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 전리품 >
직경 5m는 될법한 시원하게 뚫린 동굴.
마동탁의 처소는 준혁의 동굴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다. 동굴 벽면엔 나무로 만든 진열장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돼 있어, 깔끔한 그의 성격을 알려 주었다.
준혁은 진열장의 물건들은 그대로 둔 채 처소 안쪽으로 들어가 침대를 치웠다.
그리고는 가볍게 수결을 맺자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1평 남짓한 구덩이가 나타났다.
“진법으로 막아놓은 처소 안에 또 다른 진법으로 물건들을 숨겨놓다니.”
구덩이엔 커다란 상자가 있었고 준혁은 상자 안의 물건들을 전부 챙겼다.
그리곤 침대를 원래대로 돌려놓은 후 침대 옆 협탁을 치우자 그곳에도 작은 구덩이가 존재했다.
작은 구덩이 안에는 책자와 하급 공간대 하나가 놓여있었기에 안의 내용물들을 확인하고는 협탁마저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마 수사. 내 약속은 반드시 지켜드릴 테니···. 편히 쉬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작은 온기마저 사라져버린 쓸쓸한 처소를 한번 둘러본 준혁은 짧게 혀를 차고는 명복을 빌어준 후 동굴 밖으로 향했다.
진열장은 나갈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기에 그 안에 놓인 각종 물건은 처음의 정돈된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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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준혁은 마동탁의 처소에서 가지고 온 책자를 꺼내 들었다.
수도자가 되면 대부분 옥간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기에, 책자는 보기 드문 것.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준혁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참, 힘들게도 사셨습니다.”
마동탁이 비주기적으로 적어놓은 일기에 준혁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가 수도계에 들어선 후 갖은 고초를 겪고 축기기까지 올라온 내용이 적혀있었다.
또한 사형제 간의 견제와 시기 질투, 여동생에 대한 걱정, 그리고 강만학을 필두로 이루어진 연구회라는 모임에 대한 것까지.
“인체실험이라. 설마 사람을 실험 삼아 연구를 한단 말인가?”
연구회가 무엇인지 상세히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추론할만한 내용은 있었다.
-처음으로 연구회에 참여했다.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동화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참아야 한다.
-거부감이 들었던 인체실험도 시간이 지나니 무뎌간다. 다른 사형들도 다들 이렇게 변해간 거겠지?
-세 명의 반영근자를 연구했다. 그들의 신체 기관은 확실히 다른 이들과 달랐다. 정말 병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반영근···.”
그랬다. 마동탁이 준혁에게 부탁한 한 가지. 그건 바로 반영근자인 여동생의 안위.
그도 준혁처럼 반영근자인 동생이 있었던 것.
수십 년간 각종 약초와 진법으로 동생의 발작을 눌러왔던 마동탁은 준혁에게 그녀의 마지막 처치를 부탁했다.
마동탁은 준혁처럼 구색초를 구해 병을 치료하겠다는 불확실한 목표보다는, 살아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아가다 생을 마감할 수 있게 조치를 하고 있었던 것.
“연구회라. 기회가 된다면 참여해야겠어.”
강만학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수행을 올리고 각종 지식을 습득한 후엔, 미련 없이 떠나려고 했었다.
어차피 그도 인지경 때문에 준혁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뿐, 만약 준혁의 의지대로 인지경이 소환된다는 걸 알게 되면, 여공천과 마찬가지로 당장 죽이려고 덤벼들건 불 보듯 뻔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할지도 몰랐다.
여공천이야 잃은 게 없지만, 강만학은 공법에 영단, 그리고 각종 진법 지식도 안겨주었으니까.
그랬기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떠나려고 했었는데. 연구회라는 새로운 목적이 생겨났다.
반영근을 치료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확인은 하고 떠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급한 건 아니니까, 우선 정리부터 하자.”
준혁은 일기장을 한켠에 내려두고는 최근에 얻은 물건들을 전부 꺼내고, 공간대마저 그 옆에 놓았다.
그동안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간대에 쑤셔 박은 물건들이 제법 있었는데, 크게 분류하자면 청룡가 축기기 수사 두 명의 물건과 그들의 스승으로 추정되는 결단기 수사의 물건.
그리고 마동탁의 처소에서 가져온 물건과 강만학에게 받은 것들이었다.
“많기도 하구나. 우선은.”
눈앞에 분류된 물건 중 영석만을 따로 모으자 2천여 개가 넘게 모였다. 그중 대다수는 결단기 수사에게서 나온 것.
영석을 공간대에 집어넣은 후, 영단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기병을 따로 모았다.
강만학에게서 받은 청명단과 지룡단은 마개를 열어 냄새만 살짝 맡아보고, 나머지 자기병들만 내용물을 꺼내 어떤 종류의 단약인지 확인했다.
축기기 수사 두 명에게선 똑같은 단약이 나왔는데, 검은색에 푸른 이끼 같은 게 붙어있는 모양이, 책에서만 보았던 축기기 초기에 먹는 강초단이 분명했다.
청룡가의 결단기 호법으로 의심되는 자에게선 다섯 병의 자기병이 나왔는데, 2병은 청명단 이었고, 1병은 강초단, 나머지 두 병은 처음 보는 단약이었다.
다만 처음 보는 단약이 청명단 보다 훨씬 진한 영기를 풍기는 걸 보면, 결단기에 먹는 단약임은 틀림없었다.
총 4병의 강초단과 12병의 청명단 그리고 10병의 지룡단과 이름 모를 단약까지.
준혁은 자기병이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그다음으론 물건들 중 옥간으로 보이는 것들을 전부 끌어와 앞에 놓았다.
“도움이 되는 공법이 있으면 좋겠군.”
가장 먼저 집어 든 것은 강만학에게 받은 혈단법의 유실 부분이었다. 그의 설명대로 옥간엔 피를 통해 영기를 흡수하는 방법이 요결과 함께 적혀있었는데, 진법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다음은 보조용으로 익히라고 받은 강체술 공법이었다.
“월하현적체공(月下玄赤體功)이라···.”
상급 강체공이라고 받은 공법은 달빛 아래서 수련을 하는 공법으로 일정 이상 수준에 이르게 되면 달빛을 반사해 몸이 검붉은색으로 변한다는 공법이었다.
아주 오래전 적귀(赤鬼)라고 불리던 수사를 죽이고 얻은 공법이라 했다.
“위력 하나만큼은 일절이구나.”
공법에 적힌 설명을 보면 산을 가르고 바다를 퍼낼 정도의 괴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공법들이 대부분 허무맹랑한 말들을 담는다고는 해도, 전혀 실현 불가능한 말은 아니었으니 그만큼 위력적인 공법임은 틀림없었다.
거기다 결단기 수사가 상급 공법이라 장담까지 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월하현적체공을 조금 더 살펴본 준혁은 당장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고는 강만학이 준 나머지 옥간, 서책과 함께 우선 공간대 안에 넣어버렸다.
그리곤 다른 옥간을 집어 이마에 가져갔다.
“반력탄자공(反力彈磁功)···.”
결단기 수사의 짐에서 나온 옥간은 그의 공법이었다. 천천히 요결을 파악해보자,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 분광소의 공격을 튕겨내 버린 것이 이 공법의 원리를 이용한 것 같았다.
“익힐 수만 있다면 쓸만하겠어.”
패도적이진 않지만, 방어할 목적이라면 이보다 더 괜찮은 공법을 찾기도 어려울 듯싶었다.
마지막에 죽어가면서도 기이한 보호막을 사용한 것도 공법의 힘 같았다.
반력탄자공을 곱씹듯이 음미한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옥간을 집어 들었다.
나머지 옥간은 총 3개였는데, 축기기 수사들의 공법에 관한 건 없었고, 하나는 거대한 방어형 진법에 관한 것, 나머지 두 개는 축기기에 먹는 청명단과 결단기에 먹는 소화단의 약방문이었다.
“아! 조금 전에 보았던 단약이 결단 초기에 먹는 소화단 이구나!”
아직 연단술을 익히진 못했지만, 약방이란 게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준혁은 기분 좋게 옥간 들을 공간대에 정리했다.
다음은 수사들에게서 나온 법기들.
공간대에서 나온 각종 법기들을 무릎 앞으로 모은 준혁은 빠르게 영기를 주입하며 하나씩 상태를 확인했다.
청룡가의 축기기 수사가 사용했던 직사각형 방패나, 원반형의 방어형 법기, 거기다 단검 모양 등의 하급 법기와 하급 비행 법기들은 전부 한쪽으로 치워놓고, 중급 이상의 법기들만 따로 모았다.
가장 눈에 띈 건 당연하게도 결단기 수사가 사용했던 청룡언월도, 크기도 크기였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상급 법기임은 틀림없었다.
법기에 영기를 주입해본 준혁은 그것이 상급 법기임엔 틀림없으나, 굉장히 단순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법기들처럼 각종 천지조화가 깃든 것이 아닌, 오직 사용자의 영력을 뻥튀기해 단순한 파괴력으로 바꿔주는 법기.
그렇다고 조잡하거나 안 좋은 법기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게, 단순한 만큼 사용이 간편하고 위력이 엄청났다.
흔히 말하는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이라면, 이보다 편하면서 위력적인 법기는 찾기 힘들 터였다.
“팔아야겠군.”
다만 준혁이 사용하기엔 너무 눈에 띄었다. 언월도를 들고 다닌다는 건, ‘내가 청룡가의 결단기를 죽였다!’라고 광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피식 웃은 준혁은 언월도를 내려놓고 검은 팔찌를 집어 들었다.
“흑몽환이라···. 이것도 상급인가?”
형태가 변환되는 법기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영기를 불어넣으며 다양하게 움직여 보았다.
창, 칼, 방패, 원반, 어떤 형태로도 변하는 검은 구름은 활용도만 보자면 청룡언월도를 가볍게 뛰어넘는 상급 법기.
다만 아쉬운 건 조정하는 게 쉽지 않았고, 위력에 비한다면 영기의 소모가 너무 극심했다.
자신보다 하급 수사들을 상대하기엔 좋았지만, 상급 수사를 상대로는 기만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다만 가볍게 팔목에 차고 다닐 수 있다는걸 감안하면, 그럼에도 꽤 매력적인 법기였다.
그다음으로 화염을 일으키던 축기기 수사의 법기는 평범한 공격형 중급 법기였고 결단기 수사가 사용하던 옥패 역시 중급 방어형 법기였다.
“쓸만한 비행법기는 이것 두 갠가?”
어느새 준혁의 손엔 넓적한 도 형태와 기다란 장도 형태의 중급 비행법기가 잡혀있었다.
“많기도 하군.”
두 명의 축기기 수사와 결단기 수사의 비행 법기까지 분류하여 정리하자 남은 건 약초학을 공부하며 보았던 재료들과 처음 보는 광석 몇 가지, 그리고 부적 뭉치들이 전부였다.
부적은 따로 담고, 나머지 재료는 아직 수도 자원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에 다음에 다시 분류하려 공간대 한쪽에 쑤셔 넣었다.
보통 공간대에 물건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하긴 힘들었지만, 준혁의 공간대는 빵빵하게 변한 것이 누가 보아도 물건이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빨리 좋은 공간대를 구해야겠어.”
아쉬운 마음에 살짝 문신으로 변한 공천령을 바라보는 준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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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대를 수거해 얻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자, 강만학이 건넨 두 법기와 마동탁의 처소에서 가지고 온 물건만 바닥에 남았다.
준혁은 강만학이 준 얼굴가리개처럼 생긴 법기를 한번 확인해 본 후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색의 패까지 영기를 불어 넣었다.
얼굴가리개는 안면인식장애가 걸려있어, 신분을 가리기엔 최적이었다. 마동탁이 건네준 허접한 가리개가 아닌, 품질도 중급 법기.
더군다나 사용하는 영기도 거의 미비해, 그가 왜 항상 착용하고 있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적색 패는 영기를 주입하자 허공에 떠오른 채 준혁의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는데, 실험 삼아 분광소를 쏘아 보자, 날아오는 방향으로 스스로 이동해 공격을 막아냈다.
얼만큼이나 빠른 공격까지 막아낼지는 미지수였으나, 강만학의 말대로 그가 아끼던 물건이란 건 수긍이 갔다.
“나중에 인지경의 실체를 알게 되면. 여공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분노하겠구나.”
준혁은 입이 쓴지 혀를 차고는 마동탁의 처소에서 가지고 온 물건을 확인했다.
상자에서 꺼낸 물건들은 총 세 가지였는데, 수십벌로 이루어진 진법 깃발, 정체를 알수 없는 주먹만한 알 두 개, 마지막으로 가죽 재질로 만든 부적 뭉치였다.
마동탁이 죽기 전 전해준 말로는 세 가지다 설악산 중청봉을 지나 끝청을 너머 계속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독주폭포 인근의 신비경에서 얻은 것들이라 했다.
신비경이란 게 영석 광맥에서만 나타나는 거라 알고 있던 준혁은 잠시 고개가 갸웃하긴 했지만, 지금 와서 그것이 신비경인지 다른 유적인지는 알 수가 없는 일.
다만 마동탁도 죽기 전까지 이것들의 정체를 밝혀내진 못했다. 보물임은 틀림없었지만, 용도를 확인하지 못한 것.
준혁 역시 바로 확인해 봤지만, 어떤 반응도 끌어낼 수가 없었다.
“가지고 있다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탁 아래에서 꺼낸 일기장을 자신의 공간대에 넣은 후 마동탁이 남긴 공간대를 확인했다.
그 안엔 천여 개의 영석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약이 수십 병 놓여있었다.
“아 이것도 있었구나.”
그리고 공간대 한쪽에 깜빡한 물건이 있었는데, 강만학이 마동탁을 위해 쓰라고 준 보따리.
그 안엔 영석 500개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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