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0화 (10/408)

# 10 < 축기기 >

종로 4가, 골목길 한쪽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반듯한 눈매와 입술, 전체적으로 정직, 신중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내가 허리에 차는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한곳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사내 세 명이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얼차려를 하는 중이었다.

“혀, 형님! 한 번만 살려주십쇼! 저희들 눈이 썩었습니다!”

“살려주이소!”

사내들은 두피로 전해오는 시멘트 바닥의 압박을 느끼며 목대에 힘을 바득바득 주며 말했다.

“수도자 형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그 모습에 정직한 사내, 준혁이 손에든 공간대를 휙휙 돌리며 말했다.

“참나, 누가 들으면 제가 살인 멸구라도 하려는 줄 알겠습니다?”

“히익, 제발 살려주십시오!”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어설픈 강도 세 명은, 준혁이 강력한 영기를 뿜어내자 덤벼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특히 연기기 3성인 무리의 큰형은 두 다리를 벌벌 떨며 바지에 실수까지 했다.

“내가 설마 살인을 하겠느냐?”

“히끅, 살려만.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준혁이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수도자라는걸 안 후부턴 그들은 연신 살려달라는 말만 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고 하니, 법기나 영석, 혹은 수련 자원들을 몽땅 공간대 안에 넣고 다니는 수도자들은 누구나 탐나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당연하게도, 만약 수십, 수백억의 재산을 항상 가방 안에 넣고 다닌다면 누구라도 욕심이 나는 상황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수도자끼리 싸움이 나면 살인을 서슴지 않았고, 국가에서도 딱히 처벌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어설픈 강도 3인방은 그런 수도자들의 행태를 걱정하며 목숨을 구원하는 중.

피식- 웃음을 흘린 준혁은 그들의 애원을 한 귀로 흘려보낸 뒤, 빼앗은 공간대를 확인했다.

공간대 안엔 샌드위치와 먹다 남은 족발, 음료수를 비롯한 각종 안줏거리와 술 몇 병, 금전 그리고 은전 몇 개만이 있었다.

“정말 가방으로 쓰고 있었구나. 하긴···. 이 안에서 사시미를 꺼낼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히끅-”

금전과 은전을 제외한 물건들을 바닥에 쏟아버린 후, 품속에 넣고 있던 옥간과 법기, 자기병을 옮겨 담았다.

“금전 2개, 은전 2개, 은편, 7개···. 이거 가지고 밥은 안 굶고 다니냐?”

“히끅- 살려주십시오. 수도자님···.”

빼앗은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비를 건다고 생각한 건지, 강도들은 머리를 박은 상태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상이 변하고 난 뒤, 화폐는 몰락하고 다시 금과 은이 통화의 수단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1금전은 100은전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1은전을 마늘을 썬 듯 얇게 편(片)을 썬 것은 은편이라고 부르며 식당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사용하는 최소 단위로 사용했다.

물론 수도자들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일 뿐이었다.

“일어나.”

준혁의 명령이 떨어지자 세 명은 빛처럼 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뻘게진 얼굴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게 안쓰러워 보이긴 했다.

“너는 영근도 있으면서 왜 이딴 양아치 짓거리나 하고 다니는 거지? 수련할 생각은 하지 않은 건가?”

연기 3성의 사내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가, 준혁이 눈을 부라리자 급하게 말을 꺼냈다.

“애초에 산수(山修)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요!”

산수란 산속에서 혼자 수련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보통은 문파나 세가에 속하지 않고, 독학으로 수련하는 수도자를 가리켰다.

“왜?”

“왜긴 왭니까? 먹고 죽을 단약도 없고, 그렇다고 뛰어난 공법도 없고, 심지어는 지도해줄 스승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평생을 수련한다고 해서 축기기에나 오를 수 있겠습니까? 보나 마나 평생 영기 짙은 곳을 찾다가, 사람 없는 산속에서 혼자 가만히 앉아 명상만 하다 죽을 게 뻔한데···. 그런 인생을 살긴 싫었습니다···. 요.”

“그건 그렇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없었다.

여서령의 말을 빌려보면, 흔히 말하는 천재라는 재능충들도 가문의 지원을 받아 겨우겨우 축기기에 오른다고 했다.

준혁 역시 단약으로 경지를 올린 것이었으니 강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갈 목적으로 온 놈들이었기에 조금 더 괴롭혀 줄까 하다가, 어느새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래, 그럼 가봐. 앞으로 나쁜 짓 하지 말고.”

“정말입니까? 안 죽이시는 겁니까?”

“죽고 싶다면 죽여주고.”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수도자 어르신!”

준혁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젓자, 강도 3인방은 꽁무니가 빠져라. 골목길을 돌아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라지자 준혁도 공간대를 품 안에 숨긴 채 걸음을 옮겼다.

“역시···. 청룡가에 딱 붙어 단약을 받아먹는 게. 가장 좋은 판단이야.”

+++

집으로 돌아온 준혁은 방문을 굳게 잠근 후 품 안에서 공간대를 꺼냈다.

그리곤 공간대 안에서 술법서를 비롯해 전부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선 축기단은 조용한 곳에 가서 처리해야 하고, 술법서부터 확인해보자.”

욕심으로는 가장 고급인 비행술 옥간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

가장 기초 술법이 적힌 옥간을 집어 들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이마를 통해 옥간으로 영기를 주입하자, 그 안에 담긴 정보들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흐음. 이런 식으로 익히는 거였구나.”

대략 십분 가량을 집중하고 있자, 방대한 양의 기초 술법에 관한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너무 한꺼번이라 십 분의 일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경험에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입가가 잔뜩 올라간 준혁은 다시 한번 옥간을 이마에 가져갔다.

“화구술, 빙결술, 금벽술, 광원술···.”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옥간 속 내용이 천천히 유입되게 조절한 후, 한 단어 한 글자를 여러 번 곱씹으며 습득했다.

대략 두 시간 가량 가만히 앉아 옥간을 읽던 준혁이 크게 숨을 내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옥간을 내려놓고 두 손바닥을 가슴 앞에 모았다.

그리곤 모았던 손을 살짝 벌리며 손가락을 움직여 기이한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상이한 움직임의 일곱 번의 수결을 맺고, 다시 여덟 번의 수결을 맺었다.

“이게 칠결과 팔결이구나.”

수결이란 손가락을 빠르게 교차하며 손으로 특수한 형상을 표현하는 걸 말했다.

흔히 영화에서 보면 닌자들이 기술을 사용할 때 행하는 모습이라 생각하면 편했다.

수도계의 술법이나 법기를 다루기 위한 수결은 전동작 칠결과 후동작 팔결로 나뉘어, 총 15가지 동작만을 가지고 수백 수천 가지 조합으로 명령어를 만들어냈다.

칠결과 팔결을 따라 해본 준혁은 손동작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15가지 동작을 반복했다.

어느 정도 손에 익어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날 샜네.”

해가 떴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었던 준혁은 창가의 해를 잠시 바라보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수결을 맺었다.

“합!”

마지막 동작을 끝마치고 기합을 내자, 어느새 준혁의 손위로 영기가 밀집하더니 주먹만 한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눈을 떠, 불덩이를 확인한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성공했다!”

그 순간, 집중력이 깨진 것인지, 불덩이가 파앗- 하며 흔들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준혁의 입가는 잔뜩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다른 것들도 해보자.”

이제 진정한 수련의 시작이 시작되었다.

+++

기초 술법을 비롯해 화령술과 통역술, 거기다 비행술까지 전부 익히자 어느덧 끝이 보이는 휴가.

아쉬운 마음에 다시 출근한 준혁은 틈날 때마다 신비경에 찾아가 수련을 계속했다.

이제 겨우 각 술법을 몇 번씩 시행해본 것일 뿐, 능수능란하게 펼치려면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해 수련하는 게 정석이었다.

물론 천재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이 매우 짧았지만, 준혁이 생각하기로 본인이 천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술법을 얻은 지도 두 달여가 흐른 어느 날 아침.

“또 거기 조사하러 가는거여?”

“네. 장씨 아저씨.”

광산에 들어선 후, 여중추를 비롯한 관리자들을 지나쳐, 광부들과 인사를 나눈 준혁은 신비경이 자리한 안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거긴 참 이상하긴 이상해.”

일반적인 신비경은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가량 유지됐다.

하지만 청룡가 광산에서 발견된 신비경은 2년여가 지나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진법가와 수도자들이 다녀가며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결국 시들해져 버린 청룡가 사람들은 그곳을 방치해 버렸다.

결국 그곳은 신비경이 아닌 극도로 작은 비경이라고 판단을 끝낸 후였다.

하지만 비경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괴수나 영수, 수도 자원이 하나도 없었으니 누구도 그곳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동안 준혁 역시 여서령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눈치껏 틈날 때마다 그곳을 방문했고, 다른 이들도 전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방해하지는 않았다.

준혁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조사라는 명목으로 사적인 인물들을 계속해서 들여보냈으니,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비경이라고 결론지어지자 어느 날부턴가 그곳을 방문하는 건 준혁뿐이었고, 그 뒤론 준혁의 개인 수련실이 돼가고 있었다.

비행술을 펼쳐 슈퍼맨처럼 날아다니지 않는 이상 토굴이 낮아 빠르게 접근할 수도 없으니, 안에서 몰래 무언가를 하기엔 그보다 안성맞춤인 장소가 없었다.

어느새 신비경에 도착한 준혁은 잠깐 신비로운 별빛을 감상했다.

“매일 봐도 신기하네.”

잠시 천장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다, 입구에서 가장 사각 지역인 곳으로 이동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품 안에서 자기병을 꺼냈다.

“오늘 축기에 이르자.”

준혁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축기기에 들어서는 것은 단번에 일어난다 했다. 다만 축기기에 오른 후 경지를 안정화하는데 십여 일이 필요했는데, 초반에 여섯 시간 정도는 오롯이 경지 안정화에 힘써야 했고, 나머지 기간은 과격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천천히 시행해도 상관없었다.

집에서 하자니, 여서령의 눈치가 보였고, 집 밖 사람이 없는 곳을 고르자니, 혹시 모를 사고가 걱정됐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신비경이었다.

대놓고 일과 대부분을 신비경에서 보낸 지 꽤 됐기에,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준혁은 자기병을 열어 축기단 세 알을 꺼냈다.

그리곤 단숨에 한 알을 집어삼켰다.

축기단은 입속으로 들어가자 다른 단약 들처럼 스르륵 녹아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다.

‘흐음···. 비슷하군.’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란 걸 깨닫기는 수초가 걸리지 않았다.

식도를 넘어 배속으로 들어선 축기단은 갑작스레 폭발하듯 기운을 내뿜더니 몸 안에 있던 영기와 하나 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끓어오르던 기운들이 한곳으로 흘러 뭉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작은 알갱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 되었다가 이내 부서져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한참 동안 내부를 관조하던 준혁은 그것이 영기가 압축하려는 과정이란 걸 깨달았다.

다만 힘이 부족해 온전하게 압축되지 못하고 부서진다는 걸 알아채고는 곧바로 축기단 한 알을 또 집어삼켰다.

쾅!

그러자 내부에서 폭음이 터지는듯한 감각과 함께 몸 안의 기운이 맹렬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뭉치기 시작한 기운들이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듯 축기기로 넘어서지 못하고 지체되자, 조급한 마음이 샘솟았다.

결국 준혁은 마지막 남은 축기단마저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알이 내부에서 녹아 사라진 순간.

콰과쾅!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전신에 뻗어있던 영기가 급속도로 팽창하다, 한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기운은 더 작은 점으로 수렴하기 위해 서로 싸워댔고, 결국 온전하게 완벽한 한 방울의 무언가로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신에서 희미한 광채가 올라오더니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동시에 광채에 맞닿은 주변 기운들이 요동치더니 준혁의 몸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환희의 소리를 내고 말았다. 목소리는 무언가에 잡아먹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미친 듯이 몰려오던 기운이 전신을 가득 채우고 나자 다시금 압축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국 완벽하게 모여있던 원래의 기운과 충돌했다.

파앗-

그 순간 전신에서 뻗어나가던 광채가 맹렬한 빛을 내뿜더니, 순식간에 몸 안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준혁은 깨닫게 되었다.

‘이게 축기의 힘!’

하지만 축기의 힘을 만끽하기도 전, 손바닥이 간질거리는 이상한 느낌에 준혁은 번쩍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손안에 쥐어진 식칼.

중식도 형태를 취하고 있는 그것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