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6화 (16/408)

# 16 < 산수의땅 (2) >

축기기에 오른 직후, 여동수에게 납치를 당했고, 그 후론 금빛 문자로부터 전해 받은 법기의 사용 방법을 능숙하게 이해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기에 축기기로 오른 후 처음으로 기공 수련을 했던 준혁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도 하고 기뻐하기도 했다.

“기쁘긴 한데···. 난감하네.”

앞으론 단약의 도움 없이도 수행을 회복하고, 또 나아가 경지를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이 영기를 흡수하는 만큼이나 주변의 생명이 말라 죽어버렸다.

일반적인 수도자들의 공법은 대기 중에 떠도는 영기나, 영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기를 흡수하며 수련을 했다.

가끔 주변의 영기를 강제로 끌어오는 공법도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도 엄연한 한계가 존재했다.

준혁처럼 생명체나 무생물이 가진 영기를 골수까지 빼먹듯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며 수련경지를 올리는 경우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는 희귀한 현상이었다.

“어쩔 수 없지. 축기기 경지만 회복한다면, 인지경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르게 수련할 수 있으니···. 이 정도 부작용은 감수할 수밖에.”

며칠간 인적이 드문 곳만을 골라 이동과 수련을 반복하던 준혁은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진 않았지만, 더는 수련을 계속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이동 경로가 계속 남는다. 혹시라도 의구심을 품고 누가 조사를 하게 되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어.”

우연인지 준혁이 이런 생각을 시작했을 때, 처음 주변 영기를 먹어 치웠던 곳에는 수많은 수도자들이 모여드는 중이었다.

+++

“강형. 이게 뭐로 보입니까?”

수염이 텁수룩한 사내의 질문에 강형이라 불린 남성이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가볍게 힘을 주자, 돌멩이가 바스러지며 재처럼 손바닥 위에서 흩어졌다.

“서양에선 흡혈마공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은 마공이 아니라 신공이라 부른다지만, 어찌 피를 빨아들여 경지를 올리는 게 정상일 수 있겠습니까?”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수염 사내는 맞장구쳐주었다.

“아!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자가 바로 그 유명한 결단기 수사 드래큘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주변에 일어난 참상을 보니, 그때 들었던 것과 비슷하군요. 헌데 이건 또 그것과 다릅니다. 드래큘의 흡혈마공도 살아있는 동물이나 사람의 피와 정기를 흡수하는 것이지, 이렇듯 나무나 풀, 거기다 흙과 바위까지···. 모든 걸 빨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 현상이 무언지는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그때 두 사람의 얘길 듣고 있는 뚱뚱한 사내가 불쑥 몸을 내밀며 끼어들었다.

“보물이 나타난 건 아닐까요?”

“보물 말입니까?”

“법기야 누군가가 제작한 것들이지만, 법보나 보패들은 가끔 천지 영기의 기운을 빨아들여 스스로 태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나타나면서 주변 기운을 빨아들인 게 아니겠습니까?”

“??!!”

뚱뚱한 사내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주변에서 기웃거리고 있던 수사들이 동시에 움찔하고는 급하게 신색을 감췄다.

이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다.

“험험. 그 말도 일리는 있지요. 아 참! 곰탕을 올려놓고 왔는데 깜빡했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모두 다음에 뵙지요.”

“어이구. 저도 생선을 굽다 나왔는데, 다 타버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수사들이 빠르게 자리를 뜨자, 뚱뚱한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했다.

“응? 다들 곡식을 끊은 거 아니셨나? 하긴. 가끔 먹으면 별미이긴 하지. 수련엔 방해가 되겠지만. 으헤헤 나도 오랜만에 민가에 내려가 수육이나 먹어야겠네.”

자리를 파하고 빠르게 움직인 수사들은 바로 주변을 탐색했고, 영기가 말라버린 곳을 또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한 방향을 향해 드문드문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자신이 벌인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도 하지 못한 준혁은 천천히 걸어서 산맥을 넘고 있었다.

처음엔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이동하다가 계곡에서 피를 씻어내고 옷을 깨끗이 만든 후에는 최대한 등산로를 이용하며 걸었다.

강원도 권역 안에 들어왔기에, 괜히 깊숙한 곳에서 산수 출신의 수도자를 만날까를 염려한 행동이었다.

“대암산을 넘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

며칠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강원도에선 설악산 인근의 영기가 가장 짙지만, 그곳엔 원영기 수사와 수많은 산수가 밀집해있어 좋은 곳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영기가 짙은 금강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산수가 밀집해있기에, 누군가는 청룡가와 인연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마음 같아서는 가장 영기가 풍부하다는 함경북도 쪽에 자리 잡고 싶었지만, 그곳은 러시아 출신 수도자들과 수도자원을 두고 분쟁이 끊이질 않기에, 그곳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서 준혁이 선택한 곳은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접경에 있는 대암산. 그 너머의 산머리곡산이었다.

그곳은 영산이라 불리는 설악산과 금강산 사이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는데, 동해안으로 향하는 끄트머리 산이었다. 산은 제법 높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영기가 옅어서 저급 수사들만 있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어중이떠중이들이 가장 많았고, 제대로 된 수도자는 가장 적은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설악산과 가까워 청룡가나 다른 세가의 사람들이 설칠 가능성이 가장 작았다.

“무영근자라면 오히려 의심할 테니, 연기기 4성쯤으로 보이게 하자.”

다른 이들이 준혁처럼 수련경지를 조절하려고 했다간, 밖으로 보이는 경지와 진짜 경지가 달라져서 위화감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영근이 없는 준혁에겐 아주 쉬운 일이었다.

다시 한번 계획을 점검하고는 힘차게 산머리를 넘어가려는 그때.

수염이 텁수룩한 사내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준혁은 기감을 퍼트린 상태였기에 그가 다가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찍으며 놀란 척을 했다.

“어이구야.”

“괜찮소? 놀래켰다면 미안하구먼. 다름이 아니라 혹시 이쪽 방향으로 무언가 지나가는걸 못봤수까?”

준혁은 엉덩이를 털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무언가가 무엇입니까?”

“아. 그게, 뭐랄까? 강렬한 기운을 가진 물건이나 사람?”

“전혀 못 봤습니다.”

“알겠수다. 그럼 수고하시게.”

수염 사내는 준혁의 반응에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1m가 넘을듯한 장검 위에 올라타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순간 그의 손바닥 사이에서 강한 빛이 머물다 사방을 비추고는 금세 사라졌다.

‘쳇, 진짜 거렁뱅이였군. 겨우 연기기 4성에 가진 법기도 없고. 심지어 공간대도 없는 수도자라니. 정말 별 거지 같은 것들까지 강원도로 몰려오는구먼. 그나저나 메마른 대지도 더는 나타나지 않고···. 도대체 뭐가 나타났다가 사라진 거지?’

수염 사내는 곁눈질로 준혁을 바라보다 시선이 마주치자, 겸연쩍은 미소를 짓더니 검 위에 선 채로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지자, 준혁의 표정이 급변했다.

“방금 그 술법은 분명 내 몸을 확인한 거야. 설마 벌써 청룡가에서 주변을 뒤지기 시작한 건가?”

준혁이 어디로 갔을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청룡가에서 당장 그를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본가에서 막대한 재물을 풀어 사람을 부린다면 전국이 감시망에 들어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계획을 변경해야겠구나. 당장 몸만 회복되고, 비행법기만 구한다면 바로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 삿포로에 위치한 눈꽃 비경은 그 넓이가 아시아의 비경 중에서도 3번째.

그곳으로 도망가 정체를 숨긴다면 청룡가에서 절대 자신을 발견할 수 없을 터.

다만 동해를 건너기 위해선 비행법기가 필요했기에, 여서령의 집에 두고 온 공간대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두고 보라. 나를 핍박한 걸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마.”

빛 꼬리를 남기고 멀리 사라지는 수염 사내를 보며 준혁은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 옮기기 시작했다.

+++

며칠 뒤 산머리곡산에 도착한 준혁은 산맥 안쪽의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나섰다.

영기의 농도도 중요했지만, 우선은 사람들이 최대한 지나다니지 않을만한 곳을 고르는 게 우선이었다.

하루 동안 산을 탐문하고서야, 산맥 안쪽에 음기가 매우 강해, 사람들이 머물기를 회피하는 장소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터를 잡았다.

“이곳이면 적당하겠어.”

이제 산비탈 한쪽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 그곳에서 수련할 예정이었다.

몇 번이나 확인을 한 결과, 수련의 반작용으로 주위가 죽어버리는 건 딱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3미터.

산을 파고 들어가 안에서 수련한다면, 이상 현상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 테니 괜찮을 거라 판단했다.

“이제 땅을 파볼까?”

준혁은 자신의 단전 부위에 잠들어있는 식검에 집중하며 단검의 진명을 불렀다.

여동수의 배를 꿰뚫었든, 실패했든, 이젠 불러올 필요가 있었다.

“분광소.”

순간 눈앞의 공간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어? 왜 안 되지?”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다시 집중하며 이름을 불렀다.

“분광소.”

그러자 눈앞 공간이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식검을 통해 분광소와 연결된 감각을 돋구자, 무언가가 소환을 방해하는 게 느껴졌다.

“분광소!”

팡-

잔뜩 힘을 줘 부르자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을 가르고 한 뼘 길이의 단검이 나타나 허공을 선회했다.

준혁은 그것을 잡아채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휴. 안 되겠군. 인지경!”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거울마저 소환하자, 이번엔 아무 방해 없이 단번에 나타나더니 자신의 머리 위에 둥실 떠 올랐다.

원래 계획은 그들이 인지경에 더욱더 애착을 가지게 하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준 후 가져오려고 했었다.

어차피 축기기의 수행을 회복하기 전엔 인지경을 발동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환에 불응하는 분광소를 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불러들였다.

괜히 시간을 보내다 완전히 무언가에 가로막혀 소환이 불가능해지면, 정말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으. 겨우 소환 하는 것만으로 그동안 회복한 영기가 바닥나 버렸구나.”

축기기에 올라 영기가 충만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것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크게 와닿았다.

더군다나 거리가 멀어져서 더욱더 그러한 듯했다.

결국, 분광소를 이용해 땅굴을 파려고 했던 준혁은, 넓적한 바위를 가져와 순수한 근력으로 굴을 파기 시작했다.

+++

입구를 나뭇가지와 이끼 뭉치로 막은 후 10여 미터 안으로 파고들어 온 준혁은 머리와 양어깨가 벽에 닿을 만큼 좁은 곳에서 최대한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잠시 후, 몇 번의 심호흡으로 체내의 기운을 안정시키고 양 손바닥을 토굴 벽면에 붙였다.

그리곤 태극단공을 운용해 주변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대략 2시간가량 꼼짝도 하지 않고 태극단공을 운용하던 준혁이 눈을 떴다.

“두 배구나!”

피신하며 간간이 시행했던 때보다 두 배나 많은 기운이 몸속에 차 있었다.

“역시···. 이건 대기 중의 영기를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물체에 내포되어있는 기운만을 먹어 치우는 것이야.”

즉, 영기를 흡수하는 반경 3m라는 거리는 준혁을 중심으로 구 형태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

밖에서 실행했을 땐 공중이 비어있었으니, 두 배로 흡입량이 많아진 건 그 이유가 분명했다.

영기를 소량 회복한 준혁이 무릎 앞에 놓인 분광소를 살짝 건들자, 단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을 허물었다.

영기를 완벽하게 흡수당한 채, 힘을 잃은 흙은 잿가루처럼 변해 수북히 쌓여갔다.

“쿨럭, 숨막혀 죽겠네.”

수련의 잔재들을 정리하지 않고선 사방이 막혀있는 산 내부에선 먼지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화구술로 태우면 설마 분진폭발이라도 일어나려나?”

혹시 모를 위험을 실험해 보고 싶지 않았던 준혁은, 암시장에서 얻었던 기초술법 중. 금벽술을 이용해 재를 모아 뭉쳤다.

금벽술의 원기능은 단단한 벽을 물렁물렁하게 만드는 용도였으나, 이렇게 반대로 사용할 수도 있는것.

잿더미를 모아 벽돌로 만든 후, 한쪽에 모아두었다.

“이건 나중에 써먹어야겠군.”

땅속에서 계속 수련을 하다 보면 지반이 약해지는 곳도 생길 터, 잿가루로 만든 벽돌은 그곳을 지지하는 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제 확인해볼까?”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었다.

바로 내부에서 기를 먹어 치우는 행위가 밖에서 티가 나냐, 아니냐 하는 것.

준혁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토굴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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