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혼란 (18/38)

第三章 혼란

남북천맹 맹주 율천세가 죽었다.

소식은 섬서성 서안을 시작으로 중원을 강타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중원을 비롯 저 멀리 남쪽 끝 광동성까지 전해졌다.

칼밥을 먹고 사는 이들, 또는 무림과 무인들과 조금이나마 인맥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이 경악했다.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남북천맹이 탄생해 혈천마성을 징벌했을 적에 호사가들이 말했다.

앞으로 수백 년간 이만큼 강한 힘을 가진 조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남북천맹의 수장이 사망했다.

빠르게 그 이유에 대한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암살을 당했다.

무공을 수련하던 중 주화입마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신빙성 있게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강호라는 세계에 조금이라도 정보가 빠른 이들이라면 암살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죽음이 워낙 충격이었던지라 천룡원주 살가륵이 같은 날 살수의 공격을 받은 것은 가려졌다.

물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또한, 그의 그런 소식이 가려진 이유는 혈천마성의 부활이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남북천맹 수뇌부들이 쉬쉬하던 내용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보를 누설한 자를 찾아내는 일은 포기했다.

중요한 것은 맹주를 암살한 자를 잡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흉수의 흔적은 너무나도 깨끗하다.

혈천마성의 부활과 율천세의 죽음!

두 가지 소문은 흉수를 혈천마성으로 지목했다.

이제 그들과의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사대검문의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맹주의 죽음은 안타까우나 우리는 사람들의 힘을 얻었습니다."

화무홍이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벌써 맹주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열흘이나 지났습니다. 슬퍼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할 수 있죠. 우리는 감정적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화무홍에 말을 이어 보천검문의 문주 적화진이 말했다.

서문륭은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유천묵은 불편해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들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이 지금은 중요했다.

우두머리가 죽은 가운데 남북천맹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혈천마성의 등장으로 인한 죽음인지를 파악하기가 힘이 들었다.

"천룡원은 어떻다고 하더이까?"

유천묵은 화무홍을 보며 물었다.

"글쎄요. 이렇다 할 발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룡원주께서도 실종을 당하신 가운데 그분들 또한 판단에 신중을 기하시는 거겠지요."

말을 마친 화무홍은 씁쓸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차를 마셨다.

"참, 오늘 부맹주께서 오신다 들었습니다."

"일찍도 오시는군요."

적화진이 비아냥거렸다.

맹주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나도록 등장하지 않았던 자였다. 맹주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치고는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죄송하외다."

문을 열고 오십 대 초반의 사내가 등장했다.

사대검문의 수장들이 곧바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부맹주를 비꼬던 적화진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사자검문(獅子劍門)의 문주 사자천왕(獅子天王) 단위광(單威光)!

오십 대 초반의 그는 나이에 비해 젊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중년의 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자리에 앉자 네 명의 사내들도 앉았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아서 늦었소이다."

"아니, 맹주께서 그런 참담한 일을 겪으셨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적화진이 이때다 싶어 언성을 높였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오. 살아생전 맹주께서 이 부족한 사람에게 부탁하고 가신 일이오."

"그게 무엇입니까?"

화무홍이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속내는 꽤나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바로 후계자 문제외다."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오늘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앞으로 누가 다음 맹주가 되었으면 좋겠는지 회의를 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맹주는 미리 그것을 정해 놓았다고 하니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율무천 공자를 다음 대 맹주로 생각하셨소."

단위광은 커다란 두루마리 서찰을 꺼내어 책 상 위에 펼쳤다.

단위광이 말한 내용과 함께 맹주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천명이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이었고 그렇지 않는다면 반심을 품은 것으로 오해 받을 일이었다.

"남북천맹에 맹주는 반드시 율씨 성을 가진 이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소이다. 하지만 맹주께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분은 율 공자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율천세가 살아 있었다면 반대하고 나설 이들이 꽤나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달랐다.

맹주가 혈천마성에게 살해를 당한 상황을 그대로 유리하게 흡수하려면 율무천을 맹주로 앉혀야만 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맹주가 되었고 그 칼날은 혈천마성으로 향한다.

그것이 앞으로 남북천맹 무인들에 사기를 복 돋아 주고 가슴을 뜨겁게 할 표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단위광의 말을 못 알아들을 이들은 이곳에서 없었다.

"이의 있으신 분은 지금 말씀하시오."

"……."

잠깐의 정적이 감돌았다.

"그럼 없는 것으로 알겠소."

"천룡원에서는 반대가 없겠습니까?"

적화진이 물었다.

"그럴 것이오. 오늘 천룡원으로 들러 그분들의 의사 또한 여쭤 보겠지만 별일이 없는 한 율 공자께서 맹주로 추대될 것 같소."

단위광은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기다려 보시지요."

"……!"

단위광을 불러 세운 건 놀랍게도 서문륭이었다.

"난…… 내 자식을 맹주로 앉히고 싶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적화진이 너무 놀란 얼굴로 물었다.

화무홍과 유천묵, 단위광도 놀랐다.

"내 아들 서륜을 남북천맹 맹주 자리에 앉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쾅!

"천명을 거스르겠다는 말이오!"

단위광이 진노했다.

사실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는 일방적으로 이들에게 맹주의 유언을 통보하기 위함이지 의견을 나누고자 함이 아니었다.

이미 율무천이 맹주의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서문륭이 그 천명을 거스르겠다고 말한다.

만약 화무홍이 이런 말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놀라고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맹주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항상 그 자리를 노렸으니까 말이다.

허나 대막검문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권력을 멀리하던 대막검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고 역사가 깊고 강한 무인들을 육성하고 있는 곳이다.

절로 섬뜩해진다.

그 긴 시간 자신들의 가문에서 맹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해 보라.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부맹주의 말씀대로 율 공자가 맹주로 추대됨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제 아들놈이 맹주의 자리에 앉지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천명이오."

단위광은 단호히 말했다.

"천명이라 하더라도 천룡원에서 과반수 이상이 반대를 하면 이뤄질 수 없지 않습니까."

"마치…… 그리된다고 장담을 하는 것 같소이다."

단위광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매섭게 서문륭을 노려보는 건 잊지 않는다.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는 동전을 던져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일이지요."

그는 여유가 있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구나.'

화무홍은 적수를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다.

전혀 자신의 예상 밖에서 적을 만나니 당혹스럽기도 흥분되어 쉬 진정을 하기가 힘이 들었다.

"일단…… 천룡원에 천명을 전하시지요."

"그대의 뜻대로 천룡원에서 반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단위광은 냉기를 피우며 밖으로 나갔다.

"지금껏 그런 생각을 품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화무홍이 감탄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런 욕심도 없으실 줄 알았는데."

유천묵은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투였다.

서문륭은 이들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웃으면서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실내를 빠져나갔다.

단위광은 천룡원 입구에서 반 시진째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귀성과 귀부의 무인들이 앞을 막아섰다.

아무리 부맹주라 할지라도 이들은 천룡원 직속이다. 그가 어쩌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맹주가 자신에게 남긴 서찰은 이미 안으로 들어갔다.

원로들이 급히 회의를 하고 있는데 직접 전하고 의논을 나눠야 할 자신은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반 시진째 지속되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물론 중요한 사안이기에 오래 걸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이 밖에서 이렇게 대기해야만 하는 것이 억울한 것이다.

명색이 부맹주다.

맹주 다음으로 가장 권위가 높은 자리에 있는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는 건 마땅치 않았다.

단지 자신이 무시를 당해서라는 기분 때문만은 아니다. 조직이라면 그 자리에 맞는 직책에 따라 무게가 존재한다.

그런데 천룡원은 부맹주라는 자리의 무게를 너무나 가벼이 여긴다.

그렇게 되면 밑의 수하들에게도 기강이 서질 않기 때문에 조직이 흔들리는 지경에까지 가는 것이다.

남북천맹도 현재 그런 기미가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그 뿌리가 흔들려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부와 대치한 채 스스로 화를 삭이던 단위광에게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귀성이 말했다.

"들어와도 된다고 하오."

"알겠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단위광이 귀성의 안내를 받았다.

"부맹주 단위광이 원로들을 뵙습니다."

실내에는 다섯 명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천룡원주 살가륵을 제외한 이들이 바로 남북천맹 원로들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아이야."

단위광의 나이보다 배는 더 산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들의 시선으로 단위광은 손자뻘인 셈이었다.

둥근 탁자를 중심으로 그들이 앉아 있었고 비어 있는 의자는 천룡원주의 자리였다. 감히 단위광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어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들도 그런 그에게 자리를 권하지는 않았다.

"맹주가 전한 내용은 잘 봤다."

천룡원주 살가륵을 제외하면 이중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자가 있었다.

무적대군(無敵大君) 설무랑(雪無浪).

그는 사실 천룡원주보다 나이가 많지만 워낙 대천도신이라는 별호가 천하를 떨쳤기에 원주 자리를 그에게 양보한 것이다.

무공의 고하를 따졌을 때 설무랑은 가히 지존이었다.

그건 단위광이 단언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가볍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율무천을 맹주로 세우겠다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들려오자 단위광이 시선을 돌렸다.

등이 굽어져 있는 곱추의 노인이었다.

마치 열 살도 채 되지 않는 아이의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사귀랑(邪鬼狼) 표학(飄鶴).

"그렇습니다. 맹주께서는 천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만큼 간절히 원하시고 계셨다는 뜻이죠."

"하! 그따위 놈이 내린 명령이 무슨 천명이라고. 어차피 우리가 반대하면 물거품이 될 일을."

순간 단위광은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예전부터 이들은 율씨 성을 지닌 이들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 없었지만 지금의 느낌으로는 불길했다.

자신이 너무 이들을 믿은 것일까?

당연히 율무천을 맹주의 자리로 앉힐 것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을 너무 미리 한 것이었을까.

"율무천이 맹주의 자리에 앉으면 율가 놈들이 사 대째 해 처먹는 것 아니야?"

민대 머리에 승려 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 말했다.

광풍쾌검(狂風快劍) 좌령(左靈)이 바로 그 노인의 정체였다.

천하에서 쾌검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그였다.

승려도 아닌 이가 행색은 고승처럼 하고 다닌다. 워낙 돌출행동도 자주 하는 인사인지라 남북천맹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말을 듣고 단위광은 지금의 분위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깨달았다.

이들은 율무천이 맹주에 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실내의 공기가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불현듯 서문륭이 자신의 뜻을 당당하게 말한 것이 떠오른다.

'허어!'

그는 분명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천룡원에서 율무천을 맹주의 자리에 앉히는 것을 반대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참에…… 다른 씨를 앉혀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은데 말이야."

다른 이의 말이었다면 농으로라도 받아들였을 말이었지만 무적대군이 내뱉었다면 그건 현실로 나타날 일이 된다.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유? 감히 네놈 따위가 우리의 뜻을 묻겠다는 것이냐?"

좌령의 몸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

"……!"

"남북천맹은 우리가 세운 것이다. 맹주라는 직책이 있지만 천룡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까짓 맹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좌령의 일갈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이들 천룡원의 원로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남북천맹이라는 조직 안에서 못할 일이 없다.

단적인 예로 맹을 대표하는 맹주가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조직이 천룡원 직속이라는 것이다.

다른 문파에서는 문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조직은 존재치 않는다.

그 윗선에 배분이 높고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그런 일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남북천맹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대놓고 율무천을 반대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껏 오로지 자신들의 개인 취미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던 이들이다.

만약 이들이 당장 내일이라도 맹에 관한 일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맹주의 자리는 공석이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다음 맹주는 우리가 정할 것이니 너는 그만 물러가라."

"……."

단위광은 뭔가 이대로 물러가서는 안 될 것 같아 머뭇거렸다.

"노옴! 감히 네놈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좌령에 다시 한 번 노호성을 터트렸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다.

단위광은 하는 수 없이 실내를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너무 과했어."

"키키킥. 그런가? 별것도 아닌 놈이 부맹주랍시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길래."

사귀랑 표학이 핀잔을 주자 좌령이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 단위광에게 보여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살가륵이 앉아야 할 빈자리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서문륭이었다. 아니, 진천남이었다.

서문륭의 얼굴이 아닌 실제 자신의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계획대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설무랑이 진천남에게 대하는 태도는 사뭇 정중했다.

"살가륵은 어찌 되었습니까, 주군."

좌령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주군이라니!

광풍쾌검 좌령이자 남북천맹 원로인 그가 주인으로 모시는 자가 있다는 건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실내에는 놀란 인물은 없었다.

"지금 본옥의 정예가 추격하고 있다. 곧 목숨이 끊기겠지."

"다시는 살가륵을 보지 못하겠군요."

검옥의 정예가 나섰다면 살가륵을 놓칠 일이 없었다. 좌령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놈은 어찌 되었소."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노인이 물었다. 한쪽 귀가 없는 자로 그는 수룡무검(水龍武劍) 한비(邯飛)였다.

"지금 사망총(死亡塚)에서 흔적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허! 본총이 나섰단 말입니까?"

설무랑이 크게 놀란 어조로 물었다.

"검옥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놀라운 것인데 어찌 사망총까지."

"구천제혈신검을 익힌 녀석이라도 들었는데. 만만하게 보면 큰일이겠지."

한비와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섬도신영(閃刀新迎) 사척(査拓).

살가륵과 쌍벽을 이루는 도법에 달인이다.

뚱뚱한 체구를 지니고 있지만 그의 쾌도는 가히 일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말에 진천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아니 흑천의 혈육…… 구천제혈신검을 직접 맞아 본 저로서는 감히 살려 둘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진천남은 아직도 사우에게 당한 공격의 후유증이 복부에 남아 있었다.

만만하게 봤다가 자칫 잘못했으면 저세상으로 갈 뻔할 정도였다.

천하의 흑천광무가 말이다.

"흑천광무께서 당하실 정도면…… 흐음!"

"그러니 사망총이 나선 것이지요. 그놈은 혈천마성까지 자신의 손에 넣어 휘두르려고 하는 놈입니다."

"제 형의 복수를 하려는 거겠지요?"

"아마도 그런 듯싶습니다. 일찍부터 그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위에서 별다른 명이 없어 그대로 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놈이 지금 잔꾀를 부려 가면서 물을 흐리려 하니 그냥 둬서는 아니 되겠지요."

"본총이 나섰다면 금세 해결될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사망총에 속해 있는 이는 설무랑이었다.

"아마도 설무랑 그대가 나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입니까?"

"사망총이 표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그대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때가 되면 명령이 내려오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진천남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머금었다.

* * *

"율천세가 죽었다?"

사우는 그 소식을 접한 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갑자기 죽은 이유들이 천하에 떠돌고 있지만 정작 누가 죽였는지는 몰랐다.

허나 사우는 그를 누가 살해했는지 알고 있었다.

"흑천광무…… 진천남."

그는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면, 율천세도 흑천살막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건데. 게다가 천룡원주의 실종이라."

사우는 작은 종이 위에 뭔가를 적더니 전서구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살가륵을 찾아야 한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뭘 그리 중얼거리십니까."

뒤에서 대찰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아니다. 나는 좀 나갔다 올 테니 지난번처럼 네 멋대로 사고 치면 알아서 해라."

"……."

"대답 안 하지?"

"알겠습니다. 헌데 어딜 가십니까?"

"네깟 놈이 알아서 뭐 하게.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 둬."

사우는 객잔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그는 지금 하제량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가 사마련주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호기심이 생겼다.

천기원이 그들을 돕기로 했다면 어느 정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제량은 영특한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밑지는 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혈천마성과 사마련을 손에 쥐려고 한다.

물론 사마련 뒤에 흑천살막이 손길을 뻗치고 있는 실정이지만 남북천맹만큼 깊숙하게 진행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얼굴이 수척해졌네."

"당신이 내놓은 거래가 워낙 무거워서 말이지."

"그런가. 쯧, 실망인데. 천기원을 이끄는 자가 그리도 담이 작으면 큰일인데 말이야."

"지금 그대가 천기원을 걱정하는 것인가?"

"걱정? 하하! 걱정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지. 동정이라고나 할까."

으드득.

하제량이 이 가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린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우의 얼굴을 짓이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의 무위를 두 번이나 지켜본 하제량이기에 함부로 살기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목숨을 보존하려면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네가 내린 결론을 들어 보려고 왔어."

"……."

"설마 더 기다려 달라는 건 아니겠지. 내가 성미가 좀 급한 사람이거든."

"난 사마련이 남북천맹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도움을 주고 있지. 그런데 당신이 상대하려는 자들이 사마련을 도울지도 모르기에 확신이 생겼어. 남북천맹을 세상에서 지울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야."

"그 말은 내 제안을 거절한다는 거겠군."

사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마련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었다.

일종의 호의라고나 할까.

헌데 이들이 거부를 한다. 손해 볼 것은 없다. 어차피 사마련이 흑천살막과 손을 잡는다고 해도 이용당하다 끝이 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과 손을 잡으면 그나마 무엇인가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생긴다. 물론 저들 입장에서 당연히 위험한 모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남북천맹에 흑천살막이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는 이상 그들을 이기는 방법은 없었다. 현재 사마련의 힘으로는 백 년이 지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쥐새끼 같은 근성이 있었네."

사우는 차갑게 얼굴을 굳혔다.

이곳은 이름 없는 야산이다.

당연히 사우와 하제량 두 사람 외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야만 한다.

사우는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쥐새끼라……."

하제량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조금 뒤에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보면 알겠지."

"명령으로 오긴 했지만 상대는 겨우 한 사람 아닙니까."

멸천대 부대주를 맡고 있는 위서진(魏庶盡)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낡은 모옥을 바라봤다.

"호법께서 내리신 명령이다. 그리고 저놈은 네가 생각하는 약한 놈이 아니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멸천대 백오십이 동원되었는데 당연히 절정의 고수이겠지요. 하지만 이건 너무나 과할 정도로 많이 동원되었습니다."

신도용은 말없이 모옥만을 응시했다.

이미 백오십의 멸천대 중 절반이 주변에 진을 펼치고 있었다. 제아무리 절정고수라 할지라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산 밑 입구에는 철대악과 혈화 네 명이 지키고 있었다.

얼마만큼이나 저 사내를 잡을 의지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신도용은 검을 든 손에 힘을 줬다.

모옥 안에 있는 사내는 자신의 동생을 죽인 자들과 일행이다. 그리고 패천문 문도들을 도륙한 흉수이기도 하다.

그 선봉에 자신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철대악에게 감사한 그였다.

콰아앙!

모옥의 한쪽 면이 부서지고 하제량이 튀어나왔다. 그의 신형은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간다. 절대 빠져나갈 구멍을 내줘서는 안 된다!"

이윽고 멸천대 칠십이 검을 뽑아 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내를 향해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