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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화 (3/408)
  • # 3 < 신비경 (1) >

    다음날부터 준혁의 일과는 그전과 매우 다르게 변했다.

    새벽같이 출근해 청룡가에서 지급한 곡괭이를 들쳐메고 광산 깊숙이 들어갔던 이전과는 다르게, 청룡가의 용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짧은 단봉 하나를 든 채 광산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 최형. 이번에 관리자로 계약했다며? 대단한데?”

    “장씨 아저씨. 최형이 뭡니까. 평소같이 막둥이라고 부르세요.”

    “허이, 큰일 날 소리. 우리 같은 잡부가 관리자님께 그렇게 말하면 치도곤이지.”

    “참나···.”

    잠시 후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은 크게 웃으며 큭큭 거렸다.

    “최형, 아니 최 관리자님.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요.”

    “험험, 그래. 내 장 씨 하는 것 봐서.”

    “뭐?”

    “크크큭.”

    “크하핫.”

    두 사람의 장난스러운 대화에 주위에 있던 다른 광부들도 하나씩 끼어들었다.

    “최형, 저도 잘 부탁 드립니다요.”

    “최 관리자님. 저 역시 잘 좀 부탁드립니다. 집에 노모를 모시고 있습니다요.”

    장난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준혁은 손사래를 친 후 곤봉으로 손바닥을 탁탁 쳤다.

    “일들 안 합니까! 일들!!”

    “어익후야! 사람이 높은데 올라가더니 변했네! 변했어!”

    “크큭큭.”

    사람들은 그동안 가깝게 지냈던 준혁이 관리자로 올라가자 하나같이 기뻐해 주며 장난을 쳤다.

    그동안 광산 안에선 일해본 적도 없는 청룡가의 방계 자식들이 관리자랍시고 와서 으스대며 어른들에게도 손찌검을 함부로 했지만, 앞으론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준혁은 장난을 멈추고 각자 자리로 움직여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며 천천히 광산 내부를 배회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몇 달 후.

    평소처럼 광산 속에서 광부들을 독려하며 순찰을 하던 준혁은 문득 여서령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여서령이 준혁에게 내린 명령은 두 가지.

    첫 번째는 광산 내의 사람들을 이용해 혹시라도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수집하고, 내부의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히 만들 것.

    두 번째는 비경에 인근해 있는 영석 광산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신비경(神祕境)이 나타날 경우 모든 소식을 막고 자신에게만 알릴 것.

    신비경이란 작은 건물 하나 혹은 방 하나 정도로 아주 작은 공간이 갑자기 생겨나는 걸 의미했는데. 비경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선 고대의 유물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다만 항상 같은 자리에 존재하는 비경과 다르게, 신비경은 일정 시간만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곤 했다.

    그렇기에 광산 내부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완벽하게 통솔할 수 있어야 바로바로 정보를 습득하거나 통제할 수 있었다.

    광부들 역시 신비경을 발견한다면 상부에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받을 수 있으니 준혁이 정보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여서령 뿐만 아니라 가문의 다른 이들에게까지 정보가 흘러갈 건 뻔했다.

    여서령이 바라는 건 혼자 독차지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아직까지 이곳 광맥에서 신비경이 나타나진 않았으니···. 가능성이 크긴 해.”

    처음엔 일반인인 자신을 포섭한 여서령의 의도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명령을 듣고 보니 매우 합리적인 판단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신비경에서 얻을 수확물에 비교하자면 자신에게 쏟은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삿포로 눈꽃 비경 근처 광산의 신비경에서 나온 유물이 상급 법기(法器)라고 했었던가?”

    법기란 동양의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무구였다.

    기본적인 칼과 도 뿐만 아니라 방울, 거울, 책, 등 수많은 종류의 외관을 가진 법기는 천지 영기를 품고 있어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상, 중, 하로 나누어 가치를 매겼는데, 하급 법기만 하여도 영석 100~500개를 주어야 했고, 중급은 2,000개 내외, 상급은 최소한 5,000개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법기보다 뛰어난 법보(法寶)나 보패(寶貝)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나 수도자들은 평생 가도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었으니 예외로 쳤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어딜 간 거야?”

    준혁은 광산 곳곳을 둘러보다, 평소에 뭉쳐 다니던 삼인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명 출입명부엔 적혀있었지만, 광산 내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영석이란 물건 자체가 특수한 곡괭이로 채집하지 않으면 영기를 잃고 평범한 돌로 변해버린다. 그렇기에 광부들은 청룡가에서 지급한 곡괭이를 들고 자유롭게 광산 곳곳에서 각자 채취 활동을 했다.

    하루 목표량만 채우면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

    일반적인 관리자였다면 어차피 퇴근 시간에 맞춰 수량만 계산하면 되었기에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준혁은 얼마 전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들을 예의 주시했다.

    “도대체 어딜 간? 어?”

    광산 곳곳을 돌아다니던 준혁은 사람 한 명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은 토굴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곳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토굴은 광산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한동안 채굴을 진행하다 별 수확이 없어 빠르게 버려진 장소였다.

    그 토굴 안쪽에서 바람에 실려 작은 목소리가 들리자 준혁은 이상함을 느끼고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에서들 뭐 하는 겁니까?”

    “어? 어? 준혁이?”

    “다들 나오세요. 어딜 갔나 했더니 그런 곳에 숨어서 술이라도 마시는 겁니까? 내부에서 음주 금지 인 거 아시죠? 걸리면 저도 보호 못 해 드립니다.”

    순간 안에서 당황한 듯한 기색이 느껴지더니 세 사람이 뻘쭘한 모습으로 토굴을 나왔다.

    준혁과 함께 조금 더 넓은 통로로 나온 세 사람은 얼굴색은 정상이었지만, 유독 긴장한 모습이었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알아서 잘하는 거 알면서.”

    “제 역할이 이런 거 아닙니까? 혹시나 해서 찾아본 거죠. 혹시 술 숨겨둔 거 아니죠?”

    “에이! 무슨 소리야. 그랬다간 우리 다 쫓겨날 텐데···.”

    “그럼 안에서 뭐 하고들 있었습니까?”

    성인 남성이 간신히 허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낮은 토굴. 그 안에서 세 명의 남성이 뭘 하고 있었을까?

    준혁의 물음에 순간 당황한 그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한 명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뭘 하긴. 그, 그냥 쉬고 있었어. 저, 정말이야.”

    “정말입니까?”

    “저, 정말이라니까. 셋이서 어제 날밤까고 포카를 쳤더니 너무 졸려서···.”

    준혁은 세 사람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몰아세워봤자 좋을 일은 없었다.

    ‘혹시 보물이라도 발견한 거면, 괜한 욕심에 나를 해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

    기본적으로 광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물이라 함은,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상급의 영석, 혹은 연금술에 사용하는 재료들 혹은 신비경이었다.

    하나 무얼 얻는다고 해도, 출입구의 검사 장치를 통과할 순 없었으니, 만약 이들이 무언가를 발견해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면, 전부 부질없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곳이라고 이런 일이 없었겠는가?

    일반인들 중 영석 광산에서 발견한 무언가로 욕심 낸 사람치고, 살아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들 역시 당장은 눈이 돌아가 욕심을 내는 듯했지만, 결국은 상부의 관리자에게 자진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상황을 눈치챈 준혁은 짧게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적당히들 노세요. 괜히 할당량 못 채우면 아시죠?”

    “아, 알지. 알지 그럼.”

    “저번처럼 처리 못 해 드립니다. 그럼 먼저 가볼 테니까, 어서 일들 하세요.”

    “그, 그래. 고마워 준혁이.”

    준혁은 안절부절못하는 세 사람을 향해 손을 가볍게 저어준 후 통로를 지나쳐 사라졌다.

    준혁이 사라지자 사내중 한 명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휴···. 형님. 그냥 신고하자니까요. 가지고 나갈 방법이 없어요.”

    “이 멍청한 새끼야! 한 번만 더 우는 소리 해봐라. 내가 몰라서 그래? 그러니깐 생각을 해보자는 거잖아? 저기에 있는 물건 중 하나만 가져나가도 평생 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법기가 세 개라고 세 개!”

    흥분한 듯 목소리를 내리누르며 으르렁대는 사내를 보며 다른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말이 맞아유. 법기인지 아닌지 알 순 없지만, 평소에 듣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법기가 맞겠쥬. 문제는 어떻게 빼돌리냐는 건데···.”

    “어차피 시간은 많아. 이 근방엔 영석이 안 나온 지 꽤 돼서 사람들도 오지 않으니깐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보자.”

    “그나저나 준혁이 저 새끼가 뭘 눈치채진 않았겠죠?”

    “걱정하지 말아, 우리 셋이서 농땡이 치는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갑자기 의심하겠냐? 몇 달 전에 우리가 빵구낸 거 메꾸느라 고생해서 괜히 날 서 있는 걸 거야.”

    세 사람은 그렇게 목소리를 죽여가며 한참 동안 대책 마련을 하다 곡괭이를 집어 들고 각자 흩어졌다.

    할당량은 채워야 했다.

    +++

    모두가 광산을 떠나고 관리자들은 할당량 계산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출입구 앞 검사 장치 앞엔 준혁 홀로 서 있었다. 다른 관리자들은 전부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중.

    “어이~ 신참~ 빨리빨리 계산해. 그래야 집엔 갈 거 아냐? 손이 너무 느린 거 아냐?”

    준혁이 여서령의 추천으로 관리자가 된 후부터 노골적으로 왕따를 시키고 일을 전담시켰다.

    지금 광산의 관리자 중 준혁만이 여서령의 휘하에 있을 뿐 나머지는 전부 첫째 여동현과 둘째 여동수의 부하들.

    준혁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별 불만 없이 일 처리를 해냈다. 오히려 고마웠다.

    혼자서 많은 잡무를 처리하다 보니 광산의 입출 내역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중 얼마 정도의 영석이 가문의 눈을 피해 첫째, 둘째에게 흘러가는지도 알게 되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준혁은 곧장 자료를 수집해 여서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두고 보아야만 했고, 준혁에겐 훗날을 대비해 자료를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모으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계산을 마친 준혁은 곡괭이 하나가 미납 되어있단 걸 발견했다.

    “선배님, 곡괭이 하나가 미납되어 있는데. 내일 찾아서 채워 놓겠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기에 준혁은 마무리하며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그런 여유 넘치는 그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는지 관리자 무리 중 가장 고참이 혀를 차며 툴툴거렸다.

    “뭐? 뭐? 내일~ 찾아서~ 채워~ 놓겠습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당장 채워놔! 그러다 만약 분실되면? 어? 네 월급에서 제할 거야? 어? 새끼가 빠져가지고. 광부로 일하다 관리자가 되니깐 쉽게 쉽게 보여? 어?”

    과도하게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은 고참을 보며 가까이 있던 다른 관리자들이 맞장구쳤다.

    “그러면 선배님들 퇴근이 또 늦어지지 않겠습니까?”

    “어이구야~ 우리 후배님께서 우릴 다 걱정해 주셨네~. 건방진 소리하지 말고 얼른 안 찾아와?! 전나 빠져가지고!!”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더 이상 말대꾸는 의미가 없었기에 준혁은 허리를 숙여 대답하고는 광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광산 관리자 중 최고 선임자인 여중추가 벤치에 걸터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자, 옆에 있던 염소수염의 사내가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선배님. 이제 내려가시죠? 어차피 우리가 숨겨둔 건데, 내일 아침이 돼도 못 찾을 텐데요?”

    “아니. 오늘은 끝까지 기다린다.”

    “네에?”

    여중추가 좌중을 둘러보더니 잔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 분명 못 찾고 결국 나오겠지? 아마 시간이 꽤 지나면 우리가 예전처럼 전부 돌아갈 거로 생각해서?”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크크큭, 그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매타작 좀 해보자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무능 죄, 선배들 말을 무시한 죄. 거기에 더해···. 청룡가의 비품을 빼돌린 횡령죄까지.”

    여중추가 간사하게 웃자, 주변 인물들도 모두 같이 웃음을 흘렸다.

    몇몇은 손발을 빙빙 돌리는 게, 벌써부터 몸을 풀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이 흐흐 거리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때.

    콰르르릉-

    광산이 뒤흔들리며 강렬한 기파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서, 선배님! 이게 무슨!”

    잠시 후 광산은 언제 그랬냐시피 진동을 멈추었다. 하지만 영석 광산 주위로 퍼져나간 기운은 일반인이 느끼기에도 평범한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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