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第一章 그들만의 방법 (16/38)
  • 3권

    第一章 그들만의 방법

    분명 하늘은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도시 주변은 환하게 밝았다.

    밤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하루의 피곤을 풀곤 한다.

    허나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을 시작하는 자들이 있다. 절강성 항주라는 도시에는 유독 그런 밤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곳이 몰려 있었다.

    그 중심에는 환희루가 존재한다.

    항주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은 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환락과 유희는 지상낙원이라 불린다.

    하루에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환희루를 들락날락거렸다.

    그 입구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자들 세 사람이 들어섰다. 모두 이십 대 후반으로 이미 다른 곳에서 거나하게 취해서 온 상태였다.

    점소이는 그들을 빈자리에 안내했다. 곧 주문을 받고 사라졌고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자리를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 사람은 술과 음식을 시켜 놓고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왁자지껄 신나게 떠들어 댔다.

    두 시진가량 그들은 술과 자신들의 이야기에 취해 있다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그들은 이틀 간격으로 환희루를 찾았다.

    세 사람의 주문을 받은 점소이는 조용히 자신의 상관에게 다가와 소곤거렸다.

    "그 녀석들입니다."

    상관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이윽고 슬쩍슬쩍 예의 주시하던 세 사람이 사라지자 그는 환희루에 상층부로 향했다.

    그곳은 환희루에 주인이 머무는 방이었다.

    "접니다."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지만 사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에는 환희루의 주인 주문룡이 침상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남북천맹에서 항주로 집중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인데."

    "요 며칠간 찾아오는 자들인데 겉으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분명 전음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알았어, 가 봐."

    사내가 나가자 주문룡은 한참이나 있다가 책을 덮고 몸을 일으켰다.

    "이적."

    "예."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저들의 눈이 너무 빨리 이곳을 향했어. 계획을 좀 서둘러라."

    이적이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자취를 감췄다.

    주문룡은 환희루 건물을 은밀하게 빠져나와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가다가 경공을 사용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산을 올랐다.

    자정이 넘은 시각의 산은 두려움의 극이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주문룡은 거침없이 발을 굴렸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세 개의 무덤 앞이었다.

    이곳은 주문룡이 일곱 살 적에 온 이후로 다시는 찾지 않은 장소였다.

    주문룡은 감정이 없는 눈길로 가운데 있는 무덤을 응시했다. 그곳은 그의 조부가 누워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아버지가, 조부의 무덤 왼쪽으로는 어머니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두가 남북천맹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이유는 세 사람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다.

    그 이상 이하도 없다.

    현재 남북천맹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은 세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복수의 대상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그의 뒤로 인기척이 났다.

    모두 네 명의 사내였다.

    그들은 주문룡이 자신들을 바라볼 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면서 기다렸다.

    일다경 정도 지나자 주문룡이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쇄암왕을 뵙습니다."

    네 사람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잘 왔다. 혈천마성의 혈족들이여."

    주문룡은 왕이 신하를 바라보듯 네 사람을 내려다봤다. 위엄 있는 그의 모습은 실로 그것을 연상시켰다.

    "철권이가(鐵拳李家)의 이사민(李使旼)입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거한의 사내가 말했다.

    "용황신가(龍皇神家)의 용경(龍景)입니다."

    애꾸눈의 사내가 말했다.

    "천외백가(天外白家)의 백뇌혼(白雷魂)입니다."

    미공자가 말했다.

    "천화유가(天花兪家)의 유단(兪丹)입니다."

    가슴에 황금빛 꽃이 만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말했다.

    지금 주문룡의 눈앞에 있는 네 사람.

    이들이 바로 멸망한 혈천마성의 유일한 혈족들이었다. 네 사람의 피는 섞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선조들 또한 혈천마성의 주인과 친혈육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선조들과 혈천마성의 주인은 피로 맹세한 사이다.

    그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은 어떤 것들로도 끊어 놓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수십 년 만에 한 자리에 이렇게 모인 것이 그 증거다.

    네 사람은 그동안 환희루주 주문룡의 지원 아래 수하들을 키우고 수련시켜 왔다.

    이들의 부친 때부터 비밀리에 해 온 일이었다.

    "모두 일부 수하들을 데리고 암흑제도로 들어가라."

    "명을 받듭니다."

    네 사람의 고개가 꺾였다.

    * * *

    "저곳으로 오늘 새벽 중형 배 세 척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염화신창(閻火神槍) 임무열(林無熱)이 가리킨 곳은 안개가 가득 낀 암흑제도였다.

    그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뱃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저 근처 어딘가에 암흑제도가 있다고들 한다.

    "운부는 언제쯤 도착한다고 하더냐."

    "아마 오늘 오후면 이곳에 모일 것으로 보입니다."

    "후우."

    구룡천부의 수장 비천괴도(飛天怪刀) 한유(韓裕)는 한숨과 함께 눈살을 찌푸렸다.

    "저곳을 어찌 공략한단 말인가."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 안으로 아무도 모르게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적 부주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운부의 수장 적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은신술은 천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가 바로 적유다.

    "아마 그 녀석도 힘들 것 같은데."

    한유의 눈살은 펴질 줄 몰랐다.

    섬으로 침입하는 것은 너무나 난해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운부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임무열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고 나서도 한유는 한참을 먼 곳에 있는 암흑제도를 바라봤다.

    "정말로 저곳에 혈천마성이 존재한다면 목숨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칼을 가슴에 품은 이후 언제 어디서든 죽을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모시는 주인을 위해서라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저 섬에 있는 자들로 인하여 흘릴 피가 자신들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분명 저들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면 피는 강을 이룰 것이었다.

    한유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고는 수하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일각이 지나자 허름한 복장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 전서구를 날렸다.

    새하얀 전서구는 허공을 향해 나아갔다.

    "중형 배 세 척이 들어가는 걸 보고도 들어가겠다는 말이냐?"

    "적 부주께서는 지금 이 자리가 공적인 자리임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운부 부주인 적유와 구룡천부의 수장 한유는 격의 없는 친구 사이였다.

    흥분한 적유가 실수를 하자 임무열이 상기시켜 주었다.

    "건방진 놈. 흠."

    말은 그렇게 해도 별 악의가 없음을 알기에 임무열은 신경 쓰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시죠, 적 부주."

    "내가 지금 그리하게 생겼소? 중형배 세 척에 뭐가 들어 있는 줄 모르는 상황에서 구룡천부와 운부 검살전만을 데리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오."

    "맹주님의 천명임을 잊지 마십시오."

    "맹주께서도 본부와 구룡천부, 그리고 검살전을 헛되이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오. 내가 직접 전서구를 날리겠소이다."

    "적 부주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검살전주 반요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유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곳까지 와서 시간을 늦출 수는 없었다.

    맹주께서 자신을 선봉으로 명령을 내린 것은 그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저들은 힘을 갖추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그랬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공격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남북천맹 최고라 불리는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것이고.

    하지만 출발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마음이 맞지 않아서는 힘이 들었다. 필패가 예상되는 시작이 동료와의 불협화음이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부맹주님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은 곧 우리가 맹주님의 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소리지."

    한유는 숨기지 않고 지금의 불쾌한 마음을 드러냈다.

    "우리가 비밀리에 총타를 빠져나온 것. 그 이유는 속전속결을 원하시는 맹주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으면 하네."

    한유가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유와 반요진은 수긍하지 못하는 기세였다.

    이럴 때는 강함보다는 유한 자세로 나가야 함을 한유는 알고 있었다.

    "부맹주께 원군을 보내 달라 요청을 할 것이야. 허나 그건 우리가 작전을 실행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지."

    작전에 참여한 이들이 먼저 움직인 이후에 원군의 힘을 빌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오늘 새벽, 암흑제도로 침입한다. 그리고 운부에서 사람을 보내 원군 요청을 하도록 하지. 하지만 이 일은 절대 비밀 사항임을 잊지 말도록."

    맹주 율천세는 이들이 떠나기 전 전권을 한유에게 일임했다. 총타를 빠져나온 순간부터 적유와 반요진의 상관은 그였다. 그의 명령을 어기는 건 맹주의 천명을 거부하는 것과 같았다.

    불만이 있다고 해서 따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화무홍은 보름에 한 번씩 천산검문의 무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직접 지도를 해 주곤 했다.

    그날은 무인들 사이에서 꽤나 곤혹스러운 날이기도 했다. 화무홍은 동작 하나하나 절대로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면 뿌듯해하는 자신들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두 시진가량 진행되는데 그 시간 동안은 화무홍도 사백여 명의 무인들도 모두가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나 강함을 추구하는 무인의 삶을 살아가기에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지도수련이 끝이 났다.

    화무홍은 높은 곳에 올라가 무인들의 수련을 지켜보며 지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저들과 함께 목검을 휘두른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인들을 해체시켰다.

    모두 물러가자 그의 곁으로 사마율(司馬律)이 다가왔다.

    이십 대 중반의 그는 사마태릉의 외아들이었다.

    "천지각주로부터 연락이 와 있습니다."

    "그런가."

    "긴급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화무홍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집무실에는 작은 종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혈천마성?"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이었다.

    냉철한 그가 잠깐 동안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흐음."

    그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혈천마성은 생각하기도 싫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단어였다.

    화무홍은 사마태릉이 전해 온 소식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부께 말로만 들은 혈천마성의 거대한 힘은 아직도 화무홍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는지 몰라도 그때 들었던 조부의 떨리는 음성까지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혈천마성이 다시금 시작하려는 장소에 비밀리에 맹의 핵심 조직이 파견되었다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혈천마성의 등장은 칠 할 이상 확실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갑작스럽게 전해 들은 소식에 화무홍의 안색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지금 상황에서 혈천마성이 등장한다면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마련과의 전쟁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율천세의 빠른 행동으로 핵심 세력이 그곳으로 갔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중요한 일은 그들만으로 혈천마성의 힘을 잠재울 수 있는가이다. 수십 년 전 혈천마성 대부분의 세력이 몰살당했지만 상당수의 후손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화무홍은 이번 일이 섣부른 판단이자 기우였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니면 맹주가 보낸 세력만으로 그들을 잠재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 *

    밤하늘의 별빛마저도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달빛마저도 구름에 가려 사위는 오로지 새까만 어둠뿐이다.

    일정 간격을 둔 채로 다섯 대의 소형 배가 물 위를 미끄러져 가듯 앞으로 나아갔다.

    안개가 가득하여 한 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황이구나.'

    한유는 팔짱을 낀 채 정면만을 응시했다. 마치 한눈이라도 팔면 목이 날아가기라도 하듯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긴장으로 인해 피곤한 줄도 몰랐다.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중 가장 긴장하고 등골이 오싹한 사람은 한유였다.

    현재 암흑제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무인들을 통솔하는 자가 바로 자신이었다. 저들의 목숨이 자신의 명령 하나로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만에 하나 지금의 전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할 것 같으면 무조건 몸을 피해야 한다.'

    구룡천부와 운부, 그리고 검살전이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다. 하나같이 남북천맹에서는 중요한 조직들이었다.

    구룡천부만 하더라도 열 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의 인원이지만 웬만한 문파 하나는 반나절이면 쓸어버릴 전력이었다.

    이들을 아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주인 율천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상대가 혈천마성이기 때문이다.

    한유가 이끄는 배는 암흑제도의 뒷면으로 이동했다.

    하늘 높이 솟은 절벽 아래 배를 댔다.

    몰래 저들의 성지로 침입하는데 당당하게 선착장으로 들어가기는 힘이 들 것 같아서였다.

    배에서 하나둘씩 내려서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절정의 무공을 지닌 자들답게 모두 반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총 사십여 명의 무인들이 암흑제도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구룡천부의 모든 인원을 비롯해 운부의 무인 이십여 명 검살전 무인들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잘 들어라.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혈천마성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앞으로 두 시진 뒤 남은 동료들이 이곳을 둘러싸 총공격을 가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살아남으면 된다."

    혈천마성의 후예들이 있을 것이라는 암흑제도에 들어온 인원치고는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개개인의 무공이 아무리 날고뛴다 하더라도 말이다.

    두 시진 뒤 신호탄을 쏘아 올림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남북천맹 무인들이 암흑제도로 몰려든다.

    하지만 신호탄을 쏘아 올리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곳으로 침입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곳에 오기 전에 한 약속이었다.

    한유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을 굳게 다짐했다. 꼭 살아남아야만 했다.

    "저곳으로 들어갔단 말이지."

    암흑제도가 포구에서 보이는 날은 몇 되지 않는다. 오늘은 불행히도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벌써 이틀이나 되었습니다."

    "흠."

    율무천은 희미하게 그 섬이 있는 위치에서 시선을 거뒀다.

    "신호탄이 터지지 않은 이유는 전멸을 생각하는 것인가."

    "차마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허나 한유 부주께선 신호탄을 터트리지 않는 건 구룡천부와 운부, 그리고 검살전 무인 이십여 명이 몰살당한 것으로 생각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반요진은 율무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 그가 생각하더라도 신호탄이 쏘아 올라오지 못한 건 이해하기 힘이 들었다.

    암흑제도로 들어가 두 시진가량이면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로 백 명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인원이라고는 하지만 일당백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그들이 두 시진도 못 버티고 몰살을 당했을까? 그만큼 저들의 힘이 강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현재 포구에 모인 무인들이 모조리 쳐들어가도 이기기에는 불가능하다.

    "간다."

    "예?"

    너무 놀란 나머지 반요진이 눈을 크게 뜨고는 반문했다.

    그는 율무천의 명령에 대놓고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귀성."

    "말씀하십시오, 공자."

    율무천을 따라 귀부의 수장 귀성이 절강성으로 왔다.

    "부맹주의 원군은 언제쯤 도착합니까."

    "오늘 밤이면 올 듯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검살전주는 들어라."

    "예, 공자."

    "부맹주의 원군이 도착하는 대로 우리는 암흑제도로 들어간다. 지금 당장 나의 계획을 맹주께 전하라."

    "존명."

    "이보시오, 공자."

    반요진이 율무천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자 귀성이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너무 미련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무엇이 말입니까."

    "두 번 말하게 하시는구려. 암흑제도로 들어간 이들이 어디 삼류 문파의 무인들이 아니외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죠."

    "구룡천부의 한유는 범부가 아니오. 지닌바 무공 또한 그 나이에 비해서는 절대적. 공자께서 자존심이 상하실 것 같지만 현재 한유는 그대보다도 강하오."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게다가 머리 또한 비상하고 배짱도 누구보다 두둑하오. 그런 그가 이끈 사십여 명의 무인들의 힘은 강하오. 그런 그들이 두 시진 만에 연락을 두절할 정도로 적들이 강하오. 헌데 어찌하여 공자는 또 한 번 희생을 치르려 하는 것이오. 그들을 잃은 것만으로도 본맹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소이다."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율무천은 고집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더 단호한 얼굴로 가면으로 가려진 귀성의 얼굴을 응시했다.

    "귀성."

    "왜 그러시오."

    "귀부는 어떤 조직입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귀성은 살짝 불쾌해졌다.

    하지만 대답은 해야만 했다.

    그는 명색이 남북천맹 맹주의 자식이었으니까. 큰 변화가 없다면 그가 다음 맹주의 자리에 앉을 테니까. 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단지 예의를 갖출 필요는 있었다.

    "귀부는, 남북천맹에 해가 되는 이들을 베는 조직이오. 뒤에서 딴 짓거리를 해 대는 자들. 남북천맹을 배신하려는 자들을 처리하는 곳이 바로 귀부요."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부는 동료를 버립니까."

    "무슨…… 말씀이시오."

    "귀부는 동료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길을 돌리는 조직인가 묻는 겁니다. 그만큼 냉정한 조직입니까?"

    귀성은 율무천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율무천은 진심으로 저들을 구할 생각이었다. 설령 암흑제도로 들어간 자들이 몰살을 당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시체라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적을 향한 칼날을 숨기지 않고 뽑을 것이다.

    귀성은 가면 속에서 웃었다.

    미련하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다.

    아비와 너무나도 닮은 채로 성장했다.

    영리하지 않지만 용기 있는 남자로 말이다.

    하지만 분명 걱정되는 명령이기도 했다. 아직 자신들은 암흑제도에 얼마만큼의 강한 존재들이 있는지 모른다.

    안개 속에 가려진 섬만큼이나 적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공격하는 건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 * *

    사마련!

    이제는 비밀리에 세력을 키우던 곳이 아니었다.

    바로 오늘 연합 체제를 시작으로 하나의 거대한 단체가 된 사마련이라는 이름을 공표하는 날이었다.

    사천성은 물론 운남성과 귀주성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사마련은 화려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떤 이는 새로운 태양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앞으로 남북천맹을 넘볼 수 있는 곳이 탄생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허황된 소문을 크게 믿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남북천맹이 중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났다.

    다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새롭게 탄생한 사마련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남북천맹으로서는 그리 기뻐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사대검문의 대막검문이 있는 감숙성과 사천성은 굉장히 중요한 길목을 두고 경계를 두고 있었다.

    사마련이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밝힌 순간부터 대막검문과는 언제라도 한 번은 피를 봐야 할 위치에 마주 보고 있었다.

    남북천맹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럴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수많은 인파가 사마련의 총타가 존재하는 사천성 성도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중소방파의 수뇌부들은 물론 앞으로 어떻게든 사마련의 비호를 받으려는 상단과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명한 인물들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총타는 으리으리했다. 전각들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다.

    대연무장의 크기는 특히나 압도적으로 넓었다.

    그곳에 사마련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한 군중들이 새까맣게 몰려 있었다.

    웅성웅성.

    수천 명의 군중들이 한 마디씩만 떠들어 대도 세상천지가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창마신(槍魔神)! 창마신이다!"

    어떤 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창마신이라 소리친 사내 주변인들은 그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통 성인들의 신장 길이 정도 되는 창을 쥐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청색 무복을 입고 있는 그가 바로 창마신이었다.

    십이무룡 중 사신에 속하는 창마신 문인학(聞人學).

    귀주성에 위치하는 창천문(槍天門) 문주의 형이기도 한 문인학이 가진 신분이었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음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팔짱을 낀 채 정면만을 쳐다봤다.

    그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꽤나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귀주성에서 창천문은 그 위세가 대단했다. 많은 문파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창천문만큼은 아니었다.

    남북천맹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지닌바 힘은 충분히 그들 품에 속해도 손색이 없었다.

    다만 창천문은 남북천맹에 속하기를 거절했다.

    그런 그들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인학의 등장은 사마련으로서는 반색을 표할 일이었다.

    물론 단순히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해 참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기회로 창천문을 흡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된다.

    아직 공식적인 식이 진행되려면 시간이 조금 있어야 했다.

    문인학이 나타났다는 걸 전해 들은 철대악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반갑소이다. 본련의 호법을 맡고 있는 철대악이라고 하외다."

    그는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문인학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그의 명성은 일찍이 들어 왔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첫 만남이지만 왠지 정이 가는 인물로 느껴졌다.

    "창천문의 무명 문인학이오."

    "무명이시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천하고수 십이무룡에 이름을 올리신 문 대협이 아니오."

    "과분할 따름이오."

    문인학은 선한 웃음을 보이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철대악은 일찍 그의 존재를 보고 달려온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안면을 트는 건 분명 사마련에게는 독보다는 약이 될 일이었다.

    창천문.

    귀주성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파임을 철대악은 모르지 않았다. 아직 남북천맹에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 중 하나가 바로 귀주성이다.

    비록 천하를 떨치는 유명 고수를 배출해 내지 못하고는 있지만 그 역사가 깊은 곳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명문가의 후기지수들보다는 이처럼 오랜 시간 버텨 온 중소방파가 더 낫다.

    깊이 있는 무공이야말로 철대악이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창천문은 그 역사가 실로 오래되었다.

    그가 알기로는 창천문의 시작은 백오십 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남북천맹에 속해 있지 않은 창천문을 자신들의 무리에 끼게만 한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꼴이 된다.

    역사가 깊고 영향력이 대단한 만큼 귀주성에 있는 문파들이 암암리에 창천문을 따르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들과의 연계가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사마련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련주 천상무후 지청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군중들 틈에 섞여 있는 문인학을 귀빈석으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철대악의 뜻에 따라 자리를 이동했다.

    귀빈석에는 유명한 고수들이 대거 몰려 있었다.

    안면이 있는 자들도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창마신 문 대협 아닌가!"

    오십 대 초반의 사내가 문인학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태룡문(太龍門)!'

    문인학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방금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뚱뚱한 체구의 사내가 바로 태룡문 문주였기 때문이다.

    태청일검(太淸一劍) 유승(柳昇).

    무인의 몸이라고 보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는 문인학이 인정하는 고수 중 하나였다.

    운남성 제일의 문파 태룡문의 유승이 귀빈석에 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놀란 건 사실이다.

    만약 저자가 사마련과 손을 잡기라도 한다면 창천문은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귀주성은 사천성과 남북천맹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운남성마저 저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창천문은 사마련과 남북천맹 두 세력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허나 이미 사마련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몸 바치고 있는 창천문은 남북천맹과는 껄끄러운 사이였다.

    과거 그들이 손을 내밀을 적에 창천문은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 창천문만의 독자적임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남북천맹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사마련이었다.

    며칠 전 사마련으로부터 사신이 왔었다. 사마련이라는 세력이 성장하는 데 창천문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헌데 이제는 예전처럼 자존심을 지킬 수가 없었다. 만약 저들의 손을 뿌리친다면 창천문은 멸문한다.

    사마련이 앞으로 남북천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사이에 껴 있는 자신들의 최후는 뻔했다.

    그러기 전에 두 세력 중 한 쪽에 줄을 서야만 한다.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사마련의 힘이 얼마만큼 대단한지 두 눈으로 지켜보려고 말이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과 예의상에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는 사이 식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문인학이 왔습니다."

    지청화는 가장 상석에서 식이 진행됨을 지켜보다가 사가훈의 전음을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웃었다.

    좋은 소식이었다.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던 창천문이었다. 그곳에서 문인학을 보냈다는 건 자신들에게 손을 반쯤 들어 올려 준 것과 다름없었다.

    "다행이네요. 어떻게든 회유하세요."

    "철 호법이 맡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요. 그럼 안심할 수 있겠네요."

    그녀는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식을 지켜볼 수가 있게 되었다.

    천하에서 유명한 기예단을 불러서 축하 공연을 펼치게 했다. 많은 이들이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련주, 천지전주입니다."

    그녀는 갑자기 들린 하제량의 전음에 얼굴이 굳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말인가요?"

    "긴급입니다."

    지청화는 아미를 찌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화장 여홍만을 대동한 채 그녀는 천화각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천기전주 하제량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혈천마성이 나타났답니다."

    "……!"

    지청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정확한가요."

    "제 팔 하나를 걸죠."

    "하아."

    지청화의 입에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제량이 저토록 자신감 있으니 사실일 것이다.

    "어디죠."

    "절강성 암흑제도라 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남북천맹에서 비밀리에 무인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결과는요."

    "현재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요."

    "반반입니다."

    "무슨 뜻이죠?"

    "혈천마성은 예전 갖췄던 힘을 모조리 회복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채 대부분의 고수들이 죽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들었어요."

    "허면 아직 힘을 갖추기 전에 율천세가 소수의 정예만으로 그들을 처리할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결과가 나지 않았다는 건 혈천마성이 예전보다는 아니지만 이미 전쟁을 치를 준비는 갖췄다고 보여집니다."

    "남북천맹에서는 어떤 이들이 나갔죠?"

    "구룡천부 운부와 검살전이 동원되었습니다."

    지청화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들이라면 능히 엄청난 힘이었다.

    "그들이 전멸했을 가능성은 삼 할 이상입니다."

    "본련에게는 잘된 일이군요."

    "당분간은 말이죠."

    혈천마성이 다시 무림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절대적으로 불행한 소식이었다.

    지금 당장은 남북천맹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릴 수 있어서 좋겠지만 미래를 봤을 때는 좋지 않다.

    "오늘은 본련이 세상에 나타나는 기쁜 날이에요. 천기전주는 이 일을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해 주세요. 이틀 뒤 회담을 열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참아."

    "참고 있습니다."

    하지만 떨리는 어깨는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찰영은 오한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커다란 단상 위에 서 있는 원수의 얼굴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옆에 사우가 없었다면 진정 박차고 뛰어 올라갔을 것이다.

    군중들 품에서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떠드는 철대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찰영에게는 지금과 같은 고문이 따로 없었다. 사우는 그 모습이 뭐가 재밌는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찰영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네 원수가 저렇게 높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어떠냐."

    "죽이고 싶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패천문주를 비롯해 자신의 아버지가 속해 있는 환도문을 멸한 자들이 이토록 커다란 세력을 만들어 냈다. 그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문을 당한 것이다.

    그 추악한 욕망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자들이다.

    복수라는 이름을 달고 형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은 참아야 했다.

    개죽음 따위를 당하기 위해서 그 고생을 하면서 버텨 온 것이 아니다. 헌데 머리로는 참겠는데 가슴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터질듯 요동치며 자신을 괴롭힌다.

    옆에서 사우가 웃고 있는 모습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도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어떻습니까. 제가 저자와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필패야."

    "……!"

    대찰영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물었다. 헌데 돌아온 대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째서입니까."

    "네놈이 아무리 강해졌다 하더라도 저자의 상대는 되지 않지. 나라면 모를까."

    "……."

    "넌 철대악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야. 그 혼자 환도문을 그리 만든 것은 아닐 테니. 복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열 배, 스무 배. 더 잔인하고 악독하게 말이야. 나만 믿고 따라와라."

    대찰영에게만 한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한 번 더 충고하는 말이었다.

    사우는 대찰영의 어깨를 툭 치며 자리를 떠났다.

    * * *

    "면목이 없습니다, 소공자."

    구룡천부의 수장 한유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뒤로 암흑제도로 들어갔던 모두가 있었다. 그들은 멀쩡했다. 다만 피로로 찌들고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율무천은 믿을 수 없는 눈길로 사십 명의 무인들을 살폈다. 다행이었다. 이들은 남북천맹의 핵심이었다.

    "어찌 된 것이냐."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진법에 당했습니다."

    "진법?"

    "예."

    한유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한 명, 한 명의 무공은 일류를 넘는다.

    그런 자들이 사십 명이 되었다.

    그 많은 인원이 진법에 휘말려 이틀 동안이나 헤매었다는 사실은 쉬이 믿기 힘이 들었다.

    "저희는 이틀 동안이나 같은 공간을 헤매었습니다. 바로 이곳 주변을 떠돌다가 지치기를 반복 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소공자를 뵙게 된 것입니다."

    "신호탄을 쓰지 그랬느냐."

    "쏘았습니다. 보지 못하셨습니까?"

    율무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봤다."

    "허면 어찌 이곳으로."

    "너희가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아 제대로 묻어 줘야 하지 않겠느냐."

    한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이 사내는 사지를 향해 들어온 것이다.

    바로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찾아 온 것이었다.

    그게 한유의 마음을 움직였다.

    "반요진."

    "예, 소공자."

    "진법이 풀렸으나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된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본맹에 연락을 취해라. 모두 안전하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귀환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포구에서 머물며 암흑제도를 살핀다."

    율무천의 명령에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나절 뒤 그들은 암흑제도를 떠났다. 물론 혈천마성에 대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남북천맹 무인들이 섬을 떠나자 땅이 갈렸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많은 이들이 튀어나왔다.

    "저들이 포구를 떠날 때까지는 당분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주문룡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너무나 일찍 느낀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예전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해 섬 전체에 진법을 설치시켰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초절정의 무인들만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파해하지 못할 만큼의 강력한 진법이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혈천마성 쇄암왕에게만 내려오는 진법이기도 했다.

    남북천맹 맹주가 온다 하더라도 쉽게 파해하지 못할 만큼의 진법이었다.

    "그분께 연락을 취해라. 이제 슬슬 시작을 하겠노라고 말이다."

    "명을 받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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