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章 폭발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위치는."
"파악되었습니다."
어둠에 동화되려는 듯 열댓 명에 무인들은 모조리 검은색 복장과 복면으로 자신을 감췄다.
"향연루(香煙樓)입니다."
"출발한다."
"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헌데 골목길에 있던 자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처음 명령을 내린 복면인은 날다람쥐를 연상케 하는 신법으로 지붕 위를 내달렸다.
향연루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다.
어둡던 골목길은 이제 끝이 난다. 향연류가 있는 곳으로 가면 밤이라고 믿기지 않을 밝기가 기다린다.
복면인은 그래도 내달렸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발을 놀렸다.
"꺄아아악!"
술시중을 따르던 여인들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러 댔다. 그녀들을 찾는 손님들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았다.
돈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찾아왔다. 그리고 접대했다. 무인이고 나랏일을 하는 자들도 상대해 봤다.
이런저런 험한 꼴을 봤지만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나는 꼴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것 단 한칼에 목이 베어져 나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기겁할 일을 직면하게 되자 정신을 잃은 여인도 있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여인들도 있었고 겁을 먹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여인도 있었다.
술상이 엎어진 공간은 이미 짙은 혈향으로 가득했다. 죽어 나자빠진 무인들은 모두 다섯. 어디서 검 하나로 꿇리지 않을 자들이다.
비연풍 곽검명, 사(死).
복면인은 죽은 곽검명의 피로 종이에 적어 전서구를 날렸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화무홍이 냉정을 잃었다.
일풍문 문주 곽검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였다.
일풍문은 천산검문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문파를 남북천맹 상위권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내린 명령이라면 맹주의 목까지도 따 올 심복인 비연풍 곽검명이 죽었다.
누가 죽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든 간에 곽검명을 죽였다면 천산검문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히 천산검문에 검을 들이댄 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야만 한다.
떠오르는 자는 많았다.
율무천도 있었고 대막검문일 수도, 혈천마성일 수도 있는 일이다.
화무홍은 이성을 되찾고는 생각에 잠겼다.
누구일까. 누가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냔 말이다.
가장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가 바로 율무천이다. 그 사내 밑에는 곽검명을 죽일 힘이 있는 자가 없었다.
살가륵이 나섰다? 아니다.
지금 그들은 자신과 등을 돌려 봐야 득이 될 것이 없는 자들이다.
그럼 두 곳으로 좁혀진다.
대막검문과 혈천마성.
대막검문일 경우에는 경고성이다.
맹주의 자리는 자신들이 앉을 것이니 나대지 말라, 라는 경고 말이다.
또 하나는 혈천마성이다.
안휘성 분타에서 숨죽이고 있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소수 정예의 인원으로 중요 인물들을 척살한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추측이었다.
저들의 목표가 천산검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았다. 천산검문의 줄이 닿아 있는 문파는 꽤나 많았다.
그들에게까지 손을 뻗친다면 목적은 바로 자신들이었다.
화무홍은 화진천과 사마율을 불러 긴밀히 명령을 내렸다.
얼마 전 남북천맹 부맹주가 있던 안휘성 분타는 이제 혈천마성의 거점이 되어 버렸다.
그 주변에 있는 문파들은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혈천마성의 앞으로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남북천맹은 안휘성 분타 주변으로 수많은 눈과 귀를 배치시켰다.
대놓고 무인들을 깔아 놓기도 했다.
전략적으로 혈천마성은 굉장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안휘성 분타를 처음부터 공격해서는 안 되었다. 그곳은 꽤나 커다란 크기를 자랑한다. 무인들의 수도 굉장히 많았다.
혈천마성이 안휘성 분타를 차지했다는 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건 곧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방어를 튼튼하게 하라고 알려 준 꼴이다.
첫 번째 실수는 그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다는 것이다.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 되도록 뿌리를 박았다.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터트린 힘에 깜짝 놀랐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현재 혈천마성은 꼼짝없이 포위당한 꼴이다.
남북천맹은 천천히, 아주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혈천마성이 일부러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문룡은 주로 낮에는 안휘성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의 반응과 얼마나 많은 이들이 포위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함이었다.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 객잔에 들렸다.
주문룡의 옆에는 초호진이 항상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꽤나 친해져 있었다.
초호진은 술을 주문했고 주문룡은 간단하게 요기할 음식을 알아서 시켰다.
"술이 그리도 좋으십니까."
주문룡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뭐, 좋으니까 이렇게 달고 사는 거겠지."
"그런가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문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과 음식이 나오자 두 사람은 묵묵히 자신들이 할 일에 집중했다.
"음?"
주문룡은 객잔 안으로 들어서는 일단의 무리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남 일녀가 들어섰다. 객잔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에게로 향했다. 주문룡 또한 그 여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도 남자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면사를 쓴 상태에서도 그 미모는 단연 지금까지 본 여인들 중 최고였다. 그녀와 함께 들어온 남자 둘은 젊은이 하나와 중년인 한 명이었다.
이남 일녀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마도 이곳에서 오늘 하루를 묵을 예정인 듯했다.
보통 사람들은 아닌 듯 느껴졌다.
일단 풍기는 기도가 남달랐다. 아무래도 무림인이 확실했다. 주문룡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어딜 갔다 오는 거냐."
"잠시 생각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생각이야."
"글쎄요. 아직 저 또한 모르겠습니다."
"계속 그 작전을 밀고 나갈 생각인가 보네."
"비겁해 보입니까."
초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싸움에서 그런 게 있을 리가."
"일단은 그분이 최대한 빨리 모습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사우를 꽤나 의지하는 모양이네."
"여러분들은 아직 잘 모르십니다. 그분의 진짜 모습을."
주문룡은 과거 사우의 진노한 모습을 본 이후로는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사우는 원하지 않았지만 주문룡은 이미 그와 주종관계를 암묵적으로 맺은 것과 다름없었다.
초호진은 예전부터 궁금했었다.
사우는 어떤 인간인지가 말이다.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내를 수하로 둔 것인지.
그는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가자."
"더 안 드십니까."
술 한 병으로 끝낼 인간이 아닐 텐데, 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쥐새끼들의 시선이 너무 뜨겁잖아. 이거야, 원. 어딜 편하게 못 돌아다니겠네."
그가 말하는 쥐새끼는 남북천맹일 것이다.
주문룡은 피식 웃으며 객잔을 빠져나갔다.
* * *
"꽤나 놀라운 일이네."
사우의 눈은 여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단지 닮은 사람이 아닌가 하고 계속 바라봤다. 아니면 자신이 기억을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품었다.
하지만 과거의 여인과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확실히 동일 인물이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 황제조차도 품을 수 없는 그런 여인이 맞았다.
"많이 성장하셨네요, 도련님."
"……."
"라고 어떤 분이 시키시더군요."
"기억을 잃은 건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대가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동생이라는 건 알고 있지요."
"정말 기억을 잃은 건가?"
"제 기억 속에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요."
"흐음."
사우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소아경이라는 여인이 진짜 기억을 잃었는지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치지. 그런데 진짜 놀랄 일이야. 당신이 사망총주가 되어 있을 줄은."
소아경은 황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사망총주라는 신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태양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그것을 그녀가 입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소아경의 부친이 사망총주였지만 말이다. 사망총주의 밑으로는 소아경과 다른 두 아들이 있었다.
헌데 그들을 제치고 그녀가 사망총주가 되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소아경이 그렇게 강했었던가?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절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 정도는 호위할 수는 있었지만 총주로서는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무공이 꼭 강하다고 해서 우두머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무공과 사망총에 관한 일에 무관심하던 그녀가 왜 총주로서 자신 앞에 나타났는지가 궁금했다.
"그럼 흑천이 왜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겠네."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었어요.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과거를 떠올리려고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소아경은 얼굴을 찡그렸다.
"흐음."
사우는 그래도 계속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러시죠?"
"아니. 그냥 기억을 잃은 사람치고는 날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말이야."
"저도 솔직히 놀랐어요. 태어나 처음 본 사람처럼 느껴지면서도 낯설지가 않아요."
사우는 어이없는 웃음만 흘렸다.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궁금한 것이 있지만 묻지는 않았다. 질문한다고 대답해 줄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는 들어야 했다. 그것마저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복수를 하게 해 줘요."
"……!"
"내 정인을 죽게 만든 사람을 찾아서 죽이고 싶어요."
그녀는 고운 얼굴에서 내뱉기 힘든 말을 서슴없이 말했다.
"나도 몰라. 누가 형을 죽였는지."
"정말 모르는 건가요?"
"찾고 있는 중이야."
"흑천살막에 속해 있는 이들 중 하나이겠지요?"
"그렇겠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어찌 당신의 말만 믿을 수가 있느냐는 거야."
"난…… 그대 형이 사랑했던 사람이에요."
"기억을 잃은 사람이 무슨. 그리고 분명 흑천살막에서 그대가 복수를 하도록 그냥 둘까."
"……."
"하나만 물어보지."
"예."
"지금 흑천을 대신하는 자가 누구야."
흑천살막을 지배하고 있는 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소아경은 얼굴빛이 좋지 않아졌다.
"저도 본 적이 없어요."
"전대 사망총주인가?"
"아버지는 아니에요."
"진짜 복수를 원한다면 나에게 비밀 같은 건 없어야 돼."
"하지만 정말 몰라요."
사우는 짜증이 치솟아올랐다.
"자신의 과거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걸 알겠어요."
"허수아비군."
"맞아요. 형편없는 허수아비지요. 그래서 당신을 찾은 것이고요. 내가 힘이 있다면 뭣 하러 당신을 이렇게 불렀겠어요."
"말은 잘하는군. 예전에는 참 영리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말만 번지르르해졌어."
"당신을 찾은 이유는 또 있어요."
이번에 그녀는 너무나 밝게 웃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여지는 미소였다.
"나에 대해서 말해 줘요.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도. 모두 다요. 당신이 알고 있는 건 모조리."
* * *
호양문(互暘門) 문주 엽관(曄冠)은 안휘성 분타의 네 가지 방향 중 북쪽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일은 안휘성 분타에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저 감시하는 일이었다.
한 문파의 우두머리인 그가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남북천맹에 속해 있는 문파 중 호양문의 세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어쨌든 그는 혈천마성이 안휘성 분타를 차지한 직후부터 이곳에서 감시를 했다.
호양문 문도들이 주변에 깔려 있었다. 북쪽은 호양문이, 남쪽과 서쪽, 동쪽은 남북천맹 소속 문파들이 즐비했다.
"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안휘성 분타 담장을 넘는 것이 시선에 잡혔다.
낮에는 안에 있는 자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지만 밤에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외부에서 온 새로운 무리라는 것인데.
엽관은 수하를 시켜 다른 방향에서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바로 총타로 서신을 보냈다.
달빛을 받은 검날이 반짝거렸다.
대연무장으로 쓰던 장소에는 녹색 무복을 입은 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포위하고 있는 이들은 두 남자와 여인이었다.
"이런 식의 환영은 받고 싶지가 않았는데."
하제량은 태연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게 몰래 넘는 건 좋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철대악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이들은 딱 봐도 일류무인들이다. 뿜어 대는 살기가 가볍지가 않았다. 지진 않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대들을 이끄는 분을 만나고 싶어 이렇게 무례를 범하고 말았어요, 저희는 적이 아니니 검을 거둬 주세요."
녹포를 입은 사내가 포위하고 있는 자들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십 대 후반으로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철대악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을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녹포의 사내만큼은 아니었다.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본성의 철권이가는 방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오셨다면 이런 식의 만남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민이라 합니다."
적포의 사내 이사민은 포권을 취하며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혈천사가가 건재하다더니. 정말이었군.'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그분께서 미리 일러 주셨습니다."
주문룡이 나타났다.
이사민은 그에게 깊게 읍하며 물러섰다.
"쇄암왕 주문룡이라 합니다."
"쇄암왕!"
하제량은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 혈천마성의 최고 수장이 직접 나서서 마중해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야기로만 듣던 쇄암왕의 후계를 직접 보니 놀랍기만 한 것이다.
"그분이라면 누굴 뜻하는 것이지요?"
"다 아시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요?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첫 만남부터 무례한 행동을 보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청화는 자신들의 잘못에 용서를 구했다.
"아닙니다. 주변의 시선을 느끼셨을 테지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미 저들 쪽에서도 련주께서 방문하신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많은 인원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지만 사마련에도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완벽하게 저들을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럴 자신도 없었고요."
지청화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우 그자와의 거래를 하고자 왔습니다."
하제량이 먼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미 주문룡은 이들이 왜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우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마존을 통해서 접한 것이다.
그는 조만간 사마련 측에서 접촉을 시도해 올 거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게다가 오늘 낮에 우연히 보고 사우의 말이 진짜임을 안 것이다.
실제로 올 줄은 몰랐다.
주문룡은 지청화를 바라봤다.
"사마련은 반드시 남북천맹을 무너트려야 하겠지요?"
"예. 반드시."
"본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천맹을 휘두르고 있는 그들을 넘어 그 위에 있는 자들까지 지워 버리고자 합니다. 저희와 동맹을 맺고자 함은 사마련이 혈천마성을 공격하는 데 이용만 당하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이 듭니다. 맞나요?"
"……!"
지청화는 물론 하제량과 철대악은 이들의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 이유에 대한 것까지 모조리 꿰뚫고 있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강하네요. 혈천마성은, 생각보다."
"뭐, 한때는 천하를 내려다봤으니까요."
겸손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건방지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잠깐의 침묵이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정말……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조심스럽게 하제량이 물었다.
"이보게, 천기전주."
앞으로 함께하게 될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사마련의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은 아니었다.
철대악의 제제에 하제량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글쎄요. 제가 그걸 알고 있으면 힘겹게 싸우지도 않겠지요. 혈천마성은 이번 전쟁에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그의 웃음에서 세 사람은 넘치는 자신감을 읽었다.
"자, 이제 사마련으로 돌아가서 전열을 다듬이시지요. 소문을 듣자 하니 운남성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던데."
하제량의 낯빛이 굳어졌다. 운남성은 언제나 불안한 지역임을 늘 상기시키고 있던 곳이다.
저 멀리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자신보다 잘 알고 있다는 가정을 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가야만 한다.
지청화와 철대악도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시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을 조심하십시오. 늘 뒤통수를 조심하시고."
주문룡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면서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민."
"예."
"아이들 몇을 데리고 저들을 쫓아라. 안전하다 싶을 때까지 따라가."
"존명."
"사마련주가…… 혈천마성과 접촉을 시도했다?"
서문륭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재밌게 돌아가는군."
"어찌할까요."
어둠 속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어찌하긴. 살려 둬. 독고정(獨孤鼎) 똥 씹은 놈의 얼굴이 절로 그려지는군."
* * *
"그런데 대체 여긴 어디지."
"귀주성(貴州省)이에요."
"사망총이 귀주성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나."
"아뇨. 본래는 어디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다만 잠시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뿐이에요."
"자, 그럼 이제 기억을 잃어버린 사망총주가 알고 있는 것들을 들어 볼까."
사우는 비아냥 섞인 웃음을 보였다.
소아경이 자신의 과거를 듣고자 했고 사우는 조건을 달았다. 현재 흑천살막이 돌아가는 전후사정을 모조리 알고 있는 대로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 성격은 원래 그런가요?"
"내 성격이 어때서."
"말투는 항상 비아냥거리는데다 항상 남을 깔보는 듯한 눈빛이잖아요."
"그건 천성이라 어쩌지 못하는 거야."
사우는 자신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데 천성이라고 하지만 고치려고 한다면 좀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생각이 눈곱만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대로가 편했다. 누구 눈치나 보면서 비위나 맞추면서 살아갈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
"첫 번째 질문. 왜 그대가 사망총주의 자리에 앉은 것이지."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안 될 거야 없지. 어차피 그대가 전대 사망총주의 자식이니까. 하지만 당신 위로 오빠가 둘이나 있잖아. 그들이 훨씬 강할 테고."
"제가 왜 사망총주라는 자리에 앉았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당신이 들려준 제 과거에는 분명 무공이 약하다고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건 꼭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우는 그녀가 얼마만큼 성장을 이루었는지 단번에 알아봤다. 원체 무공을 익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원이 달라져 있었다.
"그럼 당신네 오빠들은 살아 있나."
"그럼요."
"흐음."
사우는 다음 질문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막상 물어보려고 하니 딱히 뭘 질문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자신이 궁금해하는 건 기억을 잃어버린 소아경이 알 리 만무한 것들이었다.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걸 십절무황(十絶武皇)도 알고 있나."
"글쎄요…… 아버지께서는 바깥 세상에 관심을 끊으신 지 오래되었거든요."
"후우."
사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볼 것은 많은데 그녀는 제대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답답했다. 결국 질문을 하는 건 포기했다.
"그런데 말이야…… 과거를 왜 내게 묻는 거지."
"그건…… 아무도 저의 과거를 제대로 답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럼 내가 흑천의 동생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본총에 사우라는 사내를 저지하라는 명이 내려졌어요."
"저지하라고?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예. 그래서 그대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지요. 대체 어떤 사내이기에 본총이 나서야 하는가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흑천의 동생이라는 건 누구에게 들었는데."
"설무랑에게서요."
"쉽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을 텐데."
"무적대군 설무랑은 제가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무슨 대답이 그렇지?"
"과거를 헤매는 제 모습은 슬퍼 보였나 봐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남북천맹에 있기에 자주 못 봤는데 이번에 만나서 물어봤거든요."
"그런가."
사우는 별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날 어쩔 셈이지?"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난 복수를 원해요. 그리고 그대는 그걸 도와줘야 하고요."
"순진한 건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건가."
"무슨 말이죠?"
"분명 흑천을 죽일 수 있는 놈들은 천지에 단 한 명도 없어. 하지만 딱 다섯 명만 모이면 가능도 하지."
"그게 누구죠."
"당신의 아버지, 십절무황. 금마옥주 천외안. 검옥주 흑천광무. 아수귀옥의 야차혈왕. 그리고 또 하나, 용맥(龍脈)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몰라. 누가 대가리인지는.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들 다섯이 모이면 천지가 뒤바뀐다는 사실이야. 흑천이 살아 있다는 가정하에 이들 여섯 명은 내가 아는 한 반신의 경지에 오른 놈들이지."
"결국 당신의 말은 흑천을 죽인 무리 중 아버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네요."
"내 팔 한쪽을 걸지."
사우는 섬뜩한 표정으로 소아경을 노려봤다.
그의 너무나 자신만만한 태도는 소아경에게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기억을 잃은 그녀는 모른다. 흑천이라는 사내가 얼마만큼 강한 사람인지를.
사우는 일대일로 싸워 흑천을 이길 존재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건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강한 사내가 흑천이다.
"아버지가 그러실 일이 없어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네."
"네?"
"아니, 아니야."
오래전 그녀는 굉장히 아버지를 미워했다.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고 약한 자를 멸시하던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게다가 흑천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부녀간의 사이가 멀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아버지를 누구보다 믿고 있는 딸이 되었다. 분명 기억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아는 한 소아경은 아버지의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여인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대가 복수를 하려면 아버지를 베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해. 그런 마음을 먹기 전까지는 복수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는 게 좋아."
"당신이 거론한 다섯 인물들이…… 얼마만큼 강한지는 알고 있어요."
"사망총주가 모르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당신은 어찌 그들에게 복수할 생각이지요?"
"아직…… 모르겠는데."
"날 믿지 못하는 건가요?"
"아니. 사망총을 믿지 못하는 거라고 해 두지. 특히나……."
사우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진 상서운을 어깨에 들쳐 매고 나타났다.
그러곤 인정을 두지 않고 그를 바닥에 내쳤다.
"이렇게 쥐새끼처럼 숨어서 남의 이야기나 듣고 있는 놈들 때문에 못 믿어."
소아경은 사뭇 다른 눈길로 사우를 바라봤다.
상서운이 누군가.
사망총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강자였다. 그런 자를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소리 소문 없이 기절시킬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소아경은 조금은 사우를 우습게보던 마음을 죽였다.
사망총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도 이런 식으로는 상서운을 제압할 실력이 못 된다.
역시나 피는 속이지 못하는 것인가.
흑천의 동생 사우.
소아경은 자신이 복수를 하려면 이자를 반드시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와의 만남이 있은 그날 밤 상서운이 깨어났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점혈을 당하고 감히 총주 앞에서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서운."
"예, 총주."
나직한 목소리로 소아경이 상서운을 불렀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는지 알고 있니."
"그건…… 저도 잘."
"허면 오라버니들은."
"……."
모른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차라리 침묵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서운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건 사망총을 이젠 내 마음대로 이끌어 가도 된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자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흑천살막에 반심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총은 그날부로 세상에서 지워집니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겠다면…… 어떡하겠니."
"총주를 보필할 것입니다."
"삼라의 통일된 뜻이겠지."
"물론입니다."
"설무랑도 내 편을 들어주겠지."
"그럴 것입니다."
"서운. 그자는 아버지가 내 정인을 죽였다고 하는데…… 내가 아버지를 베어 오라는 명령을 내려도 따를 것이니."
상서운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한참이나 있다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소아경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대답은 내가 그 명령을 내릴 때 듣도록 할게."
흑천을 죽인 자들은 모조리 베어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섞인 말이었다.
상서운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뭐야."
사우는 자신이 머물던 곳에서 나오는데 앞을 막는 이 때문에 인상을 썼다.
"어딜 가시는지요."
"그걸 내가 일일이 말해야 하는 거야?"
"총주의 명이 없으셨습니다."
"무슨 명."
"그대를 놔줘도 된다는 명 말입니다."
"미친놈."
사우는 인정사정없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턱이 돌아갔다. 그대로 몸이 날아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잘 구별해야지. 그래야 오래 산다고."
사우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러곤 미련 없이 장원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막는 이들이 있었다.
"두 놈이 더 덤빈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청염수라와 더불어 삼라인 백염수라와 홍염수라가 나타나 그의 길을 막아섰다.
그들은 살기를 뿌렸다. 하지만 사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검조차 뽑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백염과 홍염이 각자의 검을 뽑아 들어 사우에게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제야 사우는 무기를 들었다.
검집째로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았다.
"뼈째 부숴 버릴 거니 조심해라."
사우는 합격술에 여유 있게 방어해 나갔다.
가슴을 찔러 들어오는 검 끝을 살짝 피해 냈다. 자연스럽게 몸을 회전시켜 백염수라의 등 뒤를 점했다.
빠악!
내력을 이용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등이 말 그대로 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백염은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홍염이 하체를, 백염은 상체를 찔러 들어왔다.
사우는 혼돈영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펼쳤다.
혼돈영을 사우가 극성까지 끌어올렸다는 건, 저들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나 청염수라 상서운은 이번 기회에 죽이고 싶었다.
그가 나타나 앞길을 막지만 않았더라면 살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눈에 띈 이상 살려 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과거 그에게 죽은 어떤 이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함이었다.
그를 죽이며 미소 짓던 얼굴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백염과 홍염은 사우의 꽁무니도 제대로 쫓지 못했다. 베었다 싶으면 어느새 허공만을 가른다.
그러곤 어느새인가 눈앞에 등장해 자신의 목 줄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쿨럭!"
숨통이 막힌 백염수라가 발이 허공에 떠올라 발버둥 쳤다.
"살려 달라고 말하면 살려 준다. 대신 다시 내 앞을 막는다면 그땐 모두 죽인다."
마지막 경고였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께서 당신을 원합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 죽일 맛이 나지."
"그만!"
소아경은 차가운 표정으로 사우의 앞에 나타났다.
"움직임이 빠르네."
"무례함을 사과할게요."
소아경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인 수하들을 대신해 사과했다.
사우가 가겠다고 말했다면 그녀는 보내 줬을 것이다. 아니, 막아도 이런 식으로는 막지 않았을 게다.
"그냥 보내 주겠다는 건가."
"네."
"그대가 하는 일을 내가 돕겠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도와줄 것이라 믿으니까요."
"쯔쯧. 무공이 강해지면 뭘 하나. 사람 마음 하나 읽지도 못하면서."
혀를 차며 사우는 백염을 패대기쳤다.
"난 나만의 방식으로 할 생각이야."
"제가 그 방식을 따르면 되겠지요."
"이봐. 지금 우리의 만남을 그놈들이 모를 것 같아? 그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당신의 속옷 색깔이 뭔지도 맞힐 수 있다고."
소아경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놈!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상서운은 당장이라도 살초를 펼칠 태세였다.
허나 사우는 그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전 이번 일에 제 모든 것을 걸었어요."
"십절무황이 들었으면 피가 거꾸로 솟겠네. 철딱서니 없는 딸을 둔 업보겠지, 뭐."
"어떤 말을 해도 좋아요. 제 뜻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
사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 그것도 살기 띤 눈빛으로.
"그대가 지금 내뱉은 말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연락을 하지."
"고마워요."
그녀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사우는 몸을 날려 장원의 담장을 넘었다.
"재밌게 돌아가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나아갔다.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암혼전주가 돌아왔습니다."
아도왕 서패우가 서문륭의 뒤에 다가왔다.
서문륭은 여유롭게 웃으며 검신을 닦던 손길을 멈췄다.
"들어오라 해."
"네."
"암혼전주가 문주를 뵙습니다."
각진 턱에 사내, 암혼전주 관유(關由)는 무릎을 꿇고 서문륭에게 예를 취했다.
"보고해."
"일풍문 곽검명, 사. 뇌정문(雷霆門) 역서천(逆徐天), 사. 밀종문(密宗門) 임사영(林捨永), 사. 문주께서 원하시는 자들의 목을 모두 베었습니다."
"수고했다."
결코 가볍게 죽일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런 자들을 암혼전 무인들이 목을 베었단다.
작은 방파의 주인들이 아니다. 천하에서 내놓으라 하는 곳의 문주들이었다. 허나 그들은 암혼전에게 당했다.
암혼전은 대막검문의 비밀 단체.
게다가 그들은 화무홍의 심복들이다.
모두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화무홍의 수족처럼 지내던 자들이다.
"광무홍이 미쳐 날뛰겠군."
서문륭은 광소를 터트렸다.
"그만 나가 봐."
"예."
암혼전주가 보고를 마치고 물러섰다.
"어디 더 꿈틀거리는 모습을 지켜볼까."
서문륭은 그날 밤 대막검문을 빠져나왔다. 반 시진 정도 경공으로 달린 그는 관제묘 앞에 다다랐다.
"어쩐 일인가. 직접 오는 일은 자제하라 일렀을 텐데."
"죄송합니다. 워낙 급하게 보고드릴 일이라."
"말해 봐."
서문륭과 대화를 나누는 이는 광풍쾌검 좌령이었다.
"사우라는 놈이 사망총 계집과 뭔가 거래를 한 모양입니다."
"거래?"
"네. 아마도 흑천의 복수를 꿈꾸고 있는 모양입니다."
"미치겠군."
복수라. 그건 약한 벌레 같은 놈들이 내뱉을 단어가 아니었다. 서문륭은 실소를 터트렸다.
"십절무황은 알고 있나."
"아직 모르는 눈치입니다."
"실수였어. 소아경 그 계집을 사망총주 자리에 앉힌 거 말이야.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한때는 그놈의 계집이었다는 걸 조심했어야 하는데."
"사우라는 놈은 안휘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거야, 원. 우리 쪽 일이 아니라 뭐라 명령을 내릴 수도 없고."
사우에 관하여서는 사망총이 맡는다고 알고 있었다.
헌데 그 빌어먹을 사망총주가 다른 뜻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서문륭…… 아니, 진천남은 좌령이 물러갔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사망총이 다른 뜻을 품었다면 분명 위에서 척살령이 떨어질 것인데. 뭐지, 이 불안한 기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