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에겐 영근이 없어서 공법을 운용하며 먹지 않으면 그냥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기습 공격이 통하지 않아 영기 소모만 이어지는 적마도를 버리고 다른 방법을 강구했던 것이다.

슈욱-

어느새 준혁의 손바닥 위론 안개에 사무쳐 흔적도 보이지 않는 식검이 솟아 올라왔다.

준혁은 빠르게 이충선을 살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역시, 식검은 눈치채질 못하는군.’

법기를 공간대에서 꺼내는 것만으로도 법기 고유의 영기 때문에 위치를 발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식검은 그러한 상리를 벗어나 있었다.

적마도를 잡아먹었던 때를 빼고는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않았던 식검. 그런 식검의 유일한 능력이라 불릴만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무 기운도 내뿜지 않는 무(無)였다.

손에 쥐고 있음에도 흑무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식검.

준혁은 분광소를 증식시키며 공동 전체를 어지럽게 선회시켰다.

“이런다고 될 것 같으냐!”

이충선은 분광소가 다시금 증식해 숫자를 늘려가자, 공간대에서 노란 깃발을 꺼내 사방에 던져댔다.

그리곤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이깟 흑무진! 당장 날려주마!”

그의 행동에 준혁은 허공에 선회하고 있던 분광소를 한꺼번에 전방위에서 쏘아 보냈다.

양손으로 수결을 맺던 이충선은 한 손만을 치켜들며 허공을 강타했다.

“안된다고 했다!!”

콰앙-

순간 허공에서 영기파동이 일어나며 날아오던 분광소를 하나씩 날려버렸다.

그리곤 다시금 가슴 앞에 양손을 모으며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스으윽-

그때 이충선의 정 중앙 위 허공에서 단검 하나가 자유낙하 하기 시작했다.

이 한 수를 위해 계속해서 분광소로 주변을 어지럽히며 시선을 빼앗았던 것.

분광소에 포개지듯 붙어 이충선의 머리 위로 이동한 식검이 빠르게 떨어져 내리며 이충선의 정수리를 꿰뚫어 버릴 것처럼 쇄도했다.

“무슨!”

이충선은 식검이 거의 도달할 때가 되어서야 공기의 흐름으로 그것을 느꼈는지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며 손을 뻗었다.

퍼걱-

하지만 그의 행동은 늦은 감이 있었다.

고개를 살짝 치켜듦과 동시에 식검은 그의 이마를 꿰뚫으며 박혀 버렸다.

이충선의 패착, 그것은 영기를 느끼는 수도자로서 기라는 것이 천하 만물에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대명제를 절대 명제로 착각한 것.

+++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로 싸늘하게 굳어버린 이충선의 시체 가까이 다가가며 준혁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다음 생엔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준혁이 손을 휘저으자 그의 이마에 꽂혀 있던 식검이 쑤욱 빠져나오며 손안에 들어왔다.

“이자는 잡아먹지 않는군. 흠. 인간이 아닌 수사만 먹는 것인가?”

적마도 때와 비교해본 준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상념을 날려버렸다.

몇 번의 경우만으로 대충 예상하기보단 시간이 날 때 여러 번 실험해보고 능력이 무언지 알아내야 했으니까.

전부 부서지고 망가진 주변을 둘러본 준혁은 혹시라도 누군가가 더 오기 전 빨리 떠나기 위해 진법 깃발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다 잠시 멈춰서고는 손을 저었다.

그의 손짓에 주변에 흩어져있던 강만학 제자들의 공간대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법기들이 빨려 들어왔다.

“그래. 물건에는 죄가 없지.”

참혹한 짓을 벌인 놈들을 징벌하듯 처리하고 나서 그들의 전리품을 챙긴다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급히 나가려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게다가 물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느꼈다.

물건은 물건일 뿐.

“내가 재물을 노리고 살인을 하지 않은 이상. 이것들은 그저 땅에 떨어져 있는 주인 없는 물건일 뿐이다.”

준혁이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되뇐 이유는 하나였다. 정당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얻는 것과 재물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

두 가지는 이유와 과정만 다르지 결과는 같았다.

그랬기에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야지만, 수도 생활의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심마(心魔)가 오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것.

아직까진 자신의 의지와 신념만으로 세상을 나아가기엔 준혁은 부족한 한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그때 준혁의 눈에 부서진 연구회 집기들 사이로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던 오태식 수사의 머리가 보였다.

짧게 한숨을 내쉰 준혁이 수결을 맺자, 화염 덩어리가 날아가 머리를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오 수사.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

체력을 회복할 새도 없이 동굴을 지나친 준혁은 수거한 공간대를 이충선의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여러 명의 물건을 하나로 모은 공간대는 내부의 부피가 너무 커져서인지 허리에 찬 공간대엔 들어가질 않았다.

할 수 없이 품에 집어넣고는 곧장 동굴 입구인 진법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비행법기를 꺼내 들었다.

일이 터진 이상 이제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인지경은 나중에 소환하자. 강만학이 끼어들면 더 힘들어질 거야.’

당장 인지경을 소환하면 비행법기를 빠르게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반대로 인지경을 잃어버린 강만학이 자신을 찾기 시작하면 그게 더 문제가 될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준혁이 막 꽃밭처럼 보이는 진법을 떠나려는 순간, 가장 듣기 싫은. 지금 상황에선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태식이 네 녀석이 여긴 어쩐 일이냐?”

무언가에 놀란 듯 강만학은 조금 초조해 보이고 눈초리가 매섭게 변해있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준혁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강만학이 다그치듯 되물었다.

“어쩐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당분간 수련에만 집중하라 했거늘. 그리고 꼴은 왜 그러느냐?”

“죄송합니다. 대사형이 일을 시킬 게 있다며 불러서 할 수 없이···. 아 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안에서 큰 폭발이 있었습니다. 하여 대사형의 명으로 수습할 물건들을 가지러 가는 길이옵니다.”

“폭발? 어쩐지, 충선이와 연결된 심령이 끊겼다 했더니, 무언가 잘못된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같이 들어가자.”

강만학이 몸을 돌리자 준혁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대사형의 처소에 들러 물건만 가지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일을 수습하고 나면 충선이 녀석을 따끔하게 혼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앞으론 절대 수련을 방해하지 못 하게 할 테니.”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리고···. 아니다. 돌아와서 얘기하자꾸나.”

준혁이 다시 한번 허리를 깊게 숙이자 강만학이 입가를 살짝 올리며 준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예전에 보았던 그 웃음.

그리곤 진법을 통과할 때 필요한 옥패도 사용하지 않고, 수결만으로 문을 만들더니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강만학이 진법안으로 사라지자마자.

준혁은 다급하게 공간대에서 진법 법기를 꺼내고선 연구소의 입구 바로 아랫부분에 쏘아 보내며 급하게 수결을 맺었다.

원반 형태의 진법 법기는 수결이 끝나자 주변 일대를 감싸며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냈다.

진법이 활성화되자 공간대에서 검은 깃발을 꺼내 사방으로 뿌리며 영석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는 주변으로 흩뿌리듯 던졌다.

그리곤 또 한 번 수결을 맺자 주변 기운이 출렁하는 것처럼 요동치더니 꽃밭은 사라지고 고요한 평지처럼 바뀌어버렸다.

“대방음진에 환영진이면 당장은 쫓지 못하겠지.”

안에서 강만학이 튀어나오기 전에 빨리 벗어나야 했기에 재빨리 비행법기에 올랐다.

“인지경!”

순간 준혁의 머리 위 허공이 갈라지며 거울 하나가 쑤욱 빠져나왔고, 빠져나옴과 동시에 준혁에게 강렬한 영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의 제자들이 전부 죽었다는 걸 알면 준혁을 가만둘 리 없었으니, 더는 인지경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

콰아앙!

그 순간!

진법 입구에 엄청난 충격파가 터지며 대방음진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분노한 강만학의 포효가 들려왔다.

“최준혁!! 이놈!!!”

콰아앙!

그리고 충격파와 분노의 외침이 주변에 퍼져나갈 때, 준혁은 허공을 가르며 동해 방면으로 쏘아져 날아가 버렸다.

+++

대방음진이 아무리 충격에 견고하다고는 하나, 결국은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진법의 중추가 되는 원반이 쉽게 드러나지 않게 환영진으로 가렸다고는 하나, 강만학의 진법 조예도 그리 낮지 않은 것.

준혁은 인지경의 도움을 받아 전심전력을 쏟아부으며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강만학이 쫓아오기 전 일본 땅에 도착하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선택.

허나,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속력을 줄여야만 했다.

“인지경의 도움을 받아도, 체력적인 문제는 어쩔 수가 없구나.”

이미 이충선을 비롯한 동급 축기기 수사들과 혈투를 벌이고 난 후 떨어진 체력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결국 준혁은 한 번에 일본까지 날아가는 걸 포기해야 했다. 이렇게 가다간 따라 잡힐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망망대해.

쉴만한 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결단기 수사가 도주(島主)로 있는 울릉도 방면으로 가기에는 꺼림직했기에 할 수 없이 준혁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래.

바로 바닷속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구나.”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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