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7화 (17/408)
  • # 17 < 산수의땅 (3) >

    외부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한 준혁은 그날부터 본격적인 수행 회복에 들어갔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주위 기운을 잡아먹으며 영기를 흡수하는 게 생각보다 효율이 나쁘다는걸 깨닫고 있었다.

    “단약과 비교하니 너무하는구나.”

    반경 3m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영기를 흡수하는데도 흡수되는 총량은 매우 미미했다.

    당연하게도 영기란 것은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있었지만, 그 총량은 매우 희박한 것.

    약초나 단약, 고등급의 영석이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수도자들이 영초(靈草)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기는 약초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원래 가질 수 없는 양의 영기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

    “역시, 단약을 구해야 하나?”

    회복을 시작한 지도 한 달.

    수행의 7할을 회복했지만, 갈수록 더딘 느낌에 준혁은 방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계획은 사람들 모르게 산속에 틀어박혀 축기기를 넘어서 결단기까지 계속해서 수련만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게 얼마나 큰 오판이었는지 깨달았다.

    청룡가를 피해 일본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가 될 것 같았다.

    우르릉-

    고민에 빠져있던 순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흙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준혁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문제고 말이야.”

    2시간마다 안으로 파고들며 반경 3m의 구멍을 만들어내는 게 계속되자, 산 곳곳이 움푹 파여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고, 지반이 통째로 흔들리기도 했다.

    몇 군데는 통째로 내려앉아,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만큼 조용하고 수도자가 드문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다른 영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분명 다른 수도자의 관심을 불러올 터.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할 수 없지. 이젠 아래로 파고 들어가자.”

    주변 영기를 흡수하는 게 매우 비효율적이고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는 건 알았지만, 당장은 어쩔 수가 없는 문제.

    최소한 축기기 1성의 원래 수행까지는 회복하고 나서, 약초나 단약을 구하러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그렇게 산맥을 관통하듯 앞으로 나아가던 준혁은 방향을 바꿔 아래 방향으로 이동하며 수련을 시작했다.

    영기를 흡수하니 피곤도 잊을 수 있었고,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껴질 때 빼곤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자 마침내 뒤틀렸던 기혈이 전부 제자리를 찾고, 바닥났던 영기가 차오르며 온전한 축기기 1성의 경지를 회복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얼마나 깊게 내려온 거지?”

    대략 계산해도 최소한 2킬로 이상은 지하로 파고 내려왔다.

    조금만 강한 충격이 생긴다면 준혁이 파고 내려온 길은 싱크홀이 되어 위에 존재하는 지반을 집어 삼켜버릴 것 같았다.

    “큰 문제는 없겠지.”

    상념을 가볍게 날려버린 준혁은 손을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소매에서 단검 하나가 쏘아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세 자루로 변해 벽면을 뚫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옆으로 이동하며 파고 내려가자.”

    지반이 무너져서 떨어지는 것이야 딱히 겁날 게 없었지만, 좌선하고 영기를 흡수하기 위해 집중을 하고 있을 때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꽤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스걱- 스걱-

    단검을 조정해 벽면을 잘라내며 대략 50여 미터를 앞으로 나아간 준혁은 그곳에 자리하고 앉았다.

    이번엔 평소처럼 성인이 겨우 앉을만한 공간이 아닌 머리 위로 조금 더 넓게 토굴을 만들었다.

    주변의 기를 빨아들이는 게 비효율적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수행을 회복하고 바로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건, 한가지 확인해야 할 게 남아서였다.

    잠시 후, 앉아 있는 준혁의 머리 위로 손잡이가 달린 거울 하나가 떠오르더니 천천히 회전했다.

    그리고는 준혁의 의지에 따라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빛은 어두운 지하 토굴을 밝히며 준혁에게 쏟아졌고, 그 순간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영기 파동이 생겨나며 주변 기운들이 미친 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

    “후우...”

    30분 후. 준혁은 깊은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다가 손을 가볍게 젓자, 그의 손안으로 인지경이 빨려 들어왔다.

    “아쉽구나. 각각의 효능이 하나였다면 더 좋았을걸.”

    손안에든 인지경을 보는 준혁의 눈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보패라 불릴만한 보물인 인지경.

    혹시나 자신의 수련을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도와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물론 수련 속도가 빨라지긴 했다. 2시간가량 걸렸던 흡수 시간이 4분의 1로 줄어들어,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

    하지만 준혁이 아쉬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전투 보조용으로 사용할 때 인지경을 통해 몸 안에 쏟아져 들어오는 주변의 영기. 무려 준혁이 가지고 있는 기운의 3배에 가까운 엄청난 양의 영기를 수련으로 흡수할 수만 있다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인지경의 전투 보조용 능력과 수련 보조용 능력은 엄연하게 다르게 적용됐다.

    전투 보조용으로 빛과 함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영기는 그 어떤 노력을 해봐도 단 1도 흡수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저 신외지물(身外之物), 아니 신외지기(身外之氣)였다.

    “할 수 없지. 이제 나가서 단약을 구할 방법을 마련해보자.”

    단약을 구하지 못한다면 영석이라도 찾아야 했다.

    영석만 하더라도 엄청난 양의 영기가 밀집해 있으니, 그것의 기운만 흡수해도 수행 속도가 수십 배는 빨라질 터였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영석 자체가 매우 고가이고,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영석 광산은 세가나 문파에서 관리하고 있었기에 개인이 채취할 방법은 없다는 것.

    준혁이 손을 젓자, 소매에서 쏘아져 나온 단검이 주변을 빠르게 정리했다. 반경 3m의 공간이 정리되자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은 주변 연기기 수사들이 어떤 식으로 영석을 구해 사용하는지 알아보고 나서 계획을 짜야겠어.”

    강원도로 산수들이 몰리는 건 비단 원영기 수사의 선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이 산수들이 수련하기에 가장 유리하고 도움이 되기 때문. 그 도움이란 게 귀한 단약일 리는 없고, 분명 영석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때. 막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하던 준혁의 눈에 잿더미가 쌓여있는 바닥 한쪽에서 반짝이는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응?”

    영기를 빨아들인 3m 반경 안에는 들어오지 않은 것 같으나, 단검으로 주변을 정리하면서 살짝 깎여나간 단면으로 무언가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가가 그것을 만져본 준혁은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영석 가루!”

    영석을 캘 때는 특수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곡괭이를 이용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채취했다가는 영석에 포함된 영기가 서서히 흩어져 버리고 마는 것.

    영석 가루는 그렇게 잘못 채취한 영석이 영기를 잃어버리며 바스러질 때 떨어져 나오는 반짝이는 가루였다.

    “심 봤다!! 아니 광맥 봤다!!”

    평소 진중하던 준혁은 흥분에 진정할 수 없었다.

    영석을 구하려고 하던 순간에 발견된 광맥이라니.

    시간이 지나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킨 준혁이 지휘하듯 양손을 휘저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스걱- 스걱-

    준혁의 지시에 분광소가 미친 듯이 움직이자 어느새 영석 가루가 발견된 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이 수 미터씩 길게 뚫려버렸다.

    잠시 후 준혁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식검과 이 법기들을 얻은 것도 그렇고···. 운이 따라 주는구나!”

    흔한 말로 수도계를 살아가는 수도자는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 했다.

    운이 구이고, 노력이 일이란 말.

    뛰어난 보물이나 하늘이 내리는 약초, 혹은 천하를 울리는 공법.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기보다는 하늘이 점지해 줘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물론 준혁은 그렇게 생각하질 않았다.

    운이란 건 결국 노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겠는가?

    만약 준혁이 다른 이들처럼, 힘든 광산 일을 한다며 주 이틀씩 쉬었다면, 여서령의 눈에 띄었을까?

    그랬다면 관리자가 되지도 못했을 테고, 신비경에서 보물을 얻지도 못했을 터였다.

    또한 그것이 운이라 할지라도, 바른 판단을 하고 언변을 이용해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면 이미 보물을 빼앗긴 채 어느 땅에 묻혀있을지도 모르는 일.

    광맥을 발견한 것 역시 마찬가지.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땅속에서 2달간 잠도 줄여가며 노력했기에 얻을 수 있는 행운에 불과했다.

    결국 운이란 것도, 우리가 행운이라고 부르는 것도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준혁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펴있었다.

    그 역시 이것이 대단한 행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하하하.”

    그리고 준혁이 이렇듯 크게 웃는 이유는 광맥의 형성 방향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광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준혁은 영석 광맥이 어떤 식으로 발견되고 개발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지금 발견한 광맥의 경우, 대각선 방향으로 향해있는 걸 보면 이제 막 위로 솟구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직전인 상태.

    만약 준혁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수십 년 안에 지표면과 가까운 부분에서 뿜어져 나온 영기의 영향으로 영기에 민감한 수도자들이 발견하고 말았을 것이다.

    한참 동안 웃던 준혁은 영석들이 훼손되며 기운을 잃든 말든 상관없이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자리에 주저앉아 곧바로 인지경을 꺼내 들었다.

    다른 이들이야 조심조심하며 영석을 캐겠지만, 통으로 흡수할 수 있는 준혁에건 그런 거추장스러운 일 따위는 없는 것.

    인지경이 발동하자 곧바로 눈을 감고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

    반년 후.

    영석 광맥이 자리한 길을 따라 지하로 파고든 준혁은 지반이 무너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조금의 영석이라도 포함된 땅이 보이면 무차별적으로 기운을 흡수했다.

    그러다 지반이 무너져 토사가 흘러들어오면, 잠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이제 끝이 보이나. 그렇게 큰 광맥은 아니었군.”

    30분마다 반경 3m에 이르는 공간을 통으로 잡아먹으며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영석 광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들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것.

    그리고 어느새 준혁의 기운은 축기기 1성을 넘어, 축기기 6성.

    벌써 축기기 중기에 이르러있었다.

    이것은 그가 광맥을 반년 만에 먹어 치운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수도자가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한들, 아무리 좋은 단약과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을 온전하게 자신의 수행으로 바꾸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에도 엄연히 한계라는 게 존재하는 법.

    단적인 예로, 청룡가의 대공자가 무수히 많은 단약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축기기 후기인 지금 경지까지 80년이 걸렸다.

    하지만 준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운을 흡수하는 족족, 수행이 올라갔다.

    수련을 시작한 지 고작 3년도 안 되는 시간.

    “너무 빨라. 여동수 그놈만 아니었다면, 시간을 두고 알아봤을 텐데.”

    여전히 자신의 상태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해지는 게 무섭다고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

    결단기에만 오른다면 청룡가도 두렵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열심히 기운을 먹어 치웠다.

    “하긴 이런 성장도 지금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축기기 중기에 들어선 후론 그릇이 커짐에 따라 필요한 영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면, 영석 광맥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건 생각보다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처음엔 영기가 옅은 흙이나 나무에서 기운을 뽑아갔기에 그런 거로 생각했지만, 수련을 거듭할수록 기운을 흡수하는 능력 자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이유가 일반인들이나 익히는 저급한 태극단공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 기운을 먹어 치우는 능력 자체의 비효율성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영석에 함유된 영기의 농도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만을 흡수할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이렇게 영석이나 영석 광맥을 통째로 흡수할 기회가 생긴다 해도 준혁은 이 방법을 쓸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광맥을 개발해 거기서 나온 재산으로 단약을 사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상념에 잠긴 채 수련을 계속하다 보니 광맥의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준혁은 나지막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어? 이건?”

    지하 깊은 곳 익숙한 것이 자신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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