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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화 (2/408)
  • # 2 < 빙제술 >

    여서령과 헤어진 준혁은 단숨에 집까지 내달렸다.

    허름한 5층 빌라의 반지하로 들어선 준혁은 급하게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오빠 왔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빼빼 마른 여자아이가 준혁을 반겨주었다.

    큰 눈망울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을 보면 꽤나 미인형임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보기 흉할 정도로 말라 있어서 안쓰러울 뿐이었다.

    “나연아! 이제 치료할 수 있어!”

    상기된 준혁의 표정을 보며 나연이 힘없이 웃어 보였다.

    “알아. 오빠가 내 병 고쳐줄 거란 거. 밥은 먹었어? 잠깐만 내가 차려줄게.”

    “아니! 진짜 치료할 가능성이 생겼다니까!”

    하지만 준혁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연은 살짝 웃음으로 대답한 후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준혁은 동생의 태도를 보고서야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비쳤을지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그래. 밥 먹자.”

    부모도 없이 살아가는 준혁의 유일한 가족. 최나연은 준혁과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준혁에게 가족을 허락지 않는지, 최나연은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약해졌고, 스무 살이 넘어갈 때쯤엔 반시체나 다름없게 변해갔다.

    준혁은 생계를 잇기 위해 매일같이 일하면서도 동생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기를 수년, 처음 동생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알아냈을 땐 준혁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 기뻐했다. 동생도 따라서 웃음 지었다. 마치 이제 곧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희망이 절망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시들어가는 그녀의 병명은 ‘반영근 부작용’.

    여서령처럼 영근을 가지고 수행을 거듭해 수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준혁처럼 영근이 없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 능력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준혁의 동생 나연은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반영근자. 수련의 씨앗이라는 영근이 절반만 개화해, 몸에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병이었다.

    정확히 병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열에 아홉. 아니 대다수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 큰 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의 병을 고칠 방법이 단 한 가지 존재했다.

    비경 깊은 곳 어딘가에 있다는 구색초(九色草)를 복용하기만 한다면, 반영근이 치료되는 것과 동시에 영근이 제대로 자리잡히며 수도자가 되어 더욱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것.

    문제가 있다면 구색초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구색초는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최상급의 약초로 분류되어 아무리 큰돈을 지급해도 살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 비경으로 들어가 약초를 구할 수도 없었다.

    “많이 먹어. 차린 건 없지만.”

    “차린 게 없긴,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준혁은 과도하게 웃어 보이며 밥을 크게 한 숟갈 떠먹었다.

    사실 준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5년 전. 그전까지는 돈이 되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동생과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준혁이 우걱거리며 밥과 반찬을 입안으로 쑤셔 넣자, 나연이 희미하게 웃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물 한 컵을 떠 와 앞으로 내밀었다.

    “천천히 좀 먹어. 체하겠어.”

    동생에게 물컵을 건네받은 준혁은 단숨에 물과 함께 밥을 꿀꺽 삼키더니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힘없이 앉아있는 동생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나연아.”

    “응? 왜?”

    “이제 하자.”

    “뭘?”

    동생의 눈에 궁금증이 담기자, 준혁이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빙제술(氷祭術)”

    사뭇 진지한 준혁의 말에 나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아직 몇 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이제 할 수 있게 됐어. 좋은 데 취직하면서 큰돈이 생겼거든.”

    “정말?”

    “그래! 앞으론 아플 일 없어. 잠깐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아있을 거야. 오빠가 약속할게.”

    준혁의 얼굴에 서린 확고함을 느껴서인지 나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빙제술.

    세상이 격변하기 전. 그러니까 500여 년 전쯤에도 비슷한 것들이 있었다고 했다.

    냉동 인간 프로젝트.

    현시대에 고칠 수 없는 병을 후대에 고친다는 발상으로 시작한 냉동 시술.

    살아있는 사람을 초저온으로 급속 냉동해 치료 방법이 개발된 후 해동과 함께 치료하겠다는 계획.

    하지만 그 시대의 과학기술은 냉동만 할 수 있을 뿐 안전하게 해동할 방법이 없었다.

    그에 반해, 술법을 이용한 빙제술은 효과와 안정성이 탁월했다.

    특정한 진법의 도움을 받아 빙제술을 시전 받으면, 시전 받은 대상은 그 순간 아무런 고통이나 느낌 없이 얼음 속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시전자가 원할 땐 언제든지 처음 모습 그대로 해동될 수 있었다.

    시전 받은 대상은 얼음 속에 있는 기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아주 잠깐 잠을 잔 것 같은 기분만을 느낀다고 했다.

    동생을 치료할 방법은 알아냈지만, 할 수가 없었던 준혁은 우선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든 동생을 빙제술로 얼려둔 후 구색초를 구할 계획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이유는 빙제술의 가격 때문이었다.

    초기 시술 비용만 해도 영석 100개.

    그 후론 5년마다 영석 20개를 써야 했다.

    준혁이 광산에서 일하며 빠르게 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건 숙련도가 올라가고 오래 일하며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 후의 일.

    그전까진 생계를 유지하고 동생 약값을 버는 것만으로도 삶에 허덕였기에 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준혁은 나연과 함께 ‘청룡과 함께하는 빙제소’라고 적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여서령에게 받은 옥패를 내밀자 신분 검사도 없이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미리 빙제소에 대해 알아본 준혁은 여서령이 준 옥패가 그저 신분을 나타내는 명찰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대로라면 빙제소를 이용하기 위해 자격요건에 관련된 자료를 검사받고 상담을 거쳐야만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본가에서 나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에 날씬하게 생긴 여직원이 다가와 남매를 안내했다.

    한참을 이동하자 건물 한쪽에 자리한 커다란 문 앞에 당도했다.

    “이 안엔 진법의 영향을 받습니다. 혹시 소지하고 계신 물건 중 위험을 초래할 것들이 있는지 검사해 봐도 되겠습니까?”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직원이 네모난 상자를 가져와 준혁과 나연의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이상 없으시네요. 그럼 안으로 가시죠.”

    커다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냉기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옆을 보니 나연은 추위를 이기기가 힘든지 얼굴을 찡그리고 힘겨워하는 듯했다.

    “조금만 참아. 금방 좋아질 거야.”

    “응.”

    그때 무언가가 흐릿하게 움직인다 싶더니, 더벅머리의 사내가 눈앞에 나타났다.

    “본가의 패를 가지고 오신 손님이라고? 둘 중에 누···. 아, 딱 보니 이 아가씨로구먼. 쯧쯧 상태를 보니 당장이라도 얼려야겠어.”

    말을 하던 사내는 준혁을 보더니,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영석은 저쪽에 지급하시면 되고···. 내 특별히 빨리 처리해주지. 누굴 모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좀 말해 줄 테지?”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나연에게 손짓하며 한쪽에 그려진 진법을 가리켰다.

    “준비되었다면 저위로 올라가면 된다.”

    “네···.”

    나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준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

    준혁은 나연을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마. 오빠 믿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끝나있을 거야.”

    “응···. 근데···.”

    “왜? 다른 걱정이라도 있어?”

    “나는 그대로인데···. 오빠만 늙으면 어떡해···?”

    동생의 걱정에 피식 웃어 보인 준혁이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별걱정을 다한다. 너 치료할 때까진 오빠도 건강하게 잘 있을 거니깐 걱정 마. 이번에 취직한 곳의 높은 분을 모시게 됐다고 말했지? 일만 잘하면 어쩌면 수명과(壽命果) 같은 것도 얻어먹을지 모르거든.”

    “정말?”

    “그래. 그러니깐 넌 아무 걱정 마.”

    당연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동생에게 건넨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수명과라는게 실제로 존재하고 한 알만 먹게 돼도 수십 년의 수명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구색초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보물이었다.

    수명과를 힘없는 사람이 가지게 된다면 당장 피바람이 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물건이었다.

    한참 동안 준혁에게 안겨있던 나연은 떨리는 두 다리로 간신히 움직이더니 진법의 중앙에 온전히 섰다.

    “준비 됐어요···.”

    그녀가 힘겹게 말을 꺼내자,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던 사내가 진법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준혁을 한번 바라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신호를 받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한참 동안 중얼거리자 갑작스레 주변 기운이 변하며 수십 가지의 수결을 연달아 맺었다.

    그리곤 마지막 수결을 끝마치며 두 손을 맞잡은 상태에서 오른손의 손가락만을 앞으로 향한 채 외쳤다.

    “결!”

    사내가 ‘결’을 외친 순간. 진법이 새겨진 바닥이 부르르 떠는 것과 동시에 살을 엘 듯한 냉기가 밀려들어 왔다.

    냉기는 진법의 상공에 차곡차곡 모이더니 어느 순간 급하강하며 진법이 자리한 자리를 단숨에 집어삼켜 버렸다.

    “오빠, 고마ㅇ...”

    잠시 후, 입을 살짝 벌린 채 푸르른 얼음기둥에 갇혀버린 동생을 볼 수 있었다.

    준혁이 다가가려고 하자, 사내가 손을 들어서 막았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준혁을 저지한 사내는 다시 한번 수결을 맺더니 양손을 지휘하듯 흔들었다.

    그러자 사내의 손짓에 따라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나더니 얼음기둥을 뭉텅뭉텅 잘라내며 사람 모양의 조각상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보관소에 넣을 테니 마지막 인사하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인사는 치료가 끝날 때 할 테니, 마저 진행해 주세요.”

    마지막 인사라니? 단어가 주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은 준혁은 고개를 젓고 말았다.

    사내는 준혁의 반응에 별 반응 없이 손을 다시 저었다.

    그러자 얼음 조각상으로 변한 나연이 붕 떠올라 한쪽으로 이동됐다. 잠시 후 아무것도 없던 한쪽 벽면에 사각형의 공간이 나타나더니 그녀를 날름 집어 삼켜버렸다.

    준혁은 말없이 모든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사내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헤엠. 옥패를 들고 오셔서 특별히 아무 절차도 없이. 가장 빠르게 처리한 건 알고 있으시겠지요? 일반인들은 몇 달 걸리기도 하는데···.”

    “네. 그분께도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

    “으윽 머리야···.”

    처음으로 술이라는 걸 마셔보고, 숙취라는 걸 경험한 준혁은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을 보내고 난 후,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술을 잔뜩 사 들고 와 거나하게 취했다.

    그동안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걱정이 조금은 해소된 것도 같았지만, 이내 새로운 걱정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큰돈을 번다해도 내 능력으로 구색초를 구하긴 힘들 거야.”

    동생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선은 나연을 빙제술로 안전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다음 계획이 있을 리 만무했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준혁은 입가를 닦으며 어젯밤 결심을 떠올렸다.

    “그녀를 가주로 만드는 게 유일한 길이야. 어떻게든 능력을 인정받고 필요한 사람이 된다면···. 그녀도 약속을 지키겠지.”

    오랫동안 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아온 그녀의 행실과 주위 평판을 생각한다면 여서령은 여장부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즉,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입 밖으로 나온 말이라면 그녀의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선 지킬 가능성이 매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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