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방해 (19/38)

第四章 방해

사우는 검을 뽑았다.

검을 뽑기 전에는 주먹과 발을 사용했다.

청섬멸절을 이용해 달려드는 족족 명을 빼앗았다.

그의 공격은 너무나 단순했다.

한 공격에 한 명씩 요절을 낸다. 신기에 가까웠다.

피하고 가격한다.

그러면 멸천대 무인은 저세상으로 떠났다.

마치 시정잡배들을 상대하는 듯이 몸이 가볍고 빠르고 정확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도용은 입이 바싹바싹 말라 갔다. 설마 저 미친놈이 이 많은 인원을 일일이 상대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 같았으면 도망갔어도 일찍이 도망갔을 것이다. 헌데 저자는 벌써 멸천대원 스무 명을 아작 냈다.

원래 저자를 진정으로 상대할 자는 철대악과 혈화 네 명이었다. 멸천대는 그저 그를 밑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이렇게 있다가는 수하들을 모조리 잃겠다 싶어 하제량에게 부탁했다.

밑에 있는 이들을 불러 와 달라고 말이다.

그는 신형을 날렸다.

사우는 여전히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쯔쯧, 기간이 짧아."

인원수는 많은데 호흡이 맞질 않는다.

개개인은 일류라 부를 수 있는데 이들을 제대로 훈련시키기에는 기간이 짧았을 것이다.

최상의 훈련 상태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잡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비켜라!"

사우는 지금껏 뒤에서 지켜만 보던 무인이 달려들자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봤다.

"흐음."

그나마 여기에 있는 놈들 중 상대할 만한 수준이었다.

신도용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사우를 공격했다.

사우는 신도용과 멸천대에 합공을 받으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내공을 절반도 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실력으로 남북천맹을 이기려 한 건가."

그는 진정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품기에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노오옴!"

내력이 실린 사자후가 쩌렁 울렸다.

철대악과 혈화 네 명이 나타난 것이다.

신도용은 수하들을 물렸다.

"지겹네. 며칠 전에 봤는데 또 보다니."

"오늘은 네놈의 목을 반드시 베어 버릴 것이다."

"쩝."

사우는 귀를 후벼 파기만 할 뿐 전혀 긴장되지 않은 반응이었다.

사우는 검에 묻은 피를 옷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이봐."

"……!"

"오늘은 저번처럼 쉽게 상대해 주지 않을 거야. 장담하건대, 오늘 이곳에 있는 연놈들 황천길 구경할 줄 알아."

사우는 구천제혈신검을 펼치기로 했다.

그런 이상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는 자신 외에 없었다.

사우는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

"허허. 공자께서 어쩐 일로."

화무홍은 남북천맹 총타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율무천이 나타났다.

부친의 장례를 끝낸 율무천의 얼굴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간에 마음고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대략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천맹 내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율천세와 살가륵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의 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온 이유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율무천의 음성은 메말라 있었다. 생기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화무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무인이지 점쟁이가 아닙니다, 공자."

그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었다.

율무천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부맹주께서 총타에 들러 다음 맹주 자리를 정하신다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

율무천은 화무홍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화 문주께선 맹주의 자리에 앉길 원하십니까?"

"음? 하하하!"

그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밀어 준다면 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시겠지요."

"지혜로우십니다, 공자."

율무천은 씩 웃었다.

"좋습니다. 오늘 제가 찾아뵌 것은 그 점을 의논하고자 함입니다."

"저와 말입니까?"

화무홍은 눈살을 찌푸렸다.

율무천이 왜 자신과 그 일에 대해서 의논을 한단 말인가.

"전 맹주 자리에 앉을 의향이 없습니다."

"……!"

화무홍은 순간 놀랐지만 이내 냉정을 찾았다.

"전 아버지의 복수를 원할 뿐입니다."

"그건 남북천맹 전체의 숙원이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그 앞에서 당연히 진두지휘하게 될 것이고 말입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조직의 수장이 죽었는데 그 흉수를 밝혀내지 않을 리 없었다. 끝까지 그 살수 놈을 잡아서 명예를 회복해야만 한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맹주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공자."

"예."

"본문은 약하지 않습니다.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검가이자 문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남북천맹이라는 연합의 우두머리를 정하는 일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문주께서는 제가 맹주가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대막검문에서 맹주가 나오길 바라십니까."

"그걸 어찌……!"

사대검문의 수장들과 단위광 사이에서 나오던 이야기를 자리에 없던 율무천이 어찌 안단 말인가.

"어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막검문에서 아버지 다음 대 맹주가 나온다면 문주께서도 좋지 않은 일이 아닙니까."

율무천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천산검문이 맹주 자리를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 최초의 사람이 바로 율무천이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화무홍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경쟁자를 맞이한 셈이다.

그것도 너무나 강력한 경쟁자였다.

화무홍의 계획대로라면 율무천은 예정대로 맹주의 자리에 앉아야만 한다. 그러나 불길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없지 않고서는 서문륭이 단위광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가문에서 맹주가 나와야 한다는 말을 천명이 떨어진 이후에 뱉었다.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은 엄청나게 크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화무홍은 만약 율무천이 아닌 대막검문에서 맹주가 나오는 걸 막아야만 했다.

"제 생각으로는 공자께서 다음 맹주 자리에 오르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지금 제게는 아무런 편도 없습니다. 아버지도 천룡원주께서도. 그런 저를 천룡원에서 밀어 줄까요. 문주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대막검문의 주인이 자신 있기에 패를 꺼냈다면 제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호오.'

화무홍은 생각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는 율무천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현실을 부정하려 든다거나 버팀목이 사라졌음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다스릴 줄도 아는 진짜 무인이 되어 있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게는 맹주 자리를 논할 힘이 없습니다. 헌데, 왜 그토록 대막검문에서 맹주가 나오길 꺼려하십니까."

"그들은……."

"음?"

"아닙니다. 전 그저 아버지의 복수를 원할 뿐입니다. 제가 맹주가 될 수 없다면 천산검문에서 그 자리에 앉을 인물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뜻입니다. 어떤 일이든 하지요. 화 문주께서 제 손을 뿌리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

율무천이 자신의 볼일을 보고 나갔다.

화무홍은 앞뒤가 안 맞는 율무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복수를 원한다?

맹주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

복수는 그가 맹주가 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그 대상이 혈천마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대막검문에서 맹주가 나온다고 복수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화무홍은 심각한 얼굴로 반 시진 동안을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마존은 웃으면서 율무천을 맞이했다.

"내가 잘한 일인지 모르겠네."

율무천의 안색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급격하게 굳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잘하신 일입니다. 대막에서는 맹주가 나오면 안 되는 일이지요."

"난 아직도 모르겠네. 그런 세력이 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고."

"천룡원주를 찾으시려면 저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음."

천룡원주 살가륵.

그가 실종되었다.

마존은 사우의 명령으로 이곳에 와서 율무천과 거래를 했다.

자신들이 천룡원주를 백방으로 찾을 테니 그는 대막검문에서 맹주가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자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글쎄요. 워낙 그 녀석이 자신을 알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율무천은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무심히 눈을 감았다.

'난 맹주가 되어야 한다.'

화무홍에게 내뱉었던 말은 거짓이다.

그저 살가륵을 찾기 위해서 이들과 거래를 했기에 그리 말한 것이다.

살가륵은 자신이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와 천룡원주가 왜 그렇게 자신을 떠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대막검문도 천산검문도 아닌 자신이, 율씨 성을 이은 자신이 맹주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만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 * *

피를 잔뜩 뒤집어썼다.

후각이 마비가 될 정도로 짙은 혈향이 진동한다. 사우는 그 피 범벅이가 된 얼굴로 웃는다.

그 모습이 지옥의 야차와도 같았다.

철대악은 물론 혈화만으로도 부족해 멸천대가 덤벼들었다.

"크크크큭."

구천제혈신검을 오랜만에 마음껏 펼쳤다. 그 결과 멸천대는 절반 이상이, 혈화 네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계속 해 보려고 하는 건가."

"하아…… 하아…… 네놈의 명줄을 끊기 전까지."

"모두 뒈질 텐데."

"건방진 놈. 여기 있는 이들로라도 안 되면 사마련 전체가 네놈을 죽이려 달려들 것이다."

"크크큭. 너무나 현명한 답이군. 그럼 남북천맹을 상대할 전력을 절반 이상 잃을 것인데 말이야."

철대악은 사우의 말을 가벼이 듣지 않았다.

눈앞에 피를 뒤집어쓴 이 사내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너무나도 힘들게 쌓아 온 사마련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강한 사내다.

도대체 이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고강한 무공을 갖춘 이가 천하에 존재하기나 할까.

철대악이 단언하건대 남북천맹 천룡원에 있는 늙은이들 정도 돼야 이 사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만큼 강한 사내가 지금 눈앞에 존재한다.

"아직 뭘 모르네. 싸워야 할 때와 후퇴를 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법을 말이야."

새파랗게 어린 사내가 한 말이었지만 철대악은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도망쳐야 할 때였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모르지 않는다. 허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은 목이 떨어져도 꺾이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특히나 철대악은 그 자존심 하나로 지금까지 성장한 이였다.

그런 그가 다수로 단 한 명의 무인을 상대하다 승부가 나지 않자 도망간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철대악은 바닥을 향하던 검 끝이 사우를 향했다.

"그건 네놈 따위가 가르쳐 줄 답이 아니지."

"기회를 줘도 받질 않으니 뭐 할 수 없지. 호의를 무시하는 예의 없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지."

사우는 진심으로 이곳에 있는 자들을 쓸어버릴 태세였다.

만약 철대악이 도망쳤다면 살려 뒀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진심으로 몰살시킬 것이다.

"잠깐만요."

대가기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에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련주!"

사마련주 지청화가 직접 나섰다.

북천휘와 사가훈 두 호법까지 대동한 채 말이다.

"저 사내의 말이 맞아요. 검을 들어야 할 때와 집어넣을 때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셔야겠네요."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철대악을 향했다.

이미 많은 전력을 잃은 철대악을 질책하는 그녀였다.

철대악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멸천대 무인들만 잃은 것이 아니다. 그녀가 너무나 아끼는 혈화 중 한 명을 더 잃었다.

그녀의 분노를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련주의 허락도 없이 혈화장 여홍을 설득해 벌인 일이니까 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름이 무엇이죠?"

"사우라는 자입니다, 련주."

그녀를 이곳으로 인도해 온 하제량이 귀에 속삭였다. 철대악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하제량이 그녀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사마련주 지청화. 맞나?"

"맞아요. 제가 지청화예요. 그대가 독마궁주를 죽이고 패천문 문도를, 그리고 혈화를 죽인 자들과 일행인가요."

"뭐, 그런 셈이지."

사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뼈째로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분이시군요."

여인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표현이 구사되어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입이 걸걸하네."

"뭐 칼 차고 다니는 무림인이 다 그렇죠."

"그런가."

"자, 이제 어쩌실 생각이죠."

"사마련주와 그 호법들이 몰려왔다고 해서 내가 했던 말을 정정하길 바라는 건가."

"자만이 너무 지나치면 오만이 된다는 걸 기억하세요."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사가훈의 전음을 들은 지청화는 얼굴을 굳혔다.

사가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사내 한 명으로 인해 사마련이 이런 망신을 당해야만 하다니. 그런 일은 지청화 본인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그만 물러가겠어요."

"음? 크크큭."

"……."

"그래도 미련하지는 않네.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두세요. 본련이 그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 있는 자들 모두가 그대에게 사무친 원한을 뼛속에 새겼다는 것을."

"참고하지. 자, 내가 먼저 내려갈까. 아니면 쪽수가 많은 너희가 먼저 내려갈래."

"그대가…… 먼저 내려가세요."

"마지막 자존심이라 이건가? 뭐, 그러지."

사우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그 전에 하제량과 한 번 눈을 마주치는 걸 잊지 않았다.

"모두 총타로 모이세요."

"존명!"

"천기전주는 총타로 가서 저와 독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련주."

* * *

"으리으리하네."

서륜은 남북천맹 총타의 위용을 올려다보며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오 년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지만 왠지 더 웅장해지고 몸집이 커져 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굉장하죠."

아도왕 서패우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 또한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올 적마다 서륜과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들어가시죠."

"잠깐."

"왜요?"

"몰라서 물어? 이제 말해 줘야 할 거 아냐."

"무엇을 말입니까."

"여기 나를 데리고 온 목적."

서륜의 얼굴에는 대답을 해 주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서패우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모릅니다. 하늘에 맹세코."

"아도왕을 믿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서패우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서륜은 웃으면서 총타 입구로 들어섰다.

문지기가 신분을 확인한 후 서문륭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도왕이 문주를 뵙습니다."

서패우가 예를 취하며 서문륭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출타하신 것 같았는데 이곳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러냐. 뭐 가끔은 바람을 쐬고도 싶어서 말이다."

"별일이네요. 아버지도 그런 날이 있으시다니."

시비가 차를 가져왔다. 그녀가 나가자 서문륭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총타에 와 보니 어떠하냐."

"좋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하네요."

"외관은 천하에서 따라올 곳이 없지."

"뭐, 그런 것 같네요."

"녀석. 무슨 반응이 그러냐. 마음에 들지 않느냐."

"어차피 제 것도……!"

서륜은 입을 다물었다.

"설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아니. 맞다."

"아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맹주가 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서문륭은 혀를 찼다.

"철부지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런 어린애 같은 소리만 늘어놓을 것이냐."

"어떤 말씀을 하셔도 아버지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겁니다."

서륜은 더 이상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일어나 나가 버렸다.

"저 녀석을 어찌한다."

"알고 있었지."

"저도 확실히는……."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서패우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자가 둘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서륜이었다.

예쁘게 생긴 외모 뒤에 숨겨진 냉정함은 그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겠지."

"예? 네…… 뭐 저도 나름 생각이라는 게 있는 놈이니까요."

서륜은 피식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뭣도 모르고 따라온 건 아니었어."

"그럼……."

"아니. 부풀려서 생각하지 마. 그저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뭘 말입니까."

"얼마만큼 대단한 곳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어. 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그 자리를 탐하나. 남북천맹이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

두 사람은 전각 위에 있었다.

서륜은 팔자 좋게 누워 있었고 서패우는 그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멋진 곳이지요. 한 번쯤 목숨을 걸어서라도 앉고 싶은. 맹주라는 자리는 그런 자리이지요."

"그럼 아도왕이 앉으면 되겠네."

"그런 농담은 하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살벌하게만 들립니다."

"진심인데. 누가 됐든 상관없어.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자리니까."

"그렇게 가벼이 여길 자리가 아닙니다."

"……!"

갑자기 진지해진 서패우의 음성에 서륜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어떤 사람이 맹주가 되느냐에 따라 무림의 판도가 달라집니다. 피바람이 부느냐, 아니면 모두가 바라는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사람들이 사느냐. 이건 현재 중원 위에 우뚝 서 있는 남북천맹 맹주의 뜻에 달려 있는 일입니다."

"모르지…… 않아."

"율무천 공자는 맹주가 되지 못합니다. 문주께서 도련님을 생각하셨다면 이미 그 수순을 밟아 가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서패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서륜의 눈치를 살폈다.

"받아들이셔야 할 것입니다."

"후훗. 충고하는 거야?"

"감히 제가 어찌."

"고마워. 겸허히 받아들이지, 충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맹주가 되겠다고 말한 건 아니니 착각하지 말라고."

서륜은 몸을 털고 일어서 지붕 아래로 내려갔다.

서패우도 따랐다.

"오랜만입니다, 아도왕."

지붕 아래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아니, 어쩌면 이곳에 오면 꼭 마주쳐야 할 인물이기도 했다.

"율 공자."

"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참, 이분은 본문의 서륜 공자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율무천이라 합니다."

율무천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서륜이오."

딱히 두 사람은 길게 자신을 소개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워낙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맹주님의 일은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소."

"뭐…… 많은 무림동도들의 걱정으로 이제 조금은 안정이 되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은 영 아니었다.

끼니를 수시로 거르고 빈속을 술로 달래었다. 나흘은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편 하나 없는 이 넓은 곳에서 홀로 싸워야 하니 더 이상의 방황은 사치다.

"아버지께서 이곳에 머무신다 하시어 오게 되었소. 그럼 다음에 또."

"구경할 곳도 많으니 천천히 즐기시다 가십시오."

"고맙소. 가지."

"예."

서륜과 서패우가 사라지자 율무천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절대…… 다른 이에게 맹주 자리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율무천이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을 때 마존이 건물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정말인가?"

율무천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가? 어딜 말인가."

"그가 있는 곳으로."

"지금 자네 제정신인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다 방도가 있습니다. 그러니 믿고 따르십시오."

"흠. 어딘가. 그가 어디에 있나."

"융중산입니다. 사우도 그곳으로 올 것입니다."

"융중산이라."

사우는 주문룡이 보내온 소식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나 환희루의 정보망은 빨랐다.

아마 남북천맹 총타에 있는 마존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쯤 움직였으리라.

"떠나자."

"어딜 말입니까."

검을 손질하던 대찰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서 좀 더 머물 줄 알았는데 벌써 떠난다니.

"왜 더 있고 싶으냐."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입 다물고 따라와. 누굴 좀 잡으러 가야 하니까."

평소보다 조금 냉정한 말투였다.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에 대찰영은 긴장했다.

이럴 때는 묵묵히 따라야만 한다.

본능이 그걸 알려 주고 있었다.

'분명 그놈들도 올 터. 한 놈만 걸려 봐라.'

* * *

"여기, 여기."

넓은 탁상 위에 낡은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주문룡은 지도 위에 붉은 점으로 칠해져 있는 곳을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여길 친다?"

"그분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흘 후 바로 공격해 들어가라고 말이죠."

"인원은."

"소수입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는 거냐."

"남북천맹 부맹주가 맡고 있는 분타."

"네가 말하는 소수는 몇이나 되냐."

"당신과 나머지 분들은 안에 미리 침투해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안에서 흔들어 놓으시면 되는 겁니다. 밖에서 치는 공격은 저희들로 충분합니다."

사군악은 머리를 박박 긁었다.

"미치겠네. 대책 없는 건 사우나 네놈이나 매한가지구나."

"무슨 문제가 있나요?"

"좋다. 네놈 말대로 우리가 안에서 흔들고 너희가 공격해서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치자. 그다음은 어쩔 생각이냐."

"글쎄요. 전 그다음 명령을 받은 적이 없어서요."

"후우. 먼저 치려거든 이곳이 아닌 바로 여기를 쳐야 한다. 그래야 우리 퇴로를 확보할 수가 있어."

주문룡이 찍은 곳은 다른 분타 두 개 사이에 껴 있었다.

그 사이에 껴 죽기 싫으면 퇴로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옳다.

"맹주가 죽었다지."

심각하게 회의를 하는 순간에도 초호진은 술병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다.

"지금 그 얘기가 중요하냐."

"새로운 맹주가 탄생되기 전에 주도권을 쥐려는 거 아닌가?"

초호진의 눈은 주문룡에게 향했다.

"저희는 그저 명령에만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시진. 그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이니까요."

"미친놈."

아무리 부맹주가 부재중이라는 상황이지만 공격할 곳은 분타들 중에서 상위권에 속해 있는 곳이다.

그런 분타를 소수로 한 시진 안에 무너트리겠다는 말은 엄청난 자만이었다.

허나 사군악은 이들이 혈천마성의 후예들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게다가 주문룡과 힘을 합친 혈천사가의 진정한 위력을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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