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五章 위기 (20/38)

第五章 위기

"갑자기 융중산은 뭐 하러 갑니까."

사천성에서 호북성까지 오는 내내 어디를 가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가 융중산 근처 마을에 오니 대답을 해 준다.

심보도 이런 고약한 심보가 없었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누가 보면 제가 시종인 줄 알겠습니다. 먹으라 하면 처먹고 싸라고 하면 싸는."

"……."

사우는 말없이 음식을 입 안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많이 먹어야 돼."

"네?"

"지금 먹어 두지 않으면 앞으로 사흘은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할 거야. 그러니 조용히 하고 먹어 둬."

그러더니 음식을 더 주문한다. 술까지 시킨다.

지금까지 먹은 것만 해도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또 먹는다니.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을 하러 가길래 표정이 저리도 심각한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찰영."

"네."

"복수하기 전까지는 죽지 마라."

"……!"

"융중산을 오르면 내가 널 책임져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네 목숨은 네가 책임져야 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심각해져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뱉는 사우를 대찰영은 한참이나 쳐다봤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사우는 크지 않은 체구로는 감당하기 힘든 음식물들을 섭취했다.

대찰영의 의사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사우와 대찰영이 산을 올랐다.

융중산.

과거 제갈공명이 은거지로 유명한 그 산을 오른다.

두 사람은 경공을 쓰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대찰영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사우가 그렇게 하니 따르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우의 등을 보며 따라가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자존심 같은 건 상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옆에서 떨어지면 복수고 뭐고 목숨도 제대로 건지기 힘들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우는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쉬지 않고 둘러봤다.

'이쯤인 것 같은데.'

사우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계속 주변을 훑었다.

'찾았다.'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다른 주변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크다.

"엄청나군요."

두 사람은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았다.

"태어나 이렇게 큰 놈은 처음이에요."

'분명 인위적으로 흔적들을 지웠어.'

대찰영의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사우는 혼자만의 생각에 깊게 빠졌다.

'이 정도면 분명 그놈들이다. 살가륵의 흔적을 환희루보다 늦게 찾을 리는 없을 테고. 그럼 여기에 나타날 것인데…… 아마도 검옥 놈들이겠구나.'

검옥은 흑천살막을 지탱하는 자들 중 가장 하위권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허나 그것은 흑천살막 내에서 일이고 검옥의 정예가 중원에 등장하면 천지가 요동칠 것이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자들이다.

특히나 흑천광무 진천남은 일찍이 겪어 봤지만 중원 무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그조차도 흑천살막에서는 비중 있는 사내가 아니다.

"누가 옵니다."

"마존이다."

"예?"

대찰영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오는 하얀 무복을 입은 사내를 바라봤다.

"마존을 만나고자 여기에 온 것입니까?"

"율무천은."

사우는 대찰영에 말을 무시하고 마존에게 물었다.

"아래에 있어. 아무래도 일이 틀어지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잘했어."

"오랜만이야, 찰영."

마존은 환하게 웃으며 대찰영에게 인사를 건넨다. 허나 대찰영은 뭐 씹은 얼굴로 인사를 무시했다.

사우는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위치는 정확한 거야?"

"당연하지. 그만 출발할까."

세 사람은 경공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목적지는 산 정상!

마존과 사우를 선두로, 뒤에는 대찰영이 있는 힘껏 두 사람을 쫓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떤 놈들이 올지 기대가 되는데?"

마존의 전음에서 흥분감을 느꼈다.

"검옥 놈들이 올 것 같다. 절대 만만하지 않으니 방심하지 마. 절대."

한 시진 정도 쉬지 않고 달리자 융중산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사우의 발이 멈췄다.

"지가 알아서 내려오네."

"이런 곳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뭐,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

"감사합니다. 이 미천한 놈을 그리도……!"

"앞서 나가지 마. 그따위 감정으로 온 거 아니니까. 감사하다고 했지. 그럼 보답을 해야지. 누가 널 기다린다. 가지."

대찰영은 혀를 내둘렀다.

저 노인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손자뻘도 안 되는 사우가 반말을 찍찍 내뱉는 걸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가 세상에 무서워하는 자들이 없는 사우의 태도는 목숨이 열댓 개는 되는 사람의 태도였다.

"저 또한 그러고 싶습니다만…… 이들은 제 생각과는 반대인 듯싶습니다."

"날 유인한 건가."

"오해 마십시오. 제가 산을 내려온 이유는 저들 중에서 누군가가 제게 당신께서 오신다 이야기를 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누군지 얼굴이나 구경하고 싶은데. 쥐새끼들처럼 숨어나 있고 말이야. 이봐, 살가륵."

"말씀하십시오."

"무기를 뽑을 거냐."

"물론입니다."

"그럼 네 명이군. 싸울 만하겠어."

살가륵의 실종이 살가륵 본인이 의도한 것이고 현재 자신이 유인된 것이라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도천신이라 불리는 살가륵이 같은 편을 든다면 해볼 만하다.

"너무 자신감이 넘치십니다, 그려."

유령처럼 한 노인이 나타났다.

붉은 적포를 입고 등장한 노인이었다.

"공자. 이들은 검옥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

"현재 융중산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자들은……!"

"사망총이지요."

살가륵의 말을 노인이 단번에 잘랐다.

'사망총!'

사우는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사망총이 나섰다? 검옥 위로 치는 곳이 사망총이다. 그들까지 중원에 나서는 법은 거의 전무하다.

헌데 이번에 사망총이 중원에 등장한 것은 실로 충격이다.

"이 친구, 천룡원 소속이었습니다."

"그렇군."

"살가륵. 이젠 아예 대놓고 기밀을 내뱉고 다니는구나."

무적대군 설무랑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흑천광무가 내 목을 원하기 전, 율천세를 죽인 순간부터 난 네놈들과 타고 있던 배에서 내렸다."

"변심은 곧 죽음의 형벌이 내려지는 법이지."

설무랑이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슥, 스스슥.

수풀 사이, 나무 위, 바위 뒤, 땅속 깊이 사망총 무인들이 숨어 있다. 사우는 느낄 수가 있었다.

설무랑이 손을 들어 올린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기척을 숨기지 않는다.

'족히 오백이 넘는구나.'

정말 큰 낭패다.

검옥 무인 오백과 사망총 오백은 그 차이가 세 배 이상 난다.

게다가 이곳은 첩첩산중이다.

사망총의 주특기는 천라지망이다.

아마 이 산 입구부터 이곳까지 새까맣게 사망총 놈들이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큭…… 크크크큭!"

사우가 배를 잡고 웃는다.

"이번에는 제대로 당했어. 설마 사망총이 나설 줄은 몰랐지. 안 그래?"

사우의 눈은 설무랑에게 꽂혔다.

"그대가 흑천의 동생이라 들었는데…… 맞나?"

"그거야…… 내 검 맛을 보면 알겠지."

사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중원에 나와서 이토록 분노하고 살기를 드러냈던 적이 있던가.

"마존. 그리고 찰영."

"……."

"네."

대찰영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너희들 목숨은 각자가 책임져라. 융중산은 지금 마혼쇄금진(魔魂碎金陣)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 빠져나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호오. 마혼쇄금진까지 알다니. 흑천의 동생이 맞는가 보군요."

"입 닫아. 지금 내 인내심이 끝까지 시험받고 있으니까."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본총의 힘을 직접 느껴 보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흑천께서도 생전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어디 그럼 네놈들 피 맛이 어떤지 베어 보도록 할까."

'노옴. 끝까지 여유를 부리는구나.'

대찰영은 도를 휘둘렀다.

그저 휘두를 뿐이었다.

초식을 쓸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적이라 판단되는 자들이면 도를 횡으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사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가 자신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땅과 하늘, 공기마저 적들로 가득 찬 듯한 착각이 든다.

그만큼 적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강하다.

태어나서 이렇게 강한 무인들을 무더기로 상대해 보기는 처음이다.

사우를 만나지 않았다면, 마인곡에서 암흑제도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치지 않았다면 일각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서걱!

또 한 명의 목을 베었다.

싸움이 시작된 지 반 시진 정도 된 것 같았다. 체력이 조금씩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열을 세겠다. 정확히 열을 세었을 때 내 뒤로 모두 모인다. 여기에 있다가는 깔려 뒈질 것 같으니까."

사우의 전음은 대찰영의 안색을 밝게 했다. 조금은 힘이 나는 듯했다.

하나, 둘, 셋……. 열!

살가륵, 마존, 대찰영이 순식간에 사우의 등 뒤로 모여들었다.

구천격뢰(九天擊雷)!

순간 빛이 번쩍하더니 세상천지를 모조리 찢어발길 우레가 하늘에서 내리쳤다.

"허허허허!"

설무랑은 웃었다.

기가 막혀 웃는 웃음이다.

하지만 눈 속에는 짙은 분노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세상에…… 설마 이 정도일 줄은."

황당하다.

그 많던 사망총 무인들 삼분지 이가 초식 하나에 반병신이 되었다.

"구천제혈신검…… 이 정도였던가. 그래서 그분께서 얻고자 함인가. 이 대단한 것을."

설무랑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천천히…… 아주 여유롭게 사냥을 시작한다."

아직 사망총은 전심을 다하지 않았다.

마혼쇄금진은 아직 펼쳐지지도 않았으니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산 중턱 입구까지 사망총 무인들로 가득하다.

"잔월마도(殘月魔刀)에게 전하라. 살가륵을 무조건적으로 척살하라고. 그리고 지금부터는 모든 초점을 사우라는 사내에게 맞춘다. 그를 생포한다."

설무랑의 명령에 무인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또한 빠르게 신형을 날려 사우 일행의 뒤를 쫓았다.

"내 그대의 도를 한 번쯤은 견식해 보고 싶었습니다."

중년인이 길을 막아섰다.

사우 일행은 찢어졌다.

살가륵과 대찰영.

그리고 사우와 마존으로 말이다.

헌데 살가륵과 대찰영 앞에 거지 행색을 한 이가 길을 가로막았다.

그의 행색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가 한 자루 손에 쥐어져 있었다.

도라고 하기에는 얇았지만 검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젊은이도 당신도 나도 도를 들고 있군요."

"사망총 소속이냐."

"그렇습니다."

"그럼 네놈이 잔월마도라는 놈이겠구나. 설무랑의 뒤나 핥는 버러지 같은 놈으로 유명하던데."

"키키킥. 그런 소문이 나돌았습니까. 전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말이지요."

"대도천신이라 불리는 나다. 겨우 네놈 따위가 막을 길이 아니다."

"아, 그러십니까. 헌데 어쩌지요. 제가 지금 몹시 흥분해 있어서 말이죠. 사람 피를 못 보면 미쳐 돌아 버릴지도 모를 지경이라서요."

잔월마도 유겸(劉兼)은 도를 횡으로 그었다.

순간 빛이 번쩍하더니 도기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살가륵은 좌로 대찰영은 우로 찢어졌다. 조금만 늦었다면 두 사람 뒤에 있던 나무처럼 몸이 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신형을 멈추지 않고 유겸에게로 향해 치고 들어갔다.

대찰영이 하체를, 살가륵이 상체를 노렸다.

허나 재빠른 몸놀림으로 유겸이 두 사람의 등 뒤를 점했다.

스윽.

"크아악!"

워낙 기묘한 신법이었던지라 두 사람 모두 한순간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대찰영의 옆구리를 베었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 않아서인지 출혈이 심하지는 않았다. 살가륵은 대찰영을 신경 써 줄 시간이 없었다. 바로 두 사람의 대결로 돌입했다.

잔월마도의 도법은 살인적으로 거칠고 변화가 막심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초식도 없이 막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허나 살가륵은 이처럼 거칠면서도 정교한 도법을 견식해 본 적이 없었다.

잔월마도, 유겸.

그에 대해서 살가륵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사망총주의 친척이라는 것과 설무랑의 신복이라는 것 외에는 없었다.

도법에 있어서는 흑천살막 내에서 자신만 한 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옛날이야기인 듯하다. 지금은 유겸처럼 젊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살가륵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산 아래에서는 율무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다. 아끼는 아이의 아들이다.

반드시 자신이 그 아이를 도와야만 한다. 그래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껏 신분을 속이고 살아온 자신이 죽은 율천세와 율무천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었다.

"하아압!"

힘찬 기합과 함께 살가륵과 유겸의 도가 공중에서 부딪혔다.

서로 내력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여서 두 사람의 병기가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었다.

불꽃이 피고 두 사람의 신형이 주변을 빠르게 오고갔다.

대찰영은 두 사람의 싸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전한 곳까지 땅 바닥을 기었다.

그는 오른팔 부분의 옷을 북 찢었다.

상처가 난 곳을 동여매었다. 그러곤 이를 악물었다. 고통이 멈추지 않았지만 참아내야만 했다.

여기서 이러고 주저앉아 있다가는 명줄 끊기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없던 힘도 생겨났다.

도극을 땅에 박고 겨우 몸을 일으킨다.

그러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을 보았다.

너무나 차원이 다른 세상 사람들의 무공이었다.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우가 자신과 마인곡 사람들을 그토록 혹독하게 수련시켰는지 이해가 되었다.

패천문? 사마련? 철대악 같은 자들을 상대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로 저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사우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결단코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저들이 누구인지, 왜 저토록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살고자 하는 욕구만이 치솟아올랐다.

대찰영이 혼자만의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에 싸움은 끝이 났다.

"가자, 아이야."

어떤 이가 이겼다고 해야 할지 판가름하기 힘들었다.

살가륵의 왼손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서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재빨리 점혈을 하고 출혈을 막는 데 힘을 썼다.

반면 유겸은 다리 하나를 잃어야만 했다.

살가륵은 그의 목숨을 거두지는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모여드는 자들 때문이었다.

해가 졌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아…… 하아."

대찰영의 숨결이 거칠었다.

체력이 고갈된 것이다.

유겸을 처리하고 나서 모두 세 차례의 무리를 만났다.

모두가 사망총의 무인들이다.

사실 살가륵은 대찰영이 이렇게까지 버틸 줄 몰랐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벌써 명줄이 끊겼을 것이다.

헌데 버틴다.

지독했다.

절로 감탄이 흘러나올 정도의 독종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하아…… 찰영. 대찰영."

"그렇구나. 숨을 가다듬어라. 천천히, 낮게 쉬어라. 그리고 쉴 수 있을 때 마음껏 세상 공기를 마셔 두려무나. 언제까지 시간이 허락될지는 모르겠다만."

"내 아버지는 환도문의 사람이셨습니다."

"그러하냐."

"복수를 해야 하는데…… 지금 이 꼴로는 살아서 산을 내려가지 못하겠죠."

대찰영의 숨결이 점점 작아져 갔다.

"말을 아끼거라."

"정말이지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이런 곳에서 죽기 싫은데…… 정말 싫은데 말입니다."

대찰영은 몸에 힘이 점점 빠져나감에 따라 불안함이 더 커져만 갔다.

죽음.

그 직전까지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 느껴 보는 기분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살가륵은 그런 대찰영의 행동이나 기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죽음을 늘 달고 살았다.

여지껏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그렇게 생을 살아온 그였다. 삶에 미련은 없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기에.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도 그런 이유가 있다.

살아야 할 이유.

죽지 못하는 이유가 말이다.

그 의지가 생명을 지켜 주고 있었다.

헌데 점점 생기가 끊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살가륵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찰영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그리고 옆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다.

오늘 처음 본 아이였지만 과거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지 대찰영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무서워하지 말거라."

살가륵은 대찰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우에게 전해 주세요. 꼭…… 내 복수를 해 달라고요. 그래야 내가 편히 눈을 감겠다고."

"……."

사위는 새까만 어둠으로 가려졌다.

"별이 참 밝구나."

살가륵은 작은 돌무덤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네 이름은 기억하마. 하늘에서 편히 쉬려무나."

그는 미련을 두지 않고 몸을 돌려 신형을 날렸다.

하늘을 새까맣게 가렸다.

아침 해가 밝아 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독화살들이다.

웬만큼 약한 것들은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우는 검을 위로 한번 휘둘렀다. 검기를 잔뜩 뿌렸다.

후두두둑.

화살이 검기보다는 강하지 않으리라.

모조리 두 동강이 나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우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금 신형을 날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마존이 따른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이다.

벌써 하루 하고 반나절 동안 잠 한숨 자지 못했다.

끼니도 때우지 못했다.

그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할 힘도 없었다.

"이봐! 짜증나게 굴지 말고 그만 나와 보지. 내가 할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사우가 소리쳤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탈길 사이로 사람은커녕 이렇다 할 생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망총이 겨우 이 정도였나? 쥐새끼들마냥 숨어서 뒤나 쫓는 뭐 그런 것들이었어?"

"본총을 능멸한 사람치고 살아남은 이가 없었습니다."

사우와 마존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나뭇가지 위에 설무랑이 나타났다.

"너네가 이겼다."

"사우?"

"너희가 이겼다고."

"하하하!"

설무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흑천의 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의지가 없군요."

"맞아. 그놈과 난 형제지만 많이 다르거든."

"제가 본총의 무인들 칠백을 대동한 이유는 그대를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헌데 이렇게 순순히 잡혀 주시면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미친놈.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 내가 죽인 놈들만 일백이 넘는데 순순히 잡힌 거라고?"

"본총은 그 정도로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사망총 전체가 움직인 것이 아니다. 일부만 데리고 왔다. 칠백 중 백 명이 그리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 인원을 메우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든다.

생각보다 사우라는 사내의 무위가 강하다.

자존심 상하지만 자신과 동급이거나 훨씬 더 높은 고수라 판단이 들었다.

사망총 백 명을 죽였다면 아마도 자신보다 더 강할 것이다.

"원하는 게 뭐야?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고."

"글쎄요. 그걸 꼭 말씀드려야 할까요. 저희는 그저 그대의 목숨을 취하기만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거짓말이 어설퍼. 죽일 수 있었다면 진즉에 그렇게 했겠지."

"눈치가 제법 있으십니다, 그려."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그대를 보고자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나를 생포해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나."

"그렇습니다."

"조건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살가륵과 대찰영, 그리고 이 녀석은 그냥 놔줘."

"……."

설무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네놈에게 협상을 하는 건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을 뿐이야. 독하게 마음먹으면 쉽게는 죽지 않는다. 네놈은 물론 여기 있는 사망총 놈들 깡그리 죽이고 죽는다."

사우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설무랑은 그런 그의 눈과 마주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사우의 말은 진심이다.

설무랑은 진심을 그의 온몸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뭐가."

"너 제정신이냐."

"지금 너는 내가 제정신으로 보이냐. 심신이 지쳐 있을 대로 지쳐 있는데.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심각한 마존과는 다르게 사우는 담담했다.

"어차피 이 새끼들 대가리를 한 번 만나긴 했어야 돼."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잖아. 나도 간다."

"미친놈. 헛소리하지 말고 살가륵하고 대찰영을 데리고 율무천하고 같이 떠나."

"뭘 꾸물대. 내 조건 들어줄 거야, 말 거야."

"그렇게 하죠. 약속대로 일행들을 풀어 드리죠."

사우는 마존에게 그만 가라고 눈짓했다.

마존은 머뭇거렸다.

"빨리 가."

사우는 웃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존의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마존은 사우를 믿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곧 신형을 날렸다.

"자, 가 볼까. 너희 대가리가 있는 곳으로."

"찰영은…… 어찌 되었습니까."

산 입구에서 마존은 살가륵과 대찰영을 기다렸다. 아마 이전에 죽지 않았다면 살아서 내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헌데 내려온 건 살가륵 혼자였다. 분명 흩어지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함께였다.

"죽었다. 양지바른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묻어 주었다."

"……!"

"미안하다. 지켜 주려고 했다만."

마존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너의 복수만큼은 내가 직접 내 손으로 해 주마. 약속하겠다.'

마존은 마음으로 울었다.

자신을 유독 싫어하던 녀석이었다.

자신 때문에 원하지 않던 살인을 저지르던 사람이 대찰영이다.

그가 익힌 내공법은 그러했으니까.

그 아이에게는 그 내공법이 가장 잘 어울렸고 성장하는 데 너무나 필요했다.

아버지의 복수를 너무나도 원하던 그 녀석은 정신력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마인곡에서 함께 나온 자들 중 강했던 사내가 죽었다.

'흑천살막…… 반드시 무너트려 주마.'

사지에서 살아 돌아왔다.

일단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마존과 살가륵은 율무천이 머무는 객잔에 돌아와 끼니를 때우곤 바로 잠이 들었다.

이틀을 내리 잠으로 보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지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우가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가 누구의 손에 이끌려 갔는지 살가륵도 들었다.

설무랑 그는 사망총의 간부다.

사망총주의 엄청난 신임을 받는 이였다.

그가 사우를 데리고 갔다면 아마도 사망총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살가륵도 사망총주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가 사내인지 계집인지조차도 모른다.

하지만 사망총이 얼마나 강한 곳인지는 안다.

융중산을 뒤덮고 있던 사망총 무인들의 기세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우가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벌써 명줄이 끊겼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마존은 살가륵과 지난 이야기를 나눴다.

사우가 자신을 처음 찾아왔던 이야기들, 마인곡에서 함께 있던 자들과 나온 사실들.

또한 마인곡에 있던 세간의 사람들이 마인이라 부르던 자들의 죽음.

살가륵은 침중한 얼굴로 마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까지 들었다.

혈천마성이 사우의 진두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살가륵은 당황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놀란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사우는 흑천의 친동생이다.

그의 무위는 가히 흑천과도 버금갔다.

흑천이 익혔던 구천제혈신검을 익혔다면 아무리 못해도 천룡원 원로들이 덤빈다고 해도 쉽게 이기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천룡원 모두가 움직이면 현 중원에서 그들을 상대할 어떤 문파도 존재치 않는다. 그만큼 강한 자들인데 사우 하나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사우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예였다.

그런 그였기에, 혈천마성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살가륵은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혈천마성은 흑천살막이 세웠고 남북천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혈천마성을 세상에서 지웠다.

그들은 절대 자신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세월이 얼마만큼 지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우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유를 말해 주고 쇄암왕과 거래를 했을 게 뻔했다.

맞다.

그래서 혈천마성이 다시금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이로써 혈천마성이 노리는 대상은 남북천맹보다도 흑천살막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살가륵은 자리에서 일어나 율무천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순간 자신들을 감시하는 눈길들이 그의 피부에 닿았다.

사망총은 아니었다.

'검옥인가.'

설무랑의 명령으로 저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사우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시금 인질로 삼을 작정이다.

아니, 어쩌면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시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의지만은 강하게 박혀 있었다.

"천아."

"네."

"나를 찾아온 이유는 알 것 같구나."

"아직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원주께서 갑자기 왜 사라지셨는지."

살가륵은 율무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줬다. 게다가 마존에게 들은 것들도 전해 줬다.

율무천은 그저 강물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충격적인 이야기들이었음에도 생각보다 반응이 담담하다.

아버지가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도 알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자세를 취한다.

살가륵은 그런 율무천의 태도가 얼마만큼 분노하고 서러워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진짜 분노는 밖으로 터지기보다는 안에서 삭인다. 터트릴 경우 미쳐 날뛰기밖에 더 하겠는가.

살가륵은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려 줬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검옥 무인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지척에 있었다면 분명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건 죽인다기보다는 감시가 주목적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해졌다.

"가시죠."

"음?"

"총타로 가셔야죠. 원주의 자리가 있는 곳으로, 또한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 * *

전란의 소식이 중원천지를 강타했다.

남북천맹을 적으로 삼은 혈천마성이 움직였다. 혈천마성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랬기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그게 사실입니까?"

아침을 먹던 율무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휘성 분타가 당했다고 그러는구나."

"어떻게……!"

율무천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휘성 분타의 크기는 남북천맹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남북천맹 이름 아래 모여 있는 분타와 문파들 중 총타를 제외하고는 가장 크기가 컸다.

그런 곳이 적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손실이었다.

"이게 너희가 말한 계획이냐."

"최선의 방법입니다. 혈천마성의 공격이 아니라면 저들은 그대로 맹주 자리를 대막검문에게 넘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안휘성이냐! 그곳은 정말로 중요한 요충지인데."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깎는 것이지."

"안휘성 분타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면 저들은 그대로 계획을 진행했을 것입니다."

율무천은 허탈한 얼굴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럼 이제 어찌하면 됩니까."

"총타로 돌아간다."

"총타로…… 말입니까."

"그래. 일단 그곳에서 맹주 대리인으로서 네가 전쟁을 진두지휘하면 된다."

"가능할까요."

"그렇게 만들어야겠지. 광무홍도 너를 돕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아직 확실할 수가 없습니다."

살가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구나. 그래도 일단은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총타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존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물론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일이다. 최대한 빠르게 복귀를 해야 한다."

세 사람은 바로 객잔을 빠져나왔다.

총타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전속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한 상인이 건물 뒤로 돌아가 전서구를 하늘 위로 날렸다.

* * *

"날씨 참."

먹구름이 잔뜩 끼어 당장이라도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질 하늘이었다.

그 아래 일단의 무리들과 섞여 사우는 이동 중이었다.

"다 왔습니다."

"그럼 이것 좀 풀어 주지."

사우의 두 눈은 안대로 가리어져 있었다.

"……."

설무랑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우는 입맛을 다셨다.

사우의 눈에는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장원이었다.

그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담벼락이 삼 장은 되었고 그 내부의 모습은 지상낙원이다.

연못이 존재하고 듣도 보도 못한 꽃들과 나무들이 있는 정원도 달려 있었다.

아쉽게도 사우는 그런 것들을 눈으로 지켜보지 못했다. 뭐, 그런 것에 감탄사를 뱉어낼 인물도 아니지만 말이다.

"냄새가 좋은데."

분명한 차이가 났다.

사우는 후각으로 자신이 어딘가로 들어왔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음식 냄새가 나기도 했고 꽃에서 나는 향기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놈들은 자신을 데리고 계속 걸었다.

"이봐. 너희들 은거지가 어딘지 모르게 하려는 건 알겠는데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대답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습한 냄새가 났다.

쇠붙이 냄새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안대가 풀어졌다.

손을 묶고 있던 쇠붙이들도 사라졌다.

"반갑습니다."

중년인이 맞은편에 앉아 웃고 있었다.

사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 밀실이었다.

"제 소개를 하지요."

"상서운(尙瑞雲)."

"의외군요. 제 이름을 다 알고 계실 줄이야."

"사망총주 직속 삼라 중 하나인 청염수라(靑炎修羅) 상서운."

"하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흑천의 동생께서 미천한 저를 알아봐 주시는군요."

사우는 피식 웃으며 상서운의 옷을 턱으로 가리켰다.

"청색이잖아."

"그런가요? 뭐 어쨌든 초면에 아주 유쾌한 인사였습니다."

"초면? 초면이 아닐 텐데."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뭐, 워낙 영특한 아이인지라."

사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리를 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사망총주의 심복 중인 삼라 중 하나. 그리고 과거 자신이 어렸을 적 세상 밖으로 떠나려 했을 때 잡으러 왔던 자들 중 하나였다.

그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을 보살펴 준 그에게 죽음을 내린 인물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지 않군요."

"오래전 일이라."

사우는 남 일같이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뭐,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한 일이지요. 그때는 흑천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 그런 사람치고는 표정이 아주 잔인했어."

상서운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사람 죽는 걸 처음 봤거든."

"옛날,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도록 하죠."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한 며칠 이곳에서 쉬시면 됩니다."

"그게…… 날 이곳으로 데려온 이윤가?"

"예. 간단하지 않습니까. 지금 지하라 그렇지 위로 올라가신다면 꽤나 만족하실 정도로 꾸며져 있습니다."

사우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하나만 물어볼게."

"예."

"사망총주 어딨어."

"……!"

"당장 데려와."

"총주는 지금 이곳에 안 계십니다."

"그래? 그럼 여기 있는 놈들이 모조리 땅에 묻혀야 모습을 드러내려나."

"협박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럴까. 과연?"

사우의 낯빛이 굳어졌다.

"크크큭. 제대로 당했네. 언제 풀었지."

"당신이 들어온 순간부터."

밀실에는 독이 풀어져 있었다. 공간 안에 있는 사람 중 사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해독약을 먹었을 것이다.

"마화초(魔花草)가 섞여 있는 것이라 좀 독할 것입니다."

"하하. 그랬나. 마화초라면 당할 만하지."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사우의 몸이 탁자 위로 쓰러졌다.

"데려가."

수하들이 사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설무랑."

"왜."

"총주가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

"글쎄다. 구천제혈신검."

"그걸 노리는 자들은 많아. 본총뿐만 아니라 검옥, 그리고 다른 놈들도. 괜히 이렇게까지 하면서까지 사우라는 놈을 데리고 있는 건 좋지 않아."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우리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주제 파악을 못했군 그래."

상서운은 자조 섞인 미소를 머금으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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