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 적마도 (3) >
눈앞에 서 있던 누군가가 법기 안으로 끌려들어 가는 광경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준혁은 지금 그 기분을 잘 느끼고 있었다.
괴이하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자신을 손쉽게 무력하게 만들었던 적발의 사내는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급속하게 쪼그라들더니, 식검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랬다.
죽은 게 아니라 잡아 먹혀 버렸다.
그리고 완벽하게 잡아먹혀 사라지자 준혁의 머릿속으로 기이한 정보들이 흘러들어왔다.
“이게 무슨···. 적마···. 적마도(赤馬刀)??”
인지경을 비롯한 법보들의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처럼 뇌리에 새로운 기억이 생겨나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러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 허공이 갈라지며 섬뜩한 붉은 핏빛 도신을 가진 장도 하나가 쑤욱 하고 나타났다.
그것은 조금 전 적발의 사내가 자신의 심장에서 뽑았던 장도와 거의 비슷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커져 있었고, 느껴지는 기운이 훨씬 흉포했다.
허공에 둥둥 뜬 채 명령을 기다린다는 느낌에 준혁은 다른 한 손으로 핏빛 장도를 잡아챘다.
우우웅-
핏빛장도는 무엇이 그리도 분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기쁜 것인지. 괴이한 진동과 함께 울부짖다가 금세 잦아들었다.
“적마도···. 식검. 설마. 식검 네가 그자를 잡아먹고 법보로 만들어 버린 거야?”
대답할 리 없는 식검을 바라보다 문득 시선을 옮겨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분광소와 인지경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것들도 이자처럼 처음엔 살아있던 수사였어?”
팔목에까지 시선이 옮겨졌다.
“공천령까지? 아니 공천귀라 불러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적발 사내. 그러니깐 적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사내가 했던 말을 종합해보면 분명 그런 추리가 가능했다.
더군다나 눈앞에서 사내가 장도로 변해버린 걸 보았으니, 틀릴 리 없는 추론이었다.
“하아. 이걸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을 테지만, 그만큼 말도 안 되고 괴이한 일이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성운지력? 하. 정말 수도계에 대한 내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구나.”
잠시 후 준혁은 자조가 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예전 여동수 납치사건으로 인해, 더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아무리 낮은 가능성이라도 살펴 가며 생각하고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랬기에 적발의 사내를 상대함에 있어 몇 번이나 계산했고,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움직였다.
하지만 예상을 가볍게 넘어서는 그의 힘을 느끼며 준혁은 자신의 부족함을 또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돌이켜 보니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무 빠르게 수행이 오르다 보니 은연중에 자만에 빠졌었구나. 제대로 된 술법도 없이 그저 뛰어난 법보 몇 개를 다룰 줄 안다는 것만으로 오만에 빠지다니···. 참 못났어.”
손을 휘익 저어 분광소와 인지경을 불러들였다.
“앞으로는 더 조심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자. 눈앞에 상대가 연기기 초기일지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상대하겠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한번 다짐을 하기엔 충분히 새겨들을 말인 건 분명했다.
+++
새롭게 발견한 신비경은 예전 청룡가의 신비경과 똑같은 구조였다.
단상의 세 가지 물건과 공동 중앙의 진법, 천장의 별빛까지 완벽히 똑같은.
준혁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찾지는 못했다.
결국 봉인이 강제로 풀리며 두 법기는 사라져 버렸고, 처음 잡았던 물건만이 준혁의 손에 쥐어졌다.
화살촉처럼 생긴 법보였다.
뾰족한 주둥이를 가지고 있어 투척용 법보인가 싶었지만, 생긴 것과 다르게 방어용 법보였다.
“이건 써먹기가 애매하겠군.”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가 아닌, 멀리 쏘아 보낸 후 목표에 적중하며 일대에 보호막이 생기는 법보였다.
게다가 한번 발동되면 안에서도 밖으로 공격이 불가했기에, 말 그대로 진짜 방어형 법보였다.
그리고 크기와 다르게 잡아먹는 영기도 매우 많아서 당분간은 전혀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았다.
“후후.”
적마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과한 기연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적마도.”
부름에 적마도가 반응하자, 준혁은 온몸이 가벼워진다는 착각을 받았다.
적마도가 대단한 이유는 그 착각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
쉬익-
한 걸음 내딛자 순식간에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준혁.
적마도의 능력은 장도를 신체에 닿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체 반응속도를 3할 정도 끌어올려 주고, 영기를 주입해 활성화하면 단번에 10여 미터를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몇 번이나 능력을 확인해본 준혁은, 그것이 적발의 사내가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왔던 것과 동일한 능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능력은 회피기나 방어기가 하나도 없던 준혁에겐 천금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제 나가보자. 성운지력이란게 뭔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곳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청룡가를 탈출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꽤 시간이 지났으니, 소식도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그 후엔, 원래의 계획대로 일본으로 넘어가 비경으로 갈 건지, 아니면 계속 산수로 남아 강원도에서 수련을 할 건지 결정을 해야 했다.
생각을 마친 준혁은 곧바로 신비경을 나서 산 밖을 향해 움직였다.
+++
[신선 국밥]
참으로 직설적인 작명에 준혁은 잠시 웃음을 흘리다 가게 안으로 발을 옮겼다.
내부엔 각종 기이 화초가 자라나 있어, 신선 국밥이라는 이름에 걸맞아 보였다.
이곳은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먹자골목. 대부분의 가게 상호엔 신선, 혹은 산수라는 단어가 쓰여있었다.
“사장님. 무릉도원맛 국밥 하나요.”
“네이~”
잠시 후 맑은 국물의 국밥이 나오자 한 숟가락 떠먹었다.
“크아~ 이거 시원하네.”
무엇보다도 국밥 특유의 텁텁한 맛이 일절도 없는 깔끔한 맛이었다.
준혁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사장이 친근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처음인갑수?”
“네. 강원도에 영산이 많다고 해서 여행 중입니다.”
“암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인 사장이 말을 이었다.
“다만 조심하시구려. 혹시라도 산수 분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만나는 사람은 전부 선인이라 생각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우.”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최근엔 뭐 별일 없습니까? 혹시 여행하면서 알아야 할 사건 같은 건?”
준혁의 질문에 잠시 턱을 매만지던 사장이 손뼉을 짝 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한 1년 전쯤이었나? 남양주 인근에서 큰일이 났었수다. 근데 그 일이 강원도의 문제가 돼버렸지.”
“큰일이요?”
“소문엔 어떤 보물이 나타났는데···. 글쎄 그것이 강원도 쪽으로 흘러들어왔다지 머요. 그것 때문에 도지사 어른까지 몇 번 인근을 다녀가셨지.”
도지사? 각 도의 도지사는 대부분 결단기 초기의 수사였다. 그런 고수사가 무언갈 찾기 위해 나타나다니?
“도지사 어른이요? 뭔가 대단한 게 발견되었나 봅니다?”
“발견되긴 했지만···. 아쉽게도 그걸 본 사람이 없수다.”
“네? 그게 무슨.”
준혁이 궁금함을 표하자, 사장은 친절하게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모든 얘길 듣고 난 준혁은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 일이란 걸 깨달았다.
‘아. 영기를 잡아먹으며 수행을 회복한 게 그렇게 일이 커졌을 줄이야.’
자신이 남양주 인근의 산에서 영기를 빨아드리며 강원도로 이동한 것이 사람들 눈에는 희대의 보물이 나타난 걸로 의심을 하게 되었고, 결국 경기도 도지사와 강원도 도지사 사이의 분쟁이 되고 말았다.
이유인즉, 남양주에서 시작한 흔적이 강원도 쪽으로 갔으니, 경기도지사는 그 보물의 시작점을 이유로 강원도까지 수색에 들어갔고, 강원도지사와 맞붙게 돼버린 것.
“그럼 아직까지 두 분이 분쟁 중이십니까?”
“에이 말도 마시오. 처음엔 얼마나 격하게 난리가 났는지, 저기 화천 인근에 산 하나가 완전히 반파되었수다. 그러다 명왕 도율님이 나서서 중재했기에 마무리 됐다고 알고 있수.”
“다행히 해결은 됐나 보군요.”
“에이. 그러겠쑤까? 겉으로만 그러지, 그 뒤로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아마 우리 같은 범인은 모르는 곳에서 치고박고 하겠지.”
그건 그랬다. 일반인인 식당 사장이 정보를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도 식당 거리는 별 영향이 없나 봅니다. 주위를 보니 다들 별걱정 없이 장사하시는 것 같던데.”
“아! 그건 다 이유가 있수다. 흐흐, 도지사 분들이 아무리 간이 커도 이쪽으론 발도 들리지 못하우.”
“왜 말입니까?”
“저기~ 보이시우. 옥순자 찰떡 순대?”
사장이 손짓으로 가리킨 곳엔 다 무너져가는 순대 전문점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 명왕 도율님이 일 년에 한 번씩은 찾는 단골집이라우. 벌써 200년 단골이시지. 그것 때문에 수도자들 사이에선 이 인근에서 분쟁이 절대 금지돼있지 않겠수까?”
“아···. 그렇군요.”
‘원영기에 이른 노괴의 단골집이라···.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인가?’
궁금증이 솟아올랐지만 이내 상념을 털어버렸다. 그런 하찮은 것들보단 우선 알아야 할 것들이 넘쳐났으니까.
“잘 먹었습니다.”
준혁은 국밥을 다 먹고 난 후 은편 하나를 건네고는 곧바로 식당을 나섰다.
제대로 된 정보를 듣기 위해선 따로 움직여야 할듯했다.
애초에 식당에 들른 것은 정보 탐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화식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광맥에서 캐온 불안전한 영석 하나를 금전과 은전으로 교환까지 했었다.
+++
밥을 먹고 난 준혁은 먹자골목의 북쪽에 자리한 상점가로 향했다.
[대선당]이라는 간판에 공간대 그림이 그려진 안내판을 보고 들어가자 젊은 여직원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찾으시나요?”
“공간대 있습니까?”
“네. 잘 찾아오셨어요.”
손목에 희대의 공간 법기가 있었지만, 죽은 듯 사용할 수가 없었기에 준혁은 공간대를 구매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인제군까지 내려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저희 대선당에는 하급 공간대와 최하급 공간대만 취급하고 있어요. 중급부터는 예약을 해주시면 구하는 대로 안내해 드리구요.”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하급은 영석 5개. 최하급은 영석 3개입니다.”
최하급이라면 일전에 강도 3인방에게 빼앗았던 1평도 안 되는 크기밖에 활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기본적으로 비행법기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장도(長刀)나 보드 형태의 판자였기에, 최하급은 정말 가난한 수도자나 사용하는 것이었다.
여직원의 설명에 준혁은 품 안에서 영석 10여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건 어떻게 계산해 줍니까?”
“응? 자, 잠시만요.”
영석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여직원은 당황하며 어딘가로 가더니, 점잖게 생긴 중년 여인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대선당의 안주인인 최보미라고 해요.”
안주인의 말에 준혁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준혁의 태도에 싱긋하고 웃어 보인 여인은 영석 하나를 집어 들더니 유심히 살펴보았다.
“흠···. 이건, 강제로 채굴한 영석이군요. 다행히 채굴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함유한 영기는 일반 영석과 비슷하지만···. 아시죠? 이런 건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걸?”
“물론입니다.”
“하나 둘. 총 열두개네요. 어쩐담, 보통은 2할 가격도 쳐드리지 않는데···. 처음 거래하는 손님이니 실망을 안겨드릴 수도 없고. 흠. 좋아요. 공간대를 사시려고 오신 거면 이걸로 하급 공간대를 교환해 드리죠. 대신 약속하나만 해줘요. 이 정도 품질의 영석이면 3할 가격을 쳐드릴테니깐 앞으로 저희 가게를 이용해 주신다고.”
준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영석을 또 구하게 된다면 꼭 이곳으로 오지요.”
“호호, 그럼, 영아야~ 여기 계산해 드리렴.”
“네! 사장님.”
여직원은 가지고 있던 공간대에 영석을 집어넣더니, 조금 전 보여주었던 하급 공간대를 내밀었다.
준혁은 하급 공간대를 받고선 영기를 주입해 안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거래를 마친 준혁은 지체없이 가게를 나선 후 대로를 따라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가는 그를 보며 최 사장은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 팔짱을 꼈다.
“눈빛을 보면 분명 하수가 아니야. 태도도 당당하고. 헌데 어찌 수행은 연기기 4성이란 말이야. 너무 부자연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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