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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3화 (13/408)

# 13 < 사역마 (3) >

“그러니까 두 법기는 광산 깊은 곳 토굴 안에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집으로 돌아온 준혁은 곧장 여서령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는 대공자에게 말하지 않았던 세 법기 모두가 소환되었음을 알리고, 나머지 두 법기를 광산 한쪽에 숨겨두었다고 말했다.

준혁의 말에 여서령은 뒤편에 조용히 시립 해있던 여인에게 물었다.

“언니. 가능하실 거 같아요?”

예전에도 가져왔으니 이번에도 기대가 잔뜩 담긴 눈빛.

하지만 검은 야행복을 입고 있던 여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힘들 겁니다. 그때야 방비도 소홀했고, 방어 진법에도 틈이 있었지만. 이젠 가주께서 직접 명령을 내렸으니···. 청룡가의 호법 중 누군가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제 능력으론 그들을 속일 순 없습니다.”

“하아. 이 일을 어쩐담.”

“포기하시거나···. 차라리 사실을 말하는 건 어떨까요?”

여인의 말에 여서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안 돼요! 두 법기가 가주께 가는 건 상관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준혁 씨는···.”

대공자를 두 번이나 속인 죄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준혁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이런 상황에서도 제 생각을 해주시다니.”

“우린 한팀이잖아요. 저, 준혁씨, 그리고 언니까지. 우리 세 사람은 끝까지 함께해요.”

물론 축기기에 오른 두 사람과 다르게 일반인인 준혁은 100년도 채 살지 못할 테지만,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

광산업무가 사라져 할 일이 사라지자, 여서령은 충원단 세 병을 주면서 당분간은 수련에 힘쓰라고 지시했다.

방으로 돌아온 준혁은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결단기 후기인 여공천도 내 수행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어···. 흠. 그나저나 어찌 잘 넘기긴 했지만, 여동수의 태도를 보니 조만간 일이 터지긴 하겠구나.”

방비를 잘해놓는다면, 잘 설득시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만약 앞뒤 가리지 않고 무식하게 나온다면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대공자처럼 사려 깊은 사람은 속이기가 어려울 뿐, 충분히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 공자 같은 사람이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덤벼든다면 당위성이고 논리고 그 무엇도 통하지 않을 게 뻔했다.

“우선 머릿속에 들어온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조각을 짜 맞춰 보자.”

여동수가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당장 움직일 리는 없었다. 대공자 쪽에서도 인지경을 빼앗겼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할 테고, 그 속마음이 어떤지와는 상관없이 겉으로 보이는 여동수는 대공자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금빛 문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한 후, 여동수가 납득할만한 준비를 끝마치면 될 뿐이었다.

+++

축기기에 올랐기에 육체적인 피로함은 전혀 없었으나. 하루에 겪은 일이 많아 정신적인 피로함을 느낀 준혁은 곧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후. 자신이 얼마나 큰 오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가히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이군.”

대략 10여 평으로 보이는 빈공간, 주위에 여러 가지 피 묻은 도구들을 보면 이곳이 고문실임을 알 수 있는 그런 곳.

준혁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을 벌이다니.”

정말 자신이 여동수를 과소평가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틈을 보이지 않으마.’

고문실 벽면에 놓인 의자 위에 고정된 준혁은 몸을 움직여 보려다 그만두고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일반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어설프게 포박해놓은 줄. 끊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봐야 일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근데 어떻게 내 기감을 피해서 나를 납치한 거지?’

연기기 때도 술법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영기를 다루는 수준이 올라갈수록 기감이 예민해져 보고 듣는 것엔 매우 민감해졌었다.

축기기에 오른 후엔 그 감각이 몇 배나 올라가, 누군가 몰래 방안으로 잠입했다면 모를 리가 없었다.

‘술법도 중요하지만, 앞으론 진법도 빠르게 익혀야겠구나. 내가 아무리 강해 봐야, 멋모르고 당한다면 그게다 무슨 소용인가.’

오늘 참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

진법의 중요성을 깨달은 준혁은 가만히 정신을 집중해 고문실 밖으로 기감을 펼쳐 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이~ 잠에서 깼나? 어때? 춘몽초(春夢草) 효과가 기가 막히지? 그래도 예상보다 빨리 깼네? 일반인은 삼사일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잔다고 하던데.”

춘몽초. 그것은 봄의 꿈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향초로 만들어 태우게 되면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는 식물이었다.

수도자들이 심신 피로 회복용으로 가끔 사용한다고 알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풀어주십시오.”

“이야~ 대단하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짐작을 할 텐데도 아주 여유로워?”

“저에게 청룡패가 있다는 걸 잊으신 겁니까? 이렇게 해봐야 공자님께도 좋을 게 없습니다.”

“크큭,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걱정 마. 그럴 일 없으니까.”

여동수의 태도에서 준혁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았구나. 청룡패의 힘을 무마시켜주기로.’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청룡가에서 청룡패의 힘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설마···. 가주께서 허락하신 겁니까?”

“이야~ 진짜 똑똑하네? 단번에 그걸 알아챘어?”

“...”

“걱정하지 마, 네가 순순히 불기만 한다면 정신부 같은 건 사용할 생각 없으니까. 그럼 당분간 혼자 좋은 시간을 보내 보라고.”

말을 마친 여동수가 사라지자 고문실엔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정신부? 여동수 성격이면 모든 걸 토해낸다 해도 정신부로 다시 한번 사실을 확인하려 하겠지. 가주의 명령까지 떨어졌다면···. 한데 왜 그냥 가는 거지? 아!’

자신을 혼자 두고 가버린 여동수의 행동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다 정신부의 사용 방법에 대해 떠오르며 깨달았다.

정신부라고 만능이 아니었다. 특히 정신력이 높은 사람에겐 온전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대부분 내용을 토설한다 해도, 정작 마음 깊이 숨기고 싶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을 끌어내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

아마 여동수는 준혁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 후 정신부를 사용할 생각으로 보였다.

+++

의자에 묶여있는지도 벌써 15일이 지났다.

준혁은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허기가 급속도로 올라옴을 느꼈다.

여동수의 계획은 단순했다. 손톱 발톱을 뜯어내는 고통을 참아내는 사람도 굶주림 앞에는 이성을 잃는 법.

15일간 물 한 방울 먹지 못 하게 하며 눈앞에서 계속 음식을 보여줬다.

만약 일반 사람이었다면 이미 이성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 다만 준혁은 축기에 오르며 이미 곡식을 끊어도 생명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었기에 크게 타격을 받진 않았다.

그런데도 미칠듯한 식욕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바짝 마른 입안에서 나오지도 않는 침을 억지로 삼켜내고 있을 때, 여동수가 새로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정말 볼수록 대단해. 예전에 특수공법을 익힌 놈을 고문할 때 한번 써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놈도 겨우 5일을 참았을 뿐이야. 근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지?”

사실 준혁은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껏 만들어졌던 음식들 안엔 식욕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약초가 다량 함유되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밥 좀 달라고 싹싹 빌 정도로 강력한.

“그래도 벌겋게 충혈된 눈을 보니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닌가 보네, 참나. 정신력 하나만은 정말 끝내주네.”

말을 하던 여동수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아쉽긴 해. 당장이라도 정신부를 붙여보고 싶은데···. 네놈이 이성을 잃고 병신이 돼버리는 것도 한번 구경하고 싶은데, 가주께서 신신당부하셔서 참아야 하니...으. 몸이 근질근질하네.”

한참 몸을 베베 꼬던 여동수가 준혁의 귓가에 입을 바짝 가져다 대며 낮게 소곤거렸다.

“근데 그것도 이제 끝이야. 크큭. 내일이면 가주께서 초청하신 진법의 대가분이 오시거든. 그러면 정신부의 효능을 수배 끌어올릴 수 있어서 더는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지. 미리 머릿속 좀 정리해놔. 알아듣기 편하게.”

키득키득 웃어 보인 여동수가 준혁의 뺨을 톡톡 치더니 손을 흔들고 고문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준혁은 무슨 생각인지 별 동요 없이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르륵-

동요는 없었지만, 식욕은 여전했다.

그리고 머릿속은 이미 정리가 끝난 후였다.

+++

다음날이 되자 여동수는 처음 보는 노인과 대공자를 대동한 채 고문실을 찾아왔다.

대공자는 준혁의 모습을 보고 잠깐 눈썹을 찡그리더니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형님, 가주님 말씀 기억하시죠? 이놈이 인지경과 신비경에 대해 알고 있는걸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알아 오라고 한걸?”

“그래. 방해하지 않을 테니 집행하거라.”

대공자의 말에 여동수가 헤실헤실 웃더니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이제 해주시면 됩니다.”

여동수의 부탁에 노인이 흘흘 웃음을 흘리더니, 준혁을 향해 손을 흩뿌렸다.

순간 노인의 손에서 실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더니 준혁 주위로 떨어졌다.

그리곤 스스로 움직이며 이상한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노인이 쉬지 않고 수결을 맺은 후 공간대에서 검은색 깃발 여섯 개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깃발은 표표히 날아가 의자 주위에 박히며 기이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되었네. 이제 해보시게.”

노인의 말에 여동수가 입가를 끌어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준혁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그때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던 준혁이 두 눈을 천천히 뜨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저를 핍박하실 겁니까?”

여전히 당당한 그의 모습에 대공자와 여동수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노인은 그 상황이 재밌는지 한걸음 물러나며 팔짱을 꼈다.

“와~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그래도 마지막 순간엔 똥오줌 지리며 싹싹 빌 줄 알았더니. 자세 좀 보소. 참나.”

“미안하게 됐군. 허나 가주의 명이 떨어진 이상 어쩔 수가 없지. 대신 걱정은 말게. 그대의 동생은 서령이가 책임진다고 했네.”

“아가씨가···. 그분은 지금 어찌하고 계십니까?”

그동안 보아왔던 여서령이라면 분명 길길이 날뛰며 준혁을 보호하려고 했을 터, 그런 모습이 가주의 눈 밖에 난다면 그녀도 무사하진 못할 터였다.

“걱정 말게, 자네 일이 끝날 때까진 집안에서 조용히 근신하기로 했으니.”

‘그녀도 가주의 힘 앞에선 어쩔 수 없구나···.’

딱히 분하거나 실망하진 않았다. 그녀를 믿고 있다고 해서, 그게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으니까.

사람이면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생존 욕구가 무엇보다 앞서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자신의 비밀을 그녀에게만은 털어놓으려 생각했던 것만큼 그녀를 믿고 있었기에 새삼 깨달을 뿐이었다.

‘신뢰와 신의(信義)라는 것이 힘 앞에서 이리도 무력하구나···. 앞으로 나는 내 힘만을 믿겠다. 다른 누군가에게 기댈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오롯이 내 힘만으로 나아갈 테다.’

준혁이 새롭게 결심을 다진 그때.

“흐흐, 그럼 어디 알고 있는 비밀이 뭔지 말해보실까?”

말을 하며 공간대에서 정신부를 꺼내든 여동수. 그가 한걸음 다가왔다.

그 순간.

준혁을 옭아매고 있던 밧줄이 투두둑 터져나갔다.

사람들이 놀라서 두 눈이 동그래질 때, 준혁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분광소.”

순간 준혁의 손 앞 공간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한 뼘이 조금 넘을듯한 단검이 빠져나와 준혁의 손위에 안착했다.

“너!! 너! 수행을 숨기고 있었구나! 일반인이 아니었어!”

놀라 소리치는 여동수 옆, 대공자의 눈빛도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분명 무영근자일텐데.”

그 뒤의 노인 역시 팔짱을 풀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허어···. 어찌 저럴 수가. 분명 아무 기운도 느껴지질 않거늘. 정말 신기하구나.”

준혁은 단검의 칼날을 여동수 방향으로 내밀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해가 될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청룡가에도 이익을 안겨주면 안겨주었고.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말고 자신의 욕심을 탓하십시오.”

어느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공간대에서 법기를 꺼내 드는 두 사람을 보고는 준혁이 짧게 읊조렸다.

“인지경, 공천령.”

순간 준혁의 머리 위 공간이 흔들리며 거울이 나타나 그를 비췄다.

옥팔찌도 소리 없이 나타나 그의 팔목에 안착했다.

그리곤 준혁이 말했다.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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