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 대결 (2) >
“호법님의 예상이 맞았어. 진짜 강원도에 숨어 있었다니.”
“호법? 몇 번째 호법을 말하시는 겁니까?”
청룡가엔 가주 여공천의 직속 수하나 다름없는 다섯 명의 호법이 있었다.
그들 중 첫째 호법이 결단기 중기였고, 나머진 전부 결단 초기.
모두 여공천과 수백 년을 함께한 사이이기에 실질적인 권력은 후계자들보다 높았다.
다만 그들은 수련에만 힘쓰며 두문불출했기에 전면에 드러난 적이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세 번째 호법이 빙제소로 좌천당한 일이 중요정보로 통이문에 기록된 것.
“죽어라!!”
청룡가 수사는 준혁에 말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곧바로 은색 장도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장도의 궤도에 따라 붉은 화염이 크게 일어나더니 준혁을 잡아먹을 듯 크게 부풀었다.
“급하기도 하십니다. 잠깐 대화 좀 나눠볼까 했더니.”
아쉽다는 듯 한마디 내뱉은 준혁은 화염이 몸에 닿기 전, 눈앞에서 꺼지듯 사라져버렸다.
“어? 이게 무슨!”
놀라서 사방을 경계하는 청룡가 수사의 등 뒤에서 사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성이 없으십니다. 항상 등 뒤를 살펴야지요.”
“이익!”
청룡가 수사는 섬뜩한 목소리에 급하게 몸을 돌리며 땅을 박차 뒤로 물러섰다.
아니 물러서려고 했다.
스걱-
하지만 의지완 달리 발에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땅으로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새 사내의 양발은 무릎부터 잘려 나가 있었다.
“으아악!!”
사내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진법 깃발 세 개를 꺼내 사방으로 던지며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친구라도 부르시려고 소릴 지르시는 겁니까?”
“으허억. 사, 살려 주십시오!”
“제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만 말한다면 살려드···. 릴 텐데. 성격이 급하시군요?”
준혁이 말을 하며 손을 가볍게 젓자, 공간대에서 단검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오더니 사내의 한 손을 썩뚝 하고 잘라내 버렸다.
“으아악!”
두 발에 이어 한 손마저 잘린 사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자, 준혁이 차갑게 말했다.
“그러길래. 왜 모험을 하십니까? 등 뒤로 수결을 맺으면 모를 줄 알았습니까?”
그리곤 사내를 제압해 폼속에서 타다만 부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
“살려는 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단. 아는 걸 전부 말한다면.”
“저, 정말 살려주실 겁니까?”
겁에 질린 건지 피가 빠르게 빠져나갔기 때문인지, 창백해진 사내의 얼굴을 보며 준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사실대로만 말해준다면 목숨은 살려드리겠습니다.”
준혁의 진지한 말투에 사내도 급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무,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아까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구색초를 구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 이곳에서 무얼 꾸미는 겁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한 사내는 준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당신이 도망, 아니 최, 최 수사님께서 도망, 아니, 타, 탈출하시고 난 뒤···.”
“편히 말해도 됩니다. 괜히 그런 곳에 기력 낭비하지 마시고. 살아나가도 손발은 붙여야지 않겠습니까?”
준혁이 은근한 눈빛으로 잘린 발과 손을 보자. 사내도 무언가 깨달은 듯 말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잘린 신체 일부를 다시 붙이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 괴사하게 되면 제 기능을 못 찾을 수도 있었다.
“최 수사가 도망가고 난 뒤 가주께서 모두를 모아 구색초를 구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겠지요?”
“계속하시지요.”
“동시에 최 수사를 수배하고 도주한 위치를 찾기 위해 사 호법님과 오 호법님이 움직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청룡가 수사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여공천의 명을 받은 두 호법은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양주의 보물 출현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준혁이 사라진 것과 같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을 파고든 것.
하지만 흔적이 강원도로 이어지자, 원영기 노괴인 도율이 신경 쓰여, 평소 친분이 깊던 경기도지사를 끌어들였다.
도지사의 힘을 빌려 강원도에서 사적인 활동이 아닌, 공적인 활동으로 포장하려고 한 것.
다행히 그 수는 먹혀들었고 도율은 방관했다.
‘방관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단 걸 알면 여공천의 표정이 예상되는군.’
아마 그랬다면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가문의 힘으로 강원도를 샅샅이 뒤졌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계속.”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호법들은 보물의 흔적을 계속 뒤쫓다 결국 강원도지사와 분쟁이 생기고 만다.
분쟁이 심화되자, 도율의 두 번째 제자인 가라온이 중재를 하고 나서고는 ‘스승님께서 예의 주시하시니 모두 강원도에서 나가라’고 전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두 호법은 물러나는 척하며 재수색에 들어갔고, 결국 산머리곡산에서 지하 깊은 곳 흔적을 찾아내게 된다.
그때 도율의 제자 가라온이 몰래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바로 강원도지사를 처리해 준다면 산머리곡산 일대를 마음껏 수색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그렇게 협약이 맺어지게 되고 예상대로 소식을 들은 강원도지사가 끼어들게 된 후 지금의 사태에 이른 것.
“그렇다면 싱크홀 내부를 이미 조사했다는 말?”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뭐가 발견됐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텅 빈 공간만이 수 킬로 뚫려있었는데···. 다른 건 찾지 못했습니다.”
순간 사내의 눈이 대각선 아래로 살짝 움직이다 빠르게 돌아왔다.
“흠···. 그래? 그건 그렇고. 우린 왜 죽이려고 한 겁니까? 가라온님과 거래를 했다면서?”
“그게 협약 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강만학이나 도재학중 누군가 이 일을 조사하려 한다면···. 현장에 누가 오든 살려두지 말라고···.”
‘흠. 강원도지사와 제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군.’
준혁은 사내의 말을 정리해보다 급하게 물었다.
“그럼 지금 저곳엔 경기도지사와 강원도지사를 제외하고도 결단기 수사가 두 명이 더 있겠군요?”
“...그, 그렇습니다.”
“조금 전 신호를 보내려고 했던 건 두 호법 중 하나일 테고···.”
준혁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사내가 잘린 손발을 움직이며 바둥거렸다.
“왜, 왜 그런 눈빛으로. 아, 아까 살려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은 지키신다고!”
사내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실대로 말하면 이라고.”
“사, 사실입니다! 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어요! 진짭니다!”
사내의 항변에 준혁이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지하 깊은 곳에서 발견된 신비경에 대한 건 언제 말해주려고 했습니까?”
“어? 어찌 그걸?”
“잘 가십시오.”
사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순간, 어디선가 단검 한 자루가 나타나더니 사내의 목을 빙그르르 돌고 지나갔다.
툭-떼구루루
사내는 자신의 목이 잘린 지도 모른 듯 놀란 얼굴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한 번 더 물어보면 더 정확했을 테지만, 어쩔 수가 없군.”
준혁은 빠르게 수결을 맺어 화구술로 시체를 태워버린 후,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공간대와 바닥에 떨어진 은색 장도만을 챙겼다.
그리곤 비행 법기에 올라타 급하게 설악산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심문의 기본이 질문의 반복이란 건 준혁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 전에 했던 질문들을 다시 해, 비교해야만 정보의 정확도가 올라간다는 걸.
하지만 싱크홀 현장에 각 도지사를 제외한 결단기 수사가 두 명 있었다면, 그들은 분명 도망치는 자신과 쫓아가는 청룡가 수사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
만약 시간이 지체되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한 결단기 수사가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더군다나 말하는 걸 종합해보면, 두 명의 축기기 수사는 청룡가의 두 호법 중 누군가의 직계 제자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리고 준혁의 그런 예상은 매우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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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으로 향하는 산맥.
1미터가량 돼 보이는 장검 위에 올라탄 사내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준혁.
혹시나 결단기 수사가 개입할까 우려한 준혁은 빠르게 설악산으로 향하며 청룡가 수사에게서 가져온 공간대 안 내용물을 전부 자신의 공간대에 옮겨 담았다.
그리곤 빈 공간대를 태워버리며 잿가루를 흩날렸다.
“그나저나 이대로 돌아가면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지?”
마동탁이 청룡가 수사에게 당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살아 도망쳤다면, 준혁의 생환은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 돼버린다.
연기기 9성을 연기하고 있던 준혁이 축기기 수사로부터 도망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마동탁의 의도였다.
“흠. 이대로 일본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던 준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본으로 가는 건 상관없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공법을 구하지 못했다. 혈단법을 수중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반쪽짜리 공법서.
혈단법의 나머지 부분을 구해 완전한 공법서를 얻든, 아니면 다른 공법을 얻어내야만 앞으로 발전이 있을 터.
준혁은 쉽게 도망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응? 이건?”
빠르게 비행하고 있던 준혁은 사방으로 퍼트린 기감 속에서 익숙한 기운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비행 방향을 틀었다.
그곳은 설악산 방향에서 살짝 어긋난 북쪽이었다.
“마 수사. 아직 도망치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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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설악산이 보이는 작은 언덕 숲 안.
짙푸른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숲속엔 작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 안엔 두 명의 사내가 대치한 채 서 있었다.
두 명의 사내의 행색은 매우 대조되어 보였는데, 한 명은 온몸이 피투성이에 복부를 관통당해 당장이라도 죽을듯해 보였고, 반대로 상대방은 고운 비단 장포에 피 한 방울 묻지 않아 깨끗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큭, 더 도망가 보시지요? 이게 다입니까?”
“닥쳐! 이 더러운 청룡의 개!”
피를 흘리고 있던 사내는 준혁을 버리고 도망쳤던 마동탁이었고, 조롱하는 이는 청룡가의 수사였다.
“워워. 매우 잘못 알고 계십니다. 애초에 당신을 죽이라고 부탁한 건 그쪽 사백이니까요.”
“거짓말 마라! 사백께서 아무리 스승님과 사이가 나쁘다고는 하나, 같은 스승님을 모시는 사형제 간이다!”
“쯔쯧. 아무튼 사실을 말해줘도 못 믿는 자들이 이리 많으니 원.”
“강원도 내에서 나를 죽인 걸 후회하게 해 주마! 반드시 스승님께서 이 원수를 갚아주실 거다!”
“아예~ 머 그러든가 말든가.”
시종일관 마동탁을 조롱하며 비웃던 사내가 수결을 맺더니 손가락을 하늘로 높이 치켜들었다.
순간 사내가 팔목에 차고 있던 팔찌에서 검은 기운이 뭉실뭉실 자라나 거대한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잘 가십시오. 마지막은 제가 아끼는 흑몽환으로 보내드리지요. 갈라져라!”
사내가 손을 내리치자 검은 구름으로 만들어진 칼날이 손짓에 따라 세차게 휘둘러졌다.
마동탁은 기력이 달리는지, 구름 칼날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 뿐이었다.
퍼억-
결국 구름 칼날에 직격당한 마동탁은 가슴 한켠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며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런 마동탁을 보며 사내가 낮게 웃었다.
“어떠십니까? 스승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흑몽환의 위력이? 후훗. 제가 알기로는 스승님께서 처음 결단기에 올랐을 때 가주께서 내려주신 법기라고 하더군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물론 사내의 말에 대답해줄 마동탁은 바닥에서 꿈틀거릴 뿐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자 그럼, 산수 출신들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넉넉한지 확인해 볼까요? 그래도 강만학의 제자인데···. 에게?”
거들먹거리며 마동탁에게 다가간 사내는 그가 허리춤에 달고 있던 공간대를 확인하더니 이맛살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뭐야? 이거 완전 거지새끼 아니야? 참나. 그래도 원영기 수사의 직계라고 할만할 텐데, 이 정도로 거지야?”
사내는 화가 나는지 죽어가는 마동탁의 몸에 발길질을 했다.
퍽-
“아오! 이 거지새끼! 이럴 거면 그 연기기를 내가 맡을걸. 어찌 공간대에 비행법기와 금창약 뿐이란 말야!”
퍽-
그리고 재차 발길질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미칠듯한 속도로 단검 열 자루가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허억! 뭐야!”
놀란 사내는 급하게 몸을 웅크리며 손을 교차했다.
그러자 사내의 팔목에서 검은 구름이 옅게 퍼지며 반구 형태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탕-타다탕탕-
단검들이 검은 구름에 튕기며 사방으로 흩어지자 사내는 급하게 공간대에서 직사각형 형태의 방패를 꺼내 들고는 앞을 가로막았다.
방패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며 주변을 막았고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누구냐! 감히 누가! 청룡가의 행보를 방해하느냐!”
하지만 곧바로 대답과 함께 누군가 나타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그저 단검 열 자루만이 허공을 선회하며 매섭게 반짝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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