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감숙성의 별이 지다 (34/38)
  • 第四章 감숙성의 별이 지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주문룡의 걱정스러운 말에 사우는 히죽 웃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대공자."

    "귀 안 먹었으니까 말해."

    "지금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단 말입니다."

    "언제는 좋았냐."

    "총타 내부에서도 대막검문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으니 많이들 불안해하는 것이지."

    마존이 입안에서 차를 음미하며 말했다.

    사우나 마존은 의외로 차분한 태도를 보였다. 주문룡은 왠지 자신만 호들갑을 떠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가히 좋지 않은 기분인 건 확실하다.

    "구룡천부 수장이 다쳤다고."

    "예. 한쪽 팔이 잘려 나가 이제는 외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역시 남북천맹으로는 상대하기가 힘이 들 것 같네. 그렇지?"

    "예상했던 바지."

    "흐음."

    사우와 마존의 대화에서 주문룡은 소외되어 있었다.

    "사마련은."

    "남북천맹으로 인해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알았겠지만 여전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으니 뒤꽁무니만 쫓는 모양입니다."

    "이제 저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생각인 것 같은데."

    "흐음."

    사우는 눈을 감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니 어쩌면 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존은 서 있는 주문룡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사우에게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자 함이었다.

    주문룡도 마존의 의도를 알고는 잠자코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일다경 정도 지났을까. 잠이 든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지만 마존과 주문룡은 침묵 속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율무천은 어디에 있지."

    눈을 감은 채 사우가 말했다.

    "아마 집무실에 있을 겁니다."

    "가자."

    "예?"

    "가자고. 율무천이 있는 곳으로."

    자정이 넘은 시각 세 사람은 율무천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마존과 주문룡은 밖에서 사우가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율무천은 갑작스러운 사우의 방문에 놀란 눈이 되어 버렸다.

    "박살 났다는 소식 듣고 왔지."

    율무천은 쓰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내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쯔쯧.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러게."

    여전히 율무천의 얼굴에는 자조 섞인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힘없는 맹주였으니까 말이다. 무능력한 건 사실이지만 비겁하지는 않았다.

    저들을 막기 위해서 직접 나갈 참이었으니까 말이다.

    "검룡전, 검살전, 구룡천부 다 들어오라고 해."

    "……?"

    율무천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뜻이지?"

    "다 들어오게 하고 넌 집 안에서 방어 준비나 하고 있어."

    순간 율무천은 사우의 눈과 마주쳤다.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저게 어찌 사람의 눈이라 할 수 있을까. 굶주린 짐승, 그것도 바로 눈앞에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그것과 똑같았다.

    그가 왜 저런 눈빛을 하고 있는지 율무천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긴장이 되어 입조차 뗄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가려고."

    "……!"

    자신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걸 율무천은 참아 내야 했다.

    "잠깐……."

    헌데 다시 생각해 보면 흥분하거나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사우라는 자의 무공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를 따르는 자들도 만만치 않게 강하다.

    "갑자기 왜."

    "너희들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수귀옥이 본격적으로 대막검문을 돕기 시작한 이상은 말이야."

    사우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율무천은 사우가 무슨 의미를 지닌 말을 내뱉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오늘 이후부터 그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남북천맹의 인연은 끝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사우의 의견이었다. 남북천맹을 이용하는 건 이번 대막검문과의 전투로 끝이 난 것이리라.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오늘이라는 것에 율무천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거야. 대막검문도 아수귀옥도 얼마 못 가 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놈들도.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한 이후에는 나도 어찌 될지 모르겠다."

    "……."

    "그때가 되면 내가 죽어 있을지 살아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그땐 네가 알아서 해."

    사우는 굳은 얼굴을 풀고는 웃었다.

    천무대주 주문룡, 천지각주 마존, 그리고 담천과 무진, 초호진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황십팔전의 수장 모준이 사우의 옆에 섰다.

    "내일 새벽 떠난다. 모두 짐 챙겨."

    "……!"

    마존과 모준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의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더 이상 남북천맹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남북천맹은 그놈들을 중원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이용 수단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수귀옥이 본격적으로 나섰으니까 우리도 그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도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사우는 씩 웃음을 머금었다.

    "마존, 그리고 천무대에 새롭게 편성되었던, 아니 혈천사가와 혈천마성의 인원과 마황십팔전만으로 저들을 상대한다. 나와 담천, 무진, 초호진도 물론 함께."

    "이거…… 갑자기 술이 땡기네."

    "술은 살아남은 뒤에 먹어도 늦지 않아."

    "하…… 하하하!"

    담천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네. 사우."

    초호진의 비아냥거림에도 사우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유지했다.

    "새삼스럽게.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으니까 유난 떨 거 없어."

    사우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모두들 넋을 잃어버렸다.

    "어차피 부딪쳐야만 끝나는 싸움이니까."

    마존이 사우의 편을 들고 섰다. 그도 사우와 같은 생각이었다. 남북천맹이 저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죽는 이들은 부지기수로 늘어날 것이다. 피는 강을 이루고 시체는 산이 될 것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전에 끝을 내야만 한다.

    이 질긴 싸움을 말이다.

    화월선자라는 자의 죽음으로 그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사우도 마존도 믿고 있었다.

    * * *

    지청화의 얼굴에 핏물이 튀어 배겼다.

    하지만 그녀는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검날에 살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섬뜩하지만 무인들에게는 익숙한 소리다.

    지청화는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명이었다.

    그녀는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켜 두 명의 뒤에 착지했다.

    푸욱.

    지청화의 검이 오른쪽 사내의 척추를 찔렀다. 그리고 그녀의 왼쪽 손은 남은 사내의 사혈을 짚었다.

    돌진해 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두 사람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열 명의 목숨을 거뒀다.

    그런데 벌써 몸이 지쳐 있었다.

    대막검문 무인들의 검들이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다. 그저 겉으로 봤을 적에 쉽게 쉽게 상대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게 아니다.

    거의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기에 그리 보이는 것이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막검문을 쫓아오면서 이들이 남북천맹의 방어선을 뚫었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지금 저들을 돕고 있는 정체불명의 무인들은 지난번 대막과의 싸움에서 나타난 자들이었다.

    사마련 전력의 대부분이 이번 전투에 참여했다. 헌데 현재 상황은 자신들이 밀리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남북천맹 방어선을 뚫은 일을 상기한다면 사마련이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검룡전과 검살전, 구룡천부는 그만큼 강력한 집단이었다. 헌데 대막검문이 그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지청화는 왜 남북천맹이 그렇게 급하게 후퇴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결코 대막검문이 강해서가 아니다.

    물론 명성에 걸맞게 잘 다듬어진 칼 솜씨를 지니고들 있었지만 진정한 힘은 바로 야차의 가면을 쓴 자들이다. 저들은 정말로 살인만을 위해 태어난 살인귀 같았다.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에게서 진한 피 냄새가 풍긴다. 마치 피에 굶주린 짐승들 같았다. 진정으로 두려움이 느껴지는 자들이다.

    "괜찮으십니까."

    철대악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피가 많이 묻으셨어요."

    "아, 예."

    철대악은 소매로 얼굴 주변을 문질렀다.

    "힘들겠죠."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지금 본련의 힘으로는 벅찬 것이 사실입니다."

    "……."

    정말 싫었다. 이대로 다시금 결판을 내지 못하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피해만 늘 것이다. 냉정하게 파악하자면 지금은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자신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 중인 증원부대를 기다려야만 한다. 살락원을 비롯해 운남성과 귀주성에서 도와주기 위해 나선 문파들의 힘이 보태져야 했다.

    그래도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이었다.

    순간 그녀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철대악처럼 피를 한 바가지 뒤집어쓴 인물이었다.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지청화는 그가 서륜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이 아니면 늦습니다."

    그녀가 결정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철대악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서륜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철대악이 지청화의 눈을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서륜이 움직이는 장면이 보였다. 그가 향하는 대상은 당연 지청화였다.

    철대악은 황급히 지청화와 서륜의 사이에 몸을 밀어 넣었다. 서륜이 그녀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내게 된다면 그건 자신의 죽고 나서일 것이라는 각오였다.

    묵월십이식(墨月十二式) 제일식 맹호비월(猛虎飛月).

    서륜의 검 끝에서 묵빛 기류가 튀어나왔다. 호랑이의 기세가 담긴 그 검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합쳐진다.

    철대악은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다가 그곳에 지청화가 있다는 걸 알고는 주춤거렸다.

    그게 화근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지청화를 안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과정에서 철대악의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새겨졌다. 마치 호랑이의 발톱에 찢긴 형상이었다.

    철대악은 신음을 내뱉기보다는 지청화의 안전을 살폈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피해요!"

    지청화의 눈에는 보였다. 공중에서 서륜의 검 끝이 철대악의 등에 내리꽂히는 모습을 말이다. 이번에는 지청화가 철대악의 몸을 밀어서 반대 방향으로 나뒹굴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지청화와 철대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륜의 기세가 매우 공격적인데다가 갑작스러워서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명색이 사마련의 련주이고 그녀를 호위하는 호법이다.

    두 사람이 한 사내를 감당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헌데 첫 번째 공격으로 인해 주도권이 서륜에게 넘어갔는지 번번이 그의 공격에 맥을 못 춘다.

    서륜은 상대가 막아 내기에 불편한 구석만을 공략하려고 했다. 실전 경험이 많은 철대악으로서도 그의 검 끝이 치고 들어오는 곳을 막아 내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서륜이었지만 천재적인 감각으로 초식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범의 새끼구나.'

    서문륭의 아들다웠다.

    저 나이에 저런 공격을 가하는 이들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싸움을 얼마만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철대악도 결코 녹록치 않은 강자였음을 서륜은 몰랐다.

    철대악의 검이 바닥을 쓸더니 순간 서륜의 하체로 향했다. 그가 검을 피하기 위해 살짝 몸을 띄운 사이 지청화의 검이 수많은 잔상을 그리며 서륜에게 쏘아져 갔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

    서륜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지청화의 힘이 조금 전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힘을 보여 줄 체력이 남아 있었던가? 그게 아니라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 터인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난 서륜은 검을 고쳐 잡았다. 방심했던 마음을 순식간에 버려 버렸다.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알아 버렸다.

    묵월십이식은 대막검문에서 가장 잘 쓰는 검식으로 유명하다. 열두 초식 중 절반 정도는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지금 그가 펼치려는 초식 묵룡섬(墨龍閃)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조금 전이 호랑이였다면 지금은 한 마리 묵룡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아니 실제로 형태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륜도 이렇게 묵룡섬을 펼치는 건 처음이었다. 묵빛 용이 그의 검에서 살아 나와 꿈틀거리더니 자신의 힘을 주체 못하고 상대를 향해 튀어 나갔다.

    묵룡이 지나가는 곳의 땅들이 갈라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청화와 철대악은 워낙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묵룡의 기운에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콰콰콰쾅!

    천지가 뒤집어지는 굉음이 들리고 사방이 먼지로 가득해져 버렸다. 주변에 울리던 칼부림 소리가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시야를 가리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주변의 상황이 보일 때까지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청화는 자신의 옆에 있어야 할 철대악을 급히 찾았다. 헌데 보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도 그의 흔적은 없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흐르는 건 눈물이었다.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철대악을 찾았다. 정말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입술이 떼어지지 않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급히 찾아드는 여홍과 북천휘, 사가훈만이 보였다. 철대악은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리가 휘청거려 그녀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여홍이 급히 부축했지만 더 이상 일어날 힘은 없어 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차가운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안간힘을 써서 정신력으로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고 있었지만 얼마 못 갈 것이라는 걸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펑펑 울고 현실을 부정하고픈 욕망만이 그녀의 마음속에 꽉 들어차 있었다.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련주로서 개인적인 감정에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슬픔은 지금의 사태를 정리하고 나서 이겨 내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그렇게 배웠다.

    "모두…… 후퇴한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울음이 섞인 그녀의 음성이 저 멀리 있는 수하들에게까지 전달될 리 만무하다.

    "모두 후퇴한다!"

    북천휘의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제야 사마련의 무인들이 지시 받은 대로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몸을 움직였다.

    대막검문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사마련이 자신들의 뒷덜미를 물려고 했기에 싸운 것이다. 지금은 남북천맹과의 싸움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후일을 위해 서륜은 지청화를 꼭 죽이고자 했었다. 그런데 엄한 자가 죽었다. 지청화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던 사내, 철대악이 말이다. 묵룡섬의 위력은 상상하던 것보다 더 파괴적이다.

    뼛조각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먼지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혀를 내둘렀다.

    내력 소모도 상당하다. 함부로 쓸 기술이 아님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이러고 계실 여유가 없습니다, 련주."

    북천휘가 넋을 놓고 있는 지청화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말했다. 그의 외침이 효과가 있었는지 멍하던 그녀의 눈빛이 제대로 돌아왔다.

    "본련은 오늘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딱히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건 대막검문에게 하는 경고였다. 이제 대막검문과 사마련은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 * *

    서륜은 상처를 치료하는 중에도 아쉬움에 땅을 쳤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지청화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헌데 놓치고 말았다. 쫓을 수 있었지만 괜한 일에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사마련을 상대하는 게 중요치 않았다. 어쩌면 남북천맹과의 전쟁 승패에 따라 대막검문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허나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다. 그런 감정을 가졌다면 애초에 봉문을 스스로 해제하고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으리라.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도울 새로운 힘도 얻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주원호와 한유가 이끄는 부대를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명불허전!

    과연 그들의 힘은 막강했다. 대막검문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아수귀옥이 없었다면 대패했을 것이다.

    더 기가 막한 일은 주원호와 한유가 이끄는 부대가 핵심 전력이긴 하지만 남북천맹이라는 빙산의 일각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전속결.

    지금 대막검문이 파고들어야 하는 남북천맹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하루 속히 총타를 급습해야만 했다. 전해 들은 보고로는 아직 총타에서는 섬서성으로 끌어 올리지 않은 인원이 많다는 것이다. 총타의 인원만으로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빨리 이동을 해야만 한다.

    서륜이 선택한 방법은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섬서성 서안으로 통하는 수로가 있었다.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신법을 발휘하는 것만큼의 이동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대막검문을 막아서는 무리가 나타났다. 사마련은 아니다. 게다가 그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

    "사우."

    용성의 낮게 깔린 음성에는 짙은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서륜의 이 갈리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섬뜩하게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거야."

    "……."

    서륜이 용성이라는 자에 대해서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앞에서는 자신만만하던 그의 모습을 지금은 볼 수가 없었다.

    사우가 이끄는 인원이 탄 배가 작은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대막검문과 아수귀옥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희한한 일이다. 몇 배나 차이가 나는 사마련도 물러서게 한 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걷는 법을 모르는 아이 같았다.

    그럴 것이 사우라는 사내 혼자도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데려온 자들의 기운까지 합쳐지니 그 기운들이 상당하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런가요."

    서륜의 머리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굳이 용성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늘 대막검문은 씨가 마를 것이라는 걸 말이다. 총타 근처로는 가 보지도 못하고 저들 손에 모조리 도륙당할 것이다.

    서륜의 뇌는 그리 답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달랐다. 차가운 머리는 도망치는 것만이 살길이라도 말한다.

    하지만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용암처럼 심장 밖으로 터져 나올 듯했다.

    그리고 그가 끝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사우 때문이다. 아버지를 마지막에 죽인 사내. 저자를 죽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대막검문을 위험에 빠트린 대가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무인들은 검을 뽑아라!"

    검집에서 검을 뽑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서륜은 그 소리가 전보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소리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는 것도 느껴진다. 서륜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도왕 서패우가 서륜의 앞에 섰다.

    "뭐 하는 거야."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내가 체면이 구겨지잖아."

    서륜은 나름 여유 있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나 서패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내 명령도 듣지 않을 참이야?"

    "아닙니다. 단지 저는……."

    서륜이 다시금 그의 앞으로 치고 나오자 서패우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필사의 각오를 보이는 서륜의 등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서패우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도와주는 자들이 강하다 하지만 사우와 함께 있는 자들에 비하면 힘이 부족하다.

    기운만으로도 이미 몸을 굳게 만드는 자들이니 더 이상 말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삶의 미련 같은 건 남아 있지 않다.

    가족도 없었다. 훌륭한 주인 밑에서 지내도 봤고 대를 이어 주인의 아들을 보필까지 하고 있었다. 그것만큼 그에게 명예로운 일도 없었다.

    무인으로서 돈도 명예도 얻어 봤다.

    그러나 오늘 그가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하는 일은 이 젊은 공자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다. 서패우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반면 사우 일행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도 알다시피 사마련이 대막검문을 치기 위해 움직인 전력이 상당했다. 그런 그들과 남북천맹에서 보낸 검룡전과 검살전, 그리고 구룡천부를 깨부순 이들이었다.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윽고 사우 일행이 탄 배가 육지에 도착했다. 모두가 내릴 때까지 적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마황십팔전이 선봉에 섰다. 그 뒤로 혈천사가의 무인 삼백 명이 싸울 준비를 마쳤다. 흑마궁 소속이었던 흑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늘 그들의 역할은 살수였다. 각자 정해진 인물들을 척살하는 것이리라.

    능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맨 후방에서 사우는 씩 웃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의 웃음에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이길 자신이 있나 보지."

    "아수귀옥 놈들…… 생각보다 인원이 적어. 아직 제대로 된 힘을 보태 준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우스운 일인가?"

    "아니. 저기 저놈."

    사우의 손끝이 용성을 가리켰다.

    "저놈…… 굉장히 강하다. 아마 아수귀옥 옥주 다음으로 강할 것 같은 놈이야."

    마존이 빙그레 웃었다.

    "그게 아니라면?"

    "흐음."

    사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게 아니라면 난 절대 아수귀옥을 이기지 못하겠지. 만약 저놈이 가장 약한 놈이라면 말이야."

    "예상이 빗나가길 빌어야 하겠네."

    "그래야겠지."

    잡담을 나누는 이들은 사우와 마존뿐이었다.

    주변은 선착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조용했다. 침묵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몰랐을 것이다. 고요함은 한참이나 더 지나서야 깨졌다.

    먼저 공격을 감행한 쪽은 대막검문 쪽이었다.

    악귀!

    결코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머리카락에 핏물이 묻었다. 그게 굳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마치 본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살을 베고 뼈를 벤다.

    그 기분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불쾌한 기분에 싸이면서도 무의식중에 사람을 죽인다. 오로지 스스로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무인이다. 아수귀옥 무인들의 손속은 잔인하다 못해 인간 같지 않았다. 심장을 꺼내어 자신들의 손으로 으깬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눈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악귀들의 눈빛에도 사우 일행은 주눅 들지 않았다.

    주문룡을 비롯 흑마궁과 혈천사가는 맹공으로 그들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마황십팔전의 움직임은 발군이었다. 역시나 흑천의 군대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없다고 사우는 생각했다.

    어디서 어떻게 저런 무인들을 훈련해 냈는지 소진악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마황십팔전이 없었다면 아수귀옥을 상대하기가 상당히 벅찼을 것이다.

    어쩌면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전세는 한 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는다. 모두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상황의 연속이다.

    한쪽이 죽이면 다른 한쪽이 죽는다.

    사우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제일 뒤쪽에서 싸움을 관전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감각을 넓혔다. 주변에는 이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아수귀옥은 굉장히 소수의 인원이었다.

    칠십이 채 되질 않는다. 자신이 이끄는 전력을 얕본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직접 총타를 빠져나와 공격하는 것이 의외인 것일까.

    아니다. 저들은 자신이 이렇게 직접 나오길 바란다. 그래서 대막검문을 돕는 것이다. 바라던 바다. 그런데 사우가 기다리는 건 저런 애송이들이 아니다. 물론 그의 관점에서 봐서 그런 존재들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수귀옥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없다.

    전투의 중심에서 명령을 하는 자가 우두머리일 리가 없다. 야차혈왕은 저렇게 기가 약하지 않았다.

    사우가 형인 흑천 다음으로 가장 무서워하던 자가 야차혈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후계자라 할지라도 저 정도는 약한 축에 낀다.

    사우는 오늘 저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 그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구천제혈신검을 모조리 쏟는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아수귀옥을 모조리 끌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작일 뿐이다. 다음 세력, 또 다음 세력.

    화월선자가 직접 자신을 찾아오게끔 해야만 한다. 자신의 존재가 얼마만큼 위협이 되는지 깨닫게 하고자 함이다.

    '만만치 않구나.'

    용성은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혈천사가의 무인들을 사정없이 죽였다. 죽자고 덤벼드는데 살려 둘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헌데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자신의 임무는 이런 잔챙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난전이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이, 사우라는 자가 검을 뽑게끔 해야만 한다.

    그게 자신의 일이었다. 저자에게 진한 피를 보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를 너무나 얕잡아 본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용성의 눈매가 날카롭게 누군가를 쏘아봤다. 중원에서 저만한 상대를 만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전력을 다해도 승패를 가늠키 어려운 자다.

    직접 검을 섞어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움직임을 아주 잠깐만 지켜봐도 느낄 수가 있다. 결코 자신보다 아래가 아님을 말이다.

    그의 시선은 모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모준은 특별하게 검을 휘두르지 않는다. 고수들의 눈에는 그것이 절제된 검임을 알 수가 있다.

    오로지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데만 주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결코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좌충우돌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전투에서 저렇게 깔끔하면서도 침착하게 검을 휘두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용성은 그가 무리 중 가장 강하다고 확신했다. 다른 이들도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지만 저자만큼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 사내를 이기면 사우가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본연의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자신이 지금 검을 드는 이유였으니까 말이다.

    "히야! 이것들 괴물들이네!"

    초호진은 이번에 살아남으면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목숨을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체력이 너무 달린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서 도저히 힘에 부쳐서 싸움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게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일다경 정도 지나면 검을 들고 있을 힘조차 없게 될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죽는 건 비참해서 싫었다. 체력적으로 지쳐 있는 상황에서 칼침을 맞아 죽는 건 그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호진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순간에도 사우는 멀찍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야 이 빌어 처먹을 새끼야!"

    초호진의 외침에 사우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어이구, 두야!"

    당장이라도 사우의 멱살을 틀어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개미 떼처럼 자신의 목숨을 끊기 위해 덤벼드는 놈들 때문에 꼼짝도 못했다.

    이미 옷은 넝마가 된 지 오래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는 피부가 그리 될 것이었다.

    "무진! 이놈아, 좀 도와라!"

    입에서 단내가 나게 힘이 든 건 무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표정에서는 별다른 힘든 것이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비를 맞은 듯 젖은 옷을 보면 상황은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진은 어느새 초호진의 옆에 바짝 붙었다. 두 사람은 등을 맞대고 검을 휘둘렀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텨야만 했다.

    삐이익!

    길게 늘어지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퇴각하라는 신호였다. 주문룡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손을 흔들었다.

    그걸 본 자들은 모조리 후퇴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승길 갈 뻔했다."

    초호진이 사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심을 다해서 말한 것이다.

    "수고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