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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3화 (33/408)
  • # 33 < 약속 (1) >

    물건 정리를 끝낸 준혁은 곧바로 수련을 시작하려다 잠시 멈칫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흠···. 그래 마 수사의 부탁부터 처리하자.”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면 아무런 방해 없이 공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중간에 마 수사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마무리를 짓고 수련에 힘쓰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

    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동굴 밖으로 나갔다, 판자형 하급 비행법기를 꺼내고는 방향을 가늠했다.

    “속초라고 했으니까. 저쪽이겠군.”

    마 수사의 동생이 머무는 곳을 대충 가늠한 준혁은 비행 법기에 영기를 불어넣으며 허공을 갈랐다.

    중급 비행 법기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괜한 이목을 피하고자, 설악산 입문 시 받았던 판자형 하급 비행 법기에 선 채.

    +++

    철썩- 철썩-

    파도가 치는 해안가 마을.

    마을에서도 바닷가 끝부분에 위치한 단층 벽돌식 주택 앞에 내려선 준혁은 기감을 퍼트려 인기척을 파악하고는 대문을 두드렸다.

    “마동화씨. 계십니까?”

    잠시 후 수척한 얼굴의 40대 후반 여성이 대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신가요?”

    “저는 설악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마동탁 사형의 후배입니다. 사형 심부름을 왔으니 잠시 들어가게 해주시겠습니까?”

    “아! 수도자분이시군요.”

    여인은 황급히 놀라며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여인의 안내에 따라 주택 안으로 들어가자 평범한 일반인의 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오래된 티브이와 소파가 그녀의 씀씀이를 단번에 보여주었다.

    “근데 오라비는 어쩌고, 수사님께서?”

    “마 사형은 경지가 올라 얼마 전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습니다.”

    “아···.”

    “스승님의 명으로 급하게 폐관을 시작하다 보니 저에게 동생분을 부탁하셨습니다.”

    “아···.”

    그녀는 짧게 탄식하더니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어요. 급할 땐 다른 분을 대신 보낼 테니 놀라지 말라고.”

    ‘수도자란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준비했었나 보구나.’

    준혁은 공간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약 수십 병을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

    “그동안 복용해 오셨으니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일주일에 한 알 아시지요?”

    “네.”

    “그리고 여기 영석도 받으십시오. 정확히 천오백 개입니다.”

    준혁의 말에 마 수사의 동생이 화들짝 놀랐다.

    “네? 영석 천오백 개요? 갑자기 왜···.”

    영석 천오백 개라면 산수 출신의 축기기 수사에게도 엄청난 재산이었다. 여서령이나 대공자처럼 금수저로 타고나지 않은 이상 일반적인 산수는 모으기도 힘든 일.

    “제가 그 이유를 알겠습니까? 저는 시킨 대로 행할 뿐이지요. 다만 짐작건대. 사형의 폐관이 일, 이 년 안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수십 년을 폐관하기도 하니···. 아마 그런 상황을 걱정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확히는 마동탁이 남긴 천 개와 강만학이 마 수사의 동생에게 주라며 건넨 오백 개였다.

    “아···.”

    “이 단약을 다 먹고 나면 그땐 약학원 지점에 방문해 새로운 약을 구입하십시오. 단 영석을 함부로 내보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소문은 내지 마시고요. 아시겠습니까?”

    “네.”

    여인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자 준혁은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주택을 나섰다.

    떠나기 전 준혁은 그녀를 보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역시 반영근으로 고통받는 동생이 있습니다.”

    “저, 정말이신가요?”

    “못난 이 오라비 때문에 변변찮은 약조차 못 먹고 평생을 고통받았지요.”

    “......”

    마동탁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부탁했는지를 알 것 같았기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넋두리를 늘어놓으려다 멈칫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오라비를 두셨습니다. 그럼 이만.”

    팟-

    준혁은 마 수사의 동생이 뭐라 답하기도 전, 허공으로 솟구치고는 비행법기에 올라탔다.

    그리곤 그대로 설악산 방향으로 쏘아져 사라졌다.

    준혁이 떠나간 자리. 마 수사의 동생은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준혁이 사라진 방향으로 인사를 했다.

    뚝-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에선 이유 모를 눈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설악산으로 돌아온 준혁은 곧장 처소로 들어가지 않고 산 정상보다 높은 상공으로 올라가 뻥 뚫린 조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다시 동해안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어느 정도 마음을 털어낼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준혁은 동굴로 돌아오고는 곧장 새로 얻은 공법을 꺼내 들었다.

    월하현적체공과 반력탄자공.

    우선 중요한 점을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두 공법을 살피기도 수일.

    준혁은 작은 한숨과 함께. 옥간을 공간대에 정리했다.

    “역시. 이 두 공법도 흡기는 불가능하네.”

    태극단공을 운용할 때처럼 주변 사물의 영기를 잡아먹듯 수련하는 건 가능할 것 같았지만, 공법 고유의 흡기 방법을 이용해 정상적으로 수련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준혁은 강만학이 건네준 물건, 혈단법의 앞부분이 담긴 옥간과 함께 받았던 옥간, 그리고 서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우선은 한번 살펴보았던 혈단법의 앞부분은 내버려 두고 다른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음, 청해심공(靑海心功)이라.”

    다른 옥간에는 마음을 청아하게 해주는 청해심공이라는 공법이 적혀있었는데, 혈단법의 세 번째 주요 기능인 탁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대체하기 위해 강만학이 준비한 것이었다.

    강만학의 말에 따르면, 혈단법은 고대 유적으로 의심되는 곳에서 발견했는데, 처음부터 세 번째 ‘탁기 제거 법’은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총 3장 중 1장과 2장만 존재하는 불완전한 공법이었던 것.

    하지만 불완전한 공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효능이 너무 뛰어나 보였기에, 강만학은 홀로 그것을 연구했고, 대체재로 청해심공을 엮어 놓은 것.

    손글씨로 적어놓은 서책엔 강만학이 혈단법을 연구하며 깨달은 것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서책의 내용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준혁은 강만학이 준비한 청해심공이 이론적으론 꽤 훌륭한 대체재라는 걸 인정했다.

    혈단법은 총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 원기를 강제로 흡수한다.

    둘째, 흡수한 원기를 핏속에 집어넣어 강제로 정혈을 만들어낸다.

    셋째. 정혈을 만든 후 남은 찌거기(탁기)를 체외로 배출한다.

    청해심공은 탁기를 체외로 배출하진 못하지만, 탁한 기운을 다시 정제하여 몸에 해가 되지 않게 만드는 것.

    즉 우리 몸이 화목난로이고 흡수하는 기가 장작이라고 한다면, 불을 만들고 난 잿가루를 탁기라 할 수 있고, 청해심공은 그런 잿가루를 분해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해주었다.

    사흘 밤낮 동안 청해심공과 서책을 달달 외우고는 다시 혈단법의 기를 흡수하는 법이 적힌 옥간을 집어 들었다.

    “역시, 진법 지식이 없으면 익히는 건 불가능해.”

    새삼 공법 습득의 난이도를 체감한 준혁은 혈단법이 적힌 옥간들 마저 정리하고는 한쪽 구석에 분류해놓았던 진법 옥간 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슈욱-

    기초 칸에 분류해놓은 옥간 중 하나가 빨려 들어가듯 준혁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렇게 혈단법을 익히기 위한 진법 공부가 시작되었다.

    +++

    삼 개월 후.

    고요한 설악산 공룡능선.

    겉과 달리 공룡능선에 뚫린 수많은 동굴은 지식욕을 앞세운 수사들로 인해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그중 한 동굴은 그 정도가 남달랐다.

    동굴 안에 앉아 있던 준혁이 손을 가볍게 휘젓자.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떠 있던 한 자 길이의 검은 깃발들이 세차게 펄럭거렸다.

    잠시 후 준혁이 수결을 맺은 후 손가락으로 네 방위를 짚자, 검은 깃발들이 빠르게 퍼지며 각각 네 방위에 깊숙이 박혔다.

    동시에 주변 공기의 질이 변하더니, 검은빛을 띠는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자 준혁은 재빨리 수결을 바꾼 후 마지막엔 합장을했다.

    “합!”

    그 순간. 흑무가 급격히 증가하더니. 어느새 동굴을 가득 채워 한 치 앞도 보이질 않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무 안에서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준혁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후우. 흑무진이 성공했으니 이제 초급은 넘어선 건가?”

    진법에는 공법과 달리 정확히 정해진 수행 급수가 없었다.

    다만 얼마만큼 숙련되게, 적은 재료와 영기만으로 진법을 펼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궁극적으론 아무것도 없이 오직 영기만을 이용해 진법을 사용하는 게 그 끝이라 할 수 있었다.

    검은 안개로 시야와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흑무진(黑霧陳)은 초급 진법 중에서도 나름 위력이 높은 편이었기에, 그런 흑무진을 진법 깃발 네 벌과 영석 몇 개만으로 펼쳐냈으니 준혁의 실력은 초급 진법가로 불리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준혁은 진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난 후, 자신이 진법에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외우는 건 시간이 걸렸으나, 한번 외운 것들은 이해가 어렵지 않았던 것.

    특히나 진법에서 가장 중요한 방위를 정하는 일과 각 방위를 하나의 객체로 만들어서 상호 작용을 일어나게 하는 일이 매우 수월했다.

    기초와 초급 진법서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영기의 질이 한정돼있기에, 각 방위를 객체화시키는 일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준혁은 딱히 힘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 흑무진에선 검은 안개를 만들기 위해선, 하늘을 정하고, 그 후 구름을 지정한 후, 나머지 두 방위가 그것을 보조하게 설정해야 했다.

    대부분은 하늘을 정하는 일부터 막히는데, 그 이유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닌, 시전자가 천지 기운을 읽고 임의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것이 어렵지 않았다.

    진법 깃발을 이용해 임의의 장소를 하늘로 정했다고 결정하면, 심상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마치 그 자리가 하늘이라 생각하면 마음속에 확고한 확신이 생기는 것처럼.

    “흠. 혹시 서양의 수도공법에 더 잘 맞는 체질인가?”

    여러 서적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서양의 수도자들은 술법이나 법기를 사용할 때 수결 대신 ‘구동어, 주문’이라는 걸 외친다고 했다.

    그 이유가 심상을 이미지화해서 술법을 이루는 영기 사슬을 더욱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라 했다.

    준혁이 인지경을 비롯한 법보들을 소환할 때 법보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

    그리고 심상을 이미지화해서 영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진법을 이루는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서양으로 날아가 궁금한걸 알아볼 순 없었으니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꽤나 귀찮게 하는군.”

    다시 진법 수련에 매진하려던 준혁은 동굴의 입구에 설치해둔 진법에서 전해오는 진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마동탁의 바로 위 사형인 차 수사가 주기적으로 전음부를 날리는 것.

    시간이 나면 한번 보자는 안부 인사 같은 것이었기에 무시하고 수련에만 매진했다.

    스륵-

    준혁의 손짓에 동굴의 진법 문에 매달려 있던 전음부들이 팔랑거리며 날아와 준혁의 손위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전음부가 타들어 가며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찌 이 우 형의 부탁을 이리도 거절하는 거지? 가볍게 선주 한잔하는 게 어떤가? 기다리겠네.

    “역시나 또 얼굴 한번 보자는 소리군.”

    준혁은 혀를 차며 손을 휘익 저어버려 전음부를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마지막 전음부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최 사제, 얼마 전부터 차 수사가 보이질 않네. 자네를 만나러 간다고 한 이후부터이니. 이걸 확인한다면 잠깐 시간을 내어 주게.

    마지막 전음부는 강만학의 일곱 제자 중 넷째인 류 수사였다.

    무시하고 다시 수련하려던 준혁은 결국 쉽게 집중이 되질 않자, 가볍게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차 수사와 류 수사를 한번은 만나봐야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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