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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화 (18/408)
  • # 18 < 적마도 (1) >

    주변 기운을 흡수한 후, 분광소를 이용해 정리하려던 준혁은 벽면 한쪽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어? 이건?”

    재처럼 바스러져야 정상이거늘, 그곳은 단단한 벽이 흡수능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뭐지?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이상함을 느끼고 손안에 단검을 불러들인 후 부서지지 않은 벽면을 천천히 살폈다.

    “흠. 마치 넓은 구 형태를 취하고 있구나.”

    처음엔 그저 한 부분인 줄 알았더니, 흡수능력이 통하지 않는 벽은, 경계를 이룬 것처럼 넓은 구 형태를 하고 있었다.

    마치 광맥에서 발견되는 신비경처럼.

    “설마?”

    새로운 신비경의 출현인가 싶었던 준혁은 분광소를 이용해 주변을 빠르게 파내었다.

    “찾았다!”

    잠시 후 경계의 한 부분에 출입구로 예상되는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곤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

    발걸음을 옮긴 준혁은 무언가 울렁거림을 느끼고는 오래전 느꼈던 그 감각을 되새길 수 있었다.

    좁은 입구를 벗어나자 넓은 공동에 별빛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곳을 확신했다.

    “아! 진짜 신비경이라니.”

    어두운 공동 안.

    사방이 막힌 천장에서 별빛이 아스라이 쏟아지며 신비한 장면을 연출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자, 대략 50평 정도 되는 넓이의 텅 빈 공동.

    공동의 한쪽엔 작은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법기 세 가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여긴···.”

    단상 앞으로 다가간 준혁은 바로 법기를 확인하지 않고,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똑같다. 식검을 얻었던 청룡가의 신비경과 완벽하게 똑같아.’

    신비경이란 게 무엇인가?

    영기가 밀집되는 곳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고대의 비밀 공간이 아니었던가?

    지금껏 수많은 신비경이 모습을 드러낸 후 사라졌지만, 그 어떤 곳도 동일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었다.

    당연하게도, 신비경은 옛 상고시대 지구의 수도자들의 비밀 공간이었거나, 수련 장소, 혹은 생활 공간의 일부였을 테니 완벽하게 동일할 수가 없었던 것.

    현대의 지구처럼 같은 구조의 같은 평형을 가진 아파트를 찍어냈던 게 아니라면 똑같은 구조의 신비경이 나타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흠···.”

    한참을 고민하던 준혁은 결국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단상 위의 세 가지 법기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영기를 주입해보니 완벽하게 다스리는 게 힘들다는걸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말하는 바는 청룡가의 신비경처럼 이곳에 있는 법기들도 최소한 상급 법기임을 의미했다.

    “설마···. 또 식검 같은 게 나오는 건 아니겠지?”

    또 한 번 장고에 들어간 준혁은 무언가 결심한 듯 손에든 법기로 손끝을 살짝 찔렀다.

    똑같은 장소가 주는 기이함에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확인하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은 미련할 일.

    만약 이곳에서 식검과 같은 신비한 능력을 주는 법기를 또 한 번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운이라고 설명할 수 없고 기연이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렇다고 찜찜한 기분을 완전히 털어낸 건 아니었기에 전신에 영기를 끌어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일한 모습에 같은 구조, 거기다 상급 법기 3개가 놓인 모습이 매우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톡-

    손끝에 맺힌 피가 바닥에 떨어지자, 미동이 일어나며 공동이 살짝 떨었다.

    “이 반응···. 그때와 똑같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공동 중앙에 금빛 진법이 나타나더니, 그 위로 금빛 문자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문자들은 허공 높이 떠오르더니 천장에서 쏟아지고 있던 별빛들을 먹어 치우며, 다시 떨어져 내려 금빛 진법 위 기둥처럼 둥둥 떠다녔다.

    예전과 같은 현상에 진법 앞으로 다가간 준혁은 침을 한번 삼키고는 상처를 냈던 손끝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핏물이 방울방울 져 떠오르더니 천천히 흘러 진법으로 떠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법에 핏방울이 닿은 순간.

    꽈르르릉-

    예상대로 거대한 진동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설마 또 식검이 나타나려나? 아니면 다른 법보?”

    식검이 나타났던 과정과 동일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준혁의 핏방울을 집어삼킨 진법은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금빛 문자들이 핏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글씨의 형태가 뭉개지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언가로 새롭게 변했다.

    그리고 갑자기 변한 그 무언가, 아니 그 어떤 사람이 준혁을 보더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엥? 뭐야 이 애송이는?”

    +++

    대략 160㎝의 키에 날카로운 인상.

    허리까지 내려오는 적발이 인상 깊은 사내는 붉은 눈썹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입가마저도 살짝 붉은 기운이 맴도는 것이 사람이라 하기에는 요기(妖氣)가 너무나 강렬했다.

    그런 사내의 얼굴엔 어울리지 않은 장난기가 그득해 보였다.

    “왜 아무 말을 안 해? 어? 애송이 넌 뭐냐니까?”

    너무도 놀라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건 아닌가 했던 준혁은 이내 신색을 회복하며 떨리는 마음을 내리누르고 말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그 진법에 갇혀있다 풀려난 겁니까?”

    준혁에 말에 자신이 서 있던 바닥을 내려다본 사내가 갑자기 키득 대면서 고개를 들었다.

    “크큭. 아 맞다. 그 개새끼들한테 당했었지? 빌어먹을 개똥 같은 놈들. 우릴 서로 가지겠다고 그렇게 싸우더니, 이딴 식으로 대해? 썅! 다 죽여버리겠어!”

    한참 동안 혼잣말로 누군가를 저주한 사내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준혁을 보고 웃음 지었다.

    “아-아-, 겁먹을 거 없어. 상황을 보니깐. 네가 날 봉인에서 풀어준 거 같네? 맞지?”

    “그게 봉인인지는 모르나, 금빛 진법을 발동해 당신을 이곳에 나타나게 한 건 제가 맞습니다.”

    “크큭. 그래. 그게 봉인을 푼 거지. 애송이라 불러서 미안?”

    전혀 미안함이 없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얼마나 오래 잠들어있었던 거지? 아직 정신이 해롱해롱하네.”

    목을 좌우로 꺾어보고 허리를 흔들흔들 움직이던 적발의 사내의 시선이 어느덧 천장에 고정되었다.

    “성운(星雲)?? 이 개새끼들이!! 아오! 어쩐지 몸이 뻐근하더라. 성운지력(星雲之力)을 이용했었네.”

    ‘성운지력? 저 별빛을 가리키는 말인가?’

    천장을 한참 살피던 사내가 이번엔 준혁을 꼼꼼히 살폈다.

    “근데 넌 뭐야? 아까 애송이라 불러서 미안하긴 한데 말이지. 수도자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봉인을 푼 거지?”

    사내의 질문에 준혁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이 영석 광맥이라 땅을 파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여기 이 물건을 집어 들었더니 갑자기 당신이 나타난 겁니다.”

    “흐음···. 도대체 뭐지? 이상하···. 어라? 야 애송아. 아니 미안. 야 일반인아.”

    “말씀하십시오.”

    “너 공천귀랑 무슨 사이지?”

    “네? 공천귀가 무엇입니까?”

    “몰라?”

    “처음 듣습니다.”

    적발의 사내는 준혁의 대답에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그러자 그의 붉은 눈썹이 더욱 길어지며 대각선으로 좀 더 자랐다.

    ‘공천귀? 설마 공천령을 말하는 건가?’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적발의 사내가 준혁의 시선을 따라가다 손목의 문신을 확인했다.

    “뭐야? 이 음흉한 애송이는 크큭. 딱 보니깐 공천귀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모르는 척 잡아떼? 그 문신은 뭐지?”

    “정말 처음 듣습니다. 그리고 이···. 문신은 어릴 때 재미 삼아 그린 겁니다.”

    “그래? 흐음. 하긴 애매하네. 공천귀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또 뭔가 좀 달라. 너무 옅어서 잘못 본 거 같기도 하고···. 야! 그거 누가 언제 그려준 거야?”

    잠시 고민하던 준혁이 말했다.

    “그런데 제가 그걸 말씀드릴 이유가 있습니까?”

    “뭐? 크크큭. 이 애송이 새끼가 죽. 아 미안. 하긴 네 말이 맞지. 맞아.”

    한동안 키득거리며 웃던 사내가 어느덧 웃음기를 지우더니 손가락으로 단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애송아. 이유야 어쨌든 나를 봉인에서 풀어준 건 고마운 일. 저기 단상 위에 놓인 나머지 법보들도 전부 가져가라.”

    “법···. 보. 설마 이 세 가지가 전부 법보입니까?”

    “당연한 거 아냐? 그럼 법기 따위로 나를 봉···. 선화야~ 아. 오래 여기 있었더니 우리 선화가 보고 싶네. 야 아무튼 저거 가지고 사라져. 내 크게 인심 썼으니깐.”

    사내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던 준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상 위로 다가갔다. 그리곤 천천히 법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 참 그런데 말입니다.”

    법보를 잡으려던 준혁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리자, 순간 사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가 이내 돌아왔다.

    “뭐? 뭔데? 뭐가 궁금한데?”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러니깐 그게 뭐냐고.”

    “당신은 아까부터 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질 않는 겁니까? 그 진법안에서.”

    순간 사내의 얼굴이 흉악하게 변하다 빠르게 웃음을 되찾았다.

    “무슨 개소리야. 너랑 대화 중이었잖아. 참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그거 가지고 나가. 나 화나면 진짜 무섭다? 네가 봉인을 풀어줬으니깐 이러는 거지. 다른 놈들이었으면 이미 갈가리 찢어버렸어.”

    사내의 말에 준혁이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살짝 키우며 물었다.

    “정말 봉인이 풀리신 거 맞습니까?”

    “어? 뭐라는 거야? 봉인이 풀려서 이렇게 나왔잖아?”

    “혹시 이 법보를 전부 가져가면 그 진법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준혁의 질문에 사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자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크큭. 이 개새끼. 아무것도 모른척하며 얘길 듣고 있더니. 다 알고 있었구나?”

    “아무리 봐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아까부터 저를 죽이겠다고 몇 번이나 협박하면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크큭. 그래. 그 법보 들이 나를 봉인하는 중이지. 근데 뭐? 그래서 뭐? 이미 네가 하나를 들었으니까. 봉인은 깨지기 시작했다. 나머지를 움직이냐 마냐는 그 시간을 빨리하냐 마냐의 차이지. 크큭. 야 애송아. 이제부터 신나게 도망가거라. 봉인이 전부 해제되면 너부터 찢어 죽일 테니까.”

    사내의 협박에 준혁은 손에 들고 있던 법보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크하하하. 그게 다시 놓는다고 달라질 거 같아? 이미 결계가 형성하던 봉인이 깨지기 시작했다. 범인인 네놈이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사내는 더는 연기를 할 생각이 없는지 미주알고주알 떠들기 시작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 법보야 아무나 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와 비슷한 곳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일반인들이 법보를 그냥 들 수 있었고.”

    “크크큭 무슨 개소리를. 물론 들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냥 드는 것과 봉인을 이루고 있던 근간을 만지는 건 다르지.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것 같군? 하긴. 나도 신기하네. 어찌 너 따위가 봉인을 풀 수 있는 거지?”

    사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준혁은 이상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 신비경을 발견한 3인방이 정말 단상 위에 있던 법보를 만져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만 반응했단 말인가?

    ‘흠···.’

    하지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그때 적발의 사내가 비웃음을 흘리며 나직이 말했다.

    “애송아. 느껴지냐? 봉인이 점점 약해지는걸? 흐흐흐. 힘이 차오르는구나. 으오오. 내 힘이 점점 돌아오는 게 느껴져.”

    사내를 확인하자. 그의 말대로 그의 몸에 존재하는 영기의 질이 변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기기 초급도 안될 만큼 약하디약한 기운이었기에, 사내의 협박에도 별 감응 없이 행동했는데. 지금은 연기기 중기를 넘어서며 후기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만약 이 속도로 계속 회복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축기기, 결단기를 아득히 넘어 점점 강해질지도 몰랐다.

    만약 이 진법이 어떤 존재를 봉인하기 위해 상고시대 때부터 있었던 거라면, 그 존재가 결단기나 수준은 아닐 게 틀림없었다.

    “표정을 보니 겁먹었네? 맞지? 크큭. 지금이라도 나를 온전히 풀어주고 싹싹 빌면 목숨은 살려주지. 어때? 구미가 땡기지.”

    사내의 변화에 침묵하던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미가 당기긴 합니다. 그 진법안에서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말입니다.”

    어느새 준혁의 머리 위로 인지경이 서서히 떠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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