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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0화 (30/408)
  • # 30 < 거래 (1) >

    쾌속하게 회전하며 결단기 수사를 분쇄해버릴 것 같던 륜은 일정 범위에 다가서자 제자리에서 공회전하기만 했다.

    결단기 수사를 감싸고 있던 하얀 보호막을 한치도 뚫지 못한 것.

    “기껏 이 정도로 까불었더냐?”

    비열한 비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결단기 수사는 간단한 수결과 함께 손을 휘둘렀다.

    그의 팔 동작에 맞춰 강한 파공음과 함께 청룡언월도가 준혁을 반으로 갈라버릴 기세로 날아들었다.

    준혁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언월도가 날아드는 방향으로 방패를 활성화 시켰다.

    그러자 사각형 방패가 급격히 크기를 키우더니 한쪽 면을 완벽히 가로막았다.

    쾅!-

    언월도가 방패를 내리침과 동시에 열 자루로 증식한 분광소가 상대방의 보호막을 강타했다.

    퍼 버벅-

    결단기 수사는 준혁의 공격에서 느껴지는 힘이 의외였는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아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 동작에 맞춰 청룡언월도가 하늘 높이 치솟다가,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봐라!”

    언월도는 급격하게 떨어져 내리며, 칼날을 감싸고 있던 청록색이 더욱 짙어졌고. 풍기는 기운이 점점 흉악해졌다.

    준혁은 재빨리 사각 방패를 하늘 방향으로 옮기고는 분광소를 불러와 언월도를 공격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감소시키지 못한다면, 이번 공격을 막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

    ‘적마도를 사용하긴 이르다. 저자는 분명 인지경과 분광소만 의식하고 있을 터. 이번엔 힘으로 막아야 해.’

    아무리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한 체급 높은 결단기.

    준혁은 상대방의 방심을 끌어내기 위해 낭패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에, 최대한 힘겨운 모습을 연출할 작정이었다.

    두 호흡 뒤.

    어느새 준혁에게 접근한 언월도가 사각 방패를 내리쳤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방패 법기가 반으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언월도가 파고들었다.

    분광소로 힘을 소비시켰고 방패 법기와의 충격으로 대부분의 힘이 소실되었지만 그래도 괴력이 담겨있었다.

    준혁은 코앞까지 다가온 언월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어느새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서 검은 구름이 구(毬)형태로 뭉치며 언월도를 막아냈다.

    쿠앙-

    충격파가 퍼지며 먼지가 피어올랐고 진한 영기파동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잠시 후 파동이 잔잔해지며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초췌해진 모습의 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격파로 인해 옷이 군데군데 찢겨 나간 상태였고 머리는 산발처럼 흩어져있었다.

    누가 보아도 간신히 공격을 막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는 결단기 수사의 눈에 핏발이 어렸다.

    “흑몽환!!! 감히! 감히!!”

    위급한 순간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팔찌를 사용한 준혁은 결단기 수사를 향해 팔목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써보는 데 제법 쓸만하군요. 혹시 아시는 물건입니까?”

    “감히!!!!”

    준혁의 도발에 결단기 수사는 눈이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언월도를 불러와 양손에 쥐고는 미친 멧돼지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곤 방어를 도외시 한 채 모든 기운을 언월도에 집결시킨 채 내리찍었다.

    후악-

    얼마나 전신 진력을 쏟아부었는지 허공을 참하고 떨어져 내리는 언월도의 도신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동시에 주변 공기까지 흔들리며 요동쳤다.

    쾅!!-

    하지만 준혁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고, 결단기 수사의 공격은 애꿎은 땅만 파괴했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 일정 공간이 포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크게 파여버렸다.

    그리고 땅이 파괴되는 그 찰나의 순간.

    어느새 적마도를 소환한 준혁은 상대의 등 뒤로 이동한 채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격이 진행될 걸 계산하며 동시에 휘두른 공격이었다.

    결단기 사내는 아무 방비 없이 단숨에 적마도에 베여나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단기 수행이 노름으로 딴 것이 아니라는 듯, 상대는 빈 땅을 공격함과 동시에 몸을 틀더니 손안에 영기를 잔뜩 모은 채 준혁의 공격을 맞섰다.

    콰앙- 퍼걱-

    무언가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결단기 수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윽, 이 죽일 놈이.”

    “제법이십니다. 허나 등 뒤도 조심하셔야지요.”

    준혁의 기습 공격을 막느라 주먹이 작살난 사내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무언가를 느낀 듯 다시 한번 몸을 회전하며 등 뒤로 접근하던 분광소를 간신히 쳐냈다.

    “이 비겁한! 커억-”

    하지만 애초에 등 뒤의 공격 역시 허수.

    결단기 수사의 등 뒤를 기습한 분광소는 겨우 다섯 자루뿐이었고, 나머지는 사내가 등을 돌린 순간, 마주 보고 있던 준혁의 소매에서 튀어 나갔다.

    푹-푹푹-

    “이···.”

    사내는 등 뒤로 전신을 꿰뚫은 분광소 공격에 영기가 흩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멈춰 섰고.

    푸욱-

    그 순간 적마도가 사내의 단전 부위를 찌르고 들어갔다.

    +++

    뎅겅-

    툭-

    단전이 꿰뚫린 채 전신에 뚫린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사내가 목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준혁은 조금 전 상황을 되뇄다.

    ‘팔찌 도발이 신의 한 수였어.’

    그저 위급한 순간에 급하게 꺼내 사용한 물건에 상대방이 과하게 분노하자, 그것을 이용한 것.

    상대방은 분노한 채 방어를 도외시하고 덤벼들었고, 그랬기에 적마도를 이용한 기습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그 반탄력···. 만약 여전히 보호막을 유지한 채였다면, 아무리 근접해 있었더라도 뚫지 못했을 거다. 역시 결단기는 결단기구나. 확실히 체급 차이는 그저 영기의 총량으로 비교할만한 게 아니야.’

    적마도로 단전을 뚫는 순간, 상대방은 분광소 공격에 영기가 흩어지고 있었음에도 온몸에 보호막 비슷한 걸 만들어냈다.

    그걸 생각하면 확실히 결단기는 축기기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이게 무엇이기에 그리 분노한 거지?”

    준혁의 시선엔 검은 팔찌가 들어왔다.

    분명 제자의 물건이었으니 그걸 알아보고 분노한 건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우선 자리를 뜨자.’

    준혁은 한가롭게 이곳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닫고는 빠르게 주위를 정리했다.

    결단기 수사의 시체는 태워버리고 청룡언월도와 공간대를 챙겼다. 그리곤 얼음으로 감싸인 마동탁을 짊어지고는 비행법기에 올라탔다.

    또 다른 결단기 수사가 오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

    준혁의 등장으로 설악산 일부가 시끄러워졌다.

    가벼운 임무를 하기 위해 떠났던 마동탁이 시체로 돌아왔기 때문.

    “상세히 얘기하게.”

    “네.”

    공법 시험을 치를 때 보았던 중년 사내, 강만학의 첫 번째 제자인 사내의 엄한 표정에 준혁은 적당히 가감하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풀어놓았다.

    “그러니까? 마 사제가 자넬 살리기 위해 도망치다가 이렇게 되었다?”

    “그렇습니다. 마 수사가 상황이 급박하다며···. 저를 숨겨두고 혼자 적들을 유인하셨는데, 시간이 흘러도 찾아오지 않자 제가 나서게 되었고···. 결국···.”

    “이 시체만 보게 되었다?”

    “네.”

    준혁의 비통한 표정에 중년 사내는 말 없이 준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동탁의 시신을 챙겼다.

    “자네는 거처에 돌아가 있게. 조만간 다시 부를 테니.”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별일 없이 넘어가자, 준혁은 무언가 께름칙했지만,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 날 알게 되었다.

    “최 수사. 스승님이 부르시네. 함께 가세.”

    도율의 세 번째 제자이자 결단기 수사인 강만학.

    그가 준혁을 부르고 있었다.

    +++

    공룡능선에서 얼마 멀지 않은 범 봉.

    뾰족하게 솟아오른 범봉에 도착하자, 중년 사내가 옥패 하나를 꺼내 영기를 주입했다.

    사내의 행동에 옥패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잠시 후 범봉의 봉우리 한쪽에 둥그런 구멍이 생겨났다.

    “들어가세.”

    중년 사내가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준혁도 곧 뒤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도 공간 진법으로 만들어진 곳이구나.’

    뾰족하니 매우 협소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안에 들어오니 단출하긴 했지만 제법 근사한 2층 저택이 준혁을 반겨주었다.

    잠시 후, 저택 문이 열리며 공법 시험장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여럿 나타났다.

    “대사형 오셨습니까? 들어가시죠. 스승님이 기다립니다.”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여준 후 발을 옮겼고, 준혁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제법 널찍한 거실에서 한 수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매우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짙은 눈화장이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렸다.

    다만 너무 여성스럽게 느껴지는 복장과 차림 때문인지 무언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스승님. 제자 인사드리옵니다.”

    중년 사내는 거실의 사내를 본 순간 무릎을 꿇었고, 그 뒤에 따르던 다른 제자들 역시 바로 따라 했다.

    준혁 역시 눈치껏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흠?”

    그 순간 준혁을 바라보던 사내의 눈빛이 반짝 빛나다 기색을 감추었다.

    “다들 고갤 들어라. 과례는 필요 없다고 몇 번을 얘기해.”

    “죄송합니다.”

    “아무튼 융통성 없는 놈이 대사형이라고 있으니, 밑에 놈들도 다 똑같지.”

    “죄송합니다. 스승님.”

    “됐다. 그런 너를 선택한 건 나니까.”

    사내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그래. 이 녀석 이름이 뭐라고?”

    준혁이 대답하기 전 중년 사내가 빠르게 말했다.

    “최태식이라고 합니다.”

    “흠···. 최···. 태식이라. 그래. 어디 다시 한번 상세히 말해 보거라. 내 듣기는 했다만,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으니.”

    사내의 요구에 다른 이들이 동시에 준혁을 바라보았다.

    “네. 그게 어찌 된 일이냐면···.”

    한참 동안 겪은 일을 상세히 풀어내자, 무감정하게 듣고 있던 사내, 강만학이 손을 저으며 명령했다.

    “잘 들었다. 내 이자와 따로 시간을 보내야겠으니 나머지는 모두 나가보거라.”

    강만학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년 사내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를 필두로 전부 일어나더니 깊게 허리를 숙였다.

    “물러가겠습니다.”

    준혁은 무언가 찝찝했지만, 별 내색 없이 떠나는 무리를 바라만 보았다.

    모두가 저택에서 나가고 나자, 아무 말 없이 준혁을 바라보고 있던 강만학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럼 자세한 얘기를 해볼까? 최 수사? 아니 최준혁 수사라고 불러줘야 하나?”

    흠칫-

    준혁은 순간 동요를 억제하지 못하고 몸을 가볍게 떨었다. 머릿속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정체를 알고 있어서 놀랐나? 저 아이들이야 산을 벗어나지도 않고 연구회 활동만 하고 있으니 모를 수밖에 없지만, 나까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 너무 허술한 생각 아닌가? 청룡가에서 수배 중인 최준혁 수사?”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정체를 들킨 마당에 결단기 수사 앞에서 시침을 뗄 순 없어서 준혁은 바로 수긍했다.

    “알고 계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맞습니다. 제가 최준혁입니다.”

    “흐음. 한 번쯤은 뺄 줄 알았더니. 그래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지. 청룡가의 그 늙은 여우가 왜 자네를 쫓는 거지?”

    ‘왜? 하긴. 인지경 같은 보물에 대해 소문이 나게 할 리는 없지.’

    준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척 시간을 끌다가 다른 질문을 했다.

    “그것보다는 마 수사의 죽음에 대해 더 궁금해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준혁의 질문에 강만학은 의자에 등을 파묻으며 실소했다.

    “궁금한 것도 없지. 경기도지사를 돕던 청룡가 놈들에게 당한 걸 테지.”

    “알고 계셨군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 제자 중 가장 발이 빠른 동탁이를 보낸 것 아니겠나? 그나저나 자네도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군?”

    준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철천지원수 같은 자들인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자네 수행이···. 흠. 축기기 초기로 알고 있는데, 혼자 숨어있던 게 아니라 같이 싸운 거겠군?”

    “맞습니다. 저희를 쫓아온 축기기 중기 수사와 맞서 싸웠고. 저만 간신히 살아남은 겁니다.”

    말을 하며 준혁은 자신의 영기 흐름을 축기기 1성쯤으로 보이게 천천히 조절했다.

    “그렇게 된 거였군. 하긴. 처음부터 이상했지. 동탁이가 도망치지 못하고 죽었다는 건 상대방의 수행이 축기기 중기 이상일 텐데. 겨우 연기기가 숨어있는 걸 놓칠 리는 없으니까.”

    혼자 납득한 듯 강만학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는 더는 거론할 필요 없네. 자네 잘못도 아니고, 동탁이의 시신을 챙겨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으니.”

    “......”

    “그러니 이제 본론을 얘기해 봄세. 도대체 청룡가에 무얼 잘못했기에 그 늙은 여우가 자넬 잡지 못해 안달이 난 건가?”

    어느새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턱을 매만지는 강만학을 보며 준혁이 공간대에서 거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것 때문입니다.”

    “거울형 법기?”

    “이 법보는, 수행 속도를 배로 가속해주는 천하의 보물. 바로 ‘인지경’입니다. 들어보셨습니까?”

    담담한 준혁의 말이 끝나자 여태껏 심드렁했던 강만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지경!!!”

    “여공천 그자는 제가 발견한 인지경을 탐내, 저를 죽이려 하였기에, 마수가 뻗치지 않을 도율님의 세력권으로 도망쳐온 것입니다.”

    “인지경이라니···.”

    “강만학 님께서도 저를 죽이고 인지경을 빼앗아 가실 겁니까? 그 늙은 여우 여공천처럼?”

    “......흐음.”

    강만학이 짧게 침음 하는 사이, 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지경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와 거래를 하시지요.”

    “거래?”

    “제게 필요한 건 공법과 단약! 이딴 보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위험만 초래할 뿐.

    저에게 공법과 단약을 내려주신다면 이것을 기꺼이 내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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