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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9화 (19/408)
  • # 19 < 적마도 (2) >

    “인지괴(認知怪)!!!”

    ‘인지괴?’

    “너! 이제 보니 공천귀가 아니라 인지괴의 주인이었구나!”

    적발의 사내는 준혁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인지경을 보며 바락바락 소릴 질렀다.

    “인지괴!! 이 빌어먹을 새끼야! 넌 존심도 없냐! 어찌 주인을 택해도 저딴 애송이를 섬긴단 말이냐! 우리 백팔마선(百八魔仙)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일이야!”

    ‘백팔마선?’

    사내의 외침에 준혁이 말했다.

    “당신은 이 법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뭐?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깐! 그럼 우리가 살아있지 뭐란 말이냐! 한 번만 더 그런 오만방자한 말을 내뱉으면 그 주둥아리를 당장 찢어버릴 테다!”

    사내의 표정을 보니 연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살아있냐는 말에 유독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구나. 하긴, 오히려 아는 게 전혀 없지.’

    식검과 관련된 세 가지 법보의 능력과 사용 방법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긴 했지만, 그 물건들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된 표현이 없었다.

    매우 장황된 말로 세 법보와 식검의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그 내용을 간추려 보자면 식검을 봉인하기 위해 세 가지 무구의 힘을 빌린다. 정도가 끝이었다.

    그렇기에 식검에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 인지경이나 공천령 같은 법보에까지 의구심을 가지진 않았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힘을 회복하는 적발의 사내를 보며 준혁은 인지경을 발동시켰다.

    순간 인지경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져 내리더니 준혁을 비췄다.

    동시에 주변에 영기파동이 일며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축기 중기에서 후기에 가까운 영기를 보유하게 된 준혁은 사내를 가리키며 작게 중얼거렸다.

    “분광소.”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한 뼘 길이의 단검이 손이 향하는 방향으로 미칠듯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단검은 쏘아짐과 동시에 증식했고, 목표에 적중하기 전 10자루로 변해있었다.

    “분광소까지!! 이 빌어먹을 애송이!!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사내의 얼굴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으로 물들었고, 분광소는 그런 그를 꿰뚫으며 지나갔다.

    푹- 푹-

    “윽, 빌어먹을.”

    사내의 몸을 통과한 10자루의 단검이 허공을 선회하더니 다시금 쏘아져 나갔다.

    푸푸푹- 푹-

    진법 밖으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는 사내완 다르게, 단검들은 아무 영향 없이 진법안을 들락거렸다.

    “분광소! 인지괴! 이 무슨 짓이란 말이냐! 당장 멈춰!”

    잠시 후 사내는 온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채로 간신히 버티고 서있었다. 기이한 것은 피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

    다만, 축기기를 넘어서며 올라가고 있던 수행이 다시 연기기 중기까지 떨어지며 상처에선 영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사람이 아니군요.”

    “크크큭. 이 새끼가. 끝까지 나를 농락···. 크큭. 그렇군. 그래. 너 우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나?”

    사내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준혁을 노려보았다.

    “크큭, 오역(五域)의 강자들이 이 얘길 듣는다면 땅을 치겠어. 우릴 가지기 위해 천하가 피로 물들었거늘. 큭. 네놈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맞습니다. 신비경에서 이 법보들을 얻긴 했지만, 그 유래를 알지 못합니다.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내가 왜?”

    “알려주신다면 당신을 죽이진 않겠습니다.”

    “뭐? 크하하하.”

    사내는 뭐가 그리 웃긴 지 한동안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천천히 신형을 일으키더니 진지한 투로 말했다.

    “죽인다고? 너는 우리가 죽는 존재로 보여?”

    “세상에 영원한 게 있겠습니까?”

    “큭, 그럼 애초에 우릴 죽이면 되지 왜 이렇게 봉인했을까?”

    “흠···.”

    사내는 상처에도 굴하지 않고 피식피식 웃어대더니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상하긴 하네. 두 녀석이 주인으로 모시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른다?”

    “......”

    “알겠다. 다 알려주지. 대신 그전에 두 녀석과 얘길 하게 해다오.”

    ‘저자는 정말로 이것들이 살아있다고 여기는구나.’

    잠시 생각하던 준혁이 난처한 듯 대답했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왜지? 그 녀석들이 나와 얘기하길 거부하나?”

    어느새 장난스러운 말투를 지운 사내의 목소리에 준혁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아무 말도 없습니다.”

    “흠. 설마 나완 다른 봉인에 묶여있는 건가···. 아닐 텐데···.”

    “혹시 저 법보들도 살아있는 겁니까?”

    준혁이 손으로 단상 위의 물건을 가리키자 사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존재가 흔한 줄 아나?”

    ‘인지경과 분광소는 분명 식검을 가두고 있던 봉인법기였다. 그렇다면 이자를 가둔 봉인법기는 다르단 말인가?’

    또 다른 의문이 들 때쯤 진법의 기운이 살짝 바뀌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연기기 중기까지 떨어졌던 사내의 수행이 미칠듯한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런!”

    준혁은 사내가 행했던 모든 행동이 시간을 끌려 했단 걸 깨닫고는 급히 분광소를 쏘아 보냈다.

    푸푸푹- 푹푹-

    또다시 단검들에 꿰뚫린 사내는 휘청하긴 했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떨어지던 수행이 다시금 차올랐다.

    “애송아 이런 식으로 가능할 것 같으냐? 흐흐흐. 당장이라도 도망치거라. 그럼 마지막 봉인이 깨지기 전에 혹시라도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느냐?”

    “그렇게 말하며 더 빨리 회복하려는 계획인 줄 모를 것 같습니까? 어디 당신이 소멸하는 게 먼저인지, 봉인이 깨지는 게 먼저인지 두고봅시다!”

    어느새 준혁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지휘하듯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짓에 따라 분광소가 열다섯 개까지 늘어나며 적발 사내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크윽. 빌어먹을 새끼···. 눈치는 빠르구나. 그래도 이미 늦었다.”

    그 순간. 적발의 사내가 수결을 맺더니 진법의 바닥을 향해 두 주먹을 내 질렀다.

    쾅!

    주먹이 진법을 때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진법이 터져 나갔고, 동시에 단상 위에 놓여있던 세 번째 법보가 폭발했다.

    두 번째 법보는 폭발의 여파로 떼굴떼굴 굴러 단상 아래로 떨어지더니 퍼석- 소리를 내며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러자 단검에 난도질당해도 몸에 구멍이 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도 없던 사내가, 얼굴 한쪽이 시커멓게 변하며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내가 이 빌어먹을 봉인을 못 벗어나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더냐? 강제로 깨부수면 혼백에 영향이 가기에 어쩔 수 없었던 거지. 하지만 이제 상관없다. 마지막 봉인을 부수고 받은 반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분광소와 인지괴를 얻는 거로 보상받을 테니.”

    진법 밖으로 나온 순간, 준혁의 공격에 떨어지던 사내의 수행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축기기를 넘어섰고, 곧바로 결단기에 이르렀다.

    그 순간. 희희낙락하게 웃고 있던 사내가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심장 부위를 움켜잡고는 천장을 쏘아보았다.

    “윽! 빌어먹은 성운지력.”

    판단이 잘못되었던 건가? 하고 생각하며 도망칠 준비를 하던 준혁은 상대방의 수행이 결단 초기에서 멈춰 서며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보이자, 곧바로 태세를 바꾸며 공격에 돌입했다.

    “대단한 뭐라도 보여줄 듯하더니 겨우 결단기입니까? 분광소! 가라!”

    비록 준혁의 수행이 인지경의 도움으로 축기기 후기까지 올라왔다고는 하나, 결단기에는 비빌 수 없는 게 현실.

    하지만 사내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얼굴 한쪽의 흙빛이 점점 퍼져가는 걸 보고는 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눈치챘다.

    아마 봉인을 강제로 깨기 위해 큰 무리를 한 듯했다.

    그리고 그 정도로라면 자신에게 승산이 충분할 거라 믿었다. 오히려 도망갔다가는 그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게 되고 되레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

    명령이 떨어지자, 15개로 증식했던 단검이 철새가 떼지어 날아가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좌우로 갈라지며 적발 사내의 전신으로 쏘아졌다.

    준혁의 대처에 사내가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심장 부위에서 빛이 나며 묵직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으드득, 나와라!”

    사내는 이를 악물더니 자신의 심장이 위치한 곳에 손을 가져다 댔고, 잠시 후 길쭉한 적색의 도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은 굉장히 괴기하고 섬뜩했다.

    “네 수행이 보이진 않지만, 분광소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축기기 후기. 흐흐. 이 정도 수행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널 죽이고 난 후에 회복하면 되지.”

    사내의 붉은 입술 사이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심장에서 꺼내든 적색 장도가 핏빛 광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준혁을 향해 일직선으로 도를 내리 겨누며 땅을 박찼다.

    슈앙-

    순간, 사내의 움직임에 강렬한 바람 소리가 나며 주변 공기가 밀려나는 착각이 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준혁 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핏빛 장도를 그대로 내리그었다.

    “막아!”

    핏빛 장도가 자신을 두 쪽으로 갈라버릴 듯 떨어져 내리자, 준혁은 급하게 분광소를 불러들이며 전면을 보호했다.

    타탕-탕-탕-

    장도가 단검들에 막혀 주춤하는 사이 빠르게 뒤로 물러난 준혁은 수결을 맺어 손위로 얼음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곧바로 두 손으로 바닥을 짚자, 바닥 일부가 얼어붙으며 얼음덩이들이 솟아올라 사내에게 쇄도했다.

    피식-

    준혁의 수를 보고는 비웃음을 흘린 사내가 발을 한번 구르자, 주변이 펑- 하고 터져 나가더니, 다가오던 얼음송곳들이 산산조각이 나 터져 나가버렸다.

    준혁은 자신의 공격이 너무 쉽게 무산되자 다른 초급술법은 포기하고 모든 기운을 분광소에 쏟아부었다.

    화령술이 있었지만 그래봐야 연기기 술법. 빙결술이 간단하게 깨지는 걸 보니 결단기에는 통할 리 없어 보였다.

    다시 한번 허공에서 선회하던 단검들이 현란하게 춤추며 사내에게 폭사 되었다.

    타탕- 탕-탕-

    하지만 그런 공격에 익숙해졌는지, 사내는 단검들을 가볍게 쳐내고는 계속해서 뒷걸음치던 준혁에게 쏘아져 왔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빨랐기에 준혁이 재차 피해내기도 전. 그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컥-”

    “크큭, 애송아. 내가 말했잖느냐? 빨리 도망가라고.”

    어느새 사내의 손에 목이 붙들린 채 허공에 띄워진 준혁은 전신에서 영기가 흩어지며 기이한 탈력감을 느껴야 했다.

    사내는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그런 준혁을 바라보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커억-”

    “당장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 말아.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거든? 이 말할 수 없이 불쾌한 불균형. 넌 도대체 뭐지? 뭐길래? 영근이 없는대도 영기를 다루며 마선(魔仙)들과 계약을 할 수 있는 거지?”

    마선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광소와 인지경을 지칭하는 게 틀림없었다.

    준혁은 점점 조여오는 손아귀의 힘 때문에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분광소를 움직이려 해보았지만, 사내의 손에 잡힌 후부턴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인지경마저 힘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은 성운지력 때문에 내 힘이 묶여있으니, 자세한 건 나가서 얘기해 보자고. 크큭.”

    말을 마친 사내는 손아귀를 더욱 세게 움켜잡으며 손안으로 기이한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 기운이 준혁과 법보들의 연계를 끊어버리기라도 한 듯. 온몸의 영기가 흩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준혁의 뇌리로 웬 나이 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으로 놈의 심장을 찌르게나.

    점점 정신을 잃고 있던 준혁은 목소리에 스며있는 기이한 힘을 느끼고는 겨우 손을 들어 사내를 향해 내밀었다.

    “어라? 아직도 움직일 힘이 있다고? 와~ 진짜 이 새끼는 뭐ㅈ...”

    푸욱-

    말이 끝나기도 전, 준혁의 손바닥에서 거무튀튀한 중식도 하나가 튀어나오며 사내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너무 가까웠기에 피하고 말고 할 틈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컥-이런 말도 안 되는···.”

    사내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무언가를 내려다보고는 준혁을 잡았던 손을 놓고 말았다.

    그리곤 자신의 가슴에 박혀있는 중식도를 뽑으려고 손으로 움켜잡다가 허망한 듯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씨발···. 식(食)이라니···.”

    그 순간, 사내의 몸이 급속도로 쪼그라들며 식검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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