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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1화 (11/408)
  • # 11 < 사역마 (1) >

    손안에서 살아있단 듯 요동치는 식칼을 보며 준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안정화가 필요한 이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무슨 현상이란 말인가?

    그동안 그렇게 찾을 땐 나타나질 않더니.

    준혁은 손안에 식칼을 꽉 움켜잡으며 정신을 내면으로 돌렸다.

    당장 눈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법기도 중요했지만, 축기기에 오른 직후 안정화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준혁이 외부의 감각을 차단하며 내부로 시선을 돌린 그 순간, 식칼이 짧게 미동하더니 손바닥을 타고 쑤욱 사라져 버렸다.

    움찔-

    준혁은 그 감각을 느꼈지만, 이번엔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영기의 안정화에만 힘썼다.

    그렇게 이상 현상으로 요동치던 신비경 내부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던 별빛만이 처음보다 좀 더 강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

    “후우우우.”

    깊은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모든 게 선명했고, 주변의 영기라는 기운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신선의 경지에 이르면 영기를 물체처럼 만지고 조작할 수 있다고 했지만, 준혁은 그저 살짝 느낄 수 있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겨우 한 단계일 뿐인데···. 연기기와 축기기의 차이가 대단하구나.”

    몸 안에 가득 찬 영기의 총량이 연기기 후기 12성일 때보다 족히 세배는 넘는 것 같았다.

    “겨우 축기 1성이 되었는데 이 정도면, 더 경지가 올라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럼 결단기, 원영기는?”

    상상이 가지 않는 느낌에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잠시간 축기기에 오른 기분을 만끽한 준혁은 손바닥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경지를 안정화 하기 위해 집중하는 와중에도 식칼이 움직이는 걸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만약 집중력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안정화에 실패하고 모든 걸 잃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준혁은 조금 전 느꼈던 감각을 되뇌며 단전에서부터 손바닥까지 길을 만들어 영기를 집중했다.

    그러자 어떤 이물감도 없이 손바닥을 뚫고 식칼이 쑤욱하고 올라왔다.

    “도대체 네 정체가 뭐지?”

    대답할 리 없지만, 준혁은 정말로 궁금했다.

    도서관에서 수많은 서적을 독파하며 얻은 지식이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비록 그 지식이 수도계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지만, 지금 눈앞의 식칼은 모든 상리(常理)에 어긋나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법기는 몸 안에 저장할 수가 없었다. 영기를 먹고 자라는 영수(靈獸)들은 가능하다고 했지만, 인간은 불가능했다.

    오직 법보(法寶)라는 법기의 상위호환인 엄청난 보물만이 사람의 몸속에 저장한 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식칼이 법보일 리도 없었지만, 법보라고 해도 말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법보를 몸 안에 저장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 역시 최소한 수도자의 경지가 결단기에는 이르러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까? 아마 수련이 가능해진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준혁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내 의지로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다행인가?”

    분명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건 분명했지만,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체된 거 같은데···. 어떤 능력인지만 살짝 확인하고 서둘러 나가자.”

    보통 법기에 영기를 주입하면 대략적인 사용 방법이나 기능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몸 안에 식칼은 아무리 집중해도 어떤 능력을 갖춘 건지 전혀 파악되질 않았다.

    밖으로 나가려던 준혁은 제자리에 멈추어 선 채 손에 든 식칼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식칼이 어서 자신을 사용해 달라는 듯 미묘하게 꿈틀대는 듯했다.

    피식-

    혹시 식칼이 살아있는 건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던 준혁은 작게 웃음 짓고는 손안으로 영기를 집중시켰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법기를 발동시키는 기초 수결을 맺었다.

    수결을 통해 영기를 집어넣어 강제 활성화한다면, 어떤 기능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역시 된다! 어? 이게 무슨!”

    수결이 끝나자 지금껏 능력을 감춘 채 가만히 있던 식칼이 준혁이 주입하던 영기를 집어삼켰다. 그리곤 영기 주입이 끝나자 준혁의 손을 통해 강제로 더 많은 기운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놀랐지만, 그 총량이 자신에게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자, 침착하게 식칼을 바라보며 긴장했다.

    몇 호흡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꽤 많은 영기를 집어삼킨 식칼이 드디어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우웅- 하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래! 너의 능력을 보여줘!”

    그리고 식칼의 울음소리가 신비경 내부에 울려 퍼진 순간.

    콰르르릉-

    광산이 미칠듯한 영기를 내뿜으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

    도봉산 인근, 청룡가 대공자의 저택.

    그곳에서도 가장 안쪽 심처에선 두 명의 사내가 조그마한 원탁에 마주 앉아 찻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한 명은 일전에 보았던 냉막한 표정의 대공자였고, 다른 이는 쌍꺼풀이 유난히 짙은 미남이었다.

    다만 눈 밑으로 짙은 눈그늘이 자리해 큰 눈과 어울리지 않게 어딘가 음침함이 서려 있었다.

    “형님. 준비는 잘 돼 가십니까?”

    “무슨 준비 말이더냐?”

    “준비랄게 또 있습니까? 결단기 말입니다.”

    “아직이다.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욕심을 내려다간 무엇도 이룰 수 없을 거다.”

    대공자의 말에 음침한 사내가 피식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금 초조한 거 아닙니까? 제가 알기론 10년만 사용하고 가주께 바친다고 들었는데? 벌써 2년이나 지났으니 겨우 8년 남았습니다.”

    사내의 말에 대공자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동수 네 녀석도 꽤 소식에 밝구나. 가주와 나만의 약속인 줄 알았더니.”

    “흐흐, 가문에 비밀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 대단한 보물인 인지경을 형님 혼자 독차지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요. 당장 가주께서 원영기에만 오르신다면···. 우리 청룡가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흠···.”

    대공자가 말없이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자, 여동수가 은근슬쩍 엉덩이를 움직이더니 가까이 다가갔다.

    “형님. 한번 구경해봐도 됩니까?”

    “인지경 말이더냐?”

    “네. 그동안 형님이 폐관에 들어가서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그 전설 속의 수련 법기라는 인지경을 실물로 보고 싶습니다.”

    둘째 여동수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대공자는 공간대를 슬쩍 스쳐 거울 법기를 꺼냈다.

    가끔 말을 안 듣긴 해도, 가문 내에서 가장 자신을 지지하는 동생의 부탁이니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비록, 다른 이의 손에 닿게 된다면 재발동하는 데 꽤 심력을 소비해야 했지만 말이다.

    어느새 인지경을 잡아챈 여동수는 거울로 얼굴을 살피며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렸다.

    “와. 이게 그 인지경. 정말 수련 속도가 두 배나 빨라집니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엔 영기를 쌓는 속도가 두 배가 조금 넘는 것 같더구나.”

    “우와. 정말 보패 급이란 말이 맞군요. 엄청납니다.”

    “네가 원한다면 한 달 정도는 사용하게 해주마.”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을 말한 적이 있더냐?”

    대공자의 말에 여동수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청룡가의 대공자는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걸로 꽤 유명했다.

    겉모습이 한없이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라면 속은 더 단호하고 칼같이 맺고 끊음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하루가 아까운데 제가 방해하면 되겠습니까? 대신 말입니다.”

    “말해 보거라.”

    “가주께서 원영기에 오르시고, 형님도 결단기에 오르고 나면···. 그때 제게 양보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뻘쭘한 표정으로 부탁하는 동생을 보고는 대공자가 피식 웃었다.

    “좋다. 약속하지.”

    그때였다.

    여동수의 손에 쥐어져 있던 인지경이 부르르 떨더니 공간 속에 모습을 감추듯 팟- 하고 사라져 버렸다.

    “어? 어? 이게 무슨.”

    인지경이 갑자기 사라지자 크게 당황한 여동수는 대공자와 눈이 마주치더니 연신 손사래를 쳤다.

    “형님, 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정말이에요. 갑자기 사라졌어요. 이게 왜?”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여동수를 바라보는 대공자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대공자가 무언가를 느끼고는 품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부적은 품 밖으로 나오더니 빠르게 연소하며 급한 목소리를 방출했다.

    -큰형님!! 지금 광산에 또 영환 안개가 나타나며 지진이 일고 있습니다! 당장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인지경. 그리고 그것이 발견된 장소의 이상 현상.

    누가 보아도 깊게 연관돼 있음이 틀림없었다.

    대공자는 즉시 공간대에서 검면이 넓은 법기를 꺼내더니, 창문을 부수고 뛰쳐나가며 허공을 갈랐다.

    +++

    북한산 인근,

    “합!”

    여서령이 허공을 향해 손짓하자 단검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하나였던 단검은 눈 깜빡거릴 새도 없이 세 자루로 늘어나더니 허공을 선회하며 한쪽에 마련된 허수아비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각각 허수아비의 목 몸통 하단을 베어버린 단검 세 자루는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다시 하나의 단검으로 돌아왔다.

    단검을 회수한 여서령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직은 세 개가 한계구나. 그래도 익숙해지니깐 늘긴 했네.”

    가장 믿음직한 수하인 최준혁이 몰래 빼돌려 얻게 된 상급 법기 단검.

    아직까지도 진명(眞名)을 알진 못했지만, 분명 인지경에 뒤지지 않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저장 법기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가지만 보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차라리 준혁 씨한테 이것들의 정체를 파악하라고 명령을 내려볼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도 매일같이 신비경을 조사하느라 온종일 그 안에만 있다던데···. 다른 일을 더 시킬 순 없어.”

    시간이 지나며 수하들이 계속해 늘고 있었기에 점점 정보망도 튼튼해졌고, 세력에 포함된 인원도 늘어갔다.

    예전에 광산에서 보물을 회수하게 도와준 사람도 청룡패를 주고 포섭했으며, 광산 내부에도 더 많은 인원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맞았다.

    준혁을 떠올리던 그녀는 문득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영근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내가 팍팍 지원해 줬을 텐데···.”

    능력 있는 수하로서도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최근엔 남자로도 보였다.

    다만 수백 년을 살아가는 수도자로서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범인을 반려로 맞이하는 건 힘들었다.

    사별의 아픔을 수백 년간 겪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상상과 망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이 팟- 하며 사라져 버렸다.

    “어? 어? 어디 갔어?”

    동시에 손목도 허전함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놀라면 사고가 정지한다고 했던가?

    여서령은 지금 그 말이 딱 알맞게 가만히 멈추어 선 채 당황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그렇게 한참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두 법기의 행방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유모가 들어섰다.

    “아가씨! 지금 광산에 큰일이 났답니다! 대공자와 둘째 공자도 급하게 광산으로 가고 있다고 해요!”

    +++

    식칼의 울음에 맞춰 요동치던 광산은 예전처럼 짧은 순간 흔들리다 빠르게 진정했다.

    하지만 준혁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진동이 끝나고 나자 공동 중앙에 금빛 진법이 나타나더니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 위로 금빛 문자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

    “설마? 또 다른 법기?”

    금빛 글자가 사라지고 나타난 식칼.

    준혁은 왠지 모를 기대감이 차오름을 느꼈다.

    그 순간, 허공으로 솟구치던 금빛 문자들이 별빛을 잡아먹고 하강하더니, 급작스레 방향을 바꿔 준혁에게 쏘아져 왔다.

    정확히는 준혁의 손안에 쥐어진 식칼을 향해.

    퐁퐁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준혁은 마치 그렇게 느꼈다.

    글자들이 물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식칼의 옆면으로 차례대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준혁의 머릿속으로 복잡한 정보들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으···. 이게 무슨···. 사역마(使役魔)? 인지경(認知鏡)? 분광소(分光簫)? 공천령(空穿領)? 이게 다 뭐지? 윽.”

    순식간에 수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자 극심한 두통이 생겨났다.

    준혁은 통증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움켜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통증이 사라지고 눈을 뜨자, 상상도 못 한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지이잉-

    “이게 왜 여기에?”

    눈앞엔 대공자와 여서령이 나눠 가져갔던 세 보물이 강한 진동을 일으키며 둥둥 떠 있었다.

    마치 명령을 기다린다는 기세를 내뿜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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