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2화 (22/408)

# 22 < 식혈만복 (2) >

“당신. 연기기 초기가 아니군요?”

“제가 그리 말한 적이 있습니까?”

“...”

사내는 잠시 말없이 준혁을 응시하다가 또 한 번 땅을 박차며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그렇다고 한들 살아나가실 수는 없을 겁니다!”

사내가 쏘아져 오자 준혁은 적마도를 움켜잡더니 사선으로 피하며 나머지 손을 뻗었다.

“가라!”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공간대 입구에서 작은 빛살이 튀어나와 사내에게 쏘아졌다.

순식간에 증식한 빛살은 열 자루의 단검으로 변해 사내의 전신 요혈을 향해 움직였다.

위력적인 분광소의 공격에 사내는 재빨리 부적을 꺼내 들더니 자신의 몸을 내리쳤다.

그리곤 얇은 보호막이 생겨나자, 보호막을 믿는 것인지 자신의 단단한 몸뚱이를 믿는 것인지 쏘아져 오는 단검들을 향해 그대로 몸을 부딪쳤다.

“참으로 무식하게 덤비는구나. 설마 몸이 강철이라도 된단 말인가?”

푹-푸푹-

잠시 후, 사내는 온몸에 단검이 박힌 채 자리에 멈춰 섰다.

“말도 안 돼···. 혈피갑(血皮鉀)을 이리도 쉽게···.”

털썩.

사내는 억울하단 듯 한마디를 뱉어내더니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 모습에 준혁은 어처구니가 없어 어벙해지고 말았다.

‘자신 있게 부딪쳐 오길래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더니.’

사내는 필살기가 있었던 것이 아닌, 그저 오판을 했었던 것. 전투 경험의 부족과 함께 상대방과 자신의 격차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때, 두 사람의 투덕거림과는 상관없이 시신을 뜯어먹고 있던 여인이 핏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혈광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어. 벌써 회복하다니.”

입가에서 생살과 피를 닦아내며 몸을 돌린 여인은 어느새 연기기 4성에서 8성으로 회복을 마친 후였다.

그리곤 준혁과 눈이 마주치더니, 땅을 박차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겨우 연기기 중기였기에 위험할 일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마도에 영기를 주입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준혁이 있던 곳까지 달려든 여인이 손톱을 세우며 손을 휘두른 순간, 준혁의 적마도가 그녀의 목을 베어버렸다.

스걱-

툭- 떼구르르

“무슨 공법을 익혔는지 모르나, 다음 생에선 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라겠습니다.”

초점 없던 여인의 얼굴이 바닥을 구르자, 쓰러져있던 사내가 움찔하더니 피를 한 움큼이나 쏟아냈다.

그리곤 이성을 잃은 듯 흰자위만을 드러낸 채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마 두 사람이 같은 공법으로 이어져 있기에, 한 명의 죽음이 다른 이에게까지 영향을 준듯했다.

준혁은 사내의 한탄을 들었기에, 그들이 안쓰럽긴 했지만 애초에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살려둘 수는 없는 일.

손을 가볍게 젓자 사내의 몸에 박혀있던 단검들이 쑤욱 하고 뽑혀 나와 곧바로 위로 솟구치며 사내의 목을 빙그르르 돌고 지나갔다.

툭-

그렇게 사내의 목마저 몸과 분리되자, 너른 공터엔 적막감과 함께 짙은 피 향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

봉화산 인근의 널찍한 바위 위.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참혹한 현장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준혁은 화구술로 시체를 태워 명복을 빌어준 후 잿가루를 땅에 묻어주었다.

수염 사내를 먼저 묻고, 남녀는 한곳에 묻었다.

그리곤 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공간대를 챙긴 후 길을 떠나, 잠시 이동하다가 쉬고 있는 것.

“기분이 좋진 않네···.”

수도계에 들어서면서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후우, 아니야. 애초에 그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아무리 좋은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한들 내가 먼저 공격할 일은 없었을 터. 모든 게 자업자득이야.”

그러면서 준혁은 첫 살인을 되새겨 보고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문득 보물을 내놓으라며 소리치던 수염 사내와 자신을 핍박하던 여동수가 겹쳐 보였다.

미안한 척 도리를 아는척하며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흡혈 사내와 대공자가 겹쳐 보였다.

“그래, 아무리 수도계가 비정하다고는 하지만. 고작 욕심 따위로 인간성을 버리진 말자. 대신 먼저 건드는 자들은 한치의 용서도 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선계에 전설로 기록되는 대수사(大修士). 최준혁의 제1원칙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정도(正道)를 걷는다.”

그리고 그가 선언함과 동시에 팔목에 있던 문신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어? 이게 갑자기 왜?”

갑작스러운 반응에 준혁은 팔목 문신으로 영기를 집중해 보았다. 하지만 마치 조금 전 현상은 환상이라도 된다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을 살펴봐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결국은 헛웃음이 나와 피식 웃어버렸다.

“마치 내 결심을 응원하기라도 하는 듯하지 않은가.”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운지 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공터에서 수거해온 세 사람의 공간대를 꺼내 들었다.

+++

수염 사내는 산수 출신이었는지 공간대 안에는 잡다한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기초 부적술에 관련된 옥간부터 시작해 연기기에 익히는 여러 가지 술법들. 축기기에 올랐으니 정리할 법도 했건만, 예전에 쓰던 것들이 잔뜩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초 부적술과 기초 진법에 관한 옥간은 준혁이 꼭 구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어디서 구해야 하나 했더니 이렇게 손에 들어오는구나.”

아쉬운 게 있다면 정말 기초 중에서도 기초에 관한 것밖에 없었다는 것.

하지만 기초라고 해도 하루 이틀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상관없었다.

기회가 될 때 초급과 중급에 관련된 것들을 구하면 될 테니까.

옥간 들과 잡다한 물품들 그리고 부적을 제하면 법기 세 개가 남았는데, 하나는 예전에도 본 적이 있던 장검 형태의 비행 법기였고, 나머지 두 개는 공격형 륜과 방어형 원반이었다.

세 가지다 하급품이었기에 그리 좋다고 할만한 것들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영석 7개가 나왔고, 단약이나 약초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산수라는 게 역시 힘들긴 하나보구나.”

수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훌륭한 법기, 뛰어난 공법을 논할 수 있겠으나.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약이었다.

물론 공법이 훌륭할수록 발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나, 애초에 수행을 높이지 못하면 발전을 할 수가 없으니깐 말이다.

물건을 모두 옮겨 담은 후 화구술을 이용해 수염 사내의 공간대를 태워버렸다.

공간 술법의 특징 때문인지 안에 물건이 있을 때는 엄청난 내구력을 지닌 공간대가 텅 비었을 때는 쉽게 망가트릴 수 있었다.

“간혹 표식을 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으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가지고 다닐 필욘 없겠지.”

첫 번째 공간대를 없애버린 후 두 번째 공간대를 집어 들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어찌 법기를 사용하지 않는 거지?”

그 안에는 각종 치장 도구와 함께 여러 약초 그리고 영석만이 존재했다.

화장품이 있던 걸로 보아 여인의 공간대가 분명했다.

안에서 스무 개 남짓한 영석과 약초들을 꺼내 옮겨 담은 후엔 역시 빈 공간대를 태워버렸다.

마지막 남은 사내의 공간대를 확인한 준혁은 왜 여인의 공간대에 법기가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붉은 문양이 그려진 옥간에 적혀있었다.

사내의 공간대에서 꺼낸 옥간엔 두 사람이 익힌 공법에 관해 적혀있었는데, 사내가 한탄하듯 말했던 바로 그 피와 살을 먹어 수행을 올리는 공법이었다.

식혈만복(食血滿服)이라 적힌 공법은 말 그대로 사람의 생살과 피를 먹으며 수행을 올리는 공법이었다.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이 동시에 익혀야 했는데, 남과 여 구분은 필요 없었다. 다만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상대적으로 수행이 높아야만 했다.

공법을 익히게 되면 수행이 낮은 사람은 생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수행을 올리고 상대방에게 쌓인 영기를 넘겨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수련을 계속해 가며 한 명은 계속해서 영기를 넘겨받으며 수행이 높아지고, 나머지 한 명은 그걸 보조하는 식.

“한 명을 희생함으로써 나머지가 모든 혜택을 받는 구조로구나.”

그러니 여인에게는 법기 따위가 필요 없었다. 애초에 여인은 피와 살을 먹고 사내에게 영기를 넘겨주는 역할이었던 것.

“무식하게 덤벼든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

그리고 사내의 이해할 수 없었던 전투 방식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수도자는 영기를 몸 안에 쌓아 도력이 올라가는 것이지 신체 자체가 강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에 비한다면 매우 강인해지는 것이지만, 천지를 가르고 산을 부수는 위력을 뿜어내는 것에 비하면 신체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

만약 신체마저 강화하고 싶다면 강체술(强體術)과 같은 술법을 따로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식혈만복을 익히게 되면 혈피갑이라는 능력이 생기며 피부 겉면에 피가 응고하게 되고, 그것이 엄청난 방어력을 만들어냈다.

또한 민첩성과 근력이 수행에 비례해 올라가 철인(鐵人)이 되는 것. 결국 주먹질 한 번에 산을 부수고, 한걸음 뛰면 수십 미터를 이동할 수도 있는 것.

그랬기에 사내는 자신의 몸뚱이를 믿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다만 준혁이 가지고 있던 단검이 일반 수도자는 평생 보기 힘들다는 법보였다는걸 몰랐을 뿐.

그리고 그 법보는 사용자의 능력에 비례해 성장한다는 것도.

옥간 속 내용을 자세히 살핀 준혁은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 몰랐으니 공간대안에 고이 넣어두고는 다른 물품을 살폈다.

옥간을 제외하곤 법기 두 개와 영석 서른개, 부적 뭉치와 진법 깃발 그리고 기다란 막대처럼 생긴 비행법기만이 있었다.

부적과 영석, 진법 깃발은 바로 옮겨 담고 법기를 꺼내 영기를 불어 넣었다.

“하나는 방어용이고, 나머진 보조형인가?”

네모난 방패처럼 생긴 법기는 하급 법기로, 부피를 키우는 능력 말고는 딱히 큰 쓸모가 없었다. 한쪽 면을 방어할 때 쓰일 듯했다.

나머지 하나는 쇠고랑처럼 생긴 물건이었는데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포박하는 용도였다.

아마 도망치는 사람을 붙잡아두고 먹어 치우기 위한 용도 같았다.

그리고 나머지 비행법기는 일반적으로 이동할 때 쓰는 것이 아닌, 위급한 순간에 폭발적인 속도로 그곳을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용 비행 법기였다.

일회용임에도 꽤 고가로 거래되는 물건 중 하나였다.

모든 물건을 정리해 자신의 공간대에 옮겨 담은 준혁은 마지막 공간대마저 태워버리고는 입안이 씁쓸해져 혀를 차고 말았다.

“보아하니 이들은 원래 의정부 출신인데···. 식혈만복을 얻고 나서 강원도로 이동했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소리소문없이 혼자 생활하는 산수 출신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참으로 참담해.”

그것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수도계가 얼마나 비정한 곳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준혁은 문득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식혈만복을 얻게 되었다면 어찌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절망의 순간일지라도 같은 사람을 뜯어먹어야 하는 공법을 익히려고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비인외도(非人外道)를 넘어 한 마리의 괴수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인성을 잃고 괴수가 돼버린다면 수행이 올라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봉화산을 떠난 준혁은 곧장 춘천으로 향했다.

아주 오래전엔 이곳이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약학원(藥學院) 때문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강원도 내에 문파나 세가가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한 명왕 도율마저도 약학원은 인정해주고 은연중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약학원에서 매년 배출하는 연단사(煉丹士) 때문이었다.

총 10년 과정의 약학원 수료 과정을 마친다면 기본 연단사 자격을 얻게 되는데, 그들은 최소한 연기기급 단약을 만들 수 있었기에 어딜 가나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인정받은 만큼 약학원의 이름도 덩달아 올라갔다.

명왕 도율 역시 그런 약학원의 연단사들을 여럿 데리고 있었기에 강원도 내에서 약학원의 세가 커지는 걸 용납해 주었다.

“과연.”

하얀 가면을 쓴 준혁은 멀리 산 중턱의 절벽에서 약학원의 위용을 감상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저 많은 사람이 전부 연단사란 말인가?”

약학원은 10층 높이의 건물로 그 주위에 기다란 담벼락이 세워져 있었는데, 정문으로 보이는 커다란 대문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때 준혁의 등 뒤로 낯선 기척이 느껴지며 얄팍하게 생긴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대부분은 단약을 구매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지요.”

준혁은 사내를 슬쩍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약학원을 감상했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다들 욕심이 많나 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좋은 건 이미 명왕 같은 분들이 전부 가져갔겠지요.”

사내는 준혁의 말에 맞장구치며 공간대에서 하얀 옥간 하나를 건넸다.

“의뢰하신 정보는 여기 있습니다. 나머지 금액은 지금 계산하시겠습니까?”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